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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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인의 깃발. 위는 1977년에 첫 제정된 것이며 현재 쓰이는 깃발은 1986년 개정되어 각 국가들로부터 공인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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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인의 거주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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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사미어
4. 전통가옥
5. 종교
6. 전통놀이
7. 매체
8. 기타
9.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사미(Sámi, 또는 Saami)족은 주로 사프미(Sápmi)라 불리는 북유럽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북부지방)와 콜라 반도러시아 백해 이서 지역의 북극권(Arctic Circle)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인구는 약 13만 명 정도이며, 핀란드어와 같은 우랄어족에 속하는 사미어를 사용한다. 라프(Lapp)인이라고도 불리지만 외지인들이 멋대로 만든 타칭인 라프인이나 라플란드라는 말은 사미인들을 모독하는 말로 간주되어, 그들 앞에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찍이 혹한의 땅에서 살았던 부족이라 농경은 거의 불가능하며, 유목과 수렵에 주력을 했다. 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미인은 엘크나 순록을 여름철에 방목하고 추운 겨울에 농장으로 몰아 기르거나 사냥하는 것이 주 일상이었으며, 엘크나 순록에게서 고기·유제품·가죽 등을 얻어 생활해 왔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부분이 현대 문명에 동화된 것도 있다. 북유럽 전반이 그렇지만, 한여름에 과일이나 허브 등을 통해 비타민을 섭취하는 경우도 많다.

시베리아 원주민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핀란드인과 마찬가지로 하플로그룹 N의 유전자 빈도가 높으며, 동아시아/시베리아계 유전자가 평균 25%에 이른다. 핀인이나 헝가리인, 튀르키예인, 타타르인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긴 시간 동안 혼혈되었기 때문에 외형상으로는 백인에 더 가깝고 코카소이드 인종으로 동화되었다. 또한 북유럽 민족치고는 튼실한 체형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비교적 키가 작은 축[1]에 속하는 편이다.[2]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꽤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사미인 전통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유목민들의 경우 엘크와 순록의 방목을 위해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고 한다. 총기 사용은 생계를 위한 사냥에 한해 허용하고 있고, 사미어 라디오 방송도 북유럽 지역의 공영방송사들이 나라마다 따로 채널을 두지 않고 같이 방송하는 형태이다. 핀란드의 라플란드 주는 사미인의 최대 거주지역이다. 그 외에 사미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노르웨이의 카라쇼크[3] 등이 있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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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족의 조상들은 빙하기시베리아에서 대서양 해안가로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현재 사미족이 거주하는 라플란드 지방의 선주민들은 12900년 전에서 11700년까지 독일폴란드 일대에서 번성했던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인 아렌스부르크 문화의 구성원들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무려 서기 5세기 경까지 스스로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면서 살아왔는데, 때문에 인도유럽어족은 물론, 우랄어족에도 속하지않는 언어였던 고 라플란드어를 사용했다. 그 이후에 시베리아 방면에서 원시 우랄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사미족의 조상들이 이들에게 동화되면서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웨덴노르웨이가 왕국을 형성한 이후로도 바이킹족들의 주 거주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워낙에 춥고 척박했기 때문에 바이킹이 전 유럽에 악명을 떨쳤고 이후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가 기독교화되었음에도 이교도인 이들은 오랜 동안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노르웨이 남부로 진출한 사미인들은 대개 노르웨이인들과 혼혈되면서 그들에게 부분적으로 동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남부 노르웨이나 스웨덴 중앙권력에 의해서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워낙에 춥고 척박하여서 오랜 동안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노르웨이와 스웨덴, 러시아 당국이 중앙집권을 이룩하려고 하면서 점차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15세기 콜라 반도모스크바 공국의 땅이 됐고, 러시아인들이 콜라 반도로 이주하면서 16세기부터는 러시아 정교 전도가 이루어졌다. 러시아 본토나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의 사미족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사미족들과 언어가 많이 달라졌다. 핀란드의 사미족들이 러시아어 차용어가 많다면 스웨덴과 노르웨이 사미족들은 스웨덴어 차용어가 많다. 급기야 19세기 중후반 들어 노르웨이 당국에서 근대화라는 명목 아래 사미인들에 대한 차별정책과 문화탄압 정책을 대대적으로 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못지않게 탄압적인 정책을 쓰고 술 강매까지 벌이는 바람에 대대적인 폭동이 일어났을 지경이고 심지어 '열등인종'이란 이유로 불임수술을 당한다거나 인간 동물원에 전시당하는 설움을 겪기도 했었다. 여하튼 이때 상당수 노르웨이 사미인들이 노르웨이인들과 혼혈되면서 동화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20세기 초중반부터 탄압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미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단체가 생겨나면서 사미인들이 민권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들 단체와 단체에 소속된 운동가들의 활약으로 사미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생겨났고 사미인 의원 또한 탄생하였다.

