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지리 에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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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란도르상 신인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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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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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이케우치 준코, 이시하라 유지로, 카와구치 히로시, 쿠사나기 고지로, 시라카와 유미, 스기타 히로코, 타카쿠라 켄
1957년
단 레이코, 에하라 신지로, 키타자와 노리코, 나카다이 타츠야, 시라카와 유미, 모리 미키, 츠구바 히사코, 카와사키 케이조
1958년
아사오카 루리코, 카노 준코, 아사오카 루리코, 쿠와노 미유키, 오오조라 마유미, 사토 마코토, 치노 카쿠코
1959년
혼고 코지로, 호시 테루미, 미즈키 조, 나카타니 이치로, 나츠키 요스케, 시미즈 마유미, 야마모토 토요조

196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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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아카기 케이이치로, 후지마키 준, 호시 유리코, 카와구치 토모코, 마츠카타 히로키, 미카미 신이치로, 요시다 테루오
1961년
이와시타 시마, 카야마 유조, 미타 요시코, 타미야 지로, 야마자키 츠토무, 요시나가 사유리
1962년
바이쇼 치에코, 하마 미에, 하마다 미츠오, 스가타 미치코, 치바 신이치, 야마모토 케이
1963년
이즈미 마사코, 카가 마리코, 키타오오지 킨야, 나카가와 유키, 나카오 미에, 타카다 미와, 타카하시 코지
1964년
후지무라 시호, 혼마 치요코, 마츠모토 하쿠오, 카토 고, 카야마 요시코, 마츠바라 치에코, 요시무라 지츠코
1965년
에나미 쿄코, 후지 스미코, 나이토 요코, 오가와 마유미, 타케와키 무가, 와타리 테츠야
1966년
구리주카 아사히, 구로사와 토시오, 오오하라 레이코, 야마구치 타카시, 야마모토 요코, 오오쿠스 미치요
1967년
아즈사 에이코, 쿠리하라 코마키, 나카야마 진, 오가와 토모코, 사카이 와카코, 스기 료타로
1968년
이쿠타 에츠코, 미네기시 토오루, 나카야마 마리, 오카 미츠코, 타카하시 에츠시, 타니 하야토
1969년
아츠미 마리, 오키 마사야, 오자키 나나, 타이치 키와코, 타카하시 노리코, 타치바나 마스미

197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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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하라다 다이지로, 모리타 겐사쿠, 나츠 준코, 오카다 유스케, 오카모토 노부토, 사카이 마사아키, 사토 오리에, 타케하라 에이코, 우메다 토모코, 와타세 츠네히코, 야나미 에이코
1971년
미개최
1972년
이케 레이코, 콘도 마사오미, 사카키바라 루미, 타카하시 케이코, 미후네 시로, 야마구치 카린, 요시자와 쿄코
1973년
우츠노미야 마사요, 스기모토 미키, 시가키 타로, 마츠자카 케이코, 무라노 타케노리, 야마모토 센, 타나카 마리, 후지오카 히로시, 혼다 미치코, 마키 히로코
1974년
아사다 미요코, 코즈에 히토미, 시마다 요코, 세키네 세츠코, 니시나 아키코, 하기와라 켄이치, 미우라 토모카즈, 모모이 카오리, 다이몬 마사아키, 타카하시 요코, 나카지마 유타카
1975년
아키요시 쿠미코, 쿠사카리 마사오, 이케가미 키미코, 단 후미, 시호미 에츠코, 나카무라 마사토시, 하기오 미도리
1976년
히가시 테루미, 오카다 나나, 오오타케 시노부, 다나카 겐, 카타히라 나기사, 네즈 진파치, 미츠바야시 쿄코, 카츠노 히로시, 사오토메 아이, 타키가와 유미
1977년
아사지 요코, 이와키 코이치, 에토 준, 하라다 미에코, 마야 쿄코
1978년
아라이 하루미, 아사노 유코, 이노우에 준이치, 시미즈 켄타로, 나츠키 요코, 타케시타 케이코, 타케다 테츠야, 나가시마 에이코
1979년
쿠니히로 토미유키, 나가시마 토시유키, 후지 마리코, 모리시타 아이코, 유리 치카코

198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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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쿠마가이 마미, 코테가와 유코, 시바타 쿄헤이, 마츠다이라 켄, 미야우치 준
1981년
카네다 켄이치, 칸자키 아이, 키시모토 카요코, 타키타 사카에, 히구치 카나코
1982년
카가 다케시, 사나다 히로유키, 다나카 유코, 나츠메 마사코, 후루오야 마사토
1983년
카자마 모리오, 콘노 미사코, 나카이 키이치, 나토리 유코, 류 다이스케
1984년
사토 코이치, 토키토 사부로, 나카이 키에, 하라다 토모요, 야쿠쇼 코지
1985년
이시하라 마리코, 에노키 타카아키, 와타나베 토루, 후지타니 미와코
1986년
키쿠치 모모코, 킷카와 코지, 사와구치 야스코, 야나기사와 신고
1987년
사이토 유키, 진나이 타카노리, 나카야마 미호, 야스다 나루미, 와타나베 켄
1988년
고쿠쇼 사유리, 토미타 야스코, 고토 쿠미코, 미나미노 요코, 나카무라 토오루
1989년
아소 유미, 오가타 나오토, 타카시마 마사히로, 미카미 히로시, 와카무라 마유미

