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스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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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Vincent James Russo
(빈센트 제임스 루소)
생년월일
1961년 1월 24일
출생지
뉴욕 주 롱아일랜드
별명
Vic Venom
신장
188cm
체중
86kg

1. 생애
1.1. 업계 입성 이전
1.3. WCW
1.4. TNA
2. 기타
3. 둘러보기


1. 생애[편집]



1.1. 업계 입성 이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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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이었고, 취미 차원에서 개인 라디오를 방송하면서 살던 사람이다.


1.2. WWF[편집]


루소가 처음 WWF에 관심을 받은건 자신의 라디오 덕분이었는데 이게 나름 인기를 끌게 돼서 WWF 매거진의 에디터로 고용되고, 곧 각본진으로 보직을 옮긴다.

당시 WWF의 상황은 매우 처참했는데 1996년 시작된 월요일 밤의 전쟁에서 에릭 비숍nWo의 맹공격에 WCW에게 84주간 시청률에서 패배하는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빈스 맥맨은 빈스 루소로 하여금 스토리라인에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흔히 애티튜드 시대의 특징으로 알려진 섹스, 폭력, 신성 모독이라는 자극적인 부분은 바로 이 빈스 루소의 집필 철학인 CRASH TV에 따른 것이었는데 "훌륭한 레슬러라는 건 없다. 결국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훌륭한 연기자(Performer)만 존재할 뿐" 이러한 생각으로 스토리라인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자극적인 요소와 필요에 따라 툭하면 터지는 턴힐과 턴페이스로 채워졌는데 모두 그의 주도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굉장히 문제적이고 빈스가 지향하던 가족들이 편하게 즐기는 볼거리와는 한참 떨어졌지만 이런 자극은 WCW에 압살당하기 직전이었던 WWF를 구원하는 한 줄기 빛이 되었고[1], 빈스 루소는 그 공적으로 WWF의 각본진 수장을 맡게 되었다.

그의 천하는 계속 될 것으로 여겼으나 1999년 WWF와 이별하게 되었는데 WWF가 스맥다운을 런칭하게 되면서 업무량이 더 늘어나게 되었고, 안그래도 가족들과 시간을 별로 보내지 못했던 빈스 루소는 집필을 거부했으나 빈스 맥맨은 "유모를 고용하면 될거 아니냐"라며 차갑게 응대했고, 결국 WWF를 떠나게 되었다.[2]


1.3. WCW[편집]


이적하게 된 WCW에서도 각본진 수장을 맡게 되었다.[3] WCW에서도 역시 자신에게 영광을 안겨준 CRASH TV를 적극 반영해 스토리라인을 짜게 되지만 큰 문제를 부르게 된다.

당시 WCW는 에릭 비숍이 해고된 뒤 케빈 내시, 헐크 호건 등에 의해 정치질로 완전 개판이었던 상황이었는데 거기다 빈스 루소가 끼어 툭하면 턴힐과 턴페이스가 나오고[4] 은퇴한다고 발표했다가 얼마 뒤 돌아오는 등 시청자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였다. 거기다 모든 시청층들이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WCW의 스토리라인을 알 것이라고 크게 착각하는 바람에 스토리라인에도 구멍이 숭숭 비고 말았다.

당시 WCW가 경쟁단체인 WWE에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트리플 H 등 새로운 아이콘들의 탄생으로 시청률 경쟁에서 밀려버리다 못해 역전되자 적장이었던 빈스 루소를 포섭해왔으나,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개막장 상황속에서 당시 WCW의 홍보 영화에 나온[5] 배우였던 데이비드 아퀘트를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시키는 각본을 짜고 그대로 방송했다.[6] 또 프로레슬러도 아닌 본인이 부커 T를 이기고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는 짓도 저질렀다. 거기다 당시 신생 프로그램으로서 인기를 얻던 UFC를 따라한답시고, 일본에서 하던 프로레슬링 VS MMA 같은 짓들도 마구 했다.[7]

게다가 에릭 비숍과 함께 WCW를 재편성한다는 명목하에 WCW의 모든 챔피언들의 타이틀을 모조리 박탈시키기도 했다.

