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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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총수 · 현임 경영진




삼성중공업 주식회사
Samsung Heavy Industries Co., Ltd. [1]

파일:삼성중공업 로고.svg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설립일
1974년 8월 5일
업종명
강선 건조업, 건설업[2]
본사/판교 R&D센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27번길 23 (삼평동)
거제조선소
경상남도 거제시 장평3로 80 (장평동)
대덕연구센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217 (전민동)
신한내공장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연하해안로 825 (한내리)
오비자재창고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연하해안로 579 (오비리)
휴센터[3]
경상남도 거제시 장평2로4길 11 (장평동)
대표
최성안, 정진택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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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부회장 최성안
대표이사 사장 정진택
경영지원실장 · 전무 배진한
(사외이사 제외)

기업규모
대기업
시가총액
6조 3,008억 원[4]
그룹
파일:삼성 로고.svg
링크
홈페이지
기업 정보 [ 펼치기 · 접기 ]
매출액
6조 6,220억원 (2021년 기준)
영업이익
- 1조 3,120억원 (2021년 기준) #
순이익
- 1조 4,521억원 (2021년 기준) #
상장유무
상장기업
시장
정보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1994년 ~ 현재)
종목
코드

KS: 010140 (보통주)
편입
지수

코스피
KOSPI200
직원 수
8,967명 (2021년 기준)

1. 개요
2. 역사
3.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1983~1998)
4. 지배구조
5. 역대 로고
6. 역대 임원
7. 사건 사고
8. 여담
9. 둘러보기
10. 참고/관련 문헌
11. 신문 광고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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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조선소
삼성 계열 중공업, 조선업, 건설업체. 본사는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27번길 23 (삼평동)에 있다.

2. 역사[편집]



1974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설립하여 1977년 우진조선(진로주조 계열) 및 대성중공업을 인수했다. 1978년 창원공장을 준공하고 1979년 거제조선소 제1도크를 완공했다.

1983년 삼성조선 및 대성중공업 합병 후 한국중공업 중장비 부문도 양수했고, 1984년에는 미국 클라크[5]지게차 기술제휴 계약을 맺어 지게차 시장에도 진출했으며 해양 플랜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1985년 선박/해양연구소 설립 후 1987년 중장비/지게차공장 및 중장비유압공장, 1988년 기계 주강공장, 1989년 정밀/표준기계공장, 1990년 중장비 동력전달장치 공장을 잇따라 세웠다. 1992년 세계 최초로 아프라막스급 이중 선체구조 유조선을 건조했다.

1993년 건설업 진출 후 기업공개를 단행했고, 199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 후 일본 닛산디젤과 기술제휴로 상용차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하여 1996년 삼성자동차를 세우고 상용차부문을 삼성상용차로 분할시켰다. 다른 한편 본사는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크루즈선 LOI를 체결시켰다.

1997년 IMF 외환위기 후 1998년에 중장비사업부를 매각하였는데, 지게차 사업부문은 미국 클라크, 지게차를 제외한 건설기계 사업부문은 스웨덴볼보건설기계로 쪼개져 매각되었다. 이후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국내 건설기계 분야에서 잘 나가고, 클라크는 다시 2004년에 국내 중견기업 영안모자에 인수되어 한국 기업이 되었다. 스크린도어 제작사로 알려진 삼중테크도 사실 이 회사의 주차설비 사업부였는데 1999년 분사하였다.

1999년 공작기계 사업부를 분사시켜 스맥이 나왔고, 발전산업 부문까지 한국중공업에 넘기고 2000년 선박엔진 부문을 떼어 한국중공업과 합자해 HSD엔진을 세웠다. 이후 조선업에 집중하여 2000년 국내 최초로 대형 여객선 및 다목적 해양유전개발선(FDS)을 진수하고 2001년 전기추진 LNG선, 2007년 극지용 드릴십 및 쇄빙유조선, 2009년 친환경 LNG 재기화 선박(SRV) 등을 각각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전성기를 펼쳐 대우조선해양과 더불어 세계 조선업 시장을 꽉 잡았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업이 급성장하면서 입지가 많이 위태롭다. 리즈 시절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조선업 수주 물량 1위와 2위를 오갔으나, 2013년 이후 많이 위축되었다. 조선업이 위축되자 건설업 분야의 사업분야를 키워 풍력 발전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풍력발전 사업이 DTD를 시전하여 사업 전망이 많이 어둡다.

