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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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왕세녀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Victoria, Kronprinsessa av Sver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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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Victoria Ingrid Alice Désirée)
출생
1977년 7월 14일 (46세)
스웨덴 솔나 카롤린스카 대학병원
학력
웁살라 대학교 (B.A. / 2009년)
배우자
다니엘 베스틀링 (2010년 결혼)
자녀
장녀 에스텔, 장남 오스카르
아버지
칼 16세 구스타프
어머니
실비아 좀멀라트
형제
남동생 칼 필립, 여동생 마들렌
종교
루터교회 (스웨덴 교회)
계승 서열
1위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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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위
3. 생애
3.1. 어린 시절
3.2. 청년기
3.3. 결혼과 가정
3.4. 결혼 이후
4. 여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스웨덴왕세녀.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실비아 왕비장녀이자 맏이다. 1980년 왕위계승법이 절대적 맏이상속제로 바뀜에 따라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확정상속인이 되었다. 마르그레테 1세[1], 크리스티나 여왕, 울리카 엘레오노라를 이어 4번째 여왕으로 등극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1720년 이후 최초의 여왕이 된다.

2. 작위[편집]



  •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 전하 Hennes Kunglig Höghet Victoria, Sveriges Prinsessa (1977년 7월 14일 ~ 1979년 12월 31일)
  • 스웨덴의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부인, 빅토리아 왕세녀 전하 Hennes Kunglig Höghet Victoria, Sveriges Kronprinsessa, Hertiginna av Västergötland (1980년 1월 1일 ~ 현재)

3. 생애[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1977년 1월, 스웨덴 왕실이 실비아 왕비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혔다.


생후 19일의 빅토리아
출산 예정일보다 하루 앞선 1977년 7월 14일 스웨덴 현지시각 21시 45분, 솔나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에서 키 50cm, 몸무게 3.25kg으로 태어났다. 최초로 병원에서 태어난 공주였고 1807년 이후 국왕 부부가 즉위한 상태에서 낳은 첫 아이였다.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여 21발의 축포가 발사됐다. 풀네임은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Victoria Ingrid Alice Désirée)'로, 빅토리아는 스웨덴의 왕비였던 바덴의 빅토리아, 잉리드덴마크의 왕비였던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알리스실비아 왕비브라질인 어머니, 데시리에는 선조인 베르나도테 왕조의 첫 왕비인 데지레 클라리[2]와 고모 데시리에 공주에게서 따왔다.

1977년 9월 27일, 스톡홀름 왕궁의 부속 예배당에서 700명의 하객을 앞에 두고 유아세례를 받았다. 세례복은 친할아버지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부터 입기 시작한 옷이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 대부모는 네덜란드베아트릭스 여왕, 고모 데시리에 공주, 노르웨이하랄 5세와 큰외삼촌 랄프 소머라스로 총 4명이다.

가정사는 대부분 그녀의 세대 왕족들처럼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3] 여성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제안 자체는 1950년대부터 나왔으나 매번 반대에 부딪혔고 1975년에 와서야 검토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계승법을 변경하는 것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기에 의회에서 두 번의 투표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1979년 11월 7일 남성 상속제에서 절대적 맏이 상속제로 개정하는 법안이 162 대 21(기권 147표)로 최종 통과되었다. 이로써 스웨덴은 절대적 맏이 상속제를 도입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또한 칼 16세 구스타프의 자손으로 계승권을 한정하였다.[4] 일반적으로는 법이 바뀌어도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아서 다음 세대부터 법률이 적용되지만, 스웨덴 의회는 절대적 맏이 상속제를 당대부터 적용하도록 밀어붙여서 빅토리아가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이에 아버지 칼 16세 구스타프는 빅토리아의 남동생인 칼 필립까지는 국왕이 되어야 하는거 아니냐며 이미 태어나서 계승 서열 1위인 왕세자를 왕자로 격하시키는게 어딨냐며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5] 그래서인지 칼 16세 구스타프는 둘째 칼 필립 왕자를 매우 편애했고[6] 상대적으로 빅토리아 왕세녀는 홀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아버지처럼 난독증이 있음이 분명해졌다. 왕세녀가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건 당시에는 극비였다. 빅토리아는 30분 일찍 등교하여 읽기와 쓰기를 연습했고 교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오디오북을 애용한다고 한다.

