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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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프랑스 작가 기욤 넬(Guillaume Néel)의 풍자화. 출처.

1. 개요
2. 상세
2.1. 사체 발견 및 초기 수사
2.2. 프랑스로의 수사 이관 및 검거
2.3. 재판
2.4. 이후
3. 기타
4. 비슷한 사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한국 거주 프랑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인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영아 살해 및 사체 은닉 사건. 영아 살해 자체는 2003년에 이루어졌고 3년간의 사체 은닉 끝에 2006년에 발각되었다.


2. 상세[편집]



2.1. 사체 발견 및 초기 수사[편집]


사건은 2006년 7월 23일 오전 11시 무렵 프랑스인 '장 루이 쿠르조'(Jean-Louis Courjault)[1](40세, 이하 모두 당시 나이)가 택배로 받은 간고등어를 본인 집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기 위해 냉동실 서랍들 속을 뒤지던 중 그곳에서 수건과 비닐봉지에 싸인 영아 사체 2구를 발견하고 방배경찰서에 신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여러 가지 의혹이 터져나와 필리핀인 가정부 L씨(49) 등이 조사받기도 했고 여중생으로 보이는 소녀를 목격한 적이 있다거나 몰래 그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백인 소녀를 봤다는 등의 기사가 나왔다.

한편 쿠르조의 아내가 3년 전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며 용의선상에서 제외됐지만 냉동실에 3년을 있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으므로 이후 아이들의 사망시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간호장교 출신인 담당 형사의 부인이 가설을 제시했는데 의료인의 도움 없이 가정 내 출산을 하면서 잘못되어 자궁에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른바 ‘파종성 혈관내응고’(DIC))이 생겨 이것 때문에 자궁을 적출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신고 5일 후인 7월 2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DNA 분석 결과 신고자 쿠르조가 영아들의 친아버지다'라고 발표하면서 '쿠르조가 범인 아니냐'는 여론이 들썩였다. 이 시점에 쿠르조는 이미 자국인 프랑스로 출국한 뒤였다.

8월 7일 국과수는 2번째 DNA 조사 결과 집에서 가져온 쿠르조의 부인 베로니크(39)의 칫솔과 귀이개 등에서 나온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영아들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표했으며 2003년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조직세포 표본(파라핀 블록)을 확보해 숨진 영아들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도 얻었다. 자궁적출 수술을 하기 전인 3년 전에 아기들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2.2. 프랑스로의 수사 이관 및 검거[편집]


하지만 쿠르조 부부는 신고로부터 약 한 달 후인 8월 22일 프랑스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수사당국의 DNA 분석 결과는 믿을 수 없다.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2] 수사 주체가 대한민국 경찰에서 프랑스 경찰로 넘어감에 따라 한국 측 수사 자료가 프랑스어로 번역되었으며 번역된 수사 자료와 영아들의 DNA 시료가 프랑스 사법 당국에 전달되었다.

이들은 동년 9월 26일 오를레앙의 전문 기관에서 자국 경찰의 DNA 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는 국과수에서 한 것과 일치했다. 이에 프랑스 검찰은 10월 10일 친구네 집에서 머물던 쿠르조 부부를 긴급 체포했다.

11일 부인인 베로니크는 "남편 몰래 한 단독 범행"이라고 프랑스 경찰에 범행을 인정했다. '어떻게 남편이 공범이 아닐 수가 있냐'는 말도 있으나 베로니크가 임신 7개월 당시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 사진을 보면 도저히 임신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베로니크의 동성 친구 사빈도 함께 요가하며면서 옷 갈아입는 것을 수 차례 봤음에도 임신 유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 임신 거부증에 의해 자궁의 성장 방향이 달라진 탓으로 추정된다.

아기들의 사체는 이후 프랑스로 인도되었다. 베로니크는 결국 범행을 인정했으며 부부는 두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고 뒤늦게 이름을 붙여준 뒤[3]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2.3. 재판[편집]


베로니크는 이후 프랑스 오를레앙의 중죄 재판소로 이송되었으며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살인죄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다.[4] 그러나 당시 사건을 담당한 투르 검찰청(오를레앙 검찰청)의 필리프 바랭 차장검사는 '해당 사건이 살인죄에 해당되나 임신 거부증이라는 심각한 정신병으로 저질러진 범행임을 감안, 베로니크 쿠르조를 악마화시키는 것은 안 되지만 우상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면서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법정에서는 최종적으로 징역 8년을 선고했고 베로니크는 오를레앙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2.4. 이후[편집]


당시 바랭 차장검사는 '기소에 적합한 결정이며, 변호인 측-검사 측 양측을 모두 만족시킨다고 본다'고 밝혔지만 변호사인 엘렌 델로메에 의하면 형보다 좀 더 일찍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실제로 이 사건과 관련해서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4년만에 가석방되었다.