전 세계적으로 조선 경기가 불황을 맞으면서 경쟁사 HD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과 마찬가지로 조선업보다는 해양 플랜트 산업 쪽에 비중을 많이 두며 드릴십(Drillship)으로 대박을 터뜨려 잠깐이나마 조선업계 2위로 치고 나가기도 했다. 다만 2014년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조선 경기가 활성화되고 일반선 쪽에 강한 경쟁력을 가진 대우조선해양과 다시 한번 2, 3위 싸움을 하고 있다.[6]

2010년 테크윈에코를 합병하고 2014년 9월 1일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회사 측은 시너지 효과를 노린 모양이지만, 시장에서는 쓸데없이 혹만 붙였다는 듯한 냉소적인 반응만 돌아왔다.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서는 "이번 합병으로 삼성중공업은 불확실한 사업을 추가하게 됐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하나대투증권에서도 "삼성중공업은 실력보다 외형이 과도하다. 합병으로 규모를 늘려도 기업가치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래저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 확실히 합병이 능사는 아니다.[7]

2014년 11월 19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은 주식매수청구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되었고, 2015년부터 해양 플랜트 사업 부실, 선박 수주 감소 등으로 수년간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가 2022년 들어 전년도 82척 및 122억불 수주 기록, 차세대 연료전지 선박 개발 진전,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수주 급증 등으로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조선업 전체가 직영이라 불리는 정규 생산직 노동자들과 협력사로 불리는 사내 하청 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낮은 임금으로 인한 대규모 인력유출[8]로 인해 낙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

2022년 12월 그룹 차원에서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대표를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하였는데, 부회장급 공동대표가 온 건 12년 만이라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삼성엔지니어링 재직 33년간 다져 온 에너지 플랜트 전문성을 수소/암모니아 연료 변화 추세에 있는 조선업계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점, 삼성엔지니어링 대표 때 'FEED to EPC' 전략을 통한 경영 수완이 앞으로 어떤 시너지를 낼 지 점쳐지고 있다.

2023년 상반기 들어서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HD현대 계열 조선사와의 임금격차 때문에 직영 정규직 인력 유출까지 이어지고 있다.[9] HD현대 지주사로 지속적인 자금충원이 가능한 정유업체 HD현대오일뱅크가 있는 HD현대에 비해 그룹 내부에서도 버렸다간 정부로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할거니까[10] 차라리 신경 안쓰고 방치중이다 소리를 듣고있는 만큼 인력 유출 방지를 위한 임금, 특히 직원들이 강력히 원하는 기본금 인상은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화방위산업체 입지를 굳히기 위해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 2023년 5월 한화오션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인력 확보를 위해 월급 100만원 이상까지 올린다는 뉴스가 나옴에 따라 내부적으로 확고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수주를 늘리고, 연료전지 기반 선박을 만들어봤자 사람이 없어서 망하는 모순적인 결과가 나올 뿐이다.[12]


3.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1983~1998)[편집]


삼성중공업은 1983년 9월에 건설기계 사업 진출을 목적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귀현동 한국중공업 창원공장(現 두산에너빌리티)내 건설중장비 생산공장[13]을 인수합병하였다. 모태는 현대양행으로 1962년 현대양행을 설립한 한라그룹 창업주 정인영은 1970년대에 경기도 시흥군 군포읍에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을 세움과 동시에 경남 창원시 귀현동에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을 세웠고 프랑스 POCLAIN, 미국 American Crane, 이탈리아 FIAT-ALLIS 와 제휴하여 중장비를 면하생산하였다.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현대양행 창원 종합기계공장을 뺏기게 되어 대우그룹에 넘어가게 되었다. 대우그룹은 이 회사를 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꾸고 경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대우의 부실경영 문제로 제5공화국 정부가 사들여 공기업으로 전환했다. 2000년 모기업은 두산그룹에 매각 후 민영화되어 이듬해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파일:삼성중공업 창원2공장.png
삼성중공업 창원2공장(現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15][16][17][18]

파일:Samsung-Poclain 60P .png
해당 사진은 삼성이 생산했던 60P 굴착기, 브레이카로 암석을 뚫는 모습이다.[19]

이후 1985년 3월에 중장비연구소를 세우고, 11월에 일본[20] 코마츠 제작소와 불도저, 휠로더,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 기술 제휴하였다.

1986년 5월 미국 클라크지게차 OEM(주문자 상표 부착) 수출 계약을 맺었다.[21]

7월에 미국 J.I.CASE와 불도저, 휠로더 수출 계약을 맺게 되었다.

1986년 9월에 중장비 1만호기가 출하되었다.

