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리처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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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하원 문장.svg 미국 연방 하원의원 (뉴멕시코 제3구)
선거구 신설

제98-105대
빌 리처드슨


제105대
빌 레드먼드



제21대 UN주재 미합중국 대사
제30대 뉴멕시코 주지사
윌리엄 블레인 리처드슨 3세
William Blaine Richardson III


출생
1947년 11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1]
사망
2023년 9월 1일 (향년 75세)
미국 매사추세츠 주 채텀
재임 기간
UN주재 미합중국 대사
1997년 2월 18일 ~ 1998년 8월 18일
에너지부 장관
1998년 8월 18일 ~ 2001년 1월 20일
뉴멕시코 주지사
2003년 1월 1일 ~ 2011년 1월 1일
학력
터프스 대학교 (B.A., M.A.)
의원 선수
8 (하원)
의원 대수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하원)
지역구
뉴멕시코 제3구
소속 정당


약력
프랭크 모스 상원의원 보좌관 (1971~1973)
상원 외교위원회 직원 (1976~1978)
연방 하원의원 (1983~1997 / 뉴멕시코 3구)
UN주재 미합중국 대사 (1997~1998)
에너지부 장관 (1998~2001)
뉴멕시코 주지사 (2003~2011)
2008년 대선 민주당 예비선거 후보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의 정치인, 외교관. 제21대 UN 미국대사, 제9대 연방 에너지부 장관, 제30대 뉴멕시코 주지사 등을 역임했으며 2008년 대선의 민주당 예비선거 후보였다.

북한 인권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기에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꽤 있는 정치가이다.


2. 생애[편집]


1947년 패서디나에서 태어났다. 시티은행의 멕시코시티 지부에서 일한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멕시코시티에서 성장했다. 청소년기에는 야구 선수 제의도 받았는데 야구선수가 되진 않았고 대학교 졸업 후 공화당 상원의원 밑에서 보좌관을 지내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한때는 헨리 키신저를 보스로 모신 적도 있었고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상원 외교위원회 직원을 지내기도 했다.

1980년, 뉴멕시코 1구 하원의원에 출마하나 석패했다. 2년 뒤 산타페, 로스 앨러모스와 근교를 관할하는 뉴멕시코 3구 선거구가 신설되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의 지역구인 뉴멕시코 3구는 히스패닉 인구와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많아서 "미국에서 가장 민족적으로 다양한 지역구"라 불렸는데 이 때문에 외교, 소수인종 업무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보호하는 여러 법안을 발의해 명성을 얻었고 하원 멕시코 관계 위원회의 회장을 지냈다. 어릴 적 멕시코에서 지내기도 했던만큼 멕시코 정부와 미국 정부의 원만한 관계를 이끌어내 멕시코 정부로부터 상을 수여받았다.

1990년대에는 해외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으로 관심을 돌리고, 세르비아, 이라크, 북한 등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며 억류된 인질 석방에 앞장선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사담 후세인과 직접 만나기도 했고, 북한에 억류된 에반 헌지커(Evan Hunziker)의 석방을 주도하여 그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클린턴 대통령은 리처드슨의 능력을 높게 사 1997년 그를 UN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했으며, 1년 후 사임했다. 1년의 짧은 임기였지만 이 시기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98년, 에너지부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청문회 도중 간첩 혐의가 제기되었다. 핵 기술을 훔친 중국 산업스파이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산업스파이에게 기술을 알려주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리처드슨은 이에 반발했고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에 소송을 걸어 거액의 합의금까지 받아냈지만, 이는 리처드슨의 위신을 크게 악화시켰으며 2000년 대선에서 그가 앨 고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되지 못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2] 한편 이 스캔들은 후일 국토안보부가 설립되는데 일정부분 영향을 줬다.

2001년 에너지부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잠깐 기업에 몸담았다가, 2003년 뉴멕시코 주지사로 출마해 게리 존슨의 후임자로 당선된다. 뉴멕시코 주지사로 지내면서 여러 유능한 정책을 추진했고, 전국 50개 주지사 중 유일한 히스패닉 주지사로 더욱 주목받았다.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들었을 정도. 2006년에는 무려 68% 득표율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역대 뉴멕시코 주지사 선거 중 가장 높은 득표율로 승리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이때도 북한을 포함한 여러 독재 국가에 억류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007년 4월 북한을 방문해 6.25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6명을 돌려받아냈고, 2009년에는 취재 도중 북한 국경을 넘어 억류된 로라 링 기자 석방에 기여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최초의 히스패닉 대통령을 노리며 출마했으나, 저조한 초기 지지율 때문에 사퇴했고 대신 같은 유색인종 후보인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 보답으로 2009년 오바마 당선 이후 상무부 장관에 지명되었지만 고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한 금융업자에게 10억 달러 상당의 공공 계약을 해주었다는 의혹이 일면서 자진 사퇴했다.[3] 이 스캔들로 그동안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망가졌고 2010년에는 한 단체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비도덕적인 주지사" 10인 중 한명으로 선정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주지사 재임 도중 북한을 방문하고, 2011년 주지사 직에서 퇴임한 이후로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송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이미지를 회복했다.

2016년, 오토 웜비어를 구출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고, 죽기 직전인 2023년 1월에는 러시아에 구금된 미 해군 장병 테일러 더들리를 협상 끝에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주지사 퇴임 이후로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2번이나 지목되었다.

2023년 9월, 매사추세츠에서 요양 도중 노환으로 사망했다. 한국 언론에서도 그를 "대북 소통창"이라고 소개하는 부고 기사가 꽤 많이 올라왔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0
연방 하원의원 선거
뉴멕시코 제1구


120,903 (48.99%)
낙선 (2위)

1982
연방 하원의원 선거
뉴멕시코 제3구
84,669 (64.99%)
당선 (1위)
초선
1984
연방 하원의원 선거
100,470 (60.81%)
재선
1986
연방 하원의원 선거
95,760 (71.30%)
3선
1988
연방 하원의원 선거
124,938 (73.11%)
4선
1990
연방 하원의원 선거
104,225 (74.46%)
5선
1992
연방 하원의원 선거
122,850 (67.42%)
6선
1994
연방 하원의원 선거
99,900 (63.59%)
7선
1996
연방 하원의원 선거
124,594 (67.25%)
8선
2002
미국 주지사 선거
뉴멕시코
268,693 (55.49%)
초선
2006
미국 주지사 선거
384,806 (68.82%)
재선


4. 여담[편집]


  • 외도 및 성폭력 혐의가 다수 있었는데, 모니카 르윈스키와 관련되어있다는 주장이 있다. 퇴임 이후에도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결되어있다는 이유로 기소되기도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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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장지는 멕시코 멕시코시티 코요아칸 지구.[2] 조 리버만이 아닌 빌 리처드슨이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면 클린턴의 측근+히스패닉으로부터의 인기 등을 고려했을 때 앨 고어가 본선에서 승리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3] 보건부장관 후보자였던 톰 대슐도 비슷한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