199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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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모리 미유키, 스즈키 호나미, 미나미 카호, 모토키 마사히로, 야나기바 토시로
1991년
쿠도 유키, 타카시마 마사노부, 나카지마 토모코, 노무라 히로노부, 마키세 리호
1992년
이시다 히카리, 센도 노부코, 와쿠이 에미, 나가세 마사토시, 요시오카 히데타카, 다나카 미노루
1993년
카토 마사야, 시미즈 미사, 아카이 히데카즈, 유키 나에, 카라사와 토시아키
1994년
사쿠라이 사치코, 와시오 이사코, 스미다 유키, 츠츠이 미치타카, 하기와라 마사토, 무라타 타케히로
1995년
야마구치 토모코, 스즈키 안즈, 하다 미치코, 키시타니 고로, 토요카와 에츠시, 기무라 타쿠야
1996년
토키와 타카코(대상), 츠루타 마유, 잇시키 사에, 나가사와 토시야, 타카하시 카츠노리, 시이나 킷페이
1997년
마츠 다카코(대상), 이이지마 나오코, 세토 아사카, 카미카와 타카야, 니시무라 마사히코
1998년
칸노 미호(대상), 키무라 요시노, 다나카 미사토, 아사노 타다노부, 우치노 세이요
1999년
마츠시마 나나코(대상), 카시와바라 타카시, 카네코 켄, 사카이 미키, 후카다 쿄코

200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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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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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수상자






사와지리 에리카
(さわ(じり エリカ|Erika Sawajiri

파일:사와지리 에리카 2023.jpg
출생
1986년 4월 8일 (37세)
도쿄도 네리마구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신체
161cm | A형
가족
어머니 사와지리 리라
큰오빠 사와지리 켄지(1981년생)
직업
배우, 가수
소속사
에이벡스 뱅가드

1. 개요
2. 데뷔 전
3. 데뷔 후
3.1. 초창기
3.2. 베쯔니 사건과 그 이후
3.3. 성공적인 복귀
3.4.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
3.5. 재복귀
4. 작품 활동
4.1. 드라마
4.2. 영화
4.3. 연극
5. 여담



1. 개요[편집]


파일:erika-01 (1).gif

일본배우. 가수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소속사는 스타더스트 프로모션이었으나 2009년 계약해지되었고, 2011년부터 에이벡스 소속이 되었다.

수필을 원작으로 한 유명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의 주연을 맡은 것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했지만 후술될 마약 사건으로 인해 배우 활동을 자숙한 후 2023년 11월 복귀를 발표했다.


2. 데뷔 전[편집]


일본인 아버지와 알제리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상당한 부잣집 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버지가 무려 16마리의 경주마를 소유한 마주였고,[1] 어머니는 지중해 요리 레스토랑의 경영자였다고 한다.[2]

그러나 에리카가 9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사업 실패 후 돌연 실종,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해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뒤이어 둘째 오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사망. 여러모로 안타까운 가정사. <1리터의 눈물> 제작발표회 당시 "살면서 1리터의 눈물을 흘릴만큼 슬펐던 경험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오빠가 죽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만큼 울었다."라고 대답했다. 첫째 오빠는 한때 배우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연예인이 된 계기는 아무로 나미에를 동경해서라고 한다. 연예계에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사무소에 이력서를 보낼 당시 시간이 없어서 사진 란에 스티커 사진을 붙여 제출했다고 한다(...). 그 결과 초등학교 6학년 때 월간 소녀 만화 잡지 리본의 모델로 무사히 데뷔, 이후 잡지 <니콜라>의 모델 등으로 활동하다가 그라비아 아이돌이 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3. 데뷔 후[편집]



3.1. 초창기[편집]


파일:베쯔니6.gif
많은 사람들이 리즈로 꼽는 <1리터의 눈물> 출연 당시

그라비아 아이돌로 활동을 시작하여 TBS 테레비 드라마 <핫 맨>(2003)에 조연으로 드라마 첫 출연, 영화 <문제 없는 우리>(2004)에서 준주연을 맡으며 스크린 데뷔, 이후 1960년대 후반 일본을 배경으로 청순한 재일조선인 소녀를 연기했던 영화 <박치기!>(2004)로 신인상을 휩쓸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편지>(2006), <유실물>(2006), <슈가 앤 스파이스>(2006), <클로즈드 노트>(2007)의 주연으로 나왔다.

다른 영화 출연작의 성공과 드라마 <1리터의 눈물>(2005)에서 척수소뇌변성증을 앓는 소녀 '이케우치 아야' 역을 완벽하게 소화함으로써 크게 떴다.[3] 이 작품으로 2006년 엘란도르상·신인상, 제43회 골든 애로상·신인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며 순식간에 성공 궤도에 오른다. 이후 TBS 테레비 드라마 <태양의 노래>(2006)에서 '아마네 카오루' 역을 맡으며 드라마의 OST를 불러 오리콘 차트 2주 연속 1위와 초동 판매량 15만, 총 판매량 50만이라는 대히트를 거둔다. 그야말로 에리카 전성시대.

그러나 이때부터 "평소 행실이 건방지다", "성격이 오만하다" 등의 여러 소문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무성의한 인터뷰, 방송 태도, 선배에 대한 무례한 행동 등으로 많은 비판을 샀다. 에리카의 남성적이고 괄괄하며 제멋대로인 성격 탓에 적이 많다는 둥, 뜻이 맞는 여배우들과 파벌을 만들어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둥, 그녀의 행실과 관련한 수많은 소문들이 에리카를 따라다녔지만 그녀의 전성기에 흠집을 낼 수는 없었다.


