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1997년/5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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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스코어보드
3. 진기록
4. 부정배트 소동


1. 개요[편집]




1997년 5월 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일어난 LG 트윈스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이날 나온 각종 진기록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의미로 KBO 역사에 남을 경기로 전해진다.


2. 스코어보드[편집]


5월 4일,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선발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R
LG
장문석
0
0
0
0
4
0
1
0
0
5
삼성
박충식
5
6
0
6
6
0
1
3
-
27

삼성은 1회 2사 만루에서 김한수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선취점을 올린 뒤 이어나온 정경배가 우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만루홈런을 터뜨려 5-0으로 앞섰다. 2회에도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홈런 등으로 타자일순하며 6점을 보탠 삼성은 4회와 5회에도 또다시 6점씩을 보태 대승했다. 최익성류중일은 2회 백투백홈런을 기록했고 김태균은 4회와 8회, 각각 3점홈런으로 6타점을 기록했다.

삼성 선발 박충식은 몸 맞는 공 5개로 역대 최다 사구 불명예기록을 세웠으나 타선의 도움으로 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

3. 진기록[편집]


우선 당시 기준으로 이 경기에서 달성됐던 각종 기록만 해도 다음과 같다.

  • 한국프로야구 최초 연타석 만루홈런: 정경배
  • 한 경기 개인 최다타점 타이: 정경배(8타점)[1]
  • 역대 최다 득점차 경신: 22점[2][3]
  • 한 팀 한 경기 최다득점: 27점
  • 한 팀 한 경기 최다타점: 26점
  • 한 팀 한 경기 최다루타: 58루타
  • 한 경기 최다루타: 71루타
  • 한 경기 최다 몸에 맞는 공: 9
  • 한 팀 한 경기 최다 몸에 맞는 공: 6(LG)
  • 한 경기 최다홈런 타이: 10개
  • 한 팀 한 경기 최다홈런 타이: 9개
  • 한 투수 한 경기 최다 자책점 타이: 차동철, 12자책점
  • 한 투수 한 경기 최다 몸에 맞는 공: 박충식, 5사구[4]

  • 기타: 1997년 대구구장 시즌 첫 만원관중, 삼성 시즌 첫 선발전원안타, 득점 기록

이렇듯 경기에 어떤 특징적인 흐름이 있었다기보다는 한 경기 공격에 관한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LG가 일방적으로 떡실신당한 경기였다. 삼성은 이 경기에서 9홈런을 몰아쳤고 이는 당시 한 경기 최다홈런 타이기록이었다. 무엇보다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홈런이 화제가 되면서 각종 일간지의 스포츠 지면에 정경배의 이름이 오르고 그가 일약 스타로 급부상한 경기이기도 했다.

이 엄청난 점수차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구원투수였던 반대편 야생마 말고 이상훈은 7회초 시작과 동시에 등판해 3이닝을 1실점으로 경기를 끝까지 막아내면서 세이브를 따냈다.

4. 부정배트 소동[편집]


파일:external/www.samsunglions.com/img_history21_10_9.jpg

그러나 이 경기의 막장성은 단순히 이 경기만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벌어진 LG와 삼성의 3연전에서 LG는 도합 17개의 홈런을 얻어맞으며 49점을 뺏기고 3연패를 당하면서[5] 시즌 개막과 함께 10연승을 달리던 기세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6] 그리고 삼성의 방망이에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지자 LG 천보성 감독은 삼성 타자들이 부정 배트를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당연히 삼성 백인천 감독은 이에 욕설로 응대했고 양팀의 감정싸움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중에 당시 아무 상관 없던 쌍방울의 감독이던 김성근이 KBO에 정식으로 이의제기를 하였고, 결국 KBO에서 나서서 조사를 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항목 참조

KBO는 6일 삼성이 사용한 배트를 인근 목공소에서 절단해봤지만 이상이 없다고 대충 넘기려고 했다. 문제는 이 배트가 KBO 공식 검인을 받지 않은 배트였던 것이었기에 다시 문제가 됐다. 의혹이 짙어지자 KBO는 배트를 일본 미즈노사로 보내 검사를 받았지만 압축배트가 아닌 문제 없는 배트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의혹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고 자사의 배트에 이상이 있다고 말할 생산자는 없다는 의견도 제시됐기에 결국 KBO는 5월 24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배트의 정밀검사를 의뢰했고 X레이검사와 도료검사까지 거친 뒤 6월 16일 이상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른 팀 타자들은 문제의 배트를 구입해서 쓰기 급급했고 문제가 일단락된 뒤에 LG 또한 문제의 배트를 구해다 쓰기 바빴다고 한다. 심지어 잠실더비에서 LG는 선발타자 모두가 문제의 배트를 돌려가면서 쓰기도 했다.

결론은 삼성 방망이질에 떡실신당하고 멘붕한 LG 천보성 감독이 쓸데없이 트집 잡았다가 망신살만 제대로 뻗쳤던 사건.[7] 다만 이 사건으로 인해 공인배트에 대한 규정이 강화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연타석 만루홈런 친 배트를 뺏긴 것도 모자라 톱질당한 정경배만 난감했을 뿐.

다음 단락은 야구기자 이종남 씨가 저술에 참여한 책인 '한국야구사'에서 발췌한 부분.

이로써 부정배트소동은 일단락됐으나 삼성은 부도덕성에 관한 의심을 받아 큰 곤욕을 치렀어야 했다. 삼성은 "KBO가 인내심을 갖고 이 문제의 정당성을 밝혀주어 감사한다"며 "LG가 삼성구단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데에 양식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으나 LG는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삼성이 쓰던 것과 동일한 배트를 구해다 쓰기에 급급했다.

또 LG - 삼성의 구단간 감정이 몹시 사나워져있던 6월 중순쯤 구단주들과 사장들이 골프모임을 가진 뒤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하던 중 이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그 때 박종환 총장과 LG 구본무 구단주 사이에 의견대립이 일어났고 거기서 '괘씸죄'에 걸린 박종환이 1998년 3월 사무총장직을 내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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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 9월 20일 사직 삼성 대 롯데 전, 삼성 박석민(현 NC 소속)이 9타점으로 경신.[2] 2014년 5월 31일 잠실 롯데 대 두산 전, 23-1로 타이기록.[3] 이 기록은 2022년 7월 24일 KIA 타이거즈가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23-0으로 이기며 25년 만에 깨졌다.[4] 1999년 4월 25일 인천 삼성 대 현대전, 현대 박장희 타이기록[5] 5월 3일 3-9, 5월 4일 5-27, 5월 5일 1-13, 2014년 5월 27~29일 한화가 NC를 상대로 51실점을 하기 전까지 한 시리즈 최다 실점의 기록이었다. 그 다음날인 어린이날에는 이승엽류중일에게 멀티홈런을 헌납했다.[6] 그리고 이후 LG는 해태에게 역전당하고 페넌트레이스 2위로 떨어진 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잡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여담으로 대첩 벌어진 당시 LG는 1위였고 삼성은 단독 꼴찌였다.[7]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천보성은 삼성의 원년 프랜차이즈 스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