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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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2.2. 근세 ~ 근대
2.3. 19세기
2.4. 20세기
2.5. 21세기
3. 관련 기사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의 관계에 대한 문서. 양국은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 매우 가깝다. 양국 모두 이슬람 국가이지만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에 비해 온건한 종교 정책을 펴고 있다. 사우디의 경우 외국인들에게도 샤리아 준수를 강요하는(혹은 강요했던) 것에 비해 아랍에미리트는 샤리아를 그다지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으며, 2020년을 기점으로 샤리아를 전면 완화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중세[편집]


아라비아 반도 동부는 서기 6세기 무렵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던 소왕국들이 들어서 있었고 서부와 내륙 지대에는 베두인들이 낙타를 이용한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상황이었다. 7세기에 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아라비아 동부 지역의 여러 소왕국 지배자들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며, 이후 아랍인들은 힘을 합쳐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여 정복하였다.

그러나 정통 칼리파 시대우마이야 칼리프조 시대가 지나 압바스 칼리프조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변하였다. 아라비아 반도 내륙 사막 지방은 생산성이 낮았고,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는 이미 정통 칼리파 시대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리아와 이집트, 이라크 일대로 이동하게 된 상황이었다. 메카와 메디나가 위치한 헤자즈 지방이나 마나마 같은 동부 해안 무역도시들의 경우 상황은 그나마 나았지만, 네지드 지역은 사실상 내부 변방 지대나 다름없었고,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슬람 시아파 극단주의 교파인 카르마트가 아라비아 반도 중부와 동부에 자리잡았다. 카르마트가 성지 순례객들을 학살하고 잠잠의 성수를 순례객들의 시체로 막아버리는 일이 터지자 무슬림 순니파들은 이들을 매우 위협적으로 보기 시작하였고, 결국 11세기 중반 압바스 칼리파를 보호하던 셀주크 제국우윤 왕조가 힘을 합쳐, 네지드 지역의 카르마트파들을 토벌, 섬멸하였다. 이렇게 카르마트파들이 소탕된 이후 아라비아의 중부와 동부는 다시 순니파 다수 지역이 되었다.

두 성지가 있던 헤자즈 지방은 카르마트파들이 번창하던 시절에도 순니 압바스 칼리프조의 영향권 안에 있었으며, 압바스 칼리프조가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당한 이후에는 역시 순니파 왕조인 맘루크 왕조의 통제를 받았다. 맘루크 왕조는 몽골 제국의 후신 일 칸국과 대치하던 상황이었고, 몽골 침략자들에게 맞선 이슬람의 수호자라는 위상과 명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생산성이 낮고 말도 안 듣는 베두인들이 사는 헤자즈 지방을 통제하는 것은 돈을 많이 까먹는 일이었고, 맘루크 왕조는 헤자즈 너머 아라비아 반도 내륙과 동부는 건드리지 않았다.

2.2. 근세 ~ 근대[편집]


근세부터 근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메카메디나를 비롯한 헤자즈 지방이 오스만 제국의 간접 지배를 받았던 반면,[1] 아랍에미리트 지역은 대항해시대 희망봉을 넘어온 포르투갈 해상 세력의 침략을 받아 주민 상당수가 학살당하거나 가톨릭으로 강제개종당하였다. 포르투갈인들은 해상 무역 거점에 요새를 건설하고 대포를 설치하였는데, 아랍 베두인 부족들은 이런 요새들을 수복하는데 번번히 실패하곤 했다.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축출하기 위해서 페르시아 만의 아랍인들과 사파비 제국을 지원하면서, 포르투갈인들은 물러나고 대신 근대 오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 동북부 해안 지방을 장악한다. 오만 제국은 포르투갈이 운영하던 노예무역 루트를 흡수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대제국으로 성장하고, 그 결과 아랍에미리트는 오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2.3. 19세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네지드 왕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네지드 왕국 시대가 되면서 아랍에미리트의 베두인 부족들은 와하브파를 받아들였다.

2.4. 20세기[편집]


영국의 개입으로 아랍에미리트 지역은 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이른바 트루셜 스테이트라는 영국의 보호국이 들어섰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고 사우디 지역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사우디 지역과 아랍에미리트 지역은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보호령으로 남았다가 중반 이후에는 양 지역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2.5. 21세기[편집]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 아랍 연맹, 걸프 협력회의의 회원국이다.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한 편이라서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사우디로 성지순례하러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반면, 사우디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으로 인해 아랍에미리트로 가서 을 마시러 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지만, 국경분쟁이 일부 존재한다.#

예멘 내전에서는 동맹으로 함께 하고 있으며, 두 국가 모두 후티드론탄도 미사일 공격을 받기도 했다.

2022년 7월 17일, 카슈끄지의 전 변호인이 아랍에미리트에서 탈세 등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석유 감산과 관련해서 10월 17일, 아랍에미리트 측이 사우디를 지지했다.# 그 전에 UAE 측이 이를 반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지역 주도권과 경제적 이권 등을 놓고 갈등이 생겨났다.#


3. 관련 기사[편집]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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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스만 제국이 헤자즈 지방에 영향력을 유지한 이유는 압바스 칼리프조나 맘루크 제국의 그것과 거의 동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