3.2. 청년기[편집]




성년 연설[7]
고등학교 졸업 후 프랑스 앙제에 있는 서방 가톨릭 대학교에 1년 간 재학하며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빅토리아는 프랑스에서부터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에는 본격적으로 여왕이 되기 위한 훈련이 시작됐다. 아버지를 대신해 공무를 수행하며 집에서는 가정교사와 정치학과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빅토리아는 점점 말라갔다. 언론에서는 미인으로 유명한 동생과 비교당하며 연일 외모로 물어뜯겼다. 한 잡지는 비키니에 빅토리아의 얼굴을 합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11월 빅토리아가 그랜드 호텔의 연례 행사에 참석했을 때 모두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 차렸다. 일주일 후에 궁은 왕세녀가 섭식 장애를 앓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후일 '섭식 장애가 단지 한 가지 요인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혼란스러움도 큰 부분이었고 수행에 대한 불안감도 큰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웁살라 대학 입학을 미루고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 간 미국의 명문 예일 대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공부했다. 워싱턴 주재 스웨덴 대사관과 유엔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26세였던 2003년에 3주 일정의 기초군사훈련에 지원했으며 수료했다. 당시에는 스웨덴군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3.3. 결혼과 가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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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사진
2001년, 개인 헬스 트레이너로 만난 올로프 다니엘 베스틀링과 사랑에 빠져 8년간의 연애 끝에 왕실로부터 드디어 결혼을 허락받았다. 다니엘은 평민인데다가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였으며, 오켈보(Ockelbo)라는 시골 촌구석 출신에 부모님은 면사무소 직원이다. 빅토리아 왕세녀와의 열애가 막 공개되었을 때, 다니엘은 장발에다 찢어진 청바지를 비롯한 넝마같은 옷차림에 구수한 사투리까지 구사해서 스웨덴 귀족 사회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국왕은 다니엘을 두고 "차기 국왕의 남편이 될 사람이 아니다. 당장 헤어지라."고 했지만, 왕세녀가 "다니엘과 결혼하지 못하면 왕위계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고집을 부려서 결국 국왕이 포기했다.[8] 대신에 다니엘에게 각종 전문가들이 독일어, 영어[9], 프랑스어 및 왕실 예절과 역사 등을 가르쳐서 탈바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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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9일, 각국의 왕족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809년 나폴레옹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선물한 카메오 티아라와 소피아 왕비의 브뤼셀 레이스를 착용했다. 머리 장식과 부케에는 마거릿 왕세자비의 머틀이 사용되었다. 결혼과 함께 부마가 된 다니엘[10]에게는 스웨덴 왕가의 성씨인 베르나도테가 이름에 덧붙여졌으며, 다니엘 대공 및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

왕세녀 커플이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도 꽤나 성대하게[11][12] 결혼식을 치렀다가 여론이 나빠졌다. 이후 진보적인 정당들을 중심으로 "안 그래도 요즘 경제가 어려운데 국민 세금으로 왕세녀 결혼식을 호화롭게 치른다. 왕실이 있어서 매일 세금만 낭비하고 좋은 게 없다."는 등의 왕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스웨덴 왕실이 빅토리아 왕세녀의 결혼식을 취재할 권한을 스웨덴 국영방송에만 주었고 연합뉴스가 배제되었기 때문에 호화 결혼식이라고 매도했다는 반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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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결혼한 지 2년 만인 2012년 2월 23일, 첫 아이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외스테르예틀란드 여공작 에스텔 실비아 에바 메리 공주를 출산하였다. 에스텔은 스웨덴 왕실 역사상 최초로 태어나자마자 왕위 후계자에 오른 공주이다. 2016년 3월 2일에는 둘째 스코네 공작 오스카르 칼 올로프 왕자를 출산하였다. 두 남매의 밝고 똑 부러지며 자신감 넘치는 사랑스러운 분위기와 공식 석상에서 보여주는 의젓한 면덕에 빅토리아-다니엘 부부는 현 왕족 부부들 중에서도 좋은 부모라는 평을 받고 있다.