1987년 일본 코마츠 제작소와 기술제휴로 모터 그레이더[22] SG15를 생산, 시판에 들어갔다.
파일:삼성중공업 SG15.png[23]

1987년 7월에 삼성은 굴삭기 고유모델 MX 시리즈를 개발하였다. 이후 MX10, MX8, MX6W 등의 굴삭기 모델들을 개발하여 국내 건설현장에 진츨, 해외시장에도 수출하였다.[24]
파일:삼성중공업 MX8W.png
MX8W 타이어 굴착기
파일:삼성중공업 MX6W.png
MX6W 타이어 굴착기(사진 속 덤프트럭은 현대자동차 91A 15t 덤프트럭이다.)
파일:삼성중공업 MX8.png
MX8 크롤러타입 굴착기

같은 해 11월에 유압공장을 준공하였고, 1989년 4월에 다목적 중형 타이어 굴삭기 MX8W를 개발, 본격 시판에 들어갔다. 뒤이어 일본 타다노(TADANO)와 기술제휴로 25톤 유압크레인 SC25H, 50톤 유압크레인 SC50H를 개발, 시판에 들어갔다.[25][26][27]

파일:삼성중공업 SC25H.png
[28]
파일:삼성중공업 SC50H.png
[29]
파일:Samsung SC25H-2 1993.png
[30]
파일:삼성중공업 SC50H-2 Hydraulic Crane.png
[31]
파일:삼성중공업 SC25H-2.png
[32]
파일:삼성중공업 SC50H-2.png

1989년 11월 공업진흥청[33]으로부터 89 우수품질관리업체상 수상을 받았다.

1990년 5월 신 생산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1990년 8월에 굴삭기 고유 모델 MX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한 MX-2시리즈를 개발하였다.[35]

1990년 12월에 동력전달 부품공장을 준공했고, 1991년 5월에 휠로더 고유 모델인 LX 시리즈[36][37]를, 6월에 불도저 고유 모델 DX 시리즈를 각각 개발하였다.

1992년 5월에 소형굴삭기 고유 모델을 개발했다.[38]

파일:삼성중공업 세계중장비 선정 트로피.png
1992년 '컨스트럭션 이큅먼트'지가 삼성중공업 SE280LC 굴착기를 'TOP 100 NEW PRODUCTS'로 선정했다.

1993년에 삼성중공업의 굴삭기, 휠로더, 불도저 등 3개 기종 10개의 모델이 미국 중장비전문잡지 '컨스트럭션 이큅먼트'지에 의해 세계 1백대 우수중장비로 선정되었는데 굴삭기 MX 시리즈 6개 모델, 휠로더 LX 시리즈 3개 모델, 불도저 DX25 1개 모델 등 총 3개 기종 10개의 모델로 삼성중공업이 미국 시장에 수출한 건설기계 전 기종들이다.[39]

1994년 초대형굴삭기 MX452LC를 개발하였다.[40]파일:MX452LC.png

파일:Samsung SM510 DUMP, CARGO, MIXER 1994.png
같은 해 1994년 4월에 일본 닛산디젤(現 UD트럭스)과 기술제휴로 빅 썸(Big Thumb)을 들여와 한국 시장에 걸맞게 약간 수정한 삼성 SM트럭(덤프, 카고, 믹서)을 시판하였다. 트럭 엔진은 닛산디젤 UD 신형 RF8엔진.[41][42]

1995년에 삼성 SM트럭을 하부주행체로 기반한 콘크리트 펌프카를 자체 개발 및 시판에 들어갔다.[43][44][45]파일:PX281S.png

같은 해에 휠로더 고유 모델 LX-2 시리즈를 개발했다.[46]

이후 유럽 시장 진출[47]과 유럽의 중장비 생산 및 공급기지를 목적으로 영국 노스요크셔 플랙스비에 중장비 생산공장을 준공하였다.[48] 이 영국 중장비 공장에서 4개 모델의 굴삭기 생산을 시작으로 1996년에 6개 모델 650대 생산, 1998년 1200대로 확대, 2000년에 9개 모델, 2천대를 생산해 총 1200억원의 매출을 계획했으나, 1997년 영국 파운드화의 강세와 무리한 부품 현지화 비율로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영국 중장비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 철수하게 되었다.

1996년, 험지용 크레인(모델명 CX300R)을 개발, 시판했다.[49]

같은 해 8월 상용차사업부가 삼성상용차로 분사해 생산라인을 대구광역시에 위치 한 성서산업단지로 이전했다. #

파일:CX300R.png

1997년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목적으로 동유럽 최대 중장비업체 체코 유넥스사와 전략 제휴해 굴삭기, 지게차 등 건설중장비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 계약을 체결했다.

