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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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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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상
최양락
이영자
(1996년)

서세원
(1997년)


김국진
정선희
(1998년)

파일:KBS 로고(1984-2023).svg 코미디대상 대상
오재미
(1994년)

서세원
(1995년)


신동엽
(2002년)[1]

파일:MBC 로고.svg 연기대상 코미디부문 최우수상[2]
배일집
김보화
(1987년)

서세원[3]
김혜영
(1988년)

이규혁
배연정
(1989년)










파일:SBS 인기가요 로고 2022.png
인기가요 역대 MC
방송 시작
제1대

서세원

(1991.12.15 ~ 1992.12.29)
제2대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d3d8db; font-size: 0.75em"
배철수
(1993.1.7 ~ 1993.4.29)



서세원
徐世源 | Seo Se-won


파일:image_readtop_2020_510201_15898619694205239.jpg

출생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망
2023년 4월 20일 (향년 68세)
캄보디아 프놈펜 29스트리트 4번지 미래폴리클리닉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달성 서씨 (達城 徐氏)[1]
학력
대전삼성국민학교 (졸업)
부산대신중학교 (졸업)
대륜고등학교[2] (졸업)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3][4]

신체
180cm|69kg|270mm, O형
가족
부인(2016년 재혼)
서동주, 서지혜, 서동수[5]
아들 서종우[6]
종교
개신교
병역
불명[7]
데뷔
1979년 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
경력
2011년 솔라그라티아 교회 담임목사
수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희극연기상

1. 개요
2. 생애
2.1. 개그맨 경력
4. 사망
4.1. 사망 후와 의혹
5. 가족관계
5.1. 전처 및 전처 슬하 자녀
5.1.1. 전처 - 서정희
5.1.4. 아들 - 서종우
5.2. 후처 및 후처 슬하 자녀
5.2.1. 후처 - 김 모 씨
5.2.2. 딸 - 서동수
6. 경력
7. 수상 내역
8. 영화
9. 방송 / 광고
10. 도서
11. 기타
12. 관련 자료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코미디언, 배우, 영화 기획자, 목사.


2. 생애[편집]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아버지 서우석(1920~1997,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과 어머니 정태순(1920~1988, 충청북도 청원군[8] 출신) 슬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2.1. 개그맨 경력[편집]


1979년 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으나 대부분의 활동은 MBC에서 했으며 MBC에서 활동하는 동안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슬랩스틱이나 바보 연기 등이 주된 재료였지만, 전유성이나 서세원 같은 희극인들은 이른바 몸보다는 말로 웃음을 유발하던 사람들로, 전유성이 진지한 톤에서 황당한 발언으로 웃기는 스타일이었다면, 서세원은 한국인의 어법이나 억양을 교묘하게 비트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톤을 이용해 웃기는 희극인이었다.

당시 서세원의 초대박 인기 콩트는 바로 청춘만만세에서 나왔던 청춘보감이라는 코너로, 이 콩트에서 서세원 최고의 유행어인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9][10]가 탄생했다. 또한 서세원은 인기 연예인을 초빙해서 개그를 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11] 서세원은 MC로서도 유능했다. 특히, 훗날의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단순히 진행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 명 MC였다. 주병진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 당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도 서세원이 진행하는 영11이었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서세원은 1980년대 중반까지 동시대의 라이벌들인 김형곤, 주병진보다[12] 인기 면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다만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달라지는데 김형곤이 유머 일번지의 레전드 코너들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의 시사풍자 콩트를 통해 전성기 심형래의 대항마 수준으로 올라섰고 주병진은 1988년, 콩트 스케치쇼였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포맷을 바꿨을 때 메인 MC 자리를 맡으며 개그맨 출신의 MC로서 정상급으로 군림하게 된다. 물론 1980년대 중반부터의 압도적인 원톱 개그맨은 후배인 심형래였다. 그렇지만 심형래의 전성기가 오기 직전까지 정상급 코미디언들 중에서도 서세원의 인기가 최고였던 것은 틀림없다.

1980년대 후반, KBS 2TV에서 최양락이 네로 25시로 너무나 잘 나가자 MBC에서는 최양락의 대항마로 서세원을 다시 내세웠다.서세원은 네로 25시의 기믹을 살짝 베껴서 지하실의 멜로디라는 코너로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는 당시 반국가단체로 간주되었던 전대협의 명칭을 패러디한 전협(전국도둑협회)의 회장으로 등장해서 네로 25시에서 최양락이 보여준 개그와 비슷한 기믹의 개그를 보여줬다. 당시 코미디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사람은 단연 최양락이었고 서세원이 그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KBS는 콩트 중심의 상황극을 MBC는 유행어를 민다는 방향성을 보였었다.

1990년대 SBS의 개국과 맞물려 중견급 코미디언들의 방송사 대이동을 거친 끝에 MBC에서 활동하던 서세원은 KBS로 활동 무대를 옮겼고 심형래, 임하룡 등이 떠난 KBS 코미디계에서 리더 격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서세원은 청춘행진곡에서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 2000년대 초반까지 KBS 2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서세원쇼'로 흥행하게 된다. 가장 유명했던 코너는 '토크박스'로 출연 연예인들이 서로 센 이야기들을 해서 서세원이 등수를 매기는 방식. 해당 프로그램은 IMF로 우울했던 한국인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예능 프로그램으로 매우 큰 화제를 일으켰고, 당시 웃기는 가수라는 컨셉으로 등장한 중고 신인 그룹 컨츄리 꼬꼬의 입담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 인기없는 중고 신인 유재석을 재발굴하여 인기 연예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13] 다만, 이 프로그램의 컨셉[14]은 한국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인 일본 방송 베끼기다. 일본의 장수 인기 토크 프로그램 라이온고키겡요(ライオンのごきげんよう, 1991년부터 방송)의 코너 '주사위 토크'를 그대로 따라했다. #

그 외에도 서세원은 코미디 세상만사, '공포체험 돌아보지마'[15],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등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과 라디오 '서세원의 가요산책'[16],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17]의 진행자로 활동하며 방송계에서 폭발적인 위세를 누렸다. 서세원은 데뷔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TV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두 분야 모두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최상위권에 올려놓으며 김국진, 이경규 등의 탑레벨 개그맨 다음가는 1군~1.5군 정도의 위치를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둘보다 선배였고[18] 이경규의 일밤 전성기 시절에도 서세원 역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로 나름 큰 인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주일이 암으로 사망하고 심형래가 영화 제작 문제로 빠진 21세기에, 후술된 막장 짓거리들을 안 했더라면 서세원은 현재까지도 이경규보다 예능계에서 더 압도적인 권위를 가졌을 것이다.