3.2. 베쯔니 사건과 그 이후[편집]


그러다 2007년 경, 끝내는 사와지리의 평판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다 못해 그녀의 연예계 생활을 끝낼 수도 있었던[4], 아마 사와지리 에리카에게 영원한 꼬리표처럼 남을 일명 '베쯔니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당시 이 사건의 여파는 어마어마해, 일본 현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크게 이슈가 될 정도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2007년 9월 29일, 주연 영화 <클로즈드 노트>(2007) 시사회 당시, 사와지리 에리카는 함께 참석한 타 배우들과 달리 표정부터 이미 굳어 있었다.

그러다 사회자가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에리카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딱히 없어요.(特にないです)"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이에 사회자는 '달리 말하면 모든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는 뜻이군요!'라고 필사적으로 무마했지만 에리카는 아무런 대답 없이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후 사회자가 "촬영 당시 쿠키를 구워 출연진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 주셨나요?"라고 질문하자 아무런 대답 없이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크게 당황한 사회자가 "하…?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다시 묻자, "베쯔니(별로)"라고 대답하고는 사회자를 잠시 노려보았다. 결국 사회자는 난처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수습했고, 시사회 현장은 그렇게 어영부영 마무리가 되었다.

상술한 상황 설명으로만 보아도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으며, 배우가 본인 영화 시사회장에서 보일 수 있는 정상적인 태도라고는 볼 수 없기에, 이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사와지리 에리카는 하루 아침에 추락하고 만다. 그녀의 무례한 행실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지금껏 대중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에리카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고 충격을 받는 반응이 굉장히 많았다.

이는 그럴만도 한 게 아무리 에리카의 성격이나 실제 모습에 대한 소문이 많았다고 해도, 그 전까지 대중들에게 사와지리 에리카의 이미지는 <1리터의 눈물> 속 아야 같은 느낌의 청순하고 천사 같은 여자였기에 '아야 같은 에리카'라면 절대 저지를 리 없는 인성 논란이 일어남으로서 수많은 대중과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5]

결국 사건이 벌어지고 3일 뒤, 2007년 10월 2일 공식 홈페이지에 본인 명의로 사과문을 올렸다. 이후 테레비 아사히의 '슈퍼 모닝'에 출연해 심경 고백 인터뷰를 하며 눈물 사죄를 했는데, 사진 참조 이 때 에리카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여자 아나운서는 에리카가 울자 따라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3년 후 인터뷰에서 "사죄할 생각이 없었지만 소속사가 시켜서 한 일이다"라고 말해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이 사건으로 사와지리 에리카는 한국에서 배춘희 여사, 싸가지리 등의 오명을 얻었으며 일본 현지에서도 관련 글이 올라올 때마다 "베쯔니 쿄-미 나이"(별로 흥미없다) 등으로 비꼼을 당했다. 또 이 이후 각종 방송에서 출연을 금지당했다가 울면서 사죄하며 복귀하고 다시 반복하는 등 안티를 스스로 만드는 타입이다.[6]

기자회견 전 어떤 기자가 죽은 오빠와 막내인 장애인 남동생(?)에 대해 들먹거렸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정확한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 사건이 터지기 전의 버라이어티에서 이미 태도 문제들이 불거져나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없이 행동한 일이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복귀 후 2013년 당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사건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무대 밖의 일이니까, 이야기 할 필요도 없고 또한 내가 그래서도 안 됐다."라고 말했다. 시사회 직전 에리카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어떠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명확한 듯 하다.

이 사건 당시가 겐다이, 주간문춘, 프라이데이 등 바닝계 주간지가 사와지리에 대한 악성 찌라시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던 시기였기에, 이때 찌라시 기자들에게 시달릴대로 시달리면서 일종의 PTSD를 겪고 일부러 기자들을 비꼬면서 막장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실제로 헐리웃 배우들의 사생활이 망가지는 주된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대중의 관심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어찌보면 86년 동갑내기 린제이 로한과 비슷한 케이스.

베쯔니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 행적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1리터의 눈물> 제작 시 실제 모델이 됐던 키토 아야의 어머니인 키토 시오카가 상세한 연출도 부탁하자 "하? 이런 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라고 막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키토 시오카는 '이런 사람에게 주연을 시킬 수 없다'라고 격분, 드라마 제작에 차질이 생길 뻔했고 결국 드라마 종영 뒤 후지 테레비 출연이 금지되었다.

2009년 1월 22살 연상의 비디오 아티스트 겸 DJ인 타카시로 츠요시(高城剛)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고 멋대로 유학[7]을 간 다음에 일방통지한 것을 계기로, 이후에도 소속사와 관계가 악화되어 결국 2009년 9월부로 소속사에서 퇴출당했다.

그러다가 에이벡스를 통해 복귀했는데, 복귀하지마자 이혼을 선언하며 언동 하나하나가 다시 또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8] 이제 완전히 진성 악녀로 인식되는 듯하다. 남편이었던 타카시로는 자신이 이혼당했다는 사실을 TV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생활비, 유학비, 유학 시절의 용돈, 집세, 자동차 리스비 일체를 타카시로가 내주었다고.

야지마 미용실의 스트로베리(이시바시 타카아키)가 사와지리를 인식하는 듯한 '베쯔니' 드립을 시전해 큰 웃음과 열광적인 호흡을 이끌어냈으며 스트로베쯔니가 되었다 카더라.

이후 음반을 내고 무대활동을 하면서도 엉덩이가 드러나는 노출을 선보이면서 사진 참조 <1리터의 눈물> 이미지로 고정되게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다.

