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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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
John the Baptist
파일:세례자 요한.jpg
세례자 요한 | 알렉상드르 카바넬 작(作)[1]
출생지
로마 제국 헤로데 왕조
사망지
로마 제국 헤로데 왕조 마케루스
생몰년도
기원전 1세기 ~ 30년
축일
6월 24일(탄생 대축일)
8월 29일(수난 기념일)
상징
붉은 순교자, 낙타 가죽, 머리가 담긴 쟁반, 가리비에서 떨어지는 물, 갈대로 만든 십자가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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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Ιωάννης ο Βαπτιστής (이오아니스 오 밥티스티스)
독일어
Johannes der Täufer (요하네스 데어 토이퍼)
Johann Baptist (요한 밥티스트)[1]
라틴어
Ioannes Baptista (요안네스 밥티스타)
러시아어
Иоанн Креститель (이오안 크레스티텔)
스페인어
Juan el Bautista (후안 엘 바우티스타)
아람어
ܝܘܚܢܢ ܡܥܡܕܢܐ (요한난 맘다나)
아랍어
(유한나 알마마단)
(야흐야 빈자카리야)[2]
영어
John the Baptist (존 더 뱁티스트)
이탈리아어
Giovanni Battista (조반니 바티스타)
일본어
洗礼者ヨハネ (센레샤 요하네)[3]
前駆授洗イオアン (젠쿠주센 이오안)[4]
포르투갈어
João Baptista (주앙 바프티스타)
중국어
施洗約翰
네덜란드어
Johannes de Doper
폴란드어
Jan Chrzciciel
노르웨이어(보크말)
Døperen Johannes
스웨덴어
Johannes Döparen
덴마크어
Johannes Døberen
프랑스어
Jean le Baptiste (장 르 바티스트)[5]
한국어
세례자 요한 (대다수 교파)
침례(자)요한 (침례교 및 침례를 예식으로 하는 교파)[6]
히브리어
יוחנן המטביל (요하난 하마트빌)


1. 개요
2. 생애
3. 역사적 세례자 요한
4. 그리스도교 밖에서의 세례자 요한
5. 기타



1. 개요[편집]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선포하였다. 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공동번역 성서, 마태오의 복음서 3장 1-3절


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

공동번역 성서, 마태오의 복음서 11장 11절[2]


성경쿠란에 등장하는 인물. 예수가 등장하기 직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세례를 베풀며 활동했던, 구약 시대 최후의 예언자.[3]

신약성경에서는 사람들을 회개시켜 예수를 믿을 준비를 하게 하고,[4]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는 역할로 나온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긍정적인 미래를 약속하여 사람들의 해이해진 신앙을 바로잡으며 적정수준의 동기부여를 하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도 사람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하며 사람들의 신앙을 바로잡는다.

한편 예수 집단 및 그 직접적 후계인 그리스도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받은 예수의 세례를 '그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으며, 마침내 부활한 사건'을 예고하였다고 해석하게 된다.[5] 또한 요한과 예수가 세세하게 말하는 바는 다를지언정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탄생일인 6월 24일[6]을 축일로 지내며,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을 전후로 하여 하지 축제를 지낸다. 그의 순교일은 8월 29일이다. 한때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도 요한과 구별하기 위해 세례자 요한을 '요안', 사도 요한을 '요왕'이라고 불렀고, 1960년대에 두 요한을 점차 '요안'으로 통합하여 부르다가 공동번역성서 출간 이후 '요한'이라는 표기가 정착하였다.

정교회에서는 천사위에 오르기 전 모습, 등에 날개는 있으나 고행할 때의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자로 여기기에 정교회에서는 '선구자(그리스어: πρόδρομος, 라틴어: præcursor, 러시아어: предтеча, 영어: forerunner) 요한'이라고도 한다.