즉, 서세원은 신인 때부터 인기를 끄는 스타로 시작하여 정통 콩트 코미디가 유행할 때는 콩트로, 연예오락(지금의 예능)이 유행할 때는 MC로, 토크쇼가 유행했을 때는 토크쇼 진행자로 시대흐름이 바뀌어 오는 것에 따라 발맞추어 모두 성공했던 최강 커리어의 희극인이었다. 그야말로 전성기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 콩트, 토크쇼, 교양성 예능, 정통 예능까지 코미디언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진출해서 성공한 악마의 재능을 가진 자였다.

서세원은 콩트 프로그램을 하면 유행어를 여러 개 만들고, 예능성 진행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서 히트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마이더스의 손처럼 손대기만 하면 방송을 성공시키는 개그맨이었고 솔직히 과장 없이 말해도 연기력, 아이디어 응용 능력, 진행 능력, 기획 능력, 구성 능력 등 뭘로 봐도 연예인 및 방송인으로서의 능력치는 깔 게 없다. 사생활과 인간성이 비정상인 범죄 전과자라서 그렇지 그것만 정상이었으면 계속 경력을 이어가 지금 이 시대에도 노년 개그맨이나 진행자로 새로운 획을 그었을 수도 있다고 평가받는 특출난 인물이었으며, 엄청난 연예인이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세원/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사망[편집]


2023년 4월 20일, 조세금융신문 단독 보도로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한인 병원 미래폴리클리닉에서 정맥 주사를 맞던 중 쇼크사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 이후 주 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에서 서세원의 사망을 확인했으며, 외교부와 경찰에서도 서세원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후 조세금융신문에서 서세원이 숨을 거둔 한인 병원 미래폴리클리닉의 사진을 공개했으며 서세원의 재혼녀의 정체도 공개되었는데 23살 연하 1979년생 음대를 졸업한 해금 연주자라고 하며 재혼녀로 추정되는 사진도 공개됐다.

서동주아버지의 사망에 대해 슬퍼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으며 생전에 지병으로 당뇨를 앓아왔다는 게 밝혀졌다. #

관계자가 사망 직전의 근황에 관해서 밝혔는데, "서세원은 오는 5월 5일부터 개최되는 동남아시안게임과 오는 10월 22일부터 개최되는 장애인 아시안게임 방송 중계권을 낙찰받아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라고 전했다. # 다만 캄보디아 현지에서 사기를 당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 놓여 있었고, 진행하던 사업도 부진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또한 당뇨 합병증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

자세한 사망 원인은 부검 후에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쇼크사가 유력하며 서세원의 사망을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시신을 수습을 한 지인 박씨에 따르면 당뇨가 있는 서씨가 수액을 맞다 쇼크사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19] 그의 캄보디아 빈소는 프놈펜 부영타운 근처 한 불교사원에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다. # 시신은 따질 겨를도 없이 화장으로 직행되었다.[20]

22일 서세원의 조카와 딸 서동주가 캄보디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서세원의 장례 절차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

그의 사망 소식에 여론은 관심은 많이 가지고 있으나, 애도는커녕 동정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여러 논란처럼 전처 서정희에게 저지른 성폭행과 자녀들에게도 향한 가정폭력을 비롯한 수많은 악행들 때문에[21] 추모하는 반응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속 시원하다거나 잘 죽었다는 식의 평이 대부분이며 심지어는 생전에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에 비해 너무 편하게 갔다는 반응도 많이 나올 정도다.[22] 바로 전날인 19일 사망한 문빈은 사람들의 추모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23]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에 반해 악행이 심했던지라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는 있으나 다들 조롱하기 바쁜데다 전술한대로 장례식을 치뤘던 사원의 시신안치관리도 조악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실로 초라한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생전의 악행이 어찌되었든 죽었으니 그걸로 업보를 치른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싣고 있는 기사들이 실어낼 정도다. 가끔 중립적인 기사가 나오더라도 사망 원인에 대한 심층 분석 정도에 불과하다.

일단 동료 코미디언들과의 관계까지도 멀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엄영수, 박준형, 김준호 등 일부 동료 코미디언들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며 애도했다. 다만 위계질서가 상당히 강했던 코미디언 사회 분위기 상 선배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애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특히 90년대 이전 분위기는 죄와 직업을 연관지어 생각하던 시대가 아니었으며 이런 분위기가 아직 원로 코미디언들 사이에서 사라졌을 리가 만무하기에 오히려 이들은 서세원이든 누구든 원로 코미디언의 사망을 추모하지 않는 것을 언짢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대중은 알 바 아닌 그들의 사정이기에, 추모하는 사람들까지 서세원을 옹호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비판하는 반응도 있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코미디언인 이상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이다.

4월 30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었고, 여러 친분이 있었던 또래 연예인들이 조문을 함과 더불어서 조화를 보냈다. 발인은 5월 2일 오전 8시, 장지는 충청북도 음성군 무지개 추모공원이다.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유행어였던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를 외쳤다고. #

서세원의 딸 서동주는 아버지 고(故) 서세원에 이어 반려견을 떠나보냈다는 소식을 알렸다. #


4.1. 사망 후와 의혹[편집]




그런데 서세원이 단순 병사한 게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생각치도 못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디스패치에서 첫 신호탄을 쏘아올렸는데, 당지의 보도로 수상한 정황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해당 병원은 간판만 걸었을 뿐 영업신고도 되어있지 않았으며 무려 그 날 면접을 보러 온 간호사에게 정맥 주사를 맞고 사망한 것이라 한다. 또한 디스패치에 따르면 해당 간호사는 "무슨 주사를 맞았나. 비타민인가?"라고 묻는 기자의 전화에 프로포폴.이라고 대답했으며, 한국인 관리자가 전화를 가로채 '여기에선 프로포폴을 취급하지 않는다'며 급히 해명했다고 한다.

