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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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웹툰 작가. 1971년생.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농업기계공학과 박사 과정을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지금은 디시인사이드에서도 완전히 잊혀진 이름이다.

카툰연재 갤러리에 만화를 올렸었는데, 만화 취향이 카갤이랑 맞지도 않았고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던 평범한 일기툰[1]이어서 은근히 까이고 있던 와중, 조금 문제가 되는 만화가 올라왔는데 로타리 식당을 로리타 식당으로 착각했다던지, 각종 직업여성을 음란한 시선으로 봤다...는 식의 만화. 훗날 씨벌교황 이후의 디시 성향으로 보면 오히려 점잖은 수준인데, 그 당시 디시가 얼마나 순수(?)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것보다도 본래의 일상툰을 올린 불량만화에 나온 내용들이 막장 일색이었다. 술에취해 버스에 타다가 오바이트를 해서 승객 여성의 옷에 튀었는데, 욕을 하길래 그대로 토해 뱉어버리고 버스에서 도망쳤다던지, 친구가 겉늙은 녀석이 여자한테 인기도 많고 마누라도 이쁜데 바람을 핀다는 불륜썰을 푼다던지, 교사 시절 싱글이라고 교생 나온 후배들한테 여자소개를 요청하고 여교생에게만 잘해주다가 후배에게 한 소리 듣는다던지, 만화 보는 꼬마에게 자기가 이태행 선생 문하에 만화가인데 아냐고 청문회식으로 물어서 애가 울게 한 이야기 등... 거기에 이 양반도 진보(정확히는 친노)성향이었던지라 2008 촛불시위 이전부터 이명박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광우병 괴담을 그대로 만화에 올려 퍼트려달라 요청했다. 이후 자신의 정치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내서 불만을 표하는 회원들에게 나는 원래 노빠라고 불편해도 감수해라. 등의 정치색을 보였다.

게다가 이게 힛갤에 가버리는 바람에 그때부터 악플러와 서상훈의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서씨는 '쥐상훈'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는게 허다했으며 결국엔 서상훈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가족의 신상을 공개한 악플러 몇명이 고소되는 것으로 끝났다. 그후로 더 이상 적어도 디씨엔 만화를 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이 카연갤병맛총본산화를 가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덤으로 이때를 기점으로 카툰연재 갤러리의 약칭이 '카연갤'로 정착되었다고 알려졌다.[2]

사실 이 사건은 서상훈 본인의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를 옹호하는 팬보이들이 문제를 키웠다. 키배를 벌이는 게 아니라 비판자 측을 그냥 악플러라고 싸잡아 비난한 게 전투력만 돋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직 교사라는 이유로 중고딩들이 까닭없이 미워한 이유도 있고[3] 고소까지 이르게 된 것도 비판측 중에서 이 사건과 아무 관계 없는 초등학생 조카의 신상까지 털어 버리는 인간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일기툰 뿐만 아니라 3D 그래픽으로 먹고 살았던 프리랜서의 경험을 만화로 연재한 적도 있는데 제목은 "대한민국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법"이다. 이것이 서상훈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이며 팬보이들은 대부분 이 당시의 연재로 생겨났다. 지금도 네이트 판 등에 연재분 전체가 올라와 있다. 프리랜서는 물론 자영업, 혹은 중소기업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추천한다. 갑을관계에서 을의 입장에 있을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개인 홈페이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4] 2008년에 홈페이지에 올렸던 마지막 근황은 중국 남쪽 지방에서 국제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으며,[5] 중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몇년간 소식이 뜸했다가 2013년 말에 오늘의유머에 모델 출신 여성과 결혼해서 아들낳고 행복하게 살고있다는 글을 올림으로서 살아있음을 인증했다.# 요즘은 오유와 자신의 블로그에서 간간이 활동하고 있는듯.

2017년 7월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냐고 물어보는 덧글에 한국에는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고 답한걸 보면 귀국할 생각은 없는 듯.

2005년 매일신문에서 사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독자평가 실시간 확인 짜릿하죠"…인터넷 만화가 서상훈씨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3 02:24:17에 나무위키 서상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참고로 당시 카갤은 일기툰을 증오하는 경향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기툰을 연재하던 꼬마비도 이 때문에 많이 까였다. [2] 그 이전에는 카갤, 연갤 등의 여러 약칭으로 불렸다.[3] 근데 본인 교사썰 들으면 여후배들에게 추파 던진거나, 한달에 한 번 룸싸롱 썰 푸는등 교사로써는 부적절한 내용의 만화를 하도많이 올렸다.[4] 웹 아카이브에 기록이 몇개 남아있다.#[5] 광동벽계원IB국제학교 한국문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