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헤밍스

덤프버전 :

1. 개요
2. 일생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Sarah "Sally" Hemings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노예이자 그의 정부로 추정되는 여성. 본명은 사라 헤밍스이며 애칭이 샐리.


2. 일생[편집]


1773년 경에 태어났다. 원래는 제퍼슨아내 마사 웨일스 스켈턴 제퍼슨(Martha Wayles Skelton Jefferson) 여사의 이복여동생이자 집안 노예였다.

마사 여사의 친정아버지 존 웨일스가 세번째 아내 사후인 1761년 경부터 1773년 사망할 때까지 흑인 노예 엘리자베스(애칭은 베티) 헤밍스를 정부로 두고 가까이 한 결과 태어난 혼혈아 6남매 중 막내였던 것이다.[1] 샐리의 어머니 베티 헤밍스는 웨일스 이전의 다른 노예 남성과의 사이에서 4남매, 웨일스 사후 다른 두 남성들에게서 각각 존 헤밍스, 루시 헤밍스 등 다른 자녀들을 더 두었다.

마사는 자신의 첫 남편 바터스트 스켈턴이 결혼 2년 만에 죽고 1771년에는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존도 죽으면서 토마스 제퍼슨과 재혼하였다. 이 때 자신이 소유한 약 135명의 노예들과 함께 제퍼슨가로 오게 되었는데, 당시 샐리는 이부언니 베티 브라운과 함께 마사의 시녀로 일했다. 마사가 결혼 10년 만인 1782년에 죽고 토머스 제퍼슨은 1789년경[2]부터 샐리를 가까이 하였다.[3] 이 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약 15~16세경.

토머스 제퍼슨과 가까워진 이후부턴 사실상 그의 정부가 되어 그와의 사이에서 최대 7명[4] 의 아이들을 낳았고, 그 중 비벌리 헤밍스, 해리엇 헤밍스, 메디슨 헤밍스, 이스턴 헤밍스 등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녀의 아들 매디슨 헤밍스는 훗날 자신이 토머스 제퍼슨의 아들임을 주장하였고, 그의 후손들 역시 제퍼슨 가의 후손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제퍼슨의 백인 가족[5]과 옹호자들은 제퍼슨 본인이 아니라 제퍼슨의 조카들인 카(Carr) 형제[6]가 샐리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덕분에 20세기까지 이 논란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다 1998년 제퍼슨의 방계 후손들과의 유전자 검사 결과 샐리 해밍스의 사생아들 중 일부는 토마스 제퍼슨 본인 혹은 제퍼슨 가문의 남성 중 한명의 자녀로 인정된 바 있다.[7][8] 현재 샐리와 제퍼슨의 관계는 (일부 반론을 제외하면) 거의 정설 취급받는 상황.

샐리의 형제들과 그 자녀들은 모두 농장에서 일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보다 고급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매디슨의 회고록에 따르면 제퍼슨이 샐리에게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을 21살이 되었을 때 해방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하며 실제로 성년기에 도달한 4명의 자녀들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해방시켜 주었다.[9] 하지만 정작 샐리 본인은 제퍼슨이 죽은 뒤에야 그의 딸 마사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해방되었다.

1835년에 사망했다.


3. 기타[편집]


파일:external/3.bp.blogspot.com/Sally-Hemings.png
샐리 헤밍스의 상상화
샐리의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다. 위의 그림은 당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상상화. 몬티첼로의 노예였던 사람 중 한 명인 아이작 제퍼슨의 증언에 따르면 샐리는 옅은 색의 피부에 긴 생머리를 지닌 상당한 미녀였다고 한다. 제퍼슨의 외손자 토머스 제퍼슨 랜돌프도 샐리가 미인이었다고 증언.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1995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Jefferson in Paris》[10]에 등장. 배우는 탠디 뉴턴. 제퍼슨 역은 닉 놀테, 제퍼슨의 딸 마사(팻시) 역은 기네스 팰트로가 맡았다.

2002년 그녀의 이야기를 주제로 CBS에서 《Sally Hemings: An American Scandal》이라는 미니시리즈를 만들어 방영한 적이 있었다. 샐리 역의 배우는 카먼 이조고(Carmen Ejogo). 제퍼슨 역은 샘 닐이 맡았다.

뮤지컬 해밀턴의 2막 넘버 'What'd I Miss'에 등장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22:17:42에 나무위키 샐리 헤밍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마사는 존 웨일스와 첫 아내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딸이며 존 웨일스는 마사 외에도 두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4명의 딸을 두었고 그 중 하나는 어린 나이에 사망. 세번째 아내와는 자녀가 없었다.[2] 제퍼슨이 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재직하던 시기다. 당시 샐리는 제퍼슨의 막내딸 마리아의 시녀로 있었다.[3] 아들 매디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첩(concubine)'이 되었다.[4] 첫 아이에 대해선 논란이 있었다. 토머스 C. 우드슨이라는 농부의 후손들은 샐리가 파리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낳은 아이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한 반면, 매디슨 헤밍스는 회고록에서 그 아이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언급해서 두 주장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로 인해 우드슨 가문의 남계 Y염색체와 제퍼슨 가문의 남계 Y염색체의 불일치가 드러났고 우드슨과 몬티첼로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그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매디슨의 언급에 무게가 더 실리는 부분.[5] 주로 적장녀 마사의 자녀들[6] 제퍼슨의 여동생 마사의 아들들인 피터 카와 새뮤얼 카를 지칭[7] 확률적으론 샐리와 가까이 지낸 토마스 제퍼슨의 후손일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다.[8] 샐리 아이들의 친부가 제퍼슨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 쪽은 제퍼슨의 남동생인 랜돌프 제퍼슨이 유력한 후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제퍼슨의 외손자인 토머스 제퍼슨 랜돌프와 그 가족들은 랜돌프 제퍼슨을 유력 후보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랜돌프는 유전자 검사 이후 새로운 유력 후보로 등장하긴 했지만, 샐리의 임신 추정 시기 때 실제로 몬티첼로를 방문했는지도 불분명한 랜돌프를 샐리가 임신할 때마다 몬티첼로를 방문한 사실이 확실한 토머스 제퍼슨보다 가능성을 높게 보는 건 이상한 일이다.[9] 비벌리와 해리엇은 아버지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도주하면서 해방되었고, 매디슨 본인과 이스턴은 아버지의 유언에 의해 해방되었다.[10] 국내 제목은 '대통령의 연인들'. 다만 내용은 대통령 재직 시기가 아닌 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시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