2010년 9월 1일 CNN 아시아 정보 사이트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소위 '베쯔니 사건'의 눈물 사죄에 대해 질문을 하자 "사실 사과하기 싫었어요. 전 사무소가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계속 거절하고 있었어요. 절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게 내 방식이니까. 결국 제가 꺾여서 사과하고 말았지만, 사과하고 싶지 않았어요." 라고 밝혀 또 다시 논란을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가뜩이나 실추된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사죄 인터뷰를 진행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던 아나운서마저 "나는 지금 매우 부끄럽습니다." 라고 어이가 없다는 인터뷰를 할 지경이었다. 이래저래 엉망이 된 이미지는 한동안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직 이혼 수속도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스페인대마초 전문가와 교제하는 듯한 사진이 사와지리의 페이스북에 올라와 일본을 또다시 들썩이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얻은 별명은 일본의 패리스 힐튼 + 린제이 로한. 사와지리의 어머니 리라는 도쿄의 자택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혀 사실무근이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고 딸의 새 애인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고.

2011년 2월 24일에는 술에 취한 상태로 불륜에 대해 심경고백을 했다. 남편 타카시로 츠요시가 도장을 찍은 이혼장은 스페인의 중재 사무실에 보관 중이며, 자신은 아직 사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 남편과 합의한 시기가 있어서 그때가 되면 이혼장을 접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1년 5월 16일 일본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는 듯하다.#

항간에서는 오히려 "사와지리의 이런 막장 행보 이면에 가십걸 혹은 악녀로서 리포지셔닝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일고 있다. 사실상 사와지리 에리카는 베쯔니 사건 이후로 무수히 씹히고 있을지언정 잊히지 않고 있으며, 2010년 이후에는 광고 계약도 몇 개 따냈다.[9]

사실, 일본 내에서 이런 악녀 같은 이미지는 사실상 본인에게 득 될 것도 없고 부담만 안겨주는 것이지만 본인이 작정하고 메이킹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부 유명 래퍼들이 오히려 실컷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도 그려려니 하며 환호받는 것처럼 역으로 운신할 폭이 넓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연기에 있어서도 대부분이 꺼리는 독한 배역들에 우선순위로 캐스팅될 가능성도 높다. 위험도가 높은 양날의 검이지만,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다면 굉장한 무기다.

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게 사와지리는 2007년 베쯔니 사건 전까지만 해도 무척 인기 많은 배우였고, 매년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영화 10편, 드라마 13편)에 출연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베쯔니 사건 이후 사와지리에게 들어오는 일이 뚝 끊겼다. 2007년 이후 2011년까지 단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못했다.[10] 이 4년간 3편의 광고에 나오기는 했지만, 2007년 한 해에만 5~6편의 광고에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광고 출연빈도도 팍 줄어든 셈이다.

비교대상이 된다는 패리스 힐튼은 기본적으로 사업가라서 본인 이미지와는 관계없이 물건만 잘 팔리면 광고의 수단이지만[11] 사와지리는 배우이고 배우로서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는데 운신이 폭이 넓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때문에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일본 내에서는 사와지리가 의도적으로 악녀를 연기한다는 의혹은 별로 없다.

게다가 일본 연예계가 연예인에게 요구하는 자기관리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환경에서 본인의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것은 연예인으로서의 수명만 줄이는 꼴이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3.3. 성공적인 복귀[편집]


2012년에는, 미와 명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몰락해 가는 성형미인 톱스타 역을 맡은 <헬터 스켈터>로 흥행에 상당히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사와지리 에리카는 가슴노출도 마다 않는 투혼으로 역시 연기력의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개봉 이후 에리카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은 지금껏 역할의 여운에 그리 오래 영향 받지 않는 타입으로, 작품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리고는 했는데 헬터 스켈터만은 그러지 못했다며, 촬영을 마친 후 친구들과 클럽에 놀러가서도 본인이 헬터 스켈터의 여주인공 '리리코'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친구들이 '너 오늘따라 왜 그래?'라고 말해주고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리리코의 감정에게서 벗어나느라 힘들었다고. 여러모로 에리카가 배우로써 철이 들었고, 본인이 애착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 캐릭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헬터 스켈터>로 사와지리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상을 수상한 영화계 대선배인 키키 키린이 수상 소감으로 "저는 상은 필요 없는데 차라리 마츠 타카코나 에리카 ‘“님'''께 상을 드리고 저는 상품만 주시면…"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12] 영화계에서도 사와지리의 이미지는 변함없이 콧대높은 여왕님이다.

단, 같이 일했던 감독들의 말에 따르면, 연기할 때는 영혼을 갈아서 넣는 수준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어떤 요구에도 군말없이 따라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헬터 스켈터>로 36회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 촬영이 완료된 후에 배우가 여기 저기 머리를 숙이며 홍보활동을 하는 것에 사와지리 자신이 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고 납득하지 못해서 불거지는 문제들이 많다고 한다. 드라마에 출연하던 시절에도 울어야 하는 장면에서 대본이 어설프다며 "안 슬픈데 어떻게 울란 말이에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촬영장을 뛰쳐나간 일이 보도되면서 언론에서 신나게 까인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본인이 납득하는 범위 안에서는 죽을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고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절대로 양보를 안 하는 스타일인 듯 하다. 감독 배우 같이 해야 할 듯 작품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역에 완전히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작품을 마친 후 바로 휴가를 잡아 <역 떨어트리기> 를 하지 않으면 다음 작품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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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한국에도 개봉되자 영화의 홍보를 위해 방한하였으나, 다행히도 별다른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시사회 당시 한국에도 팬들이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나 정작 고국에서는 여전히 인터뷰 등에서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며 논란이 있다. 매해마다 잡지 등의 매체에서 선정하는 '없어졌으면 하는 연예인' 등의 종류의 앙케이트에서는 항상 변함없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13]

이후 TBS 드라마 <악녀에 대해서>로 당당히 지상파 드라마 여주인공으로도 복귀하였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TV프로나 인터뷰 등에서도 상당히 둥글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친 사고들이 워낙 많다 보니 예전과 같은 수준의 인기는 누리지 못하는 중이다.