1997년 2월에 휠로더 시리즈 LX-3[50]을 개발했고, 동년 3월에 굴삭기 MX-3 시리즈를 개발했다.[51]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8년에 스웨덴 볼보트럭(VOLVO)이 경상남도 창원의 삼성중공업 중장비 생산 부문을 인수하여 볼보그룹코리아가 설립되었다. 이후 삼성 로고를 단 굴착기건설기계를 생산하다 볼보 브랜드를 달고 볼보굴착기를 생산, 판매한다.

1998년, 지게차 부문이 미국 클라크사에 인수합병되어 회사명이 클라크 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로 변경되었다.[52] 2003년에는 미국 본사가 영안모자에 팔리자 한국법인도 같이 팔렸다. 현재 클라크 지게차의 대주주는 한국의 영안모자다.[53]

4. 지배구조[편집]


2023년 4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전자
15.2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생명
2.9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전기
2.0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SDI
0.3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제일기획
0.1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물산
0.1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국민연금공단
6.0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자사주
2.95%

5. 역대 로고[편집]



파일:삼성중공업 신문광고(1991).png

파일:삼성중공업 로고.svg
1991년 ~ 1993년[54]
1993년 ~ 현재

6. 역대 임원[편집]


  • 회장
    • 조우동 (1987 ~ 1992)

  • 대표이사 회장
    • 조우동 (1978 ~ 1984)
    • 최관식 (1990 ~ 1992)

  • 부회장
    • 이해규 (2001)
    • 김징완 (2010)

  • 대표이사 부회장
    • 최관식 (1989 ~ 1990)
    • 경주현 (1992 ~ 1995)
    • 이대원 (1995 ~ 1997)
    • 김징완 (2009 ~ 2010)
    • 최성안 (2023 ~ 현재)

  • 대표이사 사장
    • 이은택 (1974 ~ 1983)
    • 안병휘 (1978 ~ 1980/1982 ~ 1983)
    • 최관식 (1977 ~ 1979/1980 ~ 1983/1985 ~ 1989)
    • 김영진 (1979 ~ 1980)
    • 경주현 (1984 ~ 1985)
    • 장경환 (1988 ~ 1989)
    • 김연수 (1990 ~ 1993)
    • 이해규 (1994 ~ 2001)
    • 유상부 (1995 ~ 1996)
    • 권상문 (2001 ~ 2002)
    • 김징완 (2001 ~ 2009)
    • 노인식 (2009 ~ 2012)
    • 박대영 (2013 ~ 2017)
    • 남준우 (2018 ~ 2020)
    • 정진택 (2021 ~ 현재)

  • 대표이사 부사장
    • 안병휘 (1980 ~ 1982)
    • 장경환 (1986 ~ 1988)
    • 김연수 (1989 ~ 1990)
    • 이용길 (1989 ~ 1990)
    • 이해규 (1990 ~ 1994)
    • 안재학 (1991 ~ 1992)
    • 최훈 (1993)
    • 김무 (1994 ~ 1996)
    • 김순택 (1997)
    • 장효림 (1997)
    • 안복현 (1998)
    • 한행수 (1998 ~ 1999)
    • 김징완 (1999 ~ 2001)
    • 권상문 (2000 ~ 2001)

  • 대표이사 전무
    • 안병휘 (1977 ~ 1978)
    • 김징완 (1998 ~ 1999)

7. 사건 사고[편집]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 크레인 삼성 1호가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 호와 충돌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가 났다.[55] 자세한 내용은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참고.

2017년 5월 1일 거제조선소 야드 내 7안벽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 크레인이 충돌하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일이 터진 이유가 가관인데, 본래 크레인을 하나만 운용해야 할 상황에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두 기를 운용하다 생긴 일이기 때문.[56] 또한 노동자들 일부가 쉬는 시간이라 큰 인명피해가 안 날 수도 있었지만 휴식시간이 너무 짧아 현장 내에 있다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근로자의 날에, 그것도 고된 업무를 도맡아 하는 하청, 파견직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생긴 사고라는 점이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2017년 6월 17일 본사 직원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7월 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다뤘으며[57] 방송 내에는 어떤 회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방송을 보다보면 한국 사람인 이상 어느 회사인지 눈치를 챌 수밖에 없다. 명문대를 졸업한, 나름대로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모욕을 받았으며 초과근무는 예사로 했다고 한다. 특히 생산관련 부서는 선박의 인도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존재하는데 대중교통이 없는 새벽에 퇴근하여 택시로 귀가하더라도 교통비 청구를 할 수 없다.[58] 사측은 필사적으로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변명했다. 같은 분야의 다른 회사만도 못하다고 해도 할 말 없다.