남편 장은 아내의 임신 거부증과 영아 살해에 대한 책 <그녀를 버릴 수가 없었다>를 출간했으며 2011년 한국에서도 정발되었다. #


3. 기타[편집]


  • 당시 한국에서 프랑스에 대한 인식을 나락으로 만든 사건으로,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는 한국 체류 중인 프랑스인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 수사 당시 장 루이 쿠르조를 출국 금지시키지 않고 그냥 프랑스로 보낸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쿠르조는 르노삼성자동차자동차 기술자로 신원도 분명한 데다 신고한 당사자인 만큼 용의자로 보긴 힘들었고 출국 시점은 DNA 검사 결과도 나오기 전이었으니 출국금지 명분이 불충분했다. 명분 없이 출국 금지시키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남편 장 루이만 직장 때문에 먼저 한국에 돌아왔다가 시체를 발견한 거라 실제 범인인 베로니크는 여전히 프랑스에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출입국관리법을 봐도 검경이 장 루이 쿠르조를 출국금지 시키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내국인의 출국금지 업무처리 규칙은 '범죄의 수사를 위하여 그 출국이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이지만 외국인에 대해서는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자'였다. 쿠르조는 당시 입건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출국을 금지시킬 법적 근거 자체가 없었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과학수사 기법이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꽤나 유명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국과수의 DNA 검사 결과가 너무나 정확하게 나온 데다 이게 나중에 자국 경찰에서도 사실로 밝혀지면서 한국을 깔보던 프랑스를 반성하게 했기 때문이다.[5]
반면 미국 방송 ABC에 의하면 당시 프랑스 사법당국과 대다수 여론은 이들 부부가 혐의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이들 부부가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어 수사관할이 되자 재조사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지만 기사 원문을 보면 사법당국자는 '유죄 증거가 나오면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란 원론적 답변만 했을 뿐 오히려 그 프랑스 사법당국자조차도 교묘히 한국 사법당국을 무시하는 논조를 보였다.
기사에 나온 오를레앙 지방법원 차장검사 Pantz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The Korean police had the bad taste to denounce Mr. Courjault before the investigation's result was known
한국 경찰은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쿠르조 씨를 깎아내리는 못된 취향이 있다.
The Koreans reportedly sent the results of their investigation to France, along with DNA samples. But Pantz says she has not received the report, or the evidence.
한국 당국은 DNA 샘플을 비롯한 조사 결과를 보냈다고 했으나 Pantz 차장검사는 그런 걸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Pantz also wondered why Mr. Courjault would call police if he was guilty of the murder of the babies. "The Courjaults may well be the parents, but the children may have been killed by somebody else -- we have no idea.
거기다, 쿠르조가 영아 살해에 유죄라면 왜 본인이 경찰을 부르나? 쿠르조가 아버지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지 어찌 아는가?
The press says the babies have been unfrozen and frozen again. If the Koreans did not find anything on the cause of the death in July 2006, do you think we will find something in December 2006
언론에 따르면 그 영아들, 냉동과 해동을 반복했다던데. 한국 당국이 6월에 사인을 못 밝혀놓고(해동과 냉동을 반복한 주제에), 우리더러 12월에 (사인에 대해서) 뭔가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결론적으로 이게 프랑스 측 결과가 나타나기 전의 프랑스 당국의 인식이다. 이후 남편은 무고했다는 게 밝혀졌기에 위의 발언 중 일부는 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아내의 범행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수사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부적절한 것이 되었다.
결국 프랑스 유력 언론 《르몽드》와 《리베라시옹》에서도 "우리 모두가 눈이 멀었다", "우리가 한국을 너무 얕잡아 보다가 개망신을 당했다" 라며 반성 모드를 보이기도 했고 "프랑스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이는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식민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등 한국인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

  • 2006년 9월 23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의 미스터리' 편(399회)이 방영됐다. 2006년 12월 20일 MBC 현장기록 형사에서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 에피소드로 다뤄졌다.
사건의 진상이 파악된 뒤인 2010년 10월 9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임신 거부증에 대해 다루면서 이 사건이 다시 거론되었는데 충격적이게도 베로니크는 이 사건 외에도 프랑스에 있었을 때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살해하여 벽난로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 프랑스에서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만들어졌으며 당시 프랑스 가수들의 노래 가사에도 쿠르조 부부의 실명이 나오고 베로니크는 엽기 엄마의 대명사 급으로 언급될 만큼 꽤나 주목을 받은 사건이다.

  • 한적한 고급 빌라촌에 불과하던 서래마을이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인 거주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카페와 식당이 우후죽순 들어선 상업지구로 변신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보통 흉악범죄가 발생한 지역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 이 사건후 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그 직후 둘째아이를 얻었는데 둘째를 볼때마다 억울하게 죽은 두 아기들 생각이 나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4. 비슷한 사건[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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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출신 기술자로서 2002년 서울로 와 서래마을에 거주했다.[2] 프랑스는 대륙법계 국가라 속인주의 원칙(자국민 불인도의 원칙)에 따라서 관할권을 행사하게 된다.[3] 태어난 순서대로 '알렉상드르', '토마'[4] 프랑스 신형법은 흉악범에 대해 무관용이 원칙이며 사형 제도만 없지 그 외에 최대한의 처벌이 가능하다. 고의 살인죄에 대해서는 우선 무기징역 혹은 30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데 30년은 프랑스 징역형의 최상한이며 피해자가 15세 미만 미성년자거나 가해자와의 관계가 부모, 조부모 등 직계존속, 법에서 정한 인물인 경우(배심원, 배우자, 동거인, 동반자, 사법관, 공공업무 종사자, 군인, 경찰, 세관 공무원, 교정공무원, 소방관, 부동산 및 부동산단지 경비원, 부동산의 정원 관리, 경비 직종 종사자, 심신미약자의 경우)에는 무기징역에만 처할 수 있으며 연쇄살인이나 유괴살인처럼 죄질이 극악하면 가석방 자체가 아예 허가되지 않는 말 그대로 종신형을 선고한다.[5] 한국의 과학수사는 미국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다만 국민들의 불신이 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