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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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인류 역사 속에서
2.1. 문서가 개설된 실제 사냥꾼
3. 각종 매체에서의 사냥꾼
3.1. 한국 민간 설화의 사냥꾼
4. 문서가 개설된 가상의 사냥꾼


1. 개요[편집]


Hunter

사냥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엽사라고도 부른다.


2. 인류 역사 속에서[편집]


농부보다 먼저 등장한 인류 최초의 직업.[1] 신석기 시대부터 농사를 짓기 전까지 고기류, 즉 생명과 직결되는 식량을 구하는 최초의 직업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한 동물을 제압 및 제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과 끈기, 사냥감에 대한 충분한 정보, 극한의 순발력이 요구되는 극도의 지식과 숙련이 요구되는 전문직이었다.[2]

아무리 전문적이라 하더라도 사냥을 실패하면 식량이 바로 모자라는 상황에 도달하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고 이 와중에 개를 가축으로 들임으로써 추적 성공률을 높인다거나 집단 사냥을 통해서 집단 운용 기술을 얻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진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농사법의 전래 이후 비중이 낮아졌다곤 하지만 원래부터 이나 숲지기 등을 맡아 왔기에 매일 험한 지형을 타고 다닌 사람들인 데다가 함정을 다루고, 추적에도 능숙하기에 전시에는 진짜 인간 사냥꾼이 되어 정찰과 전투 양면에서 매우 우수한 전력이 된다.[3][4] 이 점은 이 사냥꾼들에게 일반화된 뒤로는 더 심해진다.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총을 백날 들고 다니면서 사냥하는 덕에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사격할 수 있는 뛰어난 전력이 되었던 것이다.[5] 게다가 이들은 사냥을 하면서 해당 지역의 곳곳을 돌아다녀서 지형지물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예외는 아니라 포수는 전시에 징집되며 우수한 병사로 평가되었고, 조선시대엔 이러한 병사들을 모아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조총으로 병장기를 바꾸는 와중에 모은 조총부대가 유명했으며 나선정벌 당시 형편없는 명중률이 상식이었던 당시 총기를 사용해 상식을 뛰어넘는 명중률로 큰 전과를 세운 적이 있다.[6] 이 점이 유용했는지 개화기 때도 흥선 대원군이 포수를 모아서 정예 부대를 만든 기록도 있다.

더불어 척박한 환경 탓에 평안도, 함경도 등의 북방지역과 경상도, 강원도 등의 산간지역은 옛부터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조선왕조 500년 내내 특히 북방 병사들은 항상 조선 최정예로 취급되었다.

조선과 이웃한 여진족 또한 수렵이 생존에 있어서 필수이기도 했다. 여진족의 그러한 생활양식 자체가 일종의 군사훈련이기에 중국이나 한반도의 왕조들이 그들의 전투력을 두려워했다.

근현대에 와서도 이런 부분이 남아있는데 안중근이 구월산에서 사냥꾼 일을 하기도 했었다. 김구도 안중근을 기억할 때 구월산의 총 잘 쏘는 친구로 기억했다.[7]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은 동학전쟁 때 동네 포수들과 장정들을 모아서 동학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이 가속화되자 일어난 의병들 중에서도 포수 집단은 최정예 취급을 받았고[8], 실제로도 수많은 공적을 세웠다. 대표적인 예가 홍범도.

그 대신 영주나 나라에서는 사냥꾼의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사냥꾼이 너무 많아지면 잡을 동물이 다 죽어버리는데, 이는 생태계도 생태계지만 유흥거리로 사냥을 하는 높으신 분들이 즐길 거리가 없어진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소수만 존재했고 그 외 나머지들은 본격적인 사냥보다는 토끼나 쥐, 족제비 같이 작은 유해조수들을 덫 등으로 사냥했다. 이런 동물들은 개체수도 많고 농가에 폐를 끼쳐서 따로 금지하는 일은 없었다.

미 육군의 유명한 레인저 또한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유명한 사냥꾼들이 주축이 된 "로저스 레인저"에서 유래했다.

숙련된 포수는 멧돼지 정도야 우습게 잡는다. 멧돼지 출몰로 골치 아픈 시골에서는 사냥꾼(포수)을 고용해서 멧돼지들을 잡는다. 멧돼지는 영리하기 때문에 함정을 설치해도 잘 안 걸려든다.