2017년 12월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주가가 28%나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7년 4분기와 2018년 한 해 동안 7,000억 원가량의 적자가 날 것이라 공시했다. 이에 열 받은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59] 같은 시기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며 차츰 회복세를 보이던 조선업계 전반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2018년 2월 삼성중공업 조선소장이 교체되면서 불합리한 인사 파문이 있었다고 한다.

2020년 4월 대표이사 남준우의 아들(2014년 입사)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전환배치된 게 <뉴시스>에 단독 보도된 후 금수저 발령이라는 빈축을 샀으며, 임직원들 사기는 당연히 감소했다. 블라인드 앱에서는 "난파선에서 아들 구해준 거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온 상황이며[60] 결국 논란이 불거지자 남준우 아들은 퇴사했다고 한다.

2020년 6월 우선주 주가가 갑자기 10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상한가가 15%에서 30%로 바뀐 뒤 가장 많은 연속 상한가를 친 사례로 이로 인해 5만원대의 주가가 무려 약 80만원까지 올랐다.

공정위는 선박 전기장치 작업 임가공 등을 위탁하면서 작업 내용과 하도급 대금 등을 적은 서면을 수급사업자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발급하지 않은 삼성중공업에게 시정명령 및 과징금 3600만 원을 부과하기로 하였다. #

8. 여담[편집]


이전까지는 삼성중공업이 국내 조선사 중에서 특출난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선해양 빅3 회사 모두 기술력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통상적으로 LNG선한화오션, 컨테이너선HD현대중공업, 유조선이나 해양 플랜트는 삼성중공업이라고 하지만 아주 큰 차이는 없다. 특정 조선사와의 유대관계가 깊은 소수의 선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주들은 자기가 원하는 시점까지 저렴한 가격에 납품이 가능한 조선사를 고른다.

오히려 수익성 측면에서는 작업장의 전체적인 시공간적 활용도, 기자재 납품 업체 관리 등이 기술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 기술력에서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생산공정을 잘 관리해야 도크 회전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마다 그래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울 수 있는 선종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셔틀탱커와 FLNG에서 타사 대비 높은 수주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61]

특이하게도 해군에서 운용하는 구축함을 비롯한 함정 건조에는 참여한 적이 없으며 그룹 차원에서 무기개발 사업에서 손을 떼고자 계열사 삼성 탈레스삼성 테크윈한화에 매각한 점으로 보아 앞으로도 군함 건조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사업에서 해양 플랜트의 비중이 조선 3사 중에 가장 높다. 방산은 경기변동을 많이 타는 조선업에서 유일하게 업황을 타지 않는 선종이다. 반대로 해양 플랜트는 상선보다도 업황을 많이 탄다. 이러한 포트폴리오 구성 때문에 삼성중공업은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보다 업황 사이클을 많이 탄다.

삼성의 오랜 무노조 경영 때문인지 본사의 노동자 대표단체로 노동조합 대신 '노동자협의회(구 사우협의회)'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협의회는 실질적 노조의 기능이 약하여 1987년 이후 일반 노조 설립의 시도가 다수 있었으나 사측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였다. # 2021년 사무직 노동조합이 생겼고, 2023년에야 현장직으로 구성된 노조가 결성되었다.

럭비단을 운영했으나 조선업 불황을 이유로 2014년을 끝으로 해체했다. 소속 선수들은 대부분 신생팀 현대글로비스로 이적했다.

아파트 브랜드로 삼성 쉐르빌과 라폴리움이 있었으나 2013년을 끝으로 아파트에서 손을 땠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와 사업이 겹치는게 이유로 추정된다.

주식 시장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더불어 대기업 계열 주식 중 최악으로 평가되며 이름값 못하기로 유명하다. 주주들이 말하길 장기투자를 하면 할수록 손해만 난다고. 실제로 감자와 유증마저 여러차례 실행했을 정도다. 그나마 국민연금공단하고 삼성그룹 내 계열사들이 잡고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에 그룹이 없었으면 중국쪽 자금으로 강제합병 당해서 대대적인 기술유출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나마 2023년 중순부터 주가가 연이어 상승세를 타면서 분위기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미국의 지속적 금리인상으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 철수로 인해 주식시장 전체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추세라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할 듯.

