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 에어웨이즈 932편 추락 사고

덤프버전 :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1970년 11월 14일
유형
CFIT, 조종사 과실, 기상악화
발생 위치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웨스트 버지니아주 트라이-스테이트 공항 인근
탑승인원
승객: 71명
승무원: 4명
사망자
탑승객 75명 전원 사망
기종
DC-9-30
항공사
서던 에어웨이즈
기체 등록번호
N97S
출발지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킹스턴 리저널 제트포트#
경유지 1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트라이-스테이트 에어포트#
경유지 2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홉킨스빌 크리스찬 에어포트#
경유지 3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알렉산드리아 국제공항
도착지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배턴루지 메트로폴리탄 공항

<nopad> 파일:N97S.jpg
사고 전 찍힌 사고기.
<nopad> 파일:마샬 대학교 비행기 추락.jpg
사고기의 잔해.

1. 개요
2. 마샬 대학 풋볼팀
3. 비행, 그리고 사고
4.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1970년 11월 14일에 서던 에어웨이즈 932편이 추락한 사고.


2. 마샬 대학 풋볼팀[편집]


마샬 대학 미식축구 팀 썬더링 허드는 당시 1966년부터 69년 까지 승리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거기다 NCAA(전미 대학 체육 협회)는 마샬 대학교에서 저지른 100건이 넘는 모집 위반을 이유로 정직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마샬 대학교는 일 못하던 코치를 해고하고, 훈련장에 인조잔디를 새로 까는 등의 준비를 마쳤다. 그러면서 3년만에 첫 우승을 거두었으나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과의 경기에서 17:14로 패배하고 다음 시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중 이었다.

원래 보통은 먼 거리에서 경기를 펼치더라도 차로 갈수 있는 거리가 대부분이라 버스로 이동했었다. 이때도 비행기를 취소하고 버스로 가자는 얘기가 나왔으나, 비행기가 더 안전하다 판단되어 결국 비행기로 이동하게 됐다.

비행기엔 마샬 대학의 풋볼팀 썬더링 허드 인원 37명, 코치와 스태프 12명, 후원자 25명, 팬 2명, 팀 닥터 등이 탑승했다.


3. 비행, 그리고 사고[편집]


비행기는 DC-9-30으로, 기장은 프랭크 애봇(Frank Abbot. 향년 47세)이었다. 첫 비행계획은 거절됐는데, 한계 중량을 초과해서 짐을 실었기 때문이다. 상의 끝에 짐을 내려 둔 다음에야 이륙이 허가됐다. 비행은 처음엔 순조로웠다.

오후 7시 23분, 파일럿은 고도를 5천피트로 낮추라는 지시를 받았다. 7시 34분, 착륙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꼈고,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항공기는 외부 마커를 지난 후 정상적으로 하강했으나, 중간에 하강을 멈추고 고도 380m에 머무르는 절차에 따르지 않고, 안개 속에서 활주로 불빛을 조금이라도 더 찾으려고 91m까지 계속 하강했다. 더나아가 비행기는 61m까지 하강했다. 지나치게 낮은 고도에서 날던 비행기는 공항에서 1마일 떨어진 지점의 언덕과 충돌했다. 충돌로 큰 폭발이 일었다. 

사고로 탑승자 75명 전원이 사망했다. 충돌 당시 폭발이 워낙 거세 시신 6구는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선수단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사고로 기록됐다.

선수단 중 일부는 경기에 참가하지 않아 비행기를 탑승하지 않아 사고에 휘말리지 않았다. 마샬 대학교 풋볼팀의 코칭 스태프 였던 레드 도슨(Red Dawson)은 다른 대학교에 스카우트를 하러 가느라 비행기에 타지 않아 사고에 휘말리지 않았다. 팀의 부주장이었던 네이트 루핀(Nate Ruffin)은 부상을 입어 경기에 참여하지 않아 사고을 피했다. 이들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4. 사고 이후[편집]


사고 현장과 마샬 대학교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마셜대학교의 축구 프로그램이 전부 중단됐고 희생자의 장례식을 치르는 데에만 몇 주가 걸렸다. 사고의 충격은 대학 주변의 마을에도 영향을 끼쳤다. 가게와 관공서가 문을 닫았고, 거리의 건물 창문들은 검은 천으로 가려졌다. 사망자 대다수는 스프링힐드 공동묘지에 묻혔다.

2006년, 매튜 매커너히 주연의 영화 "위 아 마샬"이 개봉했다. 영화는 이 사고를 다루었다.

2020년 사고 50주기를 맞아 마샬 대학교와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간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취소됐고, 3년이 지나 2023년 9월에 경기가 열렸다.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을 가진 뒤 경기를 펼쳤다. 경기엔 1970년 사고 직전 경기에 참가했던 이스트 캐롤라이나의 선수들도 참여했다.

이 사고에 대해서는 알려진게 거의 없으며 검색할 경우에는 거의 검색결과가 없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고의 피해자인 마샬 대학교의 당시 상황과 피해자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으나, 비행기 자체와 사고 당시 정보는 찾기가 힘들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4-02 01:46:37에 나무위키 서던 에어웨이즈 932편 추락 사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