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아믈랭

덤프버전 :

샤를 아믈랭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샤를 아믈랭[1]
Charles Hamelin


파일:external/cdnolympic.files.wordpress.com/hamelin4.jpg

출생
1984년 4월 14일 (39세)
파일:퀘벡 주기.svg 퀘벡 주 생트쥴리
국적
[[캐나다|

캐나다
display: none; display: 캐나다"
행정구
]]

신체
175cm, 70kg
종목
파일: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픽토그램.svg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500m, 1000m → 1000m, 1500m[2]
국가대표
2004-05 ~ 2021-22 (총 17시즌)
가족
아버지 이브 아믈랭
동생 프랑수아 아믈랭
배우자 제네비에브 타르디프(2019년 ~ 현재)[3]
장녀 비올레트 아믈랭(2020년생)
차녀 루디빈 아믈랭(2023년 1월생)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3. 평가
4. 수상 기록
4.1. 월드컵 성적
5. 기타
5.1. 한국에서의 유명세
5.2. 가족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cdnolympic.files.wordpress.com/charles-hamelin_2010_1340px.jpg
캐나다의 前 남자 쇼트트랙 선수이자 전설이다. 선수 생활을 굉장히 길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4] 2022년 4월 10일, 몬트리올 세계선수권 5000m 계주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샤를 아믈랭/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평가[편집]


대부분의 캐나다 쇼트트랙 선두들이 그렇듯 힘이 좋고 단거리 종목과 계주에서 강하다. 그의 장점은 역시 스프린터 답게 빠른 스타트와 단거리에서 내는 강한 힘을 뒷받침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다. 이 때문에 붙혀진 별명이 바로 '생트줄리의 기관차'다.[5]

단거리 스페셜리스트가 넘치는 캐나다에서도 그에게 비슷한 수준으로 대적할 수 있는 선수는 기껏해야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올리비에 쟝 정도였으나, 결국 자국에서도 최강자로 등극했다. 세계 기준으로 시야를 넓혀도 과거에는 (2007-2011) 성시백[6], 2010년대 중반까지는 러시아 귀화 이후 스타트와 순간 가속도가 굉장히 좋아진 빅토르 안, 중국의 두 500m 전문 선수들인 우다징량원하오[7] 정도가 그의 적수가 될 수 있었다.

단점은 동시대에 활약했던 다른 캐나다 선수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유연성이 부족하고 스케이팅 기술이 많이 약하다는 점이다. 특히 추월 기술이 약하기 때문에 500m에서 처음부터 1위 확보를 하지 못하면 이를 만회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또 추월에 약점이 있다 보니 중장거리 종목도 초반부터 선두로 나서서 이끌고 가는 스타일인데, 이에 반해 결승선까지 선두를 지킬 만한 지구력은 부족하여 1000m와 1500m에서는 과거에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곽윤기가 평하길 '초반부터 선두에서 바쁘게 움직이다가 후반에 알아서 비켜주는 선수' 라고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다.[8]