이후 신예들의 스테이블인 뉴 블러드 소속으로 릭 플레어, 헐크 호건등과 대립하였다.

한편 이런 와중에 헐크 호건과의 사이는 점점 험악해져갔는데 이미 50이 다 되었던 헐크 호건은 여전히 자신이 벨트를 먹어야한다는 똥고집을 보였고, 이에 지칠대로 지친 빈스 루소는 WCW 배쉬 앳 더 비치(2000)에서 제프 제럿과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전을 부킹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당일 경기장에서는 스크류잡이 벌어지는데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대뜸 제프 제럿이 링 바닥에 드러누어서는 핀을 하라고 종용했다. 그리고 빈스 루소가 나와서 호건에게 벨트를 던지며 먹고 떨어지라는 모습을 보였다. 분노한 호건은 슛을 통해 바로 이런게 WCW의 멸망의 단초다라는 말을 하며 WCW를 영원히 떠나버렸고, 빈스 루소는 루소대로 저 인간들 정치질이 결국 오늘날 WCW를 몰락하게 했다는 말을 한다.[8]

이후 케빈 내쉬, 제프 제럿, 스캇 스타이너와 어울려 주로 선역 레슬러들과 대립을 하였으며 2000년 9월 25일 케이지 히트 매치에서 부커 T를 이기고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기도하였다

결국 이런 막장 속에 WCW는 2001년 패망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빈스 루소도 직업을 잃게 된다.

WCW가 망하기 직전 루소는 션 오헤어, 마크 진드락, 척 팔럼보, 빌리 키드먼, 제이미 노블, 랜스 스톰 등 당시 유망주들한테 푸쉬를 줘서 차기 메인이벤터로 만들 계획을 세웠었으나 WCW가 망하면서 이 또한 백지화가 된데다, 루소가 차기 메인이벤터로 만들려던 유망주들 또한 WWE에서는 미드카더 이상의 푸쉬를 받지 못했다. 사실 이 당시 WCW는 에릭 비숍이 노장들 위주로 밀고가느라 신세대 메인이벤터들을 키우지 못한데다, nWo의 정치질까지 더해져서 신세대 유망주들이 성장할 기회가 없었는데, 루소는 자신이 WCW로 오기 전에 진작 푸쉬받지 못했던 인재들을 뒤늦게나마 키우려 한 것이었다.

1.4. TNA[편집]


직장을 잃은 루소가 합류한 곳은 친구인 제프 제럿이 운영하는 단체 TNA였다. 여기서도 수석 각본진을 맡았는데 비록 집필은 하지 않고, 오히려 링에서 연기자로서 활약을 더 많이 했다. 주로 제프 제럿과 대립하는 역할을 하며 자기의 스테이블을 이끌기도 했지만 TNA를 잠시 떠나게 된다.

잠시 떠난 동안 자서전을 쓰고, 인디 단체에서 잠시 각본진으로 활동했지만 2006년 9월 21일 딕시 카터에 의해 돌아오게 된다. 당시 TNA는 전성기를 맞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상한 연출이나 각본이 나와 관중들은 Fire Russo! 챈트를 외쳤다.

헐크 호건 체제에서 TNA가 망조에 접어든 뒤 딕시 카터가 남몰래 다시금 루소를 각본진으로 고용하나, 팬 및 업계 관계자들이 각본에서 빈스 루소의 낌새를 눈치채며 재고용에 좋지않은 반응을 보였다. 한편 스파이크 TV가 루소를 싫어해 그를 각본진에서 쫓아내길 바라지만 딕시 카터가 방송사의 요구를 거부해 TNA와 스파이크 TV의 계약이 해지되었다.