기자가 직접 찾아가본 결과 병원에는 상주 인물조차 없었고 포도당 수액, 마그네슘 등의 약재를 비롯해서 주삿바늘까지도 죄다 유통기한이 지난 데다가 냉장고가 아닌 상온에 방치되고 있었으며, 취급하지 않는다던 프로포폴도 도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특히 여러 의약품 중 마그네슘이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만한데, 마그네슘은 당뇨병 환자에게 쓰이는 약품이라고 하며 주변의 주장에 따르면 서세원은 당뇨병 환자였다. 거기다 찍힌 사진들을 보면, 프로포폴을 제외한 의약품들에 다 한국어가 찍혀있으므로 전부 한국에서 수입해온 약품일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때문에 병원 자체가 애초에 개업목적이 없었든가, 혹은 개업 전 서세원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란 의혹이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와 실화탐사대에서 취재 결과, 캄보디아에서는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프로포폴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서씨가 아침의 약국을 들렸다는 걸 확인했다.

측근이라고 주장하는 박현옥 씨는 당연히 프로포폴 설을 부인했다. # 그러면서 수액이 오렌지색이었다고 했는데 수액에 비타민을 타면 오렌지색으로 변한다고 하므로 실제로 이 색깔이 나올 수는 있다. 추가로 동일인인지 불분명한 A씨도 이를 극구 부인했는데#, 불리할만한 정황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 '모른다' 같은 말만 하고 남은 내용은 그저 감성팔이 실드 밖에 없어서 인터뷰 내용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더불어 기존에 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는 '병원 내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먹었다'고 했었으나, 디스패치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시설에는 김치찌개를 끓여먹을 만한 취사시설도 없었다고 하면서 이 사람의 발언의 진위마저 의심받고 있다. 딸인 서동주마저도 부친 서세원이 어떻게 사망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해당 병원은 폐쇄되었다고 하는데, 디스패치가 병원을 마음껏 취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위의 프로포폴 설이 진실이었다면 중증 당뇨병 환자가 전문가의 소견 없이 마약류관리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 약품을 시술받은 것이므로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며, 거기다 서세원은 죽기 전 생활고를 호소하고 투자자에게 갚지 않은 채권이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궁핍했다는 언플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황이 된다. 만약 측근 측의 주장대로 단순 영양제 및 수액을 맞다가 쇼크로 사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식 오픈도 하지 않은 병원에서 유통기한도 지난 채로 상온에 방치되어 있던 약품을 맞은 것인데 이는 정상인에게도 문제가 생길 여지가 다분한 일이므로 이 또한 자살기도나 다름없는 위험한 행위다. 즉, 오히려 살아있었더라면 운이 좋은 축에 속할 정도니, 저 시설을 계속 사용했더라면 언젠가는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세원의 시신은 근처 사원의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초 25일 전후까지는 시신을 한국으로 옮겨 부검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최종적으로는 현지에서 화장 후 한국으로 옮기기로 결정되었다. # 따라서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가능성은 없어졌다.

디스패치가 5월 4일 다시금 후속 보도를 냈다. # 위의 박현옥 한인회장이 부인한 것과는 다르게 간호사로부터 서세원이 프로포폴을 맞은게 맞다는 진술을 확보해냈다.

물론 서세원이 프로포폴을 맞은 직후 사망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 때문에 박현옥 씨의 '오렌지 색 링거를 맞다가 사망했다'는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은 있다. 프로포폴을 맞은 후 비타민을 탄 포도당 수액을 맞다가 사망했을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본인이 극구 부인했던 것과는 다르게 운전기사가 "평소에도 잠을 못 자서 이 약을 맞는다"고 말했다는 점을 통해 오히려 상습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는 점이 드러나 이 사람의 발언의 신뢰성은 매우 낮아진 상태이다. 애초에 첫 취재에서 버젓이 병원에 프로포폴 병이 있던게 밝혀지기도 했고, 위에서 서술되어 있듯 이전에도 '병원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먹었다'고 했으나 디스패치가 병원 내 취사시설이 없었다고 반박하는 등 거짓말을 한 정황이 여럿 발견되었으나 위의 기사로 쐐기가 박혔다. 디스패치가 인터뷰와 증거까지 모조리 날조한 것이 아니라면 어느 쪽 주장이 신뢰성이 더 높은지는 명확하다.

더불어 여러 구체적인 정황들이 나왔는데, 캄보디아 경찰은 부검은커녕 혈액 채취도 하지 않고 주변의 주장만 듣고 '당뇨병에 의한 심정지'라고 사인을 기재하고 사건을 묻어버렸다고 한다. 더불어 현장의 증거품을 모두 수거해갔음은 물론이고, CCTV는 공교롭게 전원이 꺼져있었다는 등 철저히 사건을 덮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심지어 간호사에게까지 돈을 요구했다고. 더 윗선이 얽혀있어서 이 지시에 따른 것인지, 혹은 그냥 귀찮은 공무원들이 자체적으로 사건을 대충 종결한 것인지는 불명이나 어찌됐든 누군가가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것은 명확해졌다.

사실 서세원 본인 사망 이전에 이 문제의 병원에서 의문사가 3건이나 있었는데, 전부 다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서세원만큼 유명했던 사람도 아니라 미제사건마냥 묻혀있었다가 서세원 사망으로 인해 덩달아 이들 의문사에 대한 언급이 다시금 이루어진 셈.

사망과 관련한 여러 의문점들에 대해 2023년 5월 18일 실화탐사대에서 다뤘다. 해당 방영분에서 나온 캄보디아 현지 간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서세원이 맞은 프로포폴의 용량이 무려 100ml였다고 한다. 이 정도의 양이 한번에 투여되었다고 하면 서세원 정도 나이와 건강상태인 사람의 경우 무조건 사망할 수 있는 양이다.[24] 영상1 영상2

서세원이 생전 많은 사업을 추진했지만 한 건도 성공하지 못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는 딸 학비를 빌리고 식당에 밥값도 못 낼 정도였다고 한다. #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했는데(#1353), 문제의 병원 실소유자에 대한 정황으로 한국인 로비스트인 이씨를 지목하고 있다. 이씨는 훈센 내각 및 고위층과도 친분이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 여러건의 사기를 저질러서 징역형까지 선고받았던 전력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여러 방송과 미디어 등의 취재가 이뤄졌으나, 제보자들간에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즉 의도적으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아래는 증언이 갈리는 부분을 정리해놓은 표이다.