이러한 강력함 때문에 서구에서 엘리트 총병들은 '사냥꾼'이라는 명사로 호칭되곤 했다. 독일에서 정예 부대에 주로 붙이는 예거도 사냥꾼이라는 말이고, 특수부대라는 뜻의 영단어 commando는 19세기 말 영국과 보어인의 전쟁에서 보어군의 소부대를 뜻하는 단어였다. 보어군은 국민 대부분이 사냥에 익숙했고, 이들의 사격 실력에 힘입은 저격과 소규모 부대의 매복 기습은 밀집대형을 하고 다니는 영국군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다만 이 쪽은 현대전의 전술을 제대로 보여준 스승으로서 대우받는 단어.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동하던 대부분의 저격수사냥꾼 출신이었다. 애초에 '저격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나이퍼'(Sniper) 자체가 원래 '스나이프(Snipe)라는 자그마한 도요새도 쏴서 잡는 사냥꾼'이라서 '명사수'라는 말로 쓰인 것이다.

미국인들의 사냥덕후 기질은 미군의 보병교리와 무기개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원체 총기에 익숙한 입영자원이 많다 보니 개별 병력의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교리가 정립되었고, 자연스럽게 M1 개런드 같은 반자동소총이 제식으로 채택되어 전면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것. 반면 징집병들에게 이런 전투력을 기대하기 힘들었던 독일군은 MG42로 대표되는 기관총 전력에 보병분대의 전투력을 몰빵하는 교리를 채택해야 했다.

현재의 사냥꾼은 수렵면허총포소지허가증은 기본에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서 또는 기간에 사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불법 사냥하는 사냥꾼은 밀렵꾼이 되기도 한다. 현재는 이런 범죄자들에 대한 법안이 미흡한 상황이고, 탄환규제도 심각해 미국은 아예 우스울 지경으로 총기규제부터가 아예 빡빡하단 소리를 듣는 일본보다도 엽사들에 대한 총기 규제는 한국은 너무하기 그지없다는 소리를 타국 엽사들이 나서서 비판을 거들 정도로 규제안이 이상하다.

과거에는 생태학자들도 노련한 사냥꾼이 많았다. 어쨌거나 표본이 필요하고, 심지어는 산채로 포획하는 것도 필요하다. 동물의 습성을 다 꿰고 있으니 다른 기술만 있다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지금도 동물보호를 위해서 마취총을 들고 다니며 사냥하는 생태학자들이 많다. 또 반대로 전문 사냥꾼 중 생태학자나 생태 보호 운동가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물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존재하는지 잘 알아야 하는게 사냥꾼이므로, 그 과정에서 생태학 자체를 연구하여 생태 보호 운동을 하는 계기가 되거나, 사냥을 하다보니 누구보다도 동물 개체수가 줄어드는것이 체감되기에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져 환경보호 운도을 하는 것. 아래 항목에서 언급하는 짐 코벳이 이런 유형이다. 또한 말년까지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도 생태보호 운동가였다. 1930년대 초반, 스웨덴의 생태학자 스텐 베리만이 함경도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긁고 내려오면서 조선의 생태조사를 하기 위해서 많은 동물들을 사냥했던 일화가 있다. 어느 정도냐면, 하루에 을 120마리 정도 잡아내고 멧돼지는 150kg 미만은 멧돼지 취급도 안 했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그조차도 백두산 호랑이를 만나진 못했다고 한다. 한 3번인가 시도해봤지만 다 실패했다. 혹시라도 웹에서 옛 사진 중에 콧수염 있는 외국 사냥꾼이 한국 비슷한 곳에서 동물 잡고 포즈 취하고 있는 사진을 본다면 일단 베리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링크, 기사

2.1. 문서가 개설된 실제 사냥꾼[편집]


  • 짐 코벳 대령: 영국 육군 장교로, 자연보호가이자 식인동물 사냥꾼. 그가 인도 인근에서 사살한 식인동물들이 잡아먹은 인간의 수만 2천에 달할 정도라, 힌두교에서 성자로 불리는 위업까지 달성했다.
  • 시모 해위해: 저격수로 유명하지만, 그 사격 실력의 기반이 바로 사냥이었다.
  • 어니스트 시튼: 커럼포의 왕 로보를 잡았다. 본래도 매우 노련한 늑대 사냥꾼이었다.
  • 바실리 자이체프: 역시 저격수로 유명하지만, 소련 해군 입대 전에는 사슴 사냥 경험이 있다.
  • 홍범도: 사냥꾼 출신의 독립운동가
  • 베어 그릴스