2. 기타[편집]


  • JBL이 빈스 루소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당시 APA로 활동하던 자신과 파트너인 론 시몬스를 찬밥 대우해서 그렇다. 오죽하면 "당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라이벌 회사에게 승리하고 싶다면 라이벌 회사에 빈스 루소가 있으면 된다"라는 말을 했다.
  • 스팅의 WWE 데뷔 후 계속되는 찬밥 각본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내로남불 이 양반이 스팅에게 한 짓거리가 WCW에선 최악의 기믹매치 중 하나였던 휴먼 토치 매치, TNA에선 라스트 라이츠 매치, 그리고 헬프미 호건...
  • 케빈 오웬스를 평하길 뚱뚱하고 특징이 없어서 얼마 가지 못할 거라고 악담을 해대며 그의 유니버셜 챔피언 등극을 재앙이라 했으나, 케빈 오웬스는 레슬링 실력도 인디에서부터 알아주던 인물이며 말빨과 연기력 또한 일품이라 WWE 내에서 악역으로 잘나가고 있으며 팬들의 지지도 매우 높은 편이라 대부분 빈스 루소가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여긴다.
  • 2010년대 중반부터 WWE를 비판하면서도 WWE에 재고용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WCW와 TNA를 말아먹은 주제에 자기가 잘난 것마냥 WWE를 비판한다고 짐 코넷, 데이브 멜처, 브라이언 알바레즈 등으로부터 조롱당하는 신세다. 짐 코넷에겐 접근 금지 신청을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는데, 데이브 멜처는 팟캐스트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빈스 루소를 관종 취급했다. Being The Elite 127화에서는 크리스토퍼 대니얼스가 퇴치한 악령 중 하나로 언급돼서 또 웃음거리가 되었다[9].
  • 2020년 5월 7일 KIA 타이거즈를 응원한다고 밝혔다.#


3. 둘러보기[편집]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악의 기믹
디 아더티즈
(1998)


파워즈 댓 비
(1999)


마이크 어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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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기획으로 나온게 호청년의 락키 마이비아에서 말로서 상대를 마구 조롱하는 더 락과 nWo에 대항하는 디 제네레이션 X였다.[2] 여기 끼어서 피해본 사람이 바로 제프 제럿인데, 제프 제럿과 빈스 루소는 절친이어서 제프 제럿은 은근히 푸쉬를 받았다. 그러다가 빈스 루소가 이적하자 역시 이적을 결심했는데, 당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었던 제프 제럿이 계약 만료일까지 승리해 챔피언 변동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프 제럿은 빈스 맥맨에게 20만 달러를 요구했고, 결국 이 계약은 이루어져 차이나에게 벨트를 뺏기게 된다. 그런데 돌아온건 겨우 WWE의 스톡 옵션이었고, 이 일로 빈스 맥맨과 제프 제럿의 사이는 벌어져 WCW 인수 이후 바로 해고당하는 세그먼트가 발생하게 되었다.[3] WCW의 간부 중 한명이었던 래리 즈비스코가 회상하길 당시 WCW의 회계사였던 빌 부쉬가 "내가 WWF에서 빈스 루소를 훔쳐왔다"고 말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즈비스코는 "맥맨이 루소를 내버려둔건 더이상 그가 필요 없어서였다"라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4] 심지어 WCW의 프렌차이즈 스타나 다름없던 빌 골드버그까지 턴힐시켰다. 그리고 이건 헐크 호건의 턴힐과는 달리 당시 경기를 보러 온 어린이들을 진짜로 울게 만들었으며, 역효과만 심해 골드버그는 얼마 안 가 턴페이스한다.[5] 'Ready to Rumble'이란 제목의 영화로 당시 인기 WCW 스타들이 출연했다.[6] 데이비드 아퀘트 본인도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눈치였지만 무시하고 진행시켰다고.[7] WWF 시절에도 프로레슬러들이 각본이 아닌 실제로 MMA룰을 통해 복싱 글러브를 끼고 주먹으로 맞붙는 브롤 포 올 토너먼트를 진행했고, 참가한 선수들 대부분이 부상을 당한데다가, 그 정도가 16강에서 승리하고도 부상이 커서 8강에선 기권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고, '닥터 데스' 스티브 윌리엄스 등 몇 명은 부상이 너무 심해 WWF를 떠났다.[8] 이후 이 경기는 호건을 대신해 부커 T가 대신 치루었고, 그가 승리함으로서 세기말 WCW를 책임지는 한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9] 이 에피소드는 엑소시스트 패러디였다. 더불어 딕시 카터도 악령 취급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