병원 내 약재
병원 방문 후 서세원이 사망한 방에서 프로포폴을 발견했다(디스패치)
캄보디아 경찰이 서세원이 사망한 방에서 약재를 비롯해 모든 것을 수거해갔으므로, 프로포폴은 존재할 수가 없다 (한인회장 박현옥)
평소 프로포폴 사용
평소에 자주 사용했다 (운전기사)
평소에 프로포폴을 사용한 적이 없다 (박현옥)
병원 내 시설
병원 내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였다 (박현옥)
병원 내에는 김치찌개를 비롯해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취사시설이 없다 (디스패치)
프로포폴 구입
프로포폴은 약국에서 마음대로 구매할 수 없다 (한인 약국) 거짓
프로포폴은 약국에서 마음대로 구매할 수 있다 팩트
사망 당시 상황
치료실에는 서세원과 간호사 밖에 없었다 (통역)
치료실에는 자신(간호사)과 서세원, 그리고 운전기사가 있었다 (간호사)
서세원의 병원 운영
병원을 운영하고 간호사 면접을 직접 봤다는 얘기도 있는데, 병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박현옥)
서세원이 간호사 면접을 봤다 (박현옥을 제외한 관련자 전원), 서세원은 캄보디아에서 병원 사업을 하고 있었고 그날 간호사 면접을 봤다 (박현옥)

사망 이후 시간이 지나자 그대로 잊혀지는가 싶었으나 약 한 달 반 만에 BJ아영 사망 사건이 터지면서 서세원의 사망 의혹이 잠깐 동안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던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모두 캄보디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망 의혹을 다룬 시사 프로그램들의 공식 유튜브 영상에선 서세원이라는 코미디언은 잘 죽었지만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억울한 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에 분노와 관심을 가진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5. 가족관계[편집]



5.1. 전처 및 전처 슬하 자녀[편집]



5.1.1. 전처 - 서정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정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2. 딸 - 서지혜[편집]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서지혜(1984)|서지혜]
1984년생 여배우이며, 최고로 인기가 높다.


5.1.3. 딸 - 서동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동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4. 아들 - 서종우[편집]


파일:attachment/서세원/sdc.jpg

1985년 5월 15일생(38세). 과거 나우누리 등 PC통신망에서 '랑랑'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으며, 푸하라는 유머 웹사이트[25]에서 '프로 유머작가'라는 직함으로 자기 가족에 대한 글을 유머러스하게 연재하기도 했다. 여성동아 기사에는 이 시기의 사진과 일부 글들이 남아있다.[26] 글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자기 가족을 상당히 소박하면서도 단란한 이미지로 묘사하였는데, 당시 서세원은 KBS 최고 출연료를 자랑하면서 빌딩 몇 채를 소유한 상황이었으며, 아내에게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그 뒤 연예인으로 데뷔했다. 사실 서세원의 자녀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도 방송을 타곤 했었는데,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비평이 이어졌다. 네이버에선 서종우라 검색하면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으며, 꼭 서동천이라고 검색해야 인물 정보가 나온다.[27]



2007년에 '미로밴드'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는데, 실력이 매우 형편 없었던지라 결성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활동이 중단되었다. 특히 SBS 〈음악공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 은 유튜브에서 안 좋은 의미로 화제가 되었고 결국 한국 내에서 기사화까지 되었다. 당시 하도 삑사리가 나서 몇 번 재촬영한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 실제론 한 번 재촬영을 한 것은 맞지만, 기타줄이 끊어져서 재촬영을 했고 삑사리 때문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 해당 당사자는 "밴드는 가수와 다르고 가창력은 별개의 문제다"라고 했던 글이 발견되면서 이건 뭐 사실상 언론에서 듣보잡 취급한 것이 오히려 나았을 정도였다. 결국 2집 앨범을 끝으로 연예계 은퇴. 2013년 8월 결혼했을 때에는 '과거의 활동 새삼 주목'이라고 취급 받았을 정도였다.

어머니 서정희의 폭행 피해 사실에 대해 누나인 서동주와 다르게 "부모님 두 분의 일이라 아들인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과거 방송에서 초등학생 때 "아빠가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는 등의 발언, 이혼 소송에서 "필요하면 엄마를 위해서 증인으로서 얘기를 하겠다"는 발언, 누나와 함께 법원에 모친보호요청을 한 것을 볼 때, 역시 가정폭력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것 같다.

현재는 미국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다. 서정희가 인스타로 언급했으며, 어머니인 서정희와는 교류하고 있는 듯하다.


5.2. 후처 및 후처 슬하 자녀[편집]



5.2.1. 후처 - 김 모 씨[편집]


2016년 23세 연하[28]의 해금 연주자 김 모 씨[29]와 재혼 후 캄보디아로 이민을 갔다.

사망 한 달 전인 2023년 3월, 재혼 후의 근황이 전해졌으며 이것이 서세원의 마지막 근황이 되었다. '23세 연하와 재혼' 서세원, 캄보디아 교회서 포착"예배, 간증·설교도"


5.2.2. 딸 - 서동수[편집]


59세에 후처 김 모 씨 사이에서 얻은 딸이다. 딸은 2015년생으로 서동주보다 32살 아래, 서종우보다 30살 아래다.

서동수가 태어났을 당시 서세원은 김 모 씨와 혼인신고 전이었기 때문에, 출생 당시에는 혼외자 상태였으나 1년 후 친부모가 혼인신고를 하면서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갔다.