3.4. 결혼 이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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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에는 남편 다니엘 공과 함께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2021년 말부터 다니엘 공이 부부 동반 참석이 예정된 공무에 나오지 않는 일이 잦아지면서 불화설과 이혼설이 불거졌고 결국 반박 성명을 냈다.#

4. 여담[편집]


  • 남편과 함께 코로나19에 2번(2021년 3월, 2022년 1월) 감염됐다.

  • 미래의 스웨덴 국왕이 될 왕세녀의 남친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관심도 상당했다. 처음 공식적으로 알려진 남자친구는 다니엘 콜레트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다정한 모습을 보여서 부모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고 하며 현재 두 사람은 좋은 친구관계로 지내고 있다. 2002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마르타 루이즈[13] 공주의 30살 생일파티에 참석했을 때, 그리스의 니콜라오스 왕자[14]와 다정한 모습을 보여 두 사람이 연인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결국 오보였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 목소리는 다소 허스키하고 굵은 편이다. 여동생 마들렌 공주의 목소리가 언니 빅토리아 왕세녀와 거의 비슷한데 마들렌 공주 쪽이 살짝 가늘지만, 언뜻 들어서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다.

  • 형제들과의 사이는 좋은 편에 속한다. 동생들인 칼 필립과 마들렌 모두 빅토리아가 자신들을 매우 잘 돌봐주었다고 말했다.


  • 착하고 소박한 성품과 더불어 차기 여왕이자 왕세녀로서 갖춰야 할 능력도 출중하고 아이들도 예의바르고 착하게 키워서 스웨덴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유럽의 현 왕가들 중에서 다음 세대부터 위험한 건 스웨덴 왕실도 마찬가지이고 영국 왕실에 비해 다소 조용했던[15] 스웨덴 왕실이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왕가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 만한 사고를 쳤고[16] 이로 인해 왕실을 싫어하는 스웨덴 국민들도 부쩍 늘었는데 빅토리아 왕세녀 부부는 항상 예외로 쳐준다. 실제로 아버지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부부, 남동생 칼 필립 왕자 부부, 여동생 마들렌 공주 부부의 호감도는 비슷비슷하게 바닥을 기지만 빅토리아 왕세녀 부부만이 40% 이상의 지지율을 받는다. 왕세녀 부부의 호감도가 나머지 왕실 구성원들을 합친 호감도보다 높은 것이다.

  • 난독증 말고도 안면인식장애가 있어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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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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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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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토]]




세이소 왕조

카타리나아말리아
호콘 망누스
프레데리크 안드레 헨리크 크리스티안
레로톨리 세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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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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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리히텐슈타인 국기.svg
리히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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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모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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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시악페락 가문


기욤 장 조제프 마리
알로이스 필리프 마리아
페락의 나즈린 샤
자크 그리말디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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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바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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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벨기에인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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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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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몰레이 하산 빈 무함마드
살만 빈 하마드 알할리파
브라반트 여공작 엘리자베트
지그메 남기엘 왕축

[[브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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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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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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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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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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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키아 왕조




알무흐타디 빌라 빈 하사날 볼키아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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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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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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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테야잔 빈 하이삼 알사이드
후세인 빈 압둘라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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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카타르 아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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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태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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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통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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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





후미히토
압둘라 빈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티빵꼰 랏사미촛
투포우토아 울루칼라라
현재 재위 중인 독립국 군주



[1] 다만 마르그레테 1세는 덴마크인이다.[2] 나폴레옹 1세의 첫 약혼녀로 유명하다.[3] 빅토리아 또래 왕족들의 어린 시절은 꽤나 불행한 편이었다. 영국