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앤 가펑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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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앤 가펑클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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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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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이먼 앤 가펑클
SIMON & GARFUNKEL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폴 사이먼 (Paul Frederic Simon) , 아트 가펑클 (Arthur Ira Garfunkel)
입성 연도
1990년
후보자격 연도
1990년
후보선정 연도
1990년


























역대 그래미 시상식[1]
파일:external/www.brooklynvegan.com/grammy.jpg
올해의 레코드상
제10회
(1968년)


제11회
(1969년)


제12회
(1970년)

"Up, Up and Away" - 피프스 디멘션

"Mrs. Robinson" - 사이먼 앤 가펑클

"Aquarius/Let the Sunshine In"
-
피프스 디멘션
제12회
(1970년)


제13회
(1971년)


제14회
(1972년)

"Aquarius/Let the Sunshine In"
-
피프스 디멘션

"Bridge over Troubled Water"
-
사이먼 앤 가펑클


"It's Too Late" - 캐롤 킹
제29회
(1987년)


제30회
(1988년)


제31회
(1989년)

"Higher Love" - 스티브 윈우드

"Graceland" - 폴 사이먼

"Don't Worry, Be Happy" - 바비 맥퍼린
올해의 노래상
제12회
(1970년)


제13회
(1971년)


제14회
(1972년)

"Games People Play" - 조 사우스

"Bridge over Troubled Water"
-
폴 사이먼


"You've Got A Friend" - 캐롤 킹


파일:사이먼 앤 가펑클 로고.png
파일:사이먼앤가펑클.jpg
Simon & Garfunkel
사이먼 & 가펑클

출신지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장르
포크 록
멤버
폴 사이먼, 아트 가펑클
활동 기간
1956년 ~ 1970년
(재결성: 1972년[1], 1975년 ~ 1977년, 1981년 ~ 1984년, 1990년, 1993년, 2003년 ~ 2005년, 2007년 ~ 2010년)
레이블
파일:1024px-Columbia_Records_Colored_Logo.svg.pn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활동 내역
3. 음악적 특징 및 여담
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 앨범
5. 빌보드 핫 100 차트인 목록
5.1. 빌보드 1위
5.2. 빌보드 3위~10위
5.3. 빌보드 11위~20위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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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앤 가펑클은 20세기 최고의 포크 듀오라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그룹이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로 구성된 1960년대 미국의 남성 듀오. 당대 최고의 듀오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또한 폴 사이먼은 뛰어난 작곡 실력과 시적인 가사가 일품인 작사 실력으로 유명했고 아트 가펑클은 천사같은 목소리와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다.


2. 활동 내역[편집]


10살 때부터 친구였던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고교 시절, 1957년부터 톰과 제리[2]라는 듀오로 활동했으나, 'Hey, Schoolgirl'이 히트한 이후로 실적이 저조해 잠시 팀을 해체했다 톰과 제리라는 팀명을 보면 실적이 저조할 만도 하다.... 1964년 사이먼 앤 가펑클이란 이름으로 다시 뭉쳐 데뷔앨범 "Wednesday Morning, 3 A.M."을 발매했으나, 성적은 여전히 시원찮았고 결국 팀은 다시 해체되었다.

그러던 중 위의 1집에 수록된 "The Sound Of Silence"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입소문이 퍼져 슬금슬금 역주행 파워를 보이기 시작하자, 음반사에서는 프로듀서 톰 윌슨을 다시 불러 전기 기타와 드럼을 입힌 리믹스 버전을 만들었다.[3] 이 버전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4] 영국에 있던 폴 사이먼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아트 가펑클과 재결합, 아예 "The Sound Of Silence"라는 이름으로 2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3집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을 통해 이들을 큰 인기를 거두었다. 이즈음 이들은 영화 졸업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는데 이 중 Mrs. Robinson은 빌보드 1위는 물론 엄청난 대박을 친다.[5]

그러나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가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이 달랐으며 서로의 성격 차이 때문에 불화도 심해졌다. 워커홀릭인 폴 사이먼 덕에 아티는 항상 쉴 틈이 없다고 불편해 했고, 결정적으로 폴 사이먼 본인이 혼자서 노래 쓰고 부르는 것도 참 잘했다. 혼자서도 잘해요 아티가 영화배우 일 때문에 가수업에 등한시한 이유도 있다.[6] 둘 사이가 한창 좋지 않았을 땐 듀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거나, 파트를 나눠 녹음한 뒤에도 폴이 아티의 파트를 없애버리고 자신이 다시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1970년 5집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발매한 후 팀은 해체하게 된다. 수록곡 So Long, Frank Lloyd Wright는 여러모로 사이먼과 가펑클이 서로 헤어질거라는 암시와 작별 인사를 담고 있는 곡이다.

해체 이후에도 자선 사업 등을 위해서 마음을 맞추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에서도 뉴욕 센트럴 파크 공연은 아예 이날의 공연이 녹음되어 음반으로 발매될 정도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요즘도 가끔씩 공연을 한다. 환갑, 칠순을 지나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팔팔하시다. 다만 2010년 이후로는 공연이 없는 상태.