서세원 사망 직후, 지인이었던 박현옥 전 캄보디아 한인회장의 인터뷰에서는 딸의 이름을 '세아'라고 밝히고 있는데, 위의 아들 서종우(서동천)처럼 가족관계등록부 상 이름과 실제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


6. 경력[편집]


  • 2001 서세원프로덕션 대표이사 사장
  • 2001 국제어린이후원단체 플랜코리아 친선대사
  • 2002 에스에스원 시네마 대표이사 사장
  • 2005 ~ 2006.10 닛시엔터테인먼트그룹 대표이사
  • 2011 솔라그라티아 교회 담임목사


7. 수상 내역[편집]




8. 영화[편집]




9. 방송 / 광고[편집]


  • 동화약품 까스활명수
  • 공익광고협의회 서세원 부부(1996)
  • 해태음료 축배사이다


10. 도서[편집]


  • 1998 구두쇠가 이긴다
  • 1996 서세원 컴퓨터와 바람났네
  • 1992 싸움꾼
  • 1984 휘파람새


11. 기타[편집]


  • 입꼬리가 오른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다. 젊은 시절 사진부터 요즘 사진까지 전부 그런 걸 보면 중풍 등의 질환으로 인해 입이 치우치게 된 건 아닌 듯.

  • 1991년 말 SBS 개국과 함께 이적했으며, 다음 해 10월 7일부터 고질병인 허리디스크 때문에 한동안 방송 활동을 쉬었다가 같은 달 26일부터 SBS 측과 1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1993년 5월 1일 KBS 토요대행진의 MC를 맡은 데 이어 1993년 5월 24일 시작된 MBC 전격 팡팡쇼 MC를 맡았다. 결국 그해 7월 10일 SBS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같은 해 9월 1일 서울인사지법으로부터 전속계약 종료(1993년 10월 26일)까지 SBS가 허용하지 않는 타방송사 출연이 금지되었다. 이후 토요대행진의 MC는 유재석 / 양원경의 2MC 체제로 전환했다가 1993년 10월 16일 방송을 끝으로 폐지되었으며, '전격 팡팡쇼' 역시 1993년 9월 13일 자부터 정원관이 후임으로 들어왔으나 얼마 안 되어서 가을개편을(10월 11일) 거치며 막을 내려야 했다. 서세원은 '전격 팡팡쇼'에서 중도하차한 후 1995년 4월 18일 시작한 교양 프로그램 TV 시간여행을 탤런트 김희선과 공동 진행했지만 SBS와의 전속계약이 끝나지 않았던 개그우먼 정선희를 출연시킨 것이 문제가 된 것뿐 아니라 보조 MC 김희선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지적을 받아 1995년 가을개편으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고 정선희는 1995년 10월 SBS를 떠나 KBS로 둥지를 옮겨야 했다. 이후 서세원은 2000년 4월 30일이 되어서야 KBS 2TV 새 프로그램 행복남녀 메인 MC를 맡기 위해 빠진 이경규의 후임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메인 MC를 맡아 MBC 복귀를 했지만[30] 당시 4개 프로그램의 겹치기 출연에 따른 시청률 부진 탓인지 같은 해 5월 18일 방송분을 끝으로 빠졌고 이 프로그램이 MBC에서의 마지막 진행 프로그램이 되었다.

  • 90년대 후반 당시 60살 노년의 생활배우로 접어들어 버린 전원주를 재발견해준 것이 서세원과 김미화였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파출부 아줌마 이미지 배우로 30년을 살아 설움도 겪었던 전원주는 그냥 잘해야 동년배 김지영 정도로 연기 잘하는 노인 배우에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예능 꽁트 고정을 맡으며 코믹이미지와 국민어머니, 국민할머니 이미지를 다 얻으며 인생이 바뀐다. 물론 전원주의 첫 섭외 자체는 그녀의 친숙한 매력을 알아본 김미화가 추진했으니 공이 더 크긴 하나, 사실 첫 방송이 그저 그랬을 때 서세원이 전원주를 빼지 말고[31] 더 출연시켜 볼 것을 제작진에 강하게 요구했고, 점점 인기를 얻어 한 달 뒤에는 인기출연자가 되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노년스타가 되었다. 당시 전원주의 "떼레뽕 때려줘" 같은 유행어들이나 전원주 특유의 큰 웃음소리도 서세원이 전원주와 연기연습 및 대화 중 우연히 나온 말이나 웃음을 보고 얻어낸 아이디어로, 이를 실제 꽁트에 조합해서 적절할 때 쳐야 할 웃음 포인트를 구성하고 권유해 준 것이었다.[32] 결국 이 사우나 꽁트가 간판 코너가 된 걸 생각해보면 대중 취향과 극의 흐름을 볼 줄 아는 서세원의 매우 탁월한 감각을 읽을 수 있다. 훗날 제2의 전성기로 토크쇼나 아침방송 출연도 많이 늘어난 전원주가 "난 바보 같아 보일까봐 그때 사실 한 번 하고 안 하려 했는데, 서세원이 하고 김미화가 그렇게 계속 해보자고 조르며 힘을 주더라. 연기 중 서세원이가 (애드리브로) 나한테 짓궂게 구는 장면들을 방송에서 보면 거기가 진짜 웃긴 부분들이더라. 거기서 되겠구나 싶어 힘을 얻었고 나중에는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원주에게는 한참 후배들이지만 소중한 은인이었다.

  • 지금은 국민MC들 중의 하나인 유재석은 신예 개그맨이었던 시절부터 서세원과 가까웠고[33], 서세원 본인도 서세원쇼 등에서 당시 신인이었던 유재석을 많이 띄워주었다.[34] 그 전까지 무명이었던 유재석이 서세원쇼에서 고정 게스트로 나와 친구 찍새와의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풀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것은 유명한 일. 코미디 세상만사 시절에도 유재석을 중간 꽁트 주인공으로 넣는 걸 출연자와 연출 담당자들 회의선에서 최종 컨펌한 게 출연자 중 입김이 가장 높은 서세원과 김미화.[35] 때문에 서세원이 유재석에게 여러모로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는 글도 있다. 물론 둘의 인성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유재석은 신인 때였던 1990년대부터 대중들이나 개그맨 동기나 후배들에게는 깐족거리는 비호감 이미지를 얻었던 것에 비해 은근히 선배 개그맨들에게 예쁨과 호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형래영화에 출연할 때도 심형래가 주인공(20살인 초등학교 3학년 역할)인 자신의 짝꿍 반장 역할을 유재석에게 시켜줬을 정도면 사실 꽤 대단한 총애다.[36][37]


서세원쇼 토크박스 시절의 유재석.