다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각종 루머들이 불거지고 있어서, 정말로 본인이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찌라시들이 가짜 기사를 푸는 것인지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히로스에 료코의 사례를 생각해본다면 진짜가 아닌 가짜 기사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2014년 2분기 후지TV 드라마인 <퍼스트 클래스>의 원탑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에이벡스에서 주연급으로 밀어 줄 만한 거의 유일한 여배우인 상황이라, 여러모로 푸쉬해 주고 있는 듯.

초반에는 경쟁작들에게 밀렸지만 후반부에는 동시간대 드라마 1위로 올랐고, 방영시간을 고려하면 상당히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중이다.[14] 여러모로 성공적인 복귀. 전작인 <악녀에 대하여>도 특집 단막극 주제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는 등 과거의 엄청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흥행 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입으로는 욕하지만 출연작은 다들 챙겨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지경.

이후 예능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사람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고, 베쯔니 사건 직전에 불성실한 태도로 논란을 일으켰던 'ラジかるッ'의 진행자인 나카야마 히데유키에게 사과를 하는 등 대외적으로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젠 주간지에서도 脱 エリカ様(탈 에리카사마)라고 지칭하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2014년도를 기점으로 출연한 광고/CM수도 급격히 많아졌고, 14년도 하반기 보도지에 따르면 CM 계약금도 4,000만 엔으로 이전보다 약 2배 이상 상승. 전성기 시절 계약금이 5,000만 엔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시 주가가 회복되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5년에는 전성기 시절에도 없던 게츠쿠 출연 등 나름대로 순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이쯤되면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노리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본인이 주연을 맡았던 <퍼스트 클래스>가 3개월 만에 속편 방영이 확정, 2014년 10월부터 수요일 10시 대에 방영했다. 3개월 만에 속편 방영 결정은 일본 최초 기록이다. 아야세 하루카의 <오늘 회사 쉬겠습니다>와 동시간대에 방영하고 있다. 시청률에 있어서 사와지리가 아야세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사람은 거의 없지만, 넷상에서는 서로 극과 극의 행보를 보인[15] 두 배우의 맞대결이 화제가 되었다. 전편의 캐치프레이즈가 "나 이외, 전원 악녀"였는데, 속편의 캐치프레이즈가 "나 포함, 전원 악녀"라서 오랜만에 사와지리의 본격적인 악녀 연기를 보는 거냐며 화제가 되고 있다 나츠키 마리, 요 키미코, 키무라 요시노, 토모사카 리에, 시시도 카프카, 시노하라 토모에 등의 호화 출연진 또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전 시즌과 별다를 것 없는 내용으로 시청률에 타격을 받고 있으며, 내용이 흥미로워져야 안 그래도 낮은 시청률이 더 떨어지지 않고 종영할 듯. <퍼스트 클래스> 방영이 일본 프로야구 방영 때문에 한 차례 늦어진 적이 있고 FNS가요제 때문에 결방을 해서 더욱 시청률에 타격을 받고 있다.[16]

<퍼스트 클래스>의 속편은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지만, 이후 무난하게 프라임 타임 드라마로 복귀, 2015년 2분기 게츠쿠 <어서 오세요, 우리 집에>에 히로인으로 출연하며 완전히 안방극장에 복귀하였다.

여전히 비호감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매년 주간문춘이 주최하는 '여자가 싫어하는 여자 연예인' 랭크에도 상위권에 랭크되는 경우가 잦은 등 아직 여론이 완전히 호감으로 돌아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베쯔니 사건 덕에 나름대로 독보적인 캐릭터가 생긴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그쪽 연예계에서는 일종의 대체불가 캐릭터가 된 셈. 오히려 도덕적 기대치를 확 낮추고 캐릭터를 확보한 덕에 졸지에 틈새시장을 공략하게 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다. <헬터 스켈터>나 <악녀에 대해서> 같이 다른 동년배 여배우들이라면 소화하기 힘든 배역들에 대한 오퍼도 많고, 이러한 행보들이 결과적으로는 배우로서는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퍼스트 클래스2> 성적이 너무 별로라서 그렇지, <헬터 스켈터>는 흥행에도 성공하고 여우주연상도 수상. <악녀에 대해서>를 비롯한 단편 SP 드라마도 시청률이 좋게 나오는 등 나름 필모그래피는 착실하게 쌓은 편이었다. 게다가 이미지 바닥에 각종 가십으로 굴러떨어지던 그 시절에도 최소한 연기력, 비주얼에 대한 평가는 좋았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복귀 가능하지 않냐는 의견도 많았다. 관계자들로부터 계속 오퍼가 들어오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

2016년 10월부터는 다른 곳도 아니고 NHK BS 프리미엄에서 '어나더 스토리즈~인생의 분기점'이라는 프로그램의 MC까지 맡게 되었다. 본인은 MC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저한테 맡기셔도 괜찮겠어요?'라고 생각했다고.# 이젠 완전히 '캐릭터 확실하지만 연기는 잘하는 여배우' 정도로 자리잡았다. 매일매일 가십란을 장식하던 시기를 생각하면 상전벽해.

