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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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활동 내역
3. 의도된 방송사고
4. 해체와 그 이후의 활동
5. 음반 목록



1. 개요[편집]


이윤정(2.5집까지 활동), 강기영(달파란), 박현준, 고구마(권병준, 삐삐롱스타킹에서 활동)로 구성된 대한민국밴드.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하다 2015년에 재결성했다.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이름의 모티브는 말괄량이 삐삐이다. 원제목이 "삐삐 롱스타킹"이기 때문.

시나위, 작은하늘 그리고 H2O 출신의 베이시스트 달파란과 카리스마, H2O 출신의 기타리스트 박현준이 이윤정[1]을 보컬로 끌어들여서 1995년에 만든 밴드로 단순히 하나의 밴드라기보다는, 경직되고 촌스러운 대한민국 사회의 질서와 문화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위해 도모한 일종의 '문화 기획'이었다고 한다.[2]

당시 홍대 인디의 주류였던 펑크 록 밴드로 주로 설명하고 데뷔곡 '안녕하세요'도 전형적인 펑크 록이지만 한국의 1세대 일렉트로니카 DJ인 강기영(달파란)의 영향도 만만치 않아서 '딸기'같은 곡은 전형적인 전자음악이다. 2집 "불가능한 작전"부터는 오히려 펑크 록 보다는 전자음악에 가까운 스타일이 된다. 이후 이윤정이 탈퇴하고 고구마를 보컬로 끌어들였는데, 그 때(1997년 초) 밴드 이름을 <삐삐롱스타킹>으로 바꾸고 나서는 펑크와 일렉트로닉이 짬뽕된 정말 희한한 음악세계가 되었다.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펑크 문화가 결합된 매우 희귀한 실례중 하나가 바로 이 밴드.[3]

위에도 설명했듯 일단은 '펑크 밴드'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전자음악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우며 [4] 음악방송에 출연해서도 어차피 라이브는 하지도 않았다.[5] 핸드싱크 정도가 아니라 그냥 AR을 틀었다. 재미있는 것은 베이시스트 달파란이나 기타리스트 박현준은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은 뛰어난 연주자들로, 연주를 못해서 핸드싱크를 한 게 아니라 정말 일부러 그런 것이다.



2. 활동 내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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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문화혁명 앨범 표지
1집 앨범의 후면.
밴드원들과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과의 단체 사진이 실려있다

1995년 8월 1집 앨범 <문화혁명>으로 데뷔. 이 앨범은 셋 차례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 61위, 51위, 33위에 선정되는 등 음악성도 높게 평가받았을 뿐만 아니라 '안녕하세요', '딸기'라는 곡으로 활동하며 당시 대한민국의 대중매체에서 처음으로 펑크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펑크의 인지도를 확 높여버리며 대중성도 성공했다.

대체적으로 모든 곡들은 별다른 기교 없이 이윤정 특유의 보컬로 어찌보면 그냥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것처럼 하는 것이 특징으로 특히나 딸기의 경우에는 '딸기가 좋아'라는 별다른 내용 없는 가사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집 타이틀 곡인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방법'은 황신혜밴드 멤버인 '조윤석'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 삐삐밴드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에서 밴드들이 무거운 음악을 주로 했다면, 삐삐밴드는 그 무거움을 전부 다 버리고 완전히 가벼움을 모토로 시작한 밴드다. 특히나 이윤정의 빨간머리는 당시 사회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6] 가수의 염색을 엄격히 제한했던 KBS 가요톱10 출연할 때에는 그래서 모자를 써서 염색 머리를 가렸다. 웃긴 것은 이 KBS 방송분이 무려 라이브 무대였는데, 방송 환경의 한계로 사운드가 구리게 송출되었다.


3. 의도된 방송사고[편집]


2집까지 낸 이후 멤버간의 의견 차이로 보컬 이윤정이 탈퇴했고[7] 새 멤버 고구마(권병준)를 영입해 삐삐롱스타킹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했다.

이때는 일렉트로니카의 느낌이 강한 2집과 다르게 다시 1집의 펑크 장르로 돌아갔다. 다만 막 지르는 보컬의 이윤정에 맞춰서 섹스 피스톨즈와 같이 일부러 간단한 연주로 내놓은 1집과 달리, 3집은 이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잔뼈가 굵었던 고구마에 맞춰 박현준과 강기영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된 정교한 연주로 곡이 구성되어 있다. 하술하는 1997년의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바보버스' 라이브와 1995년 KBS 가요톱10의 '안녕하세요' 라이브를 비교하면 전자쪽이 연주에 좀더 힘을 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MBC의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인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1997년 2월 15일 방송분에서 '바보버스'를 라이브로 공연하던 도중 카메라를 향해서 침을 뱉고 중지손가락을 드는(일명 뻐큐)행동을 해버린 사건 이후로 전 방송사에서 1년간 출연 금지를 당하면서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후 지상파 출연은 다음날인 2월 16일에 방송한 SBS <TV가요 20>이 마지막이었다.