물론 조선사의 기술력은 국가가 간접적으로 기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62][63] 삼성중공업의 해외매각은 쉽지 않다. 삼성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삼성전자가 해외회사에 함부로 팔았다간 여야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정부와 척질 각오를 해야한다. 이때문인지 그룹 차원에서는 계열사 평가같이 그룹에서 해야할것만 하면서 추가적인 지원 자체를 안하고, 2023년 3월 국내 계열사 대부분을 방문했던 이재용 회장조차 중공업은 방문하지 않는 등 사실상 방치하는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전기차 개발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자동차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당시 테스트카들은 전국 곳곳에 버려졌다. 자세한건 삼성 SEV 프로젝트 문서 참조.

9. 둘러보기[편집]





10. 참고/관련 문헌[편집]



11. 신문 광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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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HI[2] 중장비 제조업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볼보에 매각.[3] 사외기숙사, 장학교실[4] 2023년 7월 5일 기준[5] 현재는 영안모자에 인수되어 한국 기업이 되었다.[6] 이렇게 된 이유는 상당히 간단하다. 중국이 자국 조선인력에 대한 임금인상을 연 10%로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는데 이 때문에 중국이 자랑하는 저가 수주를 더이상 밀어붙일 수 없기 때문이고, 중국 인력의 기술력 상한이 생각보다 매우 낮기 때문이다.[7] 여담으로 같은 플랜트 업계일지라도 실무자 레벨에서는 육상 플랜트에서는 해양 플랜트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은 편이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공법 자체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실무자 선에서는 현업경력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인사관리, 재무관리, 공무같은 지원계열이 도움될 정도다.[8] 특히 협력사 노동자들은 본인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회사 옮기기가 매우 수월하고 여차하면 복직도 쉽기 때문에 돈 안된다 싶으면 옮기는게 직영 인력보다 훨씬 쉽다. 이때문에 조선업에서 일하면서 아직 터를 안잡은 젊은 고기량자들이 고임금을 주는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으로 많이 이직했다.[9] 블라인드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같은 직급이어도 연말정산 원천징수 실수령이 500~1000만원 가까이 올라가고 만약 대리(CL2)에서 부서 내 사정으로 인해 과장(CL3)진급이 누락된 사람이 과장직급으로 이직 시 1500만원 이상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10] 특히 이 시기는 몇년간 안고 있었던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겨우 팔아넘겨서 정부측에서 짐덩어리가 떠낫는데 이때 만약 삼성그룹이 삼성중공업을 버리면 또 정부가 뒷수습을 해야하고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그룹 계열상들에대한 일제 세무조사 및 상시 안전점검같은 보복성 행정조치가 따라오게된다.[11] 울산은 HD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S-OIL, 롯데정밀화학조선업보다 잘나가는 대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거제보다 평균 2~3억정도 집값이 높다. 올라간 임금이 전부 집값으로 빠진다고 보면 된다.[12] 특히 한화오션이 뉴스처럼 월급을 올리게 되면 삼성중공업 입장에서는 치명타인데, HD현대중공업 같은 경우는 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울산광역시의 높은 집값 검토[11] 및 거주지 이전 등 전부 고려해봐야 하지만 한화오션은 같은 거제시에 있기 때문에 옆동네로 이사하는 수준으로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13] 現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14] 구 삼성항공, 삼성테크윈. 현 한화디펜스.[15] 이 공장 말고도 경남 창원시 성산구 공단로에 삼성중공업 제1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방산장비[14] 및 선박엔진, 기계설비 등을 생산하던 곳이다. 