2. 생애[편집]


요한에 대한 이야기는 루카 복음서에 나온다. 요한의 아버지는 즈카르야(축일 11월 5일)라는 유대교 사제였고, 어머니는 엘리사벳(축일 11월 5일)이었다. 결혼한지 오래되었어도 엘리사벳은 아이를 갖지 못하였으나 천사를 만난 다음 요한을 임신하게 되었다. 이후 제비를 뽑아 성전에서 기도할 자로 선발되어 홀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고, 그에게서 메시아의 선도자를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게된다. 하지만 엘리사벳의 임신과 자식이 생긴다는 예언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즈카르야는[7] 그 대가로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되었다. 그 후 엘리사벳이 아들의 이름을 천사의 계시대로 요한으로 지으려 하였으나, 조상의 이름 중에서 하나를 따서 이름을 짓던 당시 유대인의 관습에 맞지 않는다며 친척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친척들은 아이 아버지인 즈카르야에게 아이 이름을 물으러 갔고, 즈카르야는 토판을 가져오게 하여 아이의 첫 이름을 '요한'이라고 쓰자마자 입이 부드러워지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임신하였을 때 그녀의 친척인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수를 축복했는데, 예전에 엘리사벳이 임신 중이던 때에 마리아와 만난 적이 있었다. 이때 태아가 뱃속에서 뛰놀며 춤을 추는데 어머니인 엘리사벳이 놀라워하며 "당신은 지상 모든 여인들 중에 복되신 여인이고, 태중의 아이 또한 복되십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구절에서 성모송의 내용이 만들어졌다. 다만 신학자 제임스 던에 따르면 이 초기 일화는 대단히 감동적이긴 해도, 루카 복음서의 일화들에 비해서는 역사성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탄생 이후 성장하여 소년기에 일찌감치 광야로 가서 낙타 가죽 옷을 입고, 메뚜기을 먹으면서 고된 생활을 하고, 30세 때부터 요단 강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8] 제사장의 아들이었기에 얼마든지 아버지의 직분을 이어받아 당대 유태인 사회에서 특권층으로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지만, 요한은 그런 길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울부짖는 소리'로서 메시아의 등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기독교의 4대 복음서에는 예수 또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이 때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처지인데, 어찌 선생님이 저에게 오십니까?' 라며 예수가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라 자신이 오히려 그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또한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 나중에 올 것인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성령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도 말했다.[9]

이후 세례자 요한은, 동생을 죽이고 동생의 아내를 취한 헤로데(헤로데 안티파스) 왕과 그의 아내 헤로디아를 비판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다. 헤로디아가 왕의 생일 잔치에서 딸인 살로메 3세[10]에게 춤을 추게 하고, 이에 매우 만족한 헤로데는 살로메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에 헤로디아는 살로메를 통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게 된다.[11] 결국 헤로데 왕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감옥에 있던 요한은 그대로 목이 달아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된다.[12] 세례자 요한의 사후에는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감옥에 갇혔을 때의 세례자 요한은 그 이전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예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마태오 복음에서 감옥에 갇힌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는다.[13] 이에 예수는 자신이 행한 기적들을 언급하며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라고 답변한다.

그렇게 복음 전파와 세례에 열정적이고 믿음이 완고하던 사람이 저렇게 변하다니 조금 이상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이는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예수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느 사람과 같은 인간의 배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었고, 그렇기에 평생을 바쳐 굳게 신앙해 온 존재를 믿으며 말씀을 전파해오다가 감옥에 갇혀 끔찍한 처벌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조차 없었기에, 여느 사람처럼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14] 예수 또한 인간으로서 태어나 죽음을 맞았으나, 예수는 이미 하느님과 성령으로 하나되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온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어떠한 유혹이나 고난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앞에서 "여자에게서 난 가장 큰 이는 세례자 요한이지만, 천국(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저(세례 요한)보다는 크다"라고 말한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뒤에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그 이전의 인물인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다는 의미이다. 세례자 요한은 선구자로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메시아의 말씀과 행적을 직접 듣고 보지는 못하였기 때문이다.


3. 역사적 세례자 요한[편집]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일부는 아예 예수의 스승이었을 가능성까지 제안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육촌 지간인 친척인데다 나이도 거의 비슷하다.[15] 단적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모두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복음서가 모두 언급하고 있다. 즉 세례자 요한이 먼저 부르짖고 나선 내용이므로 이 점에서 예수가 요한의 이러한 정신을 계승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며, 예수 집단에겐 상당히 불편한 진실인데도 이 사실이 삭제될 수 없었던 건 초기 예수 집단 대부분이 해당 사건의 목격자였기 때문이었다.[16]

J.D.G. 던은 당대에 세례자 요한의 영향력은 예수를 훨씬 능가했다고 언급했다. E.P. 샌더스 역시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반면에 요한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수가 처음에는 요한의 제자로 시작하였으며, 요한의 체포와 처형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목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상당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즉 예수는 요한을 상당부분 계승하였고, 이후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정립되면서 예수의 우위를 인정하는 요한의 모습이 만들어졌다는게 이 주장의 핵심이다.[17]