해체의 이유에 여러가지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 결국 서로 간의 반목이다. 둘 다 능력이 워낙에 뛰어나고, 아웅다웅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 더구나 듀엣이고. 당시가 아니라 현대라면 둘 다 성공했겠지만, 당시 상황에선 어림 없었기에 끝까지 싸우다 끝난 것으로 보인다.

둘은 해체 후에도 각자 솔로 커리어를 이어 나갔는데, 대체로 폴의 솔로 커리어가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7] 가펑클의 미성과 가창력이야 빼어나지만 작곡 능력은 거의 없는 데 비해, 폴 사이먼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대부분 작곡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8] 특히, 폴 사이먼의 셀프 타이틀 앨범 <Paul Simon>과 <Graceland>는 거의 대부분의 명반 리스트에 포함되곤 하는 뛰어난 명반이다. 그의 작곡 능력은 솔로 아티스트 자격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재입성한 것으로 설명이 끝난다.[9]

2016년 인터뷰에서도 재결합 공연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정확히는 아트 가펑클은 하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폴 사이먼은 서로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폴 사이먼은 특별히 사생활에 있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으며,[10] 최근 들어서는 의료보험 개선 캠페인 참여와 반전운동 참여 등 각종 사회운동으로 인기가 높다. 2009년 말에는 버클리 음대 이사가 되었다. 다만 아트 가펑클의 경우 몇년 전 마약 복용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 주위를 안타깝게 한적이 있다.

2000년 10월 5일 ASEM 기념 평화 음악회에 아트가펑클이 게스트 참여를 위해 내한한 적이 있다.

2015년 2월 14일에 아트 가펑클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아트 가펑클은 오는 2월 ‘롯데카드 무브(MOOV) : 아트 가펑클 인 서울’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3. 음악적 특징 및 여담[편집]


  • 서정적인 가사, 감미로운 보컬 덕에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큰 인기를 끌었으며, 때문에 일부 곡은 번역된 이름이 더 유명할 정도. "Bridge Over Troubled Water"같은 경우에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한국 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1970년대 초반엔 남성 2인조 붐이 불기도 했다. 정작 현지에서는 사이먼 앤 가펑클 이후로는 이런 스타일의 듀오가 스틸리 댄을 제외하고는 잘 안 나왔던걸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장르 범위를 넓히자면 아웃캐스트도 저 축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수 소향불후의 명곡 2에서 커버 무대를 선보여 해당 회차의 우승을 차지하는 한편, 무대 영상은 해외 SNS 등지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 "April Come She Will 같은 경우에는 운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쓴 것으로, 본래 각운을 잘 맞춘 민요에서 모티브를 따와 내용을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April come she Will,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May she will Stay, resting in my arms Again...등의 내용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그 외 "El Condor Pasa"도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인기를 끌었다. 위에 적은 곡 이외에도 "The Boxer"는 1978년 '제 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권투선수"라는 번안된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 SG워너비의 SG가 바로 이 그룹의 약자이다. 소몰이 창법 양산과 함께 SG워너비가 까이는 이유 중 하나다. 소속사가 지어준 이름이지만 음악적 방향이 아예 다르다. 다만 은근 이런 스타일을 몇곡 앨범에 싣기도 했고, 소속사가 바뀐 후에 하는 음악스타일과 김진호의 인터뷰를 보면 멤버들이 좋아하는 가수이긴 한듯. 이것을 도전 골든벨에서 문제로 냈었다가 1명 남고 다 쓸려내려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 둘 다 유태계 혈통이다. 다만 혈통만 그쪽이지 성향이나 종교적인 면은 전혀 연관이 없다. 오히려 폴 사이먼의 경우 시오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 사이먼 앤 가펑클은 진보좌파적인 소신으로도 유명한 밴드였는데, 매 선거마다 지지 후보를 정하고 그들을 위한 유세에도 참여했다. 1964년에는 린든 B. 존슨을, 1968년에는 유진 매카시를, 1972년에는 조지 맥거번을 지지했으며, 1972년에는 맥거번을 지지하기 위한 자선 콘서트인 Together for McGovern에 참여하기 위해 일시 재결합을 했을 정도였다.[11]


  • 아트 가펑클에 대한 지문이 천재교육 중등 3학년 영어 교과서에 실렸다. 샌디라는 친구와의 우정을 다룬 내용이다.

  • 이들의 노래는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는데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는 자신의 실력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실력을 보여주고자 공연때마다 이들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를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12] 폴 사이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버전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버전이라고 한다.

  • 한국의 708090 포크 그룹이자 형제 가수인 수와진이 이들과 행보가 비슷해서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이란 말이 일부 수와진의 팬들사이에서 있다. 물론 그 두팀의 행보는 전혀 비슷하지 않다.

  • 그보다는 강은철이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 전문 가수로 훨씬 유명했다.