현재는 HSD엔진 창원공장, 한화디펜스 창원사업장으로 변경되었다.[16] 합병 이전에 한국중공업에서 생산한 굴삭기, 휠로더, 크레인 모델에 KHIC-POCLAIN(굴삭기), KHIC-AMERICAN(크레인), KHIC-FIAT ALLIS(휠로더, 모터 그레이더) 로고가 부착되었다.[17] 합병 이후 SAMSUNG-POCLAIN(굴삭기), SAMSUNG-AMERICAN(크레인) 로고로 바꾸고 나서 건설중장비를 생산했다.[18] 현대양행 창원종합기계공장(現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은 한라그룹 시절 완공되었으며 모기업은 각 사업부가 분할 매각되었고 메인이던 발전설비와 선박엔진부문이 최종적으로 두산에 매각되었다. 이후 선박엔진은 두산엔진으로 분사 후 사모펀드에 매각해 HSD엔진이 되었다.[19] 프랑스의 POCLAIN사의 장비를 삼성중공업이 조립 생산한 것이다.[20] 동시에 일본 사카이(SAKAI)사와 기술제휴로 도로 장비를 생산, 판매했다. 타이어 롤러부터 로드롤러까지. 기술제휴 계약이 종료되면서 삼성이 SAKAI 도로 장비를 수입, 판매했다.[21] 1990년대 초반 클라크와 결별하면서 삼성 고유의 지게차 모델이 탄생했다. 이름하여 FX 시리즈가 탄생, 수출명은 'SF(Samsung Forklift) Series'[22] 땅을 고르는 도로장비[23] 삼성이 한국중공업 창원 중장비공장을 인수하기 이전에는 한국중공업에서는 현대양행부터 FIAT-ALLIS사와 기술제휴해 FG85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했다. 삼성이 인수 이후에는 후속 모델 FG85A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했다.[24] 내수 모델은 MX 시리즈고 해외 수출명은 SE 시리즈다. SE의 약자는 Samsung Excavator다.[25] 하부캐리어(트럭섀시)는 닛산디젤.[26] 삼성 인수 이전에는 한국중공업이 미국 GROVE 사와 기술제휴해 유압크레인을 만든 적도 있다.[27] 이외에도 미국 AMERICAN사와 기술제휴로 앵글크레인을 제작, 판매한 전력도 있다.[28] 초기형 모델, 상부는 타다노 TG250E를 기반으로 한다. 하부 캐리어는 닛산디젤, 엔진은 닛산디젤 PE6 모델.[29] 역시 초기형 모델로 상부는 타다노 TG500E를 기반으로 한다. 하부 캐리어도 동일하게 닛산디젤, 엔진은 닛산디젤 RE8 모델[30] 중기형 모델, 삼성 로고와 데칼이 새로 부착되었으며, 엔진은 닛산디젤 PE6. 엔진출력은 230ps, 2300rpm 6기통 수랭식이다.[31] 닛산디젤 RE8 디젤 엔진을 장착.출력은 315ps, 2300rpm, 8기통에 수랭식이다.[32] 후기형 모델, 하부캐리어 라디에이터 그릴에 NISSAN DIESEL 대신 SAMSUNG이 새겨졌다.[33] 지금의 중소벤처기업부.[34] 컴퓨터로 굴삭기를 제어하는 시스템.[35] 이 굴삭기 모델은 새로운 스타일로 설계되어 기존 MX 시리즈에 비해 성능이 우수한 장점이 있다. 세계 최초 라운드 스타일로 코스믹 타입 캡으로 설계되었는데 작업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전면 대형 라운드 창문은 상하 슬라이딩 방식으로 완전 개폐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전면 상부까지도 유리창으로 설계해 상부 작업 시야가 획기적으로 넓다는 장점도 있다. 굴삭기 캡 디자인을 에어로 다이나믹하게 설계해서 그런지 헬리콥터와 비슷하다고 해서 헬기 운전탑이라고들 한다. 운전석(시트)은 당시 영국 보스트롬사의 최고급 운전석을 채택하였다고 한다. 거기에 삼성이 개발한 CA-MAX 시스템[34]을 도입해 전 굴삭기 기종마다 CA-MAX 시스템이 달렸다.파일:삼성굴삭기 캐빈.png[36] 코마츠 제작소와 기술제휴해 생산.[37] LX15, LX18, LX25, LX30.[38] MX3W, MX3A[39] 수출명은 SE SERIES(굴삭기), SL SERIES(휠로더), SD SERIES(불도저)[40] 해당 모델은 작업용량 45톤, 해외 수출명은 SE450LC.[41] 1990년 6월에 일본 닛산디젤과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1992년 7월에 삼성중공업 대형트럭 기술도입 정부인가를 취득, 같은 해 중장비 산하조직 상용차사업부를 발족했다. 1992년 10월에 삼성중공업과 일본 닛산디젤 실행각서가 조인되어 1993년 시험생산, 성능 내구성 시험을 영국 밀부룩에서 치뤄진다. 그리고 1993년 8월에 창원 삼성중공업 중장비공장 내에 삼성트럭 조립라인이 준공되어 시제차량 1호차가 생산완료 되어 테스트 착수, 1994년 4월에 양산 및 수주, 1994년 5월에 15톤 덤프트럭과 믹서트럭을 출시했다. 1996년 8월, 상용차사업 부문을 삼성상용차로 분리, 1997년 11월부터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성서산업단지로 생산라인을 전체 이전하게 된다.[42] 당시 국내 최대 배기량을 자랑하는 16,991cc였고, 내구성이 뛰어나 작업현장에서 호평이 자자했다. 트랜스미션의 경우, TPS 시스템을 도입해서 고급 승용차처럼 기어 변속이 부드러웠다는 장점이 있다.