그렇게 해서 사미족들의 목소리가 드높여져 갔고 정치권에서도 사미인에 대한 인식이 차차 달라지면서 20세기 중반 들어서 사미인들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4] 그리고 1986년 8월 15일에 독자적인 깃발이 공인되었고 1992년부터는 2월 6일을 '사미인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1993년에 사미 의회가 따로 구성되기 시작하였다.

안타깝게도 사미족은 오늘날 지구 온난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생계와 전통문화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비가 많이 내려 눈 위에 내려 얼면서 순록이 이끼 같은 먹잇감을 구할 수 없게 되어서라고.# 같은 북극 문화권 민족인 그린란드인이 사냥감이 사라져 지구 온난화의 피해자가 된 것과 같다.#

노르웨이 북부에서 사미족들과 풍력 발전 건설업체간의 법적문제로 인해 노르웨이 북부의 사미족들이 소송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에 사는 사미족 간의 교류가 단절되고 있다.#

3. 사미어[편집]


사미인들의 고유언어인 사미어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등과 같은 어족(우랄어족), 같은 어파에 속하는 언어다.[5] 이 언어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의 소수민족 언어로서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스웨덴이나 핀란드, 노르웨이 북부지역에선 지역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사미어를 보존하려는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미어는 지역마다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어떤 통일된 문법체계는 없는 실정이다.[6]


4. 전통가옥[편집]


원래는 '고아티'라 하는 것이 전통가옥이며, 텐트 형태와 흙집 형태로 된 것이 존재한다. 안에는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이나 선반 정도이며 의자나 침대 없이 좌식으로 생활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러시아 사미인들은 목조가옥 이즈바를 모방해서 투파(Тупа)라는 오두막집을 지어 살기도 했다.

현대에는 대다수 사미인들이 현대적인 주택에서 살고 있다.


5. 종교[편집]


본래는 고유의 민간 신앙이 존재했으며 순록과 곰을 숭배하는 전통도 있었다. 무당(정확히는 박수)은 '노아이디'라 불렸는데, 일반인들 사이에서 인간 세계와 사후 세계를 이어주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심지어는 새·순록·연어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까지 여겨졌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가족과 조상이 기다리고 있고 이승에서처럼 천막을 치고 사냥하는 사이보(saivo)라는 행복한 세계로 간다고 믿었다. 또한 이들이 의식을 치룰 때는 신들의 모습이 새겨진 전통 북을 악기로 사용했다. 특정한 장소에 서낭당처럼 돌을 쌓아놓거나 혹은 신령하다고 여겨지는 바위를 숭배하기도 했는데 '시에이디스'라 불렸다.

기독교는 의외로 19세기에 들어서야 퍼지기 시작했는데, 북유럽은 루터교회, 러시아는 정교회가 영향을 뻗쳤다.[7] 특히 북유럽에서는 라스 레비 레스타디우스(Lars Levi Laestadius, 1800-1861)에 의해 국교회와 전혀 다른 심플한 예배 스타일과 금주, 미신 타파운동을 겸한 '레스타디안 부흥운동'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 부흥운동으로 생겨난 루터회 분파는 이민자들을 통해서 미국과 캐나다로 퍼져나가기까지 했다.


6. 전통놀이[편집]


고유 전통 놀이 문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타블룻이라는 보드 게임으로 스웨덴의 유명 생물학자인 카를 폰 린네가 순록에 관해 조사하기 위해 사미들의 지역에 갔다가 주민들이 하는 이 게임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 18세기 중반 이후에 대중에게 알려져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7. 매체[편집]




8. 기타[편집]


  • 순록과 전통의상, 주 터전 등 산타클로스가 연상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와 관련해 산타 종주국(?)을 표방하는 핀란드가 50년대부터 자국의 사미족과 산타클로스와 연결시켜 문화상품으로 만들었다.#

  • 체질적으로 뼈대가 굵으며, 근육이 쉽게 발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체육계 진출 비율이 높다.[8]

  • 툰드라라는 말은 사미어에서 비롯되었다.



9. 외부 링크[편집]




[1] 노르웨이 트롬쇠-핀마르크 지역 기준 남성 평균키는 178cm. 훨씬 남쪽에 있는 영국, 프랑스 남성의 평균키와 비슷하다.[2] 1형 당뇨병 발병률도 전세계의 모든 인종 중에 가장 높다.[3] 인구의 90% 이상이 사미족이다.[4] 다만 노르웨이 같은 경우 1970년대까지도 댐 건설을 놓고 중앙 정부와 분쟁이 있었다.[5] 언어 관련 정보 문서 참조.[6] 다만 북부 사미어 사용자가 전체 사미어 사용자 중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긴 한다.[7] 핀란드의 사미족은 둘 다 해당된다. 스웨덴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루터교회가 핀란드의 주류 종교가 되었고 러시아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정교회가 핀란드의 최대 소수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8] 특히 아이스하키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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