하지만 사실 아믈랭의 체력은 데뷔 초 시절부터 결코 나쁜 축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양권이나 캐나다 내에서는 가장 강한 체력을 가진 선수들 중 한명으로 평가받았다. 그가 선두에서 끄는 작전을 고수하던 것도 추월기술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먹혀드는 작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전이 안현수, 이호석, 이정수 같이 지구력으로는 세계 최강인 한국 선수들이나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 같은 본인보다 체력이 더 우위인 주 라이벌을 상대로는 효과를 보기 너무 어려운게 문제였다. 물론 그가 지구력 훈련에 굉장히 열심히였던 것은 사실이고 특히 본인 입으로 밴쿠버 올림픽 전관왕이 목표라고 했던 2009-10 시즌에도 준수한 지구력을 보여주면서 결코 근거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도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체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에 매달렸고 그 결과 매 시즌 놀라워지게 향상된 체력을 보여주었지만 하필이면 2010-11시즌 역대급 지구력의 소유자이자 별명마저 '체력 괴물'인 노진규가 등장한게 문제였다. 특히 둘의 맞대결이 많았던 2011 세계선수권이나 2011-12시즌에는 노진규를 상대했던 모든 1500m 경기에서 그에게 패배했다. 거기다 2012-13 시즌까지는 곽윤기가 건재했고 신다운도 준수한 폼을 보여주던 시절이라 아믈랭이 장거리 종목에서 돋보일래야 돋보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3 세계선수권 1500m 결승에서는 그 노진규를 고전시켰을 정도로 향상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2013-14 시즌에는 아예 지구력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한국 선수들[9]마저 저리가라 할 정도의 무쇠 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1500m의 독보적인 지배자이자 본종목에서 본인에게 유일한 천적이었던 노진규가 투병 생활로 잠시 스케이트화를 벗으면서 결국은 실질적인 1500m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1000m도 향상된 체력을 바탕으로 거의 500m를 4바퀴 반 더 타듯이 경기운영을 해서 뒤에 따라오는 선수들이 막판 스퍼트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지치게 만들었다. 또한 이 종목에서 본인에게 유일하게 우위를 점하던 곽윤기도 2013년 부상으로 이탈하고 없었으니 그를 견제할 선수가 빅토르 안 말고는 사실상 없었다. 체력이 좋아진 시기에 맞물리며 인코스 추월 기술이 상당히 좋아졌는데 코너를 돌아나오면서 인코스를 날카롭게 파고들어 추월하고 좋은 성공률을 자랑했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20대 중반을 넘기면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반면, 아믈랭은 오히려 매년 더 나은 성적을 냈다. 과거 500m 스페셜리스트에 가까웠던 선수가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장거리 능력을 갖춰 올라운드 스케이터로 성장한 것은 쇼트트랙 역사 전체로 봐도 유례를 찾을 수가 없다. 그만큼 그의 자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대한민국 남자 선수들이 침체기에 빠져들면서, 2013-14 시즌을 기준으로 빅토르 안과 함께 세계 남자 쇼트트랙 투톱을 양분했다고 봐도 무방한 선수이고, 2014-15 시즌과 그 이후부터는 약간 상승세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순수 기량으로만 본다면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싱키 크네흐트, 신다운 등 당시 좋은 폼을 보이던 선수들보다도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빅토르 안도 노쇠화하며 더 이상 강력한 폼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곽윤기만이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고, 그가 부상 이전 기량을 완전히 회복할 수만 있다면 결코 헛된 희망은 아니라는 얘기가 많았다. 실제로 그전에는 500m를 제외하고는 곽윤기가 다른 두 종목에서는 모두 우위에 있었고, 곽윤기가 정말로 폼을 회복하는데 성공하면서 아믈랭을 1000m와 1500m에서 꺾는 모습을 보이며 재차 증명했다.

이후 시즌에는 거듭할수록 기량이 점점 떨어지는게 보이고 있다. 2016-17 시즌에서는 사뮈엘 지라르에게 에이스 자리를 내준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500m에서 예전만큼 기량이 나오지 않는걸 제외한다면 탄탄한 기본기와 스피드 그리고 노련함을 갖춘 선수이기 때문에 저 나이에도 여전히 캐나다 주축선수로 활약을 하고 있고, 2018 세계선수권에서 첫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선수 생활이 최소 몇년은 더 지속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도 2019년 2월 인터뷰 기사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희망한다고 밝혔고, 2021 세계선수권에서는 비록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을 포함한 많은 강자 선수들이 빠졌다지만 1500m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저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계주 5000m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획득하며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샤를 아믈랭/선수 경력 문서의 r4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샤를 아믈랭/선수 경력 문서의 r4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4. 수상 기록[편집]