  • 양원경전처결혼하려고 기자를 매수하여, 거짓 스캔들을 꾸며서 아내 인생을 작살냈다. 그 다음에 결혼했다고 방송에 나와 자랑했는데, 이 아이디어를 내 준 사람이 바로 서세원이라 한다. # 그 뒤에 양원경은 2011년에 이혼당했다.[38]

  • 박완규에 의하면 부활의 보컬로 활동하던 1997년, 서세원이 진행하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라디오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이들을 본 서세원이 "꼴에 락커라고 멋진 척하지 말아라"라고 말하더니 박완규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했다고 한다.

  • 강병규이병헌을 고소한 이병헌 전 애인 배후 세력이라는 루머를 까발렸다. 그 후부터 강병규와 이병헌은 서로 앙숙이 되었다.

  • 2006년에는 닛시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있었는데 이때 박효신 등 소속 가수와 맺었던 계약이 틀어지면서 민사소송을 당해서 결국 계약 보증금 약 9억 원을 배상했다.

  • 2009년에 주가 조작 및 회사 자금 횡령으로 인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고 주가 조작, 횡령, 도박 의혹, 폭행, 강간 등을 일으킨 서세원에게 KBS 등 주요 방송사들이 영구출연정지 처분을 내렸다. KBS 미디어에선 이런 이유로 인해 서세원쇼에 대한 영상 판매가 되지 않는다. #

  • 사실 서세원이 목사가 된 것도, 서정희가 이 남자를 반드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였다. 서세원이 연예인, 그것도 코미디언 출신이라서 설교를 굉장히 재미있게 하여 교회를 번창시키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만했다고. 하지만 막상 서세원에게 목사 일을 시켜 보니 교회도 제대로 못 굴렸고, 무엇보다도 그 고약한 인간성이 역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결국 교회도 문 닫고 본인도 목사안수를 준 교단에서 제명당하고 말았다. 애초에 코믹한 이미지도 코미디언 시절의 방송용 이미지일 뿐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 서동주의 명의로 큰 돈을 빌려서, 자기가 운영하는 회사 여직원을 딸과 닮게 성형수술하려고 시도했다. 이때 서동주가 반발하자 서세원은 머리끝까지 화나서 딸을 무척 혼냈다고 한다. # 이쯤 되면 그야말로 뼛속까지 인간 말종. 다만 2020년에 딸 서동주가 낸 회고록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에 따르면 "대출을 받아서 여직원을 딸처럼 성형수술한" 게 아니고, 여직원을 딸로 위장시켜 대출사기를 친 것이다. 양자는 엄연히 성격이 다른 일이다. 만약 서동주의 회고록이 사실이면 서세원은 실제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악질적인 인간 말종이 되는 셈이다. 전자와는 다르게 후자는 아예 대놓고 범죄를 시도한 셈이기 때문.

  • 2014년 8월 아들 미로와 딸 서동주는 법원에 모친보호요청을 하면서 서세원은 현재 서정희에게 반경 1k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 게다가 이걸 신청한 사람들은 아내가 아닌 자녀들이니, 이쯤 되면 이미 자녀들도 그를 내다버렸다. 부부 사이가 나빠도 자녀들과 잘 지내면 상황에 따라 동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는 자녀들도 내다버렸으니 아주 작은 동정도 쓸데없다.[39][40] 이에 대해 그는 "표현의 자유라 해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며 날뛴다. 이 추태를 어디까지 보여주려고 이럴까? 누구나 알다시피 그는 이미 아버지로서도, 남자로서의 자격도 잃은 상황이다. 이런 인간에게 물들지 않은 자식들이 대단할 뿐이다.

  • 2013년 6월에 채널A의 서세원 남희석의 여러 가지 연구소 진행자로 방송에 복귀했으나 1개월, 즉 4회 만에 시청률 부진으로 종영되었다. 다만 4회 만에 종영된 이유는 애초에 4회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획돼서 그렇다고 한다. 링크.

  • 2013년 6월 28일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간통죄를 폐지해야 되는가에 대한 주제에서 찬성의 입장을 표했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상관없이 다른 이들의 입장 또한 존중받아야 하나 혼인 중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외박하는 등 그 동안의 내로남불스런 행적들을 보면 말이 안 된다. 어쨌든 위 영상에서 간통을 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양심에 맡겨야 된다고 말했다. 2분 11초 쯤에 "간통죄는 폐지되기는 아직 이르다며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라는 발언에 "아~" 하고 이해하는 듯의 뉘앙스를 취했다.

  • 2015년 5월 14일, 법원은 서세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기사

  • 2015년 9월 7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과 홍콩으로 여행을 갔다. 이게 서세원이 이혼하기 전의 일인지 이혼한 후의 일인지는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나온 서세원의 반박도 들어보자. 2016년 2월 5일, 거짓말임이 들통남. 2015년 말, 딸을 출산[41]했다고 한다.


  • 2019년 12월, 새 아내와 딸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이주한 게 확인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5년 전(2014년)부터 캄보디아 도시건설 사업에 참여했으며 문화관광부 장관의 제안으로 방송사를 세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 프놈펜에서 새 아내, 딸과 거주 중이였으며 # 2022년 5월 19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가정의 달 행사 '우리 모두 다 함께 즐겁게' 교민장기자랑대회의 특별 MC로 출연하는 등# 국외에서 활동을 이어 나가는 듯 했으나, 결국 캄보디아에서 의료사고로 객사했다. 특히 생전 여러 숱한 논란들 탓에, 그의 객사에 대해 거의 대부분 "속이 시원하다", "꼴 좋다", "쌤통이다", "그동안 죄 지은 것에 비해 너무 편하게 갔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생전에 캄보디아 교회에서 설교한 걸 봐도 반성의 기색이 안 보이는데, 좋은 반응이 나올리 없다. 마찬가지로 8년 반 전에 의료사고로 사망한 신해철과는 여러 모로 대조되는 상황.