반면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는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되, 그의 제자가 되지는 않고서 세례자 운동을 수용하고 그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본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스승-제자 관계로 보기엔 너무나 이질적이기 때문이다.[18]

아무튼 확실한 건, 세례자 요한의 운동에 예수 역시도 진심어린 공감을 보였으며, 예수 역시도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요한 3,22) 다만 애초에 세례자 요한과의 관계가 어떠했든 간에, 세례자 요한과는 구분되는 독립된 활동으로서 예수 운동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세례자 요한과의 만남은 예수가 해나갈 사역의 기본 틀을 형성하게 되기에 당연히 매우 특별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바르사이나 사두가이파에 대한 날선 비판은 요한이 더 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진 않았다. 애초에 침례를 주면서 죄사함과 회개를 외친 것 또한 사두가이파가 독점하고 있는 수익 사업 및 성전 중심 사상에 가장 치명적으로 미친 경제적 일격이었다. 다만 그런데도 세례 요한이 당대에 평판은 더 좋았던 점은, 세례 요한은 분명히 본인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천명했었고, 본인이 신의 아들이니 뭐니 얘기도 일절 한 바 없던 반면 예수의 자의식은 적어도 그에게 가장 호의적인 유대인이 보기에도 상당히 근거 없을 만큼 높았던 데 있었다.[19] 그리고 사두가이파의 성전 수입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요한보다도 더 사두가이파를 싫어했을 바리사이파 입장에선 아무래도 상관없거나 오히려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그런데도 세례자 요한이 일찍 최후를 맞이한 건 그의 주된 활동 무대가 하필이면 예루살렘이었던데다, 세속권력자인 헤로데 안티파스를 대놓고 공격하는 실수를 저질러서였다. 그래서였는지 예수의 초기 행보는 이를 반면교사삼아 예루살렘은 가급적 피하는 한편, 세속권력자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초기엔 자제하는 형태가 보인다. 그리고 요한이 한없이 금욕적이었던 것도 거울삼아, 예수 집단은 요한처럼 금욕을 일부러 하는 행위는 다소 멀리하게 된다.

한편 요한이 광야에서 먹고 산 메뚜기와 꿀은, 성서학자들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쥐엄나무 열매와 대추야자를 가리킨 것이 그리스어로 서술되는 과정에서 잘못 기록되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쥐엄나무는 실제로 히브리어에서 메뚜기 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대추야자는 지금도 중동에서는 그 즙을 꿀 대용품으로 사용한다. 특히 유대교 측은 저 둘을 가난한 이의 음식의 대표로 여기는 전통이 아직도 남아있어, 이스라엘 현지에 가보거나 유대인들에게 물어보면 저걸 정설로 여길 정도[20]며, 유대교의 영향이 짙은 서구에서는 캐롭 나무를 '요한의 빵'이라고 부르는 등 상당히 일반 상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 광야에서는 쥐엄나무랑 대추야자를 은근 쉽게 찾을 수 있으나 메뚜기랑 석청을 찾아서 먹기는 불가능 수준이라는 일반 상식 수준 문제도 있다.[21] 그리고 또 하나 큰 문제는 메뚜기는 몰라도 꿀은 당대에는 지역을 막론하고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귀한 사치품이었다는 점이다. 그게 광야에서 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메뚜기와 꿀만 먹고 산다는 건 절대 고된 생활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이건 메뚜기와 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근본적 이유기도 하다. 현대로 치면 사막에서 푸아그라[22]트러플을 먹으며 버텼다는 소린데 이게 어딜 봐서 고된 생활이겠는가?

4. 그리스도교 밖에서의 세례자 요한[편집]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세례자 요한이 처형되었다는 것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서 언급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실로 간주된다.

이슬람교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이다. 이슬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25인의 예언자 중 23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이 세례자 요한이다. 이슬람에서 부르는 이름은 '아흐야'다.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우마이야 모스크내에 무덤이 있는데, 이 모스크는 원래 요한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성유물로 보관하고 있었던 교회였고, 모스크로 개조 및 확장을 거쳐서도 안치하고 있다. 적지 않은 무슬림들이 기도를 올리고 소원을 빌고 간다.

또 이슬람교 외에도 현대 중동 지방에서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로 보는 교단이 소수 잔존하고 있다. 특히 만다야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이 보낸 선지자 중의 으뜸으로, 예수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따라한 선지자라고 본다. 즉 요한은 기독교에 편입된 인물이라는게 이들의 주장.