3. 각종 매체에서의 사냥꾼[편집]


사냥할 야생동물에 비해 신체가 약해 도구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인간의 특성상 현실의 사냥꾼은 덫을 놓고 독이나 원거리 무기로 사냥감의 힘을 빼서 조심조심 사냥해야 하는 것에 비해,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강력하게 묘사되는 창작물에서는 오히려 사냥감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고 빨라 사냥감을 마구 잡을 수 있는 사냥꾼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그래서 왠지 창작물에서 "사냥꾼"이라고 하면 기회주의적으로 미행과 은신을 하는 이미지보다는 빠르게 사냥감을 쫓아가 강한 전투력으로 순식간에 죽여버리는 이미지가 강해진 편.

또한 인간 외 이종족이 등장하는 작품의 경우 인간을 사냥하는 인간 사냥꾼이라는 소재도 자주 나온다. 단순히 위험한 야생동물이나 괴물이 인간을 사냥해 잡아먹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인간을 어떠한 목적으로 납치해가는 외계인이라던가 심지어 인간 사냥을 스포츠로 즐기는 이종족 같은 무서운 묘사도 나오곤 한다.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막장 세계관일 경우 아예 인간을 인간이 사냥하는 설정까지도 있다. 아니면 현실에도 있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던가. 반대로 괴물들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라는 소재도 있는데, 게임 몬스터 헌터가 이런 컨셉이며 이외에 흡혈귀를 사냥하는 뱀파이어 헌터 같은 직업군도 있다.

사냥꾼을 상징하는 무기는 원거리 무기, 특히 활과 총. 사냥꾼이 선택 가능한 직업으로 나오는 게임이라면 기본 무기는 매우 높은 확률로 활이다.[9] 근접 무기로는 단창이나 마체테 같은 휴대가 좋은 짧은 무기들 그리고 야생에서 활동한다는 이미지와 사냥꾼들이 사냥개를 데리고 다닌다는 점 때문에 동물과 친화력이 높고 사냥을 돕는 반려동물을 한 마리 정도 데리고 다니는 묘사도 아주 흔하다.

성격적인 묘사로는 사냥꾼으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편으로 묘사되며 나는 전문가, 전투광 속성을 가진 경우가 많고 매우 강한 사냥감을 보면 그것을 잡고 싶어서 환장하는 묘사가 많다. 그러면서도 잡을때 정정당당함을 추구하거나 혹은 온갖 속임수를 다 동원하는 등 방식은 가지각색.

3.1. 한국 민간 설화의 사냥꾼[편집]


파일:attachment/431555_1.jpg
몬스터 헌터?
조선에 존재했던 특성화된 전투종족. 주로 한국의 민담에 출몰하는 특성이 있다. 일단 무조건적으로 사격 마스터. 환상종도 한 방에 쏘아 잡으며, 활로 초장거리 저격을 행할 수 있는 초인이다. 농담이라고만 치부하기 어려운 게, 이걸 못한 사냥꾼은 사냥하다가 다 죽거나 밥 벌어 먹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다.

다만 지나가던 선비지나가던 스님과 다르게 신분 상승의 폭이 좀 큰 것이 특징. 이들의 경우 본인이나 후손이 거의 이 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개 환상종 부인을 얻는 경우가 다수. 매우 부럽군! 물론 잡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보상이 크게 다른 것도 특성이다. 단적인 예로 태조 왕건의 조상인 작제건은 용왕을 괴롭히는 여우를 활로 잡아 용녀와 결혼했다.

가끔씩 선녀와 나무꾼처럼 악역을 도맡기도 한다. 때로는 지나가던 선비와 엮여 경고를 해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무기가 활에서 총으로 바뀌지만, 그래도 지상 최강의 저격수.

다만, 왠지 나무꾼에게 잘 속는 경향이 있다. 조심하자.