12. 관련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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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성 서씨 23세손 源(원) 항렬이다.[2] 대구 대륜고가 대봉교 옆 수성동 시절 전학을 왔고 두발 문제로 꾸지람을 받자 머리를 자르기 싫어 국기봉에 올라가 매달린 에피소드가 있었다.[3] 청주에서 태어나 대전, 부산, 대구, 서울에서 학교를 나온 셈.[4] 여담으로, 초등학교를 8번이나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유는 아버지가 철도청 시절 고위직 역장이라 잦은 전근을 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했다.[5] 2015년생. 재혼한 부인과 혼외관계이던 시절 출생. 대외적으로 불리는 이름은 세아.[6] 호적상 이름으로, 서세원이 잘나가던 1990년대 후반에는 서세원이 집에서 부르는 이름인 서동천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이 당시 본명인 서종우로 PC통신에서 "랑랑이 이야기"라는 서세원 가족사 이야기를 연재했다.[7] 연예계에 데뷔할 때부터 사망소식이 전해질 때까지 서세원의 병역사항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전혀 없는데, 정황 상 전시근로역이나 병역면제로 추정된다.[8] 現 청주시, 현재는 청원군도 청주시와 2014년에 통합되었다.[9] 콩트 속에서 악덕 상인이나 사기꾼 역할의 서생원이란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기에 마지막엔 징벌을 당한다. 이때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이 어린 양들을 이끌고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뗏목을 타다가 뒤집어져셔 모터보트 갈아타는데 모터보트 기름 떨어져셔 그냥 막 헤엄치면셔셔셔 셔셔러셔셔셔" 처음엔 목사 말투로 하다가 회를 거듭할 수록 바리에이션으로 노래를 부른다든지, "Over the mountain cross the river cross the sea"의 식으로 막영어로 개사한다든지 했다.[10] 박명수가 1990년대 신인 때 이승철 흉내만 내는 게 식상하다는 평을 듣자, 서세원을 닮은 걸로 한번 주목받아 보려고 잠깐 이 유행어로 성대모사 개그를 썼던 적이 있었다. 물론 결국 다시 이승철 흉내로 돌아왔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써서 현재에 이르러서도 한번씩 방송에서 (분장 등을 했을 때 민망하면) 산넘고 물건너 바다건너셔를 할 때가 있다. 무한도전 시절에도 유재석이 분장한 박명수에게 '서세원 선배님 닮았다'고 하면 입을 내밀고, '안녕하십니까아 서세원입니다아아'로 시작해서 자동옵션으로 이 유행어를 몇 번 했다. 사실 개그맨 김영철도 신인 시절에 윤복희, 하춘화, 보아 같은 여자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서세원 성대모사도 1년간 했었고, 심지어 토크박스에 나가서도 해서 서세원이 "(나를) 닮은 게 맞는거 같긴 하지만 왠지 니(김영철)가 (내 성대모사) 하는게 싫어"라고 말했을 만큼 잘 표현했었는데, 이내 서세원이 여러 사건에 연루되고 매장당한 후로는 안 하고 있다.[11] 대한민국 TV 토크쇼는 초기에는 진지한 대담에 가까웠는데 1979년에 방영된 '화요일에 만납시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 '11시에 만납시다' 가 대표적이다. 이것이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농담 섞인 형태로 변한 것으로 대표되는 것은 1989년 3월부터 방송된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쟈니 윤 쇼' 였는데 시기적으로 서세원의 스타데이트와 유사하다.[12] 데뷔가 비슷했던 대신 서세원보다는 동생들이다.[13]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의 유재석은 전통적인 꽁트 일변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조역이나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별명인 메뚜기 탈을 쓰고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 역할을 하는 정도였기에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춰 입담을 선사하는 그의 장기를 발휘할 공간이 사실상 전무했는데, 토크박스에서 서세원이 깔아준 판에서 유재석은 자신의 학생 시절 이야기를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며 매사에 소심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표정과 상반되는 이야기 속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웃음을 선사했다.[14] 주사위를 던져서 토크 주제를 정하는 것[15] 여성 연예인들이 출연해서 한밤 중에 서세원과 같이 밖에서 산책을 하면서 여러 곳에 설치된 귀신 및 장치에 놀라 비명을 지르던 코너.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해당 코너로 인지도를 높였다.[16] KBS 2FM에서 오후 2시 시간대에 송출된 라디오 프로그램. "오늘은 왠지"라는 유행어를 만든 인기 방송으로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달성하며 각종 라디오 DJ로 이름을 널리 알린 김기덕 시절의 두시의 데이트를 청취율로 이겼다. 이 때문에 김기덕이 하차하고 6개월 전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한 이문세로 교체했다. 지방 음악FM에서도 릴레이되었다. 이런 인기를 얻어 1997년 가을 개편 때부터는 '서세원의 가요산책'이 무려 3시간 동안 방송됐고 당시 오랫동안 진행하던 '홍서범의 뮤직쇼'는 1시간으로 축소됐다.[17] 이건 일본의 거물 개그맨 아카시야 산마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표절한 것이었다. 서세원쇼에서 뻐드렁니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 것, 웃을 때 바닥을 뒹굴며 과하게 리액션을 취하는 것 등도 산마가 원조. 다만 1998년 가을 개편 이전에 와이드쇼로 진행됐을 때는 오리지널 코너가 있었다.[18] 사실 한참 후배인 김국진은 둘째치고, 동세대 후배인 이경규만 해도 서세원의 전성기인 1980년대에는 단역 개그맨에 불과했다. 