대회



올림픽
4
1
1
세계선수권
13
14
11
세계 팀선수권
2
4
0
사대륙선수권
0
1
0
합계
19
20
12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월드컵 시리즈 수상성적
월드컵 랭킹
5
6
5
16
월드컵 메달
58
41
42
141
합계
63
47
47
157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10 밴쿠버
5000m 계주
금메달
2010 밴쿠버
500m
금메달
2014 소치
1500m
금메달
2022 베이징
5000m 계주
은메달
2006 토리노
5000m 계주
동메달
2018 평창
5000m 계주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5 베이징
5000m 계주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5000m 계주
1위
2006 미니애폴리스
3000m S.F.
금메달
2007 밀라노
500m
금메달
2009 비엔나
500m
금메달
2011 셰필드
5000m 계주
금메달
2012 상하이
5000m 계주
금메달
2013 데브레첸
5000m 계주
금메달
2014 몬트리올
1500m
금메달
2016 서울
1000m
금메달
2018 몬트리올
종합
금메달
2018 몬트리올
1000m
금메달
2018 몬트리올
1500m
금메달
2021 도르드레흐트
1500m
은메달
2005 베이징
500m
은메달
2007 밀라노
5000m 계주
은메달
2007 밀라노
종합
은메달
2007 밀라노
1000m
은메달
2008 강릉
5000m 계주
은메달
2008 강릉
500m
은메달
2011 셰필드
종합
은메달
2011 셰필드
1000m
은메달
2011 셰필드
1500m
은메달
2012 상하이
500m
은메달
2015 모스크바
1000m
은메달
2016 서울
5000m 계주
은메달
2016 서울
종합
은메달
2018 몬트리올
5000m 계주
동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000m
동메달
2009 비엔나
종합
3위
2009 비엔나
3000m S.F.
동메달
2012 상하이
1000m
동메달
2013 데브레첸
종합
동메달
2013 데브레첸
1000m
동메달
2013 데브레첸
1500m
3위
2013 데브레첸
3000m S.F.
동메달
2014 몬트리올
종합
동메달
2014 몬트리올
500m
동메달
2015 모스크바
1500m
3위
2016 서울
3000m S.F.
동메달
2017 로테르담
1000m
동메달
2022 몬트리올
5000m 계주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5 춘천
단체전
금메달
2007 부다페스트
단체전
은메달
2006 몬트리올
단체전
은메달
2008 하얼빈
단체전
은메달
2009 헤이렌베인
단체전
은메달
2010 보르미오
단체전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사대륙선수권
은메달
2020 몬트리올
5000m 계주



4.1. 월드컵 성적[편집]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우승 기록
종합 우승
2013-14 시즌
500 m 1위
2009-10 시즌, 2012-13 시즌
1000 m 1위
2013-14 시즌
1500 m 1위
2013-14 시즌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수상 기록
월드컵 랭킹
우승
2위
3위
포디움
종합
1
2
0
3
500 m 랭킹
2
3
1
6
1000 m 랭킹
1
0
2
3
1500 m 랭킹
1
1
2
4
합계
5
6
5
16

월드컵 메달



포디움
개인전 합계
37
21
26
84
계주
21
20
16
57
메달합계
58
41
42
141

랭킹 + 메달 합계
63
47
47
157

5. 기타[편집]





5.1. 한국에서의 유명세[편집]