2016년에는 아예 '베쯔니' 드립을 자기 입으로 치고 있다. 방청석부터 진행자들까지 한 방에 빵 터지자 되려 본인이 "왜 별로라고 말하는데 기뻐하는 거예요?"라면서 어이없어하는 게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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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 <기린이 온다>를 통해 NHK 대하드라마오다 노부나가의 아내 키쵸 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대하 드라마가 주는 무게가 있는 만큼, 사와지리 에리카의 이미지가 완전 복구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 사와지리는 해당 드라마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3.4.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편집]


2019년 11월 16일 오후 4시 경, 마약단속위반법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도쿄 메구로구 히몬야의 자택에서 합성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하며, 본인 소지의 약품임을 인정했다. 분말은 감기약 캡슐에 들어간 상태였다고. #1 #2

전날 오후 9시 45분 경 일본의 지상파 방송인 TBS에서 시부야 클럽에 가기 위해 집에서 나오는 사와지리 에리카를 카메라로 포착했다. 또한 주간문춘은 사와지리 에리카의 체포 소식에 예고되어 있던 취재를 미루고 체포 당일 클럽 W에서 귀가하다 집 앞에서 수사관과 마주쳐 체포되기 전까지의 사와지리 에리카의 행적에 대한 기사를 오후 9시 경에 업로드했다. 더불어 회원 한정 영상을 밤 10시에 공개한다고. 이런 언론 보도로 미뤄봤을 때, 사와지리의 마약 복용과 체포 시점을 일본 언론에서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사와지리가 소속된 에이벡스와 광고가 걸려있는 기업은 물론, 출연 중인 몇몇 작품에 관여된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불벼락이 떨어졌다. 15일부터 TV에 방영 시작된 광고는 하루만에 게재가 중지되었고(...), 대하드라마부터 사와지리가 맡은 역할을 대체할 여배우와 그 여배우와의 재촬영으로 인한 추가적인 비용 지출이 문제가 될 듯 하며, 체포 시점에서 현지에 개봉 중이던 오구리 슌 주연의 영화 인간실격 DVD 발매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소속사인 에이벡스 측에서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사죄문을 게재하였다.# 결국 대하드라마에서 대역은 카와구치 하루나로 결정되었다.

성공적인 재기 이후 줄곧 소처럼 일하던 배우였기 때문에 그만큼 큰 액수의 위약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후 경찰 측과의 조사에서 10년 이상 전부터 위법 약물을 사용했다. 엑스터시는 몇 주 전에 이벤트 회장에서 받았다. 지금까지 대마초, LSD, 코카인도 사용했다고 자백했다. #1 #2 #3

또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이 유출된 이후 일본 내에서 해당 사건이 더욱더 크게 이슈화되었다. 소위 말하는 묻기 위해 터트린다가 아니냐는 것으로,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아베 정권에서 희생양으로 사와지리를 선택했다는 것. 원래 이런 류의 이슈가 생기면 해당 음모론은 당연히 따라붙기 마련이고 금세 잊혀지곤 하지만, 이번엔 인터넷 상의 음모론 애호가나 어중간한 수준의 연예인이 아닌, 경력 40년을 넘기는 대 배테랑 연예인 리시르 이시이[17]가 중심이 되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라 더욱 화제가 되고 쉽게 사그러들지도 않고 있는 중이다. 극우 논객인 햐쿠타 나오키가 라사르 이시이를 조롱하였으나, 친한파이자 전 일본 총리하토야마 유키오가 본인의 SNS를 통해 사와지리를 이용해 벚꽃 스캔들을 덮으려는 게 사실이라는 주장을 하여 정치계에서도 설왕설래하는 상황이다.

2019년 12월 6일 19시경, 보석금 500만 엔을 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풀려난 뒤 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와는 별개로 같은 날, 마약단속법 위반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같은 날 21시경에 사과문이 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와지리 에리카는 사실상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끝나게 되었으며 그녀가 출연하기로 했던 대하드라마와 현재 상영중인 영화 및 송출중인 CF 4편 등에 대해, 약 22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배상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불륜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벳키가 토해냈던 50억 원의 약 4배 가까이 이르는 금액이라고. #

특히 내년 1월 방영 일정으로 현재 촬영중인 NHK의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는 카와구치 하루나로 배역을 교체 후 재촬영에 들어갔으나 이미 철거된 세트 장면 등을 CG로 대체하는 작업 등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으며 CF는 종전의 출연료는 물론 기업의 이미지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액까지 물어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2020년 1월 31일, 첫 공판이 열려 검찰측은 사와지리 피고에게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사와지리 피고는 검찰의 기소내용을 인정하였고, 향후 여배우 복귀 계획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2020년 2월 6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 재판 과정에서 만 19세 무렵부터 약물을 접하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판결 직후 사와지리는 이번에는 자필 사죄문을 올렸다.

사와지리 에리카의 사죄문 (펼치기)
파일:sawa_sya.jpg

팬 여러분 및 관계자 여러분께

이번에, 저의 제멋대로인 행동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배반하고, 상처를 주었으며, 사회에 헤아릴 수 없는
폐를 끼친 것에 대하여
마음 깊이 사죄드립니다.

사과해서 용서받을 일이 아닙니다만,
저지른 죄의 무거움을 자각하여 반성해 가며
전력을 다해서 갱생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판의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근본적으로 소중한 것이
자신에게는 결여되어 있다고 통감했습니다.
사회인으로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이번에 저 스스로를 바로 잡아 가겠습니다.

사와지리 에리카

2020년 2월 21일, 변호인과 검찰 측 모두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이 확정되었다. # 2023년 2월 집행유예 기간이 끝났다.