5. 기타[편집]


목이 베여 쟁반에 담겨 공주에게 바쳐졌다는 사실이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모양인지 해당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요한의 목을 들고 쟁반에 놓는 사형수와 잘려진 요한의 머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모녀의 모습은 정적이면서도 소름끼치기까지 한다.

예수가 본래는 요한의 제자거나 동료였다는 설정은 창작계에서는 상당히 자주 쓰이는 소재인데, 상술했듯 의외로 역사적 근거가 충분한 근거긴 하다.

진 에드워드(Gene Edwards) 목사의 저서, 『3호실의 죄수』에서 세례 요한이 주인공이자 3호실의 죄수로 등장한다. 이 소설을 토대로 북촌아트홀(안국역)에서 뮤지컬을 제작했다. ( "나를 인해 실족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 마태복음 11장 6절)

울지마 톤즈로 유명한 이태석 신부가 세례명으로 택한 성인이기도 하다.

Fate/Grand Order에서는 살로메가 가진 두개골 중 하나로 나온다. 다른 두개골들은 살로메의 이전 마스터들이다. 사상현현계역 트라움에서 살로메가 후지마루 리츠카에게 관심을 가지고 역경을 극복하는 리츠카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요카난과 동일시하고 머리를 자르려는 욕망에 빠지기 직전에 리츠카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성자인 요카난은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거나 자신을 죽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설파하지 이렇게 목숨 구걸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리츠카를 살려준다.

