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남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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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새남터 순교자



1. 개요[편집]


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 성당 홈페이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관리하는 성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신부들과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이 사목을 맡고 있다.

위치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으로, 수도권 전철 1호선 전철을 타고 한강철교를 건너 용산역으로 진입할 때 바로 보이는 그 한옥 건물이 그곳이다. 한옥 건물은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 성당으로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이었던 1984년 공사를 시작해 3년에 걸친 공사로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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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9년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강변 새남터가 있던 곳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여기서 처형당했다.[1] 당대의 교황청에서는 Sai-Nam-Tho[2]라는 음역된 이름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되었고,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던 새남터는 1801년(신유박해)부터 1866년(병인박해)까지 최초의 선교사 순교자인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와 프랑스인 사제[3],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11명의 목자들이 이곳에서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렸다. 가톨릭 굿뉴스-성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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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재 서울 서대문역 인근 서소문 공원 쪽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처형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주로 평신도들이, 새남터 자리에서는 주로 사제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소문 밖 네거리를 ‘평신도들의 순교지’라고 한다면 이곳은 ‘사제들의 순교지’로 부르기도 한다.

용산역에서 이어지는 철길과 가까운 곳에 있어 주변이 한적한 편. 처음 찾아가는 사람은 길을 잘 물어보고 가자. 건물 모양이 기와집 형태여서 주변 건축물과 잘 구분되는 편이다.

미리내 성지한국 103위 순교성인 성당과 달리, 새남터 성지에 있는 새남터 성당은 주일 학교와 청년부가 존재하는 사목구 성당이다. 성지 자체가 한강변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2. 새남터 순교자[편집]


  • 복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1752년 - 1801년)[4]
  • 성 앵베르(범세형) 라우렌시오 주교(1796년 - 1839년)[A][5]
  • 모방(백다록)[6] 베드로 신부(1803년 - 1839년) [A]
  • 성 샤스탕(아각백)[7] 야고보 신부(1803년 - 1839년)[A]
  •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1821년 - 1846년)[A]
  • 성 현석문(玄錫文) 가롤로(1797년 - 1846년)[A]
  • 성 베르뇌(張敬一) 시메온 주교(1814년 - 1866년)[B][8]
  • 성 도리 헨리코 신부(1839년 - 1866년) [B][9]
  • 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신부(1838년 - 1866년)[B]
  • 성 볼리외(서몰례, 徐沒禮) 루도비코 신부(1840년 - 1866년)[B]
  • 프티니콜라 신부(1828년 - 1866년)
  • 푸르티에 신부(1830년 - 1866년)
  • 성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1845년 - 1866년)[B]
  • 성 정의배(丁義培) 마르코(1795년 - 1866년)[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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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신은 천주교 신자들이 비밀리에 반출하여 경기도 안성에 몰래 묻었다. 그곳이 지금의 미리내 성지.[2] 끝의 음절 '터'에 대해서는 The, Nte 등 다양한 음역이 존재한다.[3] 이들은 모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4] 2014년 8월 16일 시복.[A] A B C D E 1925년 7월 5일 시복, 1984년 5월 6일 시성.[5]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대 교구장.[6] 베드로의 한자 음차.[7] 야고보의 한자 음차.[B] A B C D E F 1968년 10월 6일 시복, 1984년 5월 6일 시성.[8]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4대 교구장.[9] 리슐리외 추기경이 사목하던 교구인 프랑스 뤼송교구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