3.5. 재복귀[편집]


마약 사건 이후 사요나라 에리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에이벡스의 캐시카우 연예인으로 베쯔니 사건 이후 재능만을 발판 삼아 복귀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복귀를 예상했다. 2024년에 한국에서 제작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로 복귀할 것이라는 루머가 들려오기도 했다. #

2023년 8월, 자신의 소속사 대표이사인 마츠우라 마사토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했다. #

파일:사와지리 에리카 2023.jpg

2023년 11월 1일, 2024년 2월 상연하는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주연을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 마약 사건 이후 복귀작이자 본인에게 있어 첫 연극이기도 하다.


4. 작품 활동[편집]



4.1. 드라마[편집]


  • 1리터의 눈물 (2005)
  • 태양의 노래 (2006)
  • 퍼스트 클래스 (2014)
  • 어서 오세요, 우리 집에 (2015)
  • 오오쿠 (2016)
  • 어머니가 된다 (2017)
  • 불능범 (2018)
  • 하게타카 (2018)
  • 하얀 거탑 (2019)
  • 팔로워들 (2020)[18]


4.2. 영화[편집]




4.3. 연극[편집]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2024)


5. 여담[편집]


  • 사와지리 에리카가 태어난 1986년 4월 8일은 공교롭게도 80년대의 유명 아이돌인 오카다 유키코가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날이라서, '사와지리 에리카는 오카다 유키코의 환생'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이런 말하면 유키코 팬들에게 몰매맞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애초부터 스타가 된 것은 비슷하지만 애초에 행동거지 자체가 너무 다르다.

  • 아버지가 일본인이고 어머니가 알제리프랑스인[19]혼혈이다.[20] 쿼터가 아닌 하프인데도 평범하게 '인형처럼 예쁜 동양인 여성' 느낌에 가까운 외모라서 혼혈임을 몰랐던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21] 어쨌든 혼혈 티가 심하게 나는 다른 혼혈 배우들과는 다르게 배역을 따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고.

  • 2015년 12월 1일 'horoyoi_erika'라는 계정명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었다. 계정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계정은 일본의 주류 음료인 호로요이 홍보를 위해 만든 계정. 자신의 광고 촬영 사진 등을 업로드하였다. 3일 만에 팔로워 숫자가 15만 명을 돌파하는 큰 호응을 얻었지만[22] 사람들은 이제 SNS를 하는 거냐며 신기함 어린 시선으로 보았지만 곧 호로요이 CM이 공개되면서 계정이 홍보용임이 밝혀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월 5일에 계정을 삭제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공표되면서 팬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 FT아일랜드이홍기가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청순가련형의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다고. 당시 '타국의 여배우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라고 언급하며 '1리터의 눈물' 원작 책을 사서 읽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인 점이 배역을 맡을 때 먼저 각본을 읽어보고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가 맘에 들면 하고 맘에 안 들면 안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기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라고 본인이 밝혔는데 이는 자신의 연기력을 확실하게 발휘할 수 있으며 디렉터 입장에서 보면 재수없게 보이는 면이기도 하다.

  • 나가사와 마사미와는 연예계 대표 앙숙이며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사와지리회', '나가사와회'라는 파벌이 존재한다는 루머가 한때 만연했다. 이에 대해 에리카는 사와지리회의 존재 여부에 대해 "있을 리 없잖아요. 정말, 완전히 여러분 미디어에 휘둘리고 있어요."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2007년 6월 나가사와가 사와지리 에리카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사와지리 에리카 REAL ERIKA'에 직접 출연하면서 단순한 루머로 끝났다.

  • 성공적인 복귀작 <헬터 스켈터>에서 맡았던 '리리코' 역이 극중 대체불가한 톱 여배우지만 가히 막장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다 결국 스스로 몰락하고 마는 인물인지라 개봉 당시 현지와 국내 네티즌 모두 '지 같은 역할을 맡았다', '본인과 비슷한 인물을 연기했으니 영화가 잘 될 수 밖에 없다' 등의 반응을 보였는데, 에리카 본인도 대중들의 이러한 반응을 알고 있었던 듯 2013년 내한 당시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리리코가 비슷하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나는 리리코와는 완전히 정반대'라고 언급하였다. 리리코는 아름다움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는 캐릭터인 반면, 실제 에리카는 '활동기가 끝나면 완전히 풀어져 버린다'라고 말할 만큼 외모나 치장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 감독 니나가와 미카가 인터뷰에서 '평소 에리카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을 정도. 또한 리리코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며 대중 앞에서의 모습과 카메라 뒤의 실제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는 가식적인 면모를 가진 반면, 에리카는 '나는 그게 되지 않는다. 나는 스타가 아닌 그저 연기하는 사람일 뿐이라, 연예인이라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거짓된 이미지를 꾸며내거나 구태여 해명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23]

  • 첫 주연 영화 <박치기!> 개봉 당시 재일교포 여학생 '리경자' 역을 연기한 덕에 한국에 대해 친숙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밝혔다.[24] 이후 헬터 스켈터로 2013년 내한했을 당시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엄마와 함께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너무나 많이 울었다"며 함께 있던 니나가와 미카 감독에게 드라마의 줄거리를 설명, "꼭 한 번 보라"고 추천까지 하는 등 진심 어린 팬심을 보였고, 동방신기최강창민, 싸이, 걸그룹 카라까지 연이어 언급하며 한국에 대한 마음이 단순한 립서비스는 아니었던 것을 드러냈다. 평소 매운 음식을 좋아해 한국 요리가 입에 맞으며, "한국 남성은 여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외모가 예쁘장해 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다. 최강창민 역시 실물이 너무나도 귀여워 미니어처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라의 날씬한 각선미 비결도 궁금했다는 등 한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듯.