장용학의 <요한 시집>에서 굉장히 중요한 레퍼런스로 사용된다. 전후의 한국인들은 예수(구원)을 만날 수 없고 그저 그를 기다리는 요한일 뿐이라는 것. 이후 4.19를 겪은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자유를 누리는 세대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기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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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화가이다.[2] 루가의 복음서 7장 28절도 참조할 것[3] 말라기가 구약의 마지막 책이긴 하나,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이 잡히고 나서야 사역을 시작했다. 신약의 개막 직전까지 활동한 세례자 요한은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이다. 예수 역시 이를 언급하였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예언하는 일은 요한에게서 끝난다. 너희가 그 예언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오기로 된 엘리야가 바로 그 요한임을 알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1장 13-14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교리인 앨런 화이트가 곧 선지자라는 것은 정통 그리스도교 신학과 맞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완성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하고 승천한 이래 성경 말씀이 기록되었는데 이후에 또 다른 선지자가 등장할 수 없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는, 구약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 초대 교회의 지도자(바울로의 동역자 실라 등)들을 칭하는 경우, 거짓 선지자(당대의 영지주의 이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니콜라오파와 유사하거나 더 큰 집단으로 추정)를 일컬을 때 사용될 뿐이다. 앨런 화이트가 이 세가지 경우 어느 하나에도 부합하는가? 또한 성령의 은사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주어진 터라, 예언의 은사는 특정 사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예언을 하는 자가 선지자라든가 하는 주장도 설득력은 없게 되었다. 앨런 화이트는 재림파의 선지자일 뿐, 기독교의 선지자는 될 수 없다.[4] 신약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믿음에는 회개가 먼저 있어야 한다.[5] 요한의 세례는 기본적으로 죄인들을 위한 세례였다. 하지만 예수는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아서 죄인들과의 연대를 이루었으며, 물에 잠긴 후(죽음을 상징) 물에서 올라왔다(부활을 상징).[6] 세례자 요한이 니산월 14일(태양력 3월 말경)인 유월절에 태어났다는 계산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티슈레이 15일(태양력 9월 말경)인 초막절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7] 사실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의심할만한 일이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이미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여성 노인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현대 기술이 발전한 지금에서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반대로 이 구절은 같은 상황에 처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8] 루카 복음서에서의 요한의 활동은 티베리우스 1세 15년(A.D. 29)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9] 또한 "그분(예수)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 3장 30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구절은 기독교에서 요한의 겸손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말로 인용된다.[10] 복음서에선 이름이 안 나온다. 헤로디아의 딸의 이름이 살로메라는 것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만 나온다.[11] 판본에서는 헤로데 왕은 세례자 요한을 흠모했으나 이를 헤로디아가 매우 싫어해서 직접 죽여버리라 지시한 내용도 있다.[12] 마르코 복음 6장[13] 이전에도 요한의 제자들이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냐"며 예수에게 말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세례자 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라며 경멸하던 그 바리사이파들을 요한의 제자들이 동일시하며 오히려 스승인 요한이 그토록 높였던 예수에게 따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비록 요한 본인이 한 일은 아니지만,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하다. 이 대목에 관해서는 "확신이 흔들린 것은 세례자 요한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었고, 예수가 메시아임을 변함없이 확신했던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직접 예수와 만나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소수 의견도 있다.[14] 물론 이건 종교마다 해석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이 해석을 펼치고 있다. 이는 예수의 제자들 또한 같다. 예수 옆에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봐왔지만 정작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는 대부분의 제자들이 외면하기도 했다. 12사도사도 요한 단 한 명만 빼놓고 모조리 도망쳤으니까. 심지어 사도들의 수장인 베드로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스승인 예수를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기까지 했다.[15] 단, 다른 부분에서는 대단히 신빙성이 높은 루카 복음이지만 요한이 엘리쉐바의 뱃속에 있을 때 엘리쉐바가 찬가를 불렀다는 내용만큼은 그다지 역사적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16] 이들이 당연히 목격은 하지 못했을 동방박사라던가, 베들레헴 탈출 설화, 영아 살해 사건 등등이 실제 역사적 신빙성은 떨어지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17] 비평학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당혹성의 기준(criterion of embarrassment)의 전형적인 예로, 저자를 당혹시키거나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약화시키는 진술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이다. 예수가 요한보다 훨씬 위대한 이, 메시아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복음사가들이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내리는 입장이었음을 인정한 것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18] 「예수는 한동안 세례자의 제자 동아리에 속했다는 주장이 있다. ...예수가 한동안 요한의 제자였다고 인정하는 데서 더욱 강력하게 발생하는 문제인즉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예수의 나중 활동이 세례자의 활동과 적지않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는 요한과 관계를 끊어 버렸거나 아니면 그에게서 어떤 특별한 하느님의 수임 또는 소명에 마주치게 되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두 경우 다 그러나 그런점을 가리키는 대목은 없다. 마르 1,10-11도 후자의 근거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확실히 예수도 심판을 고지했다. 그러나 예수의 심파설교는 독자적인 함축이 있고 하느님 나라 설교와 떨어질 수 없다. 시간적으로 앞선다는 의미로도 분리할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한 결론인즉 그러므로,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되, 그의 제자가 되지는 않고서 세례자 운동을 수용하고 그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나자렛 예수》Jesus von Nazaret: Botschaft und Geschichte,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정한교 번역, 111-113쪽.) 세례자 요한의 제자 여부 대해서는 요아힘 예레미야스(Joachim Jeremias)Neutestamentliche Theologie. Erster Teil: Die Verkündigung Jesu, Gütersloh 21973,51-53을 참고하라.[19] '신의 아들'이란 워딩 자체는 그 용어가 적어도 당대엔 위대한 위인들이나 영웅한테도 얼마든지 붙일 수 있었던 호칭인만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신성 자칭이나 신성 모독적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별 업적도 없는 30대 초반 설교가 주제에 본인이 이미 역사적 영웅급 인물임을 대놓고 천명하고 다녔으니 적어도 당대인이 보기엔 근자감에 빠진 인간으로 볼 개연성은 차고도 넘쳤다. 동양사에 비슷한 경우로 본인이 악의나 관중급이라고 젊은 제갈량이 자부하자 동시대인이 어이 없어했던 사례가 있다.[20] 관광 안내판에 써 있다.[21]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메뚜기를 먹으려면 마땅히 메뚜기의 먹이가 될 것이 있어야 한다. 헌데 메뚜기의 주식은 곡식과 풀이다. 황량한 광야에 사람 1명이 먹고 살 정도로 많은 메뚜기가 살 정도로 곡식과 풀이 있는가? 또 석청은 꿀이다. 그럼 꿀을 만드는 꽃이 필요하고 꽃은 다시 풀로 연결된다. 즉 광야에서 메뚜기와 꿀을 찾는건 푸른 들판에 곡식도 많은 광야를 찾는 것과 같다. 차라리 일부러 그런 곳에서 메뚜기와 꿀만 골라먹었다면 모를까 진짜로 광야에서 메뚜기와 꿀만 먹기는 어렵다.[22] 사실 이게 오히려 구하기 쉬웠을 수도 있다. 이집트에서도 푸아그라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듯 사막에 기러기는 날아오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