이후의 원더버드에서의 고구마, 박현준의 진지한 모습과 비교해보면 삐삐롱스타킹의 공연은 하나같이 광기와 반항기가 넘쳤다. 마지막 공중파 출연인 SBS TV 가요 20[8]에서도 너바나와 같이 대놓고 핸드싱크로 악기막치기+중간에 악기 바꾸기를 했다. 방송 정지를 당하기 몇 주 전 MBC 방송에서는 박현준이 카메라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계속 지어댔고, 무용팀은 "우리는 맆-싱크중입니다"라는 플랜카드를 공연 중에 대놓고 펼치기도 했다. 마침 1997년 초반 립싱크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인기가요 베스트 50은 전곡을 라이브로만 한다는 강수를 두었는데, 하필 올 라이브 첫 방송부터 광기에 찬 밴드가 등장한 것. 이 밴드는 처음부터 실험임을 표방하였고, 이 세 명은 실험을 끝내버릴 작정으로 라이브 시작하자마자 확성기 싸이렌을 울리고, 픽업에 장난감 전자총 소리를 대거나, 웃으면서 뻐큐를 날리고, 카메라에 침을 뱉고, 광기에 넘친 춤을 추고, 무대를 완전히 헤집어 버리고는 사과 과정을 거치고 깔끔히 해체했다. 징계를 받은 후, “우리는 (침이 아니라) 물음표(?)를 뱉은 것이다”라는 서두말로 항의문을 낼 정도였으니 의도적으로 방송사고를 일으켰음은 확실했다.

1년간의 출연정지가 풀리고 난 뒤, 박현준과 고구마가 속해 있던 밴드 원더버드는 1998년 MBC 일요예술무대, 1999년 SBS 인기가요와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했다.

문제의 MBC 생방송 동영상. 문제의 장면은 18초 침 뱉는 장면은 3:01초 쯤에서 볼 수 있다.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사건은 mbckpop 공식 유튜브에선 잘렸으나 이건 어째서인지 잘리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다만 2014년 12월부터 지상파와 종편들이 국내에서 유튜브 채널을 차단했기 때문에 IP 우회가 필요했으나, 2017년부터 풀려서 현재는 국내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4. 해체와 그 이후의 활동[편집]


결국 이 사건으로 인기가요 BEST 50은 경고를 먹었고, 이 일로 인해 더 이상 활동을 지속할 가망이 없게 된[9] 삐삐롱스타킹은 얼마 안 가 해체되었으며 박현준과 고구마는 신윤철을 끌어들여 원더버드를 결성했고 강기영은 삐삐밴드에서도 써왔으며 해체 이후 본격적으로 현재의 달파란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달파란이 영화 OST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삐삐밴드 탈퇴 후 이윤정은 솔로 앨범 2장을 냈고, 2008년 결혼 후에는 남편인 이현준과 EE라는 팀으로 활동했다.

3집에서 활동한 멤버였던 고구마(권병준)는 영화 네발가락의 음악감독과 배우로서 활약한 적이 있다. 2002년 원더버드 해체 이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서 왕립 헤이그 음악원에서 수학한 뒤, 국내로 복귀 후 사운드 엔지니어 및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저런 공연이나 전시를 자주하는 편.

2015년 6월 13일 원년멤버(달파란, 박현준, 이윤정)끼리 19년만에 다시 재결합해서 앨범 "pppb"을 발매하며 컴백하였으며, 이후로는 특별한 활동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2015년 이후로 그룹 활동은 중단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5. 음반 목록[편집]


항목 참조
  • 1996년 2집 <불가능한 작전>
이윤정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앨범이자 삐삐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된 마지막 앨범
  • 1997년 3집
고구마(본명 권병준)이 영입된 첫 앨범, 그리고 삐삐롱스타킹의 이름으로 발매하는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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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 서구 을/강화군의 15~18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막내딸이다.[2] 재밌는 사실이 데뷔 당시 이윤정의 아버지 이경재는 문화체육관광부(당시 공보처) 차장이었다.[3] 1970~1980년대의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영미권 밴드를 뽑자면 토킹 헤즈, 디보, 더 레지던츠 등이 있다.[4] 사실 삐삐밴드는 뉴웨이브 부류에 속하는 밴드인데, 뉴웨이브 밴드 대다수는 전자음악에 친화적이었다.[5] 딱 한 번 라이브를 하긴 했는데, 그 라이브에 관해선 후술.[6] 이 시기에는 반도패션(현 LF)의 '티피코시'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7] 다만 재결성 당시 인터뷰를 볼땐 심각한 불화는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이윤정 본인이 탈퇴는 멤버 간의 협의하에 원만히 이뤄진 거라고 밝혔다.[8] SBS 인기가요의 전신.[9] 다만 전술했듯 다음날 SBS TV가요20에도 출연했고, 카우치 사건과 달리 인기가요 BEST50이 종영되지도 않았으나 얼마 뒤 1997년 외환 위기로 다수의 예능프로그램이 종영되면서 같이 종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