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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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백제의 제7대 군주이자 건길지. 제6대 구수왕의 장남. 즉위 직후 폐위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발해의 성왕, 신라의 애장왕, 고려의 헌종과 창왕, 조선의 단종의 대선배급 이력을 가진 군주이다.
2. 이름[편집]
이름인 사반(沙伴)/사비(沙沸)에서 '사'(沙)는 고유어 새(로운 것)을 표기할 때 자주 쓰던 글자이고, '반'(伴)과 '비'(沸)는 상고한어에서 각각 *par[1] , *pɯd[2] 로 발음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고유어로 새벌이라고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벌은 인명보다는 지명에 적합한 명칭인 것이 특이한 점. 그러나 세계적으로 지명을 인명에 사용한 사례가 많은지라 그리 이상한건 아니다.
소을부리(所乙夫里), 소비(所非), 소부리(所夫里), 사비성(泗沘城) 등을 보면 '부리'의 어형이 '비'로 축약되는 형상이 있다. 적(赤), 즉 붉다는 뜻의 삼국시대 말로 '사파을'(沙巴乙), '사비'(沙非)가 존재하는데, 현대 국어의 "새빨갛다"와 "시뻘겋다"의 어원으로 보이며, 사반왕의 이름과 연관이 있다는 설도 있다.
3. 생애[편집]
구수왕의 장남으로 234년에 즉위했으나 나이가 어리고 정사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금방 고이왕에 의해 폐위당했는데 사실 정확한 재위 기간은 불명확하나 즉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위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이왕은 기록상으로는 사반왕의 작은할아버지에 해당하며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방계 왕족의 왕위 찬탈에 불과하겠으나 그럴 개연성은 적다. 《삼국사기》에서는 아예 왕 취급도 해주지 않으며 사반왕을 위한 별도의 단락도 없이 이 대목에서만 나온 후 구수왕에서 고이왕으로 바로 넘어간다.
온조(溫祚)계 왕족 출신이며 초고왕계 세력에 속해 있는데 사반왕 대에 이르러 초고왕계가 약해지며, 이로 인해 고이왕이 즉위한 것으로 보는 학설이 있다.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고이왕이 즉위한 이후 사반왕이 언제 승하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삼국유사》에는 이설로 239년(《삼국사기》 기년상 고이왕 6년) 사망하고 고이왕이 뒤이어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초고왕계를 완전히 다시 세운 근초고왕이 사반왕의 아들이 아니라 비류왕의 아들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선, 근초고왕은 같은 초고왕계라 하더라도 적어도 사반왕의 후예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사비왕(沙沸王) 【사이왕(沙伊王)이라고도 한다.】은 구수왕(仇首王)이 돌아가시자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너무 어려서 정사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 폐위시키고 고이왕(古爾王)을 왕으로 삼았는데, 혹은 경초(景初) 3년 기미[3]
(서기 239년)에 왕이 세상을 떠나자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고도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남부여ㆍ전백제ㆍ북부여-
4. 《삼국사기》 기록[편집]
사반왕은 삼국사기 본기 군주 순서에 없다. 구수왕 다음 기록이 고이왕 기록이라서 《삼국사기》에서 사반왕을 보려면 <고이왕 본기>의 첫 부분을 찾아야 한다.
一年 고이왕이 즉위하다
고이왕(古爾王)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재위 21년에 사망하자, 그의 맏아들 사반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잘 처리하지 못하였으므로 초고왕의 동복(同腹) 아우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위 항목에서 나오는 사반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반왕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덕분에 재위 기간이 짧은 백제의 여러 왕들 나무위키 문서에서 사반왕보다는 낫다는 식의 구절이 적혀 있다. 다만 재위 기간이 짧기는 해도 후손은 남겼는데, 《신찬성씨록》에 반비씨(半毗氏)라는 가문이 사반왕을 시조로 받드는 가문으로 적혀 있다.
5. 기타[편집]
- 제11대 비류왕이 구수왕의 2남으로 기록되어 있어 기록상으로는 사반왕의 동생이 된다. 다만 비류왕의 나이와 행적은 사반왕보다 수십 년 늦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4]
6. 둘러보기[편집]
[1] 사실 이건 원시한장어 재구음이다. 상고한어에서 중고한어로 넘어갈 때 대부분의 -r이 -n으로 바뀌었는데 이 한자도 그때 변한 것인지는 불명.[2] 여기서 -d는 전호현상으로 인해 고유어에서는 -l로 발음된다.[3] 원문은 낙초 2년 기미(樂初二年己未)로 되어 있다. 위명제(226~239) 시기에 쓰인 연호 '경초'의 오기로 추정된다.[4] 당장에 구수왕의 유복자라서 235년생이라 쳐도 즉위 당시 무려 70세 가까이 되는 노인인데 그 상태로 40년이나 재위했다. 즉 기록상으로는 사망 당시 109세 정도인데 당연히 불가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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