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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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가사
3. 배경
4. 여담



1. 개요[편집]



1989년 발매된 밴드 해바라기의 음악. 이주호 작사, 작곡.


2. 가사[편집]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 영원히 변치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 아 영원히 변치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3. 배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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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진학 부모님부담" 어린 4자매 자살 기도

27일 하오(오후) 2시 30분쯤 서울 강서구 공항동4의43, 김원묵 씨(52) 집 지하셋 방에서 양태범 씨(44)의 큰딸 순미 양(14) 둘째딸 정미 양(10) 셋째딸 은미 양(8) 막내딸 세원 양(6) 등 4자매가 생활고를 비관한 끝에 극약을 마시고 신음중인것을 어머니 김옥순 씨(36)가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막내딸은 숨지고 나머지 3명은 중태다.

어머니 김 씨에 따르면 하오 2시쯤 집근처 가게에서 쌀을 사갖고 돌아와보니 네 딸이 방안과 지하실입구 등에 쓰러져 신음중이고 막내아들(2)은 방안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큰딸은 안방책상위에 묵은달력을 뜯어 「엄마, 아빠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걱정마세요. 나쁜딸 올림. 부모님께」라는 내용의 유서를 검은색 사인펜으로 써놓았다.

큰딸 순미 양은 병원에서 "집안 살림이 어려운데다 나는 중학교에 새로 입학하게 되고 넷째도 올해 국민학교에 진학하게 돼 집안부담이 너무 커질 것 같아 동생들과 함께 극약을 마셨다"고 말했다.

아버지 양 씨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비산업주식회사에서 공원으로 일하면서 월25만원 정도의 수입으로[1]

6명의 식구를 부양해 왔으며, 지난 87년 4월부터 이집 지하실방 2칸을 8백만원에 전세내 살아왔다.

부모들은 경찰에서 "큰딸과 둘째딸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해 우등상을 탈 정도로 학교 성적이 우수했으며 평소 명량한 성격으로 이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향신문, 1989년 2월 28일 기사 원문[2]


이주호가 작곡을 하고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때 발표하려 했으나 가사를 완성하지 못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89년 2월 27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동에서 부모가 집에 없는 사이에 4자매가 생활고 등을 이유로 음독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의 발견으로 병원으로 옮겨져 막내딸은 사망,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중태에 빠졌다가 나중에 회복해서 퇴원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신문에서 보고 채 2분도 걸리지 않아 가사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나는 가수다에서 김범수가 리메이크를 할 때 리메이크는 허용했으나, 음원 발매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방송에서 김범수의 무대를 보고 음원 발매를 허용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4. 여담[편집]


한국의 서정적이고 자기통찰적인 통기타, 포크뮤직 흐름에 정점을 찍는 엄청난 명곡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오남용되어서 90년대에 10대를 보낸 사람부터는 감흥이 없는 곡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수련회 같은 곳에서 밤에 촛불 들고 틀어주는 노래, 별 말도 안 되는 광고나 행사, 시위현장에서 틀어대는 노래라 일단 노래가 나오면 생리적으로 짜증과 지루함을 느끼게 되지만 객관적으로는 한국에서 이 장르 최고의 명곡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CF에도 쓰였다. 다만 방영되지는 않았다.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 서울광장노제에서도 나왔다.

무한상사 야유회에서 세족식을 할 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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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물가로 환산해도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수입이다.[2] 동아일보 1989년 2월 28일기사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