[43] PX281S, PX321S, PX361S.[44] 이전 콘크리트 펌프카 하부차체는 아시아자동차(現 기아자동차)의 AM트럭이었다.[45] 기아 AM트럭 후속 모델 기아 그랜토에도 삼성 콘크리트 펌프(붐, 배관, 호퍼) 장비가 탑재되었다. 모델명은 PX122c-1,PX422S, PX432S, PX472S.[46] LX232, LX282, LX352.[47] 1990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중장비 현지법인을 설립.[48] 이곳은 영국의 건설회사 테일러 우드로우사의 철구조물 공장이었는데 삼성중공업이 이곳을 사들여 중장비 생산공장으로 개조했다.[49] 그러나 이 장비는 희귀장비가 되었다. 중고 사이트에 간간히 보이는 정도.[50] LX173, LX233, LX283, LX373, LX473[51] '인간을 닮은 굴삭기 탄생'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신문 광고가 발행되었다. 출시 당시 해당 모델은 MX225LS, MX255LS. 파일:삼성굴삭기 신문광고.png[52] 변경 이후에도 삼성 로고를 단 지게차를 생산하다 삼성과 관계 청산 이후 클라크 자체 브랜드로 지게차를 생산한다.[53] 영안모자는 버스 제조사 자일대우버스도 보유한다.[54] 1991년 4월부터 제정되었으며 흰색 별을 중심으로 회색 줄무늬(첨단 신소재를 의미)와 청색(기존 소재를 의미)의 평행사변형을 겹친 형식으로 신소재분야에서의 도약 의지를 담았다. 1993년 삼성이 CI를 통일하면서 단 2년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했다.[55] 공교롭게도 KBO 리그에서 삼성 라이온즈싸대기 동맹을 맺은 두산 베어스의 모기업 두산그룹의 계열사 두산전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하천 오염사고를 저질렀다.[56] 다만, 이 이전에도 크고 작은 크레인 관련 사고가 현장 내 잦았으며 크레인 운전수 보직의 특수성(1인 탑승으로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구조) 때문에 근무태만이 극에 달하던 시기여서 예정된 사고라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음주가 깨지 않은 상태로 크레인 운전을 한 문제가 화두가 되어 출근시 탑승전 음주 측정 의무화를 도입했다.[57]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유족 측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 20곳에 보도를 부탁했으나 보도가 안 됐고, 그알 보도 뒤에야 파장이 커졌다.[58] 회사 내규에 교통비 청구 규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청구하면 욕먹고 반려된다.[59] 이 시기가 2016년에 유상증자 때 우리사주로 강제 참여한 임직원들이 우리사주를 팔 수 있는 때였는데 보호예수 풀린지 1주일 만에 이런 일이 터져 임직원들마저 빅엿을 먹었다. 특히 이때 대형 해양공사 프로젝트 마무리하는 임직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바빠서 못 팔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참고로 이때 금액은 복구하지 못했다. 2020년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전세계적 석유수요감소 및 사우디와 이란의 미국 셰일가스 죽이기를 위한 석유증산으로 유가가 대폭 떨어지면서 2016년 당시 구매 가격의 반타작이 나버렸다.[60] 삼성중공업은 몇 년째 적자 중인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흑자를 봐 상황이 천지차이다.[61] 탱커의 경우 아파라막스급이나 수에즈막스급에서 현대중공업과 1,2위를 놓고 다투는 중이며,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대체로 삼성중공업이 조금 우세한 분위기다. 그러나 기준을 단일조선소가 아니라 기업집단으로 확장하여 현대삼호중공업의 시장점유율까지 고려하면 HD현대의 조선해양부문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62] 2010년대 중후반 조선업 불황기 때 한국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HMM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줬다. HMM은 이 돈으로 국내 대형 조선사에 대형 및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거 발주했다.[63] LNG선의 경우에도 한국가스공사가 화주로서 발주한 물량이 뒷받침 됐기 때문에 초기 기술력과 트랙 레코드를 쌓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30년 가까이 세계에서 손 꼽히는 액화천연가스 수입국이다. 자국 수입물량을 책임질 LNG운반선을 제작할 조선소를 지정할 수 있는 마켓파워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