오랜 세월동안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는 선수답게 수많은 한국 선수들을 상대해왔다. 본인의 시니어 데뷔 시기인 2000년대 중반에는 안현수이호석과 경쟁했지만 2013-14시즌처럼 정상급 반열에 속한 선수는 아니었고 단거리 종목을 제외하면 저 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믈랭이 단거리에서 포텐을 제대로 터트리기 시작한 2007년부터는 오랜만에 대표팀으로 복귀한 성시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으며 중장거리 종목에서는 성시백이 우위였지만 단거리에서는 굉장히 치열하게 경쟁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m 결승에서는 성시백이 다 이긴 경기를 마지막에 미끄러지며 아믈랭이 금메달을 가져가게 되는 바람에 성시백의 팬들에겐 은근히 미움을 사기도 하는 선수다. 올림픽 이후에는 오노도 은퇴하고 이호석과 성시백 둘 다 기량이 떨어져가며 아믈랭이 최강자가 되는듯 했으나 노진규가 혜성같이 등장하며 이를 저지했고 특히나 이때부터 아믈랭의 중장거리 종목 기량이 눈에 띄게 향상되던 시기이기 때문에 노진규와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1500m에서 만큼은 번번이 노진규가 승리를 가져간다. 이후에는 징계가 끝나고 대표에 복귀한 곽윤기까지 합세해 노진규와 함께 중장거리를 지배해 아믈랭이 묻히고 만다. 하지만 저 둘이 소치 올림픽 시즌 한꺼번에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자연스럽게 최강자 자리에 오르게 됐고 그걸 증명하듯 30을 바라보는 나이에 본인의 첫 월드컵 종합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웃은건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안현수였다.

아폴로 안톤 오노와는 다르게 스포츠맨십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 한국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건 사실 더티스케이팅 분야 독보적 1인자인 오노 때문에 묻힌 것이지, 커리어 초창기에도 코너링을 할 때 손을 사용한 거친 플레이를 종종 펼치는 편이었고, 특히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는 한국 선수들이 곡선 주로에서 아웃코스 추월을 할 때마다 대놓고 밀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손버릇이 좋지 못했다. 어떻게보면 오노보다 티가 덜 나게 반칙을 하는것이니 교묘한 반칙에서는 오노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도있겠다.

한국 선수들에게 1위를 허용했을 때도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거나 축하를 해주기도 했다. 2007 세계선수권에서 마지막 코너까지 1위를 지키다가 골라인 앞에서 안현수에게 역전당했는데, 시무룩해지기는커녕 안현수의 실력에 감탄하며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축하해줬다. 2010년대 초반엔 노진규와 대결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있었는데 자신보다 한참 어린 선수에게 다가가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2013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마지막 바퀴에서 자신을 역전한 김윤재를 등 뒤에서 밀쳐버린 적도 있어 그렇게 유한 성격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진규곽윤기가 이탈한 직후 2013-14 시즌을 기점으로, 최강자 반열에 올라섰을 때부터 거만해짐은 물론 대놓고 미는 행동이 더 심해져서 예전과는 다르게 평가가 많이 안 좋아졌다. 2015 세계선수권에서 신다운과 충돌했을때 화를 못참고 당시 한국 감독이었던 김선태에게 다가가 엄지를 아래로 내보이거나, 2015-16 1차 월드컵 1500m 결승에서는 세묜 옐리스트라토프와 같이 넘어졌는데 비아냥거리면서 면전에 박수를 쳤다.

2014-15 시즌 월드컵에서는 곽윤기와 부딪히는 바람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경기가 끝나고 곽윤기의 사과를 쿨하게 받아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계주 결승에서 마지막코너에서 또 대놓고 밀면서 곽윤기가 나가 떨어졌고, 역시나 놀랍지 않게 ISU 심판진은 캐나다에게 아무런 판정도 내리지 않았다. 몇 쇼트트랙 팬들은 이 행동에 대해 소심한 복수라고 하기도 했다.