  • 원래 덧니가 있었는데, 휴식기 동안 교정을 하고 복귀해 현재는 치열이 고르다. 데뷔 당시부터 전성기까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덧니가 트레이드 마크였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교정 이후 외모가 더욱 아름다워졌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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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의 영향 덕인지, 사와지리 에리카의 특기는 승마이다.[2] 에리카의 데뷔 이후 레스토랑에 그녀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가끔 가게의 일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지중해 요리프랑스 요리를 흔하게 먹었다고. 레스토랑은 현재 영업 종료.[3] 레미오로멘이 부른 1리터의 눈물 엔딩곡을 자신이 부른 버전도 있다.[4] 과장이 아닌 것이,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에리카는 엄청난 비판을 받으며 은퇴까지 갈 뻔 했었다.[5] 실제로 '베쯔니 사건'이 이미 십여년 전 일이 되어버린 지금에도 '그래도 내 마음 속의 에리카는 영원히 <1리터의 눈물>.', '그 성깔머리를 알고 있어도 <1리터의 눈물>을 보면 그게 다 잊혀진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착하고 순수하며 씩씩한 미소녀 '이케우치 아야' 역할이 사와지리 에리카에게 준 이미지는 굉장히 크다.[6] 성의없는 인터뷰 이후 눈물을 흘리면서 사죄 방송을 했으나 평소와는 다르게 마스카라 등의 아이 메이크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저건 아예 울려고 작정을 하고 나와서 쇼를 하는 것이다!'라고 또 한 번 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 거기다 누가 봐도 감정을 잡고 연기해서 흘리는 듯한 눈물이었다. 그리고 호소키 카즈코를 제끼고 재수없는 여자 1위에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7] 2019년 11월, 전남편이 소송을 불사하고 밝힌 진실은, 유학이 아니라 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에리카의 갱생을 위해 시설에 입소하기 위해서 신혼집을 스페인에 차렸다고 했다. 소속사 퇴출 이유 또한 대마초 상습 흡연이고,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에리카와 여러차례 협의 후 대마초를 그만 둘 의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고 한다.[8] 전 남편의 인터뷰에서 이혼 소동 중에 둘이 함께 외국으로 출국하게 되는데, 그때 에리카에게 들은 이야기가, 일본 연예계에서 너를 받아 줄 회사는 우리 밖에 없다. 소속사 계약 조건으로 이혼과 노출이었다고 한다.[9] 특히 2010년에 촬영한 광고 '타카노유리 뷰티 클리닉'은 과거 마츠다 세이코가 한창 안 좋은 이미지가 생겼을 때 광고 모델로 기용했던 브랜드이기도 하다.[10] 2012년에 BeeTV라는 동영상 방송국 드라마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황금시간대 지상파 드라마 주연으로만 나오던 것과 비교하면 비참한 수준. 게다가 이것마저도 섭외된 게 아니라 이 동영상 사이트가 소속사인 에이벡스 소유라서 억지로 밀어넣은 셈이다.[11] 물론, 패리스 힐튼은 힐튼 호텔을 물려받지 않아도 사업이 성공적으로 잘 되고 있는 중이다.[12] 참고로 키키 키린은 일본에서 성격이 드세고 말에 거침이 없는 걸로 유명하다. 해당 발언도 사와지리 에리카를 돌려까는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13] 물론, 랭크성애국인 일본에서는 앙케이트 순위에 오르내린다는 것만으로도 인지도가 식지 않았다는 반증이 된다.[14] 동시간대인 나가사와 마사미의 <고교입시>를 추월했고, 최종화가 10%를 넘기면서 골든타임 기대작으로 방영중이던 <스모킹 건>, <블랙 프레지던트>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15] 아야세 하루카는 꾸준한 히트작, 사생활 관리, 드라마/영화 촬영 중의 좋은 태도 등으로 현지에서는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16] 하지만, 정작 사와지리 본인은 시청률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많다. 인물들이 나와서 피 튀기는 싸움은 볼 만하지만, 비판으로는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내용 몰입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결정타로 <퍼스트 클래스>에 나오는 남자들 인물이 별로라 여심을 끌어모으는 데 실패했다.[17] 코미디언이자 사회자, 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18] 특별출연 형식.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기 전에 촬영했으며 사와지리 에리카 본인으로 나온다.[19]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전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이다.[20] 많은 사람들이 '일본-프랑스'나 혹은 '일본-프랑스-알제리' 혼혈로 많이 알고 있는데 사와지리의 어머니는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베르베르인이다. 즉 인종적으로는 일본인+베르베르인이라고 볼 수 있다.[21] 사실 현실의 1세대 유라시안들 중에서 줄리엔 강이나 애슐리 버치와 같은 외모는 드물고, 사와지리처럼 혼혈티가 나지 않는 외모를 지닌 경우가 더 흔하다.[22] 일반적인 인기 여배우들의 팔로워 수는 보통 100만 대 정도로 보면 된다. 3일 만에 15만 명 돌파는 나름대로 큰 숫자.[23] 이런 짧은 인터뷰로 유추할 수 있는 성격으로만 보아도, 과거의 남다른 행보나 눈물 사죄를 해놓고 훗날 소속사가 시켜서 한 연기였다고 입장을 번복했던 등의 일들이 대충 설명이 된다.[24] 실제로 에리카는 당시 영화를 위해 1달 가까이 감독, 배우들과 합숙 촬영을 진행하며 한국어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