  • 이들의 데뷔 앨범에 실려있는 'Kathy's Song'에 나오는 Kathy[13]는 폴 사이먼이 Sound Of Silence 발매 후 런던에 체류하며 푼돈을 벌기 위해 불러주는 곳마다 찾아 노래하던 당시 폴 사이먼의 여자 친구였다. 거리에서 폴과 아티가 버스킹을 하면 모자를 들고 수금도 하며 용기를 많이 북돋았다고. 묘하게도 Sound of Silence가 미국에서 대박나고 다시 폴 사이먼이 미국으로 건너갈 즈음 헤어졌다. 이 당시 둘의 모습을 표지에 담은 앨범이 The Paul Simon Songbook (https://en.wikipedia.org/wiki/The_Paul_Simon_Songbook#/media/File:PS_songbook_LP.jpg) 이후 Kathy는 폴 사이먼의 팬이었던 남자와 결혼한 뒤 웨일즈어를 사용하는 시골로 이주하여 조용히 산다. 소문 들은 기자나 파파라치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Sound of Silence. 남편을 통해 전해진 이별의 이유는 갑자기 치솟은 사람들의 관심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도 있지만 폴이 유명해지며 자신과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듯 하다. 원래 성격이 친절하지만 몹시 내성적이라고 한다. 구글에 잘 검색해보면 백팩을 메고 인근 대학에 파트타이머로 출퇴근하는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10년 정도 이후 시대의 남성 듀오인 홀 앤 오츠와 비견되는 측면이 있다. 둘다 키다리 보컬리스트 + 땅딸막한 기타치는 작곡가 컨셉으로 유명하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반드시 꼽힌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사하다. 다만 사이먼 앤 가펑클은 일찍 해체하였으나 홀 앤 오츠는 결성된 지 50년이 다 되도록 해체한 적이 없다. 사실 사이먼 앤 가펑클도 해체하기는 했지만 워낙 둘이 오래된 절친이기 때문에 솔로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함께 공연을 뛰는 등 함께 활동하기는 한다.[14]

  • 2021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하면 폴 사이먼의 음악 저작권 가치는 2억 5000만 달러로, 전체 뮤지션 중에서 5위로 조사되었다.


4. 디스코그래피[편집]



4.1. 정규 앨범[편집]


연도
제목
1964
Wednesday Morning, 3 A.M.
1966
Sounds of Silence
1966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1968
Bookends
1970
Bridge Over Troubled Water


5. 빌보드 핫 100 차트인 목록[편집]



5.1. 빌보드 1위[편집]




5.2. 빌보드 3위~10위[편집]


연도
제목
1966
I Am A Rock
1966
Homeward Bound
1969
The Boxer[15]
1970
Cecilia
1975
My Little Town


5.3. 빌보드 11위~20위[편집]


연도
제목
1966
A Hazy Shade Of Winter
1967
At The Zoo
1968
Scarborough Fair/Canticle
1970
El Condor Pasa (If I C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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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반전좌파 진영을 대표해 출마한 조지 맥거번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콘서트 "Togerther for McGovern"에서 일시적으로 재결합 한 것이다.[2]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에서 따온 거 맞다.[3] 참고로 이 버전에 동원된 세션들은 모두 밥 딜런Like a Rolling Stone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아닌게 아니라 Like a Rolling Stone 녹음이 끝난 뒤에 바로 연주했다고(...)[4] 다만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 두 사람 모두 리믹스 버전이 발표된 이후에야 자신들의 노래가 리믹스 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5] 영화 속 최고의 명곡을 뽑을때 항상 거론된다. AFI 선정 역사상 최고의 영화 노래 100곡 중 #6위로 뽑혔기도 하다. 가사 중 Where have you gone, Joe DiMaggio? 행으로도 유명한데, 사실 조 디마지오는 자신이 비록 은퇴는 했어도 아직 살아있다며 언짢은 반응이었지만 이 곡 때문에 당시 젊은층이던 베이비 붐 세대에게 다시한번 아이콘으로 부상한다.[6] 폴 사이먼은 이에 대해 불만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폴 사이먼은 아트 가펑클이 보컬로서의 재능은 자신을 아득히 능가한다고 인정했기에 폴 사이먼 입장에서 아트 가펑클의 영화배우 활동은 재능낭비였던 셈. 무엇보다 폴은 아티의 목소리를 사랑했다.[7] 아트의 경우 음악에만 치중되지 않아 시집도 내고 연기도 하고 있다. [8] 물론 가펑클 역시 Breakaway 같이 커버 곡 및 타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 수작 음반을 만들어낸 경우가 꽤 있다.[9] 즉 듀오 시절을 포함해서 2번 입성한 것.[10] 이혼 등 개인사의 굴곡이 있긴 했지만 한국과는 달리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은 사생활에 대해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다.[11] 1972년 대선 당시에는 존 레논, 밥 딜런,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 거의 대부분의 록 음악가들이 리처드 닉슨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조지 맥거번을 지지했다.[12] 실제로 노래의 음도 높고 생각보다 어려운 노래이긴 하다.[13] 그녀는 'Kathy's Song'뿐만 아니라 이후 4번째 정규앨범 Bookends에 수록된 'America'에서도 언급된다.[14] 다만 재결합 공연을 할 때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니 많이 다퉜다고 한다.[15] 2002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의 현대카드 광고 수록곡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