한국 한정 별명으로 '해물탕'과 '해물찜'이 있다. 최근에는 30살의 나이에도 오히려 체력이 더 향상된 모습을 보이며 과거 약점을 보였던 장거리 종목마저 씹어먹는 괴력을 보이자 '괴물린'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아몰랑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참가했고, 선수촌 숙소에서 온돌 바닥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 모습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와서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한국식 온돌 바닥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사실, 이 영상이 화제가 된 이유는 대부분의 북미권은 좌식생활을 하는 문화가 아니다보니 신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서구권에서는 신발이나 슬리퍼를 신고 카펫을 까는데 이 카펫의 용도가 바닥의 냉기를 막고 신발에서 떨어지는 먼지를 흡수하는 목적이라 청소를 잘 안 하면 변기 이상으로 더러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바닥에 눕는 경우는 별로 없고, 취침을 할 때도 침대를 쓴다. 물론, 평창 선수촌에는 침대가 있지만 겨울에도 바닥에 누우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춥다. 당시 농담으로 나왔던 말들은 "한국식 온돌 바닥에 적응되면 경기에 나가기 싫을거야", "쟤 귤 좀 갖다줘", "캐나다 돌아가도 온돌 생각날거야"라는 재미있는 드립도 있었다. 다만 추운 서구권 지역에서는 바닥 난방의 선호도가 높다. 게다가 샤를 아믈랭은 쇼트트랙 국제대회가 많이 열리는 한국을 많이 방문했었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많이 익숙한 것도 별로 이상할 건 없다.


5.2. 가족[편집]


특이하게도 아믈랭의 아버지와 남동생은 둘 다 쇼트트랙 관련인물들이다. 아버지 이브 아믈랭은 캐나다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임원이며 오랫동안 쇼트트랙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2000년대 초반에는 ISU 장내 해설자로 더 유명한 다니 르매와 같이 훗날 샤를 아믈랭의 대표팀 동료가 되는 올리비에 쟝과 미국의 트래비스 제이너를 지도했다.

남동생 프랑수아 아믈랭은 前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였으며, 실력은 형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쇼트트랙 강국인 캐나다에서 항상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을 보면 실력이 없는 선수는 아니다. 캐나다 스케이터답게 단거리에 강한 편이지만, 형 샤를을 제외하고도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올리비에 쟝이라는 엄청난 단거리 실력자들이 있기 때문에 묻히는 편이다. 아무래도 개인전에서는 형만큼의 기량이 없으니 개인전에서의 활약은 상당히 미미하다. 주로 계주에서 제몫을 해주는 편이다.

前 쇼트트랙 선수이자 캐나다 여자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마리안 생젤레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교제했었다. 생젤레와 결별 후 약 1년 후 쯤 부터 스포츠 기자인 제네비에브 타르디프(Geneviève Tardif)와 교제했으며 사실혼 관계다. 2020년 둘 사이에서 딸 비올레트(Violette)가 태어났다. 아믈랭의 은퇴가 예정되어 있던 2022 몬트리올 세계선수권에서 아내와 딸이 관중석에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2022년 6월 25일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2023년 1월 둘째 딸을 얻었다.

[1] 영어식 읽기법인 '찰스 해믈린'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프랑스어권인 퀘벡 출신임을 감안하면 샤를 아믈랭 쪽이 실제 이름에 더 맞다. 하지만 본인은 찰스 해믈린으로 불리는게 더 좋다고 한다.[2] 예전부터 단거리에 단연 뛰어난 선수였지만 철저한 훈련으로 지구력이 매우 향상되어 전성기 시절에는 모든 종목을 주종목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나이가 들면서 500m에서는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 하고 있다. 체력적인 문제로 주종목을 장거리에서 단거리로 바꾼 빅토르 안과는 정반대의 케이스다.[3] 사실혼 관계였다가 2022년 6월 25일 식을 올렸다.[4] 무려 17시즌동안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았으며, 은퇴할 당시의 나이가 37세로 역대 쇼트트랙 선수들 중 가장 늦은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5] La locomotive de Sainte-Julie. 참고로 생트줄리는 아믈랭의 고향이다.[6] 아믈랭이 가장 상대하기 버거워했던 상대였다. 항목 참조.[7] 량원하오는 소치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다징에게 밀렸다.[8] 하지만 이 말을 한 이유는 영상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약간의 재미를 주기 위해서 한 말이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곽윤기 본인도 아믈랭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잘 알고 있다.[9] 물론 당시 멤버들은 역대 최악의 개인전 멤버들이라 평가 받을 정도로 약체였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3 00:06:34에 나무위키 샤를 아믈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