실제 조선 말기 병인양요 당시에는 정규군을 동원하기 어려울 정도의 자금 사정 때문에 총기 사격의 대가들이었던 사냥꾼들의 사격술을 믿고 호랑이 사냥꾼들로 구성된 호포군을 동원해 프랑스 해군 육전대와 효율적으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 쪽이 너무 방심해버린 탓도 있지만, 그래도 이때의 전투종족 이미지가 서양 열강들에게 상당히 쇼크로 남았던 건지 신미양요 즈음에는 조선에 대한 부족한 정보도 한몫해서 조선군이 빌헬름 텔처럼 총을 잘 쏘며 머리 둘레가 장난 아니게 크며 헤라클레스 수준의 괴력을 보유한 초인 집단(...)이라는 소문이 미군 병사들에게 돌기도 했었다. 나선 정벌이나 임진왜란 시절 조선군에 대한 이야기라도 섞여들어간 건지...

다만 훗날 신미양요 때는 상황이 반전되며 미 해군해병대한테 처참하게 작살이 났다. 아무래도 차이가 엄청났으니...



3.2. 유복이와 금강산 호랑이[편집]


해당 항목 참조.


4. 문서가 개설된 가상의 사냥꾼[편집]




4.1. 파이널 판타지 5의 직업[편집]


불의 크리스탈을 입수한 뒤 해금되는 직업으로 단검과 활, 경장비를 입고 싸우는 직업이다.

직업 자체의 능력은 신통찮지만, 잡 레벨 4에 익히는 난타[12]라는 어빌리티 하나 때문에 필수 직업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난타 익히고 마스터한 다음엔 두 번 다시 거칠 일이 없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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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의 역사에서 농업이 시작된지 시기는 대략 기원전 1만년으로,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그 이전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오직 수렵과 채집으로만 연명했다. 일반적으로 문명의 시작을 농업혁명으로 보기 때문에, 사냥꾼과 어부, 임업보다 먼저 등장한 직업은 없다. 그 밖에 오래된 직업으로 손꼽히는 직업은 자기가 속한 부족을 지키고 전쟁에서 타 부족과의 전투에 나가는 군인이 있다.[2] 수렵인들은 물론 지금도 매우 전문적이다. 총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사냥꾼이 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사냥 동물의 종류에 따라 추적 방식이나 필요 도구 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 매사냥 등 전통 방식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아예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3] 물론 중장보병보다는 경보병이나 기마민족이라면 경기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애당초 산이나 험한 지형을 타는 게 주특기인 사람들인데, 이런 능력 살리려면 당연히 경무장이 적합하다.[4] 시모 해위해도 전쟁 이전에는 본업이 농부이자 사냥꾼이었다.[5] 한 번에 한 발밖에 쏠 수 없는 전장식 머스킷이 주 전력이었던 시대에 곰 같은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한 방에 죽이거나, 두 방째에는 반드시 죽여야 했고, 두 방째를 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장전이 가능해야 했으므로 이들은 자연히 '빠르고 정확하게' 속사해댈 수 있었다.[6] 그 당시 화력은 강하지만 명중률이 낮은 총기의 단점을 일반 병사들은 화망, 즉 물량으로 커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평소 조선에서 호랑이 등 맹수들을 상대하는 포수들의 경우, 한 발 빗나가는 것이 곧 사망과 직결되기 때문에 높은 명중률이 필수적이었다.[7] '진사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맏아들은 중근으로 당년 열여섯에 상투를 틀었고 자색 명주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서 돔방총을 메고 노인당과 신상동으로 날마다 사냥을 다녔다. 중근은 영기가 넘치고 여러 군인들 중에서도 사격술이 제일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재주가 있었다. 태건 씨와 숙질이 늘 동행했는데, 어떤 때는 하루에 노루고라니 등을 여러 마리 잡아와 그것으로 군사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 백범일지[8] 책 보는 게 직업이던 유생들. 농사짓는 게 직업이던 농부들. 총 쏘는 게 직업이던 포수들. 당연히 포수 집단의 전투력은 타 출신 의병에 비해 넘사벽일 수밖에 없었다.[9] 다만 활만 들고 다니는 경우는 고증오류다. 사냥시 무슨 맹수를 만날지 알 수 없는 마당에 활만 들고 다니는 것은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활 다음으로 창이나 단검 같은 호신용 무기를 착용하고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함께 사냥하였다.[10] 노예가 되기 전엔 사냥꾼이였다.[11] 모두 여러 발을 한번에 쏜다는 공통점이 있다.[12] みだれうち는 원래 사냥꾼이란 직업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마구 쏘기 혹은 난사(亂射)에 가까운 의미이지만, 다른 직업으로 바꿔서 검+이도류 등으로 두들겨 패는 게 훨씬 강력했기 때문에 모두 난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