당시 원탑 발라드 가수였던 이문세가 그나마 이경규의 재능을 좋게 봐서 자기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막간 유머를 장기간 하게 밀어줬던 게 그나마 어려운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줬던 정도. 이경규는 개그맨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무렵에도 서세원이 꽂아준 코너에서 주요 조연을 하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역할로는 "다찡 유찡", "씽씽 왕왕왕 아나 꽁꽁 꽁꽁꽁"이라는 유행어 노래(먼 훗날 유재석이 TV애서 자주 이 개그를 따라하기도 했었다.)로 유명했던 서세원의 가짜 진시황 코너에서 신하 역을 맡은 것이 있다.[19] 당뇨 환자에게 수액 처치는 매우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는데, 포도당이 손실, 지연 없이 바로 혈관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혈당이 급격하게 높아질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의료진의 부주의에 의한 의료사고로 고소도 가능하지만, 서세원이 수액을 맞은 미래폴리클리닉은 서세원 본인이 운영하던 병원이며 의사를 구하지 못해 정식으로 문을 연 것도 아니었으며, 서세원에게 수액을 놓은 현지인 간호사도 서세원 본인이 면접을 봐서 뽑았으니 자업자득인 셈. 더군다나 사망 전 병원 내에서 김치찌개도 끓여먹었다고 하니 병원 시설이 열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 그것이 알고싶다 보도 취재에 따르면 장례식도 해당 사원에서 치른 것으로 보이는데, 서세원 본인이 어쨌든 개신교로 귀의한 사람이라서 장례 양식은 개신교식으로 치뤄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원의 시신 안치소는 냉동고 방식이고, 이곳에 안치된 시신은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그나마도 해당 사원의 장지관리가 썩 좋지는 않아서 냉동고에 임시안치 중인 시신들이 부패가 되고, 화장으로 처리된 시신 중 일부는 장지에 제대로 안치되지도 않고 사원 한켠에다 아무렇게나 뿌려댈 정도다.[21] 2002년 10월 구봉숙 트리오(당시 이들이 딴지일보의 후원을 통해 인디 평론가로 잘나가던 때라 지금과 달리 매운 맛으로 비판대상을 가차없이 까버리던 시기이다.)가 부른 노래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에서도 "쥐새끼 서세원 수배 중에 도박질"이라 언급되어 있다.[22] 그 와중에 세대 차 때문에 "서세원이 누군데?"라는 무관심한 반응도 있는 편이다.[23] 서세원은 그래도 노년기에 온갖 악행은 다 저지르고 병사한 것에 반해 문빈은 아직 20대의 한창 나이에 성실하고 바르게만 살다가 삶을 마무리했다는 차이가 있다. 2020년대 현재 남자가 67세면 일찍 사망한 편이긴 하지만 요절은 아니며, 1980년대 이전에는 남자가 67세까지 살면 오히려 장수 취급 받기도 했다.[24] 그 정도 연령대의 건강상태에서는 한참 적은 용량인 8~10ml만 투여해도 의료진의 추가 의학적 조치가 없을 경우 호흡 억제나 심정지가 올 수 있다. 참고로 서세원에게 투여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량인 100ml는 보통 5시간이 넘는 대수술에서나 사용되는 용량이고, 이렇게 고용량을 사용할 때는 안전을 위해 지속 주입 장치를 이용해서 장시간에 걸쳐 소량을 천천히 투여해야 한다고 한다.[25] 나우누리 유머란에 고정적으로 연재하는 작가들이 독립해서 만든 사이트였다.[26] 그 외에도 '나우누리 랑랑'으로 검색하면 주옥 같은 글들이 꽤 많이 보인다.[27] 개명했다고 하는 정보가 있지만 나우누리 가입 당시부터 아이디 옆 이름 칸이 서종우로 표기되었다. 당시 PC통신은 실명제였기 때문에 호적상 이름이 표기된다.[28] 서세원의 첫 부인인 서정희보다 무려 17세 연하, 첫 자식인 서동주보다 고작 4세 연상이다.[29] 이름이 김현아라는 설도 있다.[30] 이 때 맡은 코너 이름이 유머당이었는데 첫 화만에 억지개그라는 평을 듣고 코너가 종영됐다.[31] 원래 제작진의 계획은 매주 중노년 정극배우를 바꿔가며 꽁트에 출연시켜 코믹연기로 망가뜨려보는 것이었다.[32] 본인 분량 후 퇴장 시 그냥 나가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텔레폰 때려줘"를 꼭 하면서 나가라고 시켰다.[33] 1993년 토요대행진에서 서세원의 후임 MC로 진행을 맡았으며, 다음 해인 1994년에는 심형래가 찍은 영화 영구 시리즈인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에 두 사람이 함께 나왔던 것이 인연이 된 것으로 보인다.[34] 토크박스 1위를 자주 주었고, 녹화 전에 유재석에게 개인기를 미리 연습하라고 시켜서 어쩌다가 토크가 재미없는 날에는 개인기를 시켜 방송 분량 늘릴 기회를 주곤 했었다. 참고로 스포츠에서 말고 재미를 주는 장기라는 의미로의 개인기라는 단어는 서세원쇼에서 처음 쓰인 말이다.[35] 박수홍의 말로는 당시 본인이 진행하던 SBS 방송 코너에 유재석을 본인이 넣어주려고 피디들에게 홍보하던 중에, 뜬금없이 KBS 코미디 세상만사에 갑자기 유재석이 들어가는 바람에 못 넣어줬다고 한다.[36] 당시 다른 젊은 개그맨들은 심형래 영화에서 다 얼굴도 보일랑말랑하는 비중의 단역이었을 뿐, 일반적 비중의 조연마저도 못했다. 일반적인 조연은 엄용수김학래처럼 심형래와 비슷한 또래의 베테랑 개그맨이나 정극 배우들(김수미 등)이 맡았다. 그야말로 특급 총애.[37] 사실 유재석이 데뷔하던 시기 당대 최고 여성 희극인이었던 김미화도 유재석을 예뻐해서 콩트에 꽂아준 적도 있었다.[38] 공교롭게도 위에 서술된 유재석은 양원경과도 악연이 있으며(자세한 내막은 문서 참조.), 양원경도 서세원처럼 끝없는 내리막을 걷는 것 또한 비슷하다.[39] 물론 이 경우는 서정희의 주장 내용 중에 강간에 가까운 일을 겪고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확실한 상호합의가 없다면 꼭 자녀와 잘 지내는 것만으로 부부 사이의 문제를 동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예를 들면 아내와 이혼했지만 자기 딸과는 매우 가까운 헐크 호건.)[40] 도널드 트럼프는 말실수와 기행 때문에 말이 많지만, 장녀인 이반카 트럼프는 아버지를 잘 변호하고, 참모로서 제대로 움직인다. 더군다나 이반카는 아버지가 몸담은 공화당을 찍어준다.[41] 서동주보다 무려 32년 연하, 서동천보다 30년 연하. 보통적으로 봤을 때 이 정도 나이 차이면 삼촌, 이모가 더 맞지만 엄연히 언니, 오빠가 맞다. 정확히는 부친은 같지만 모친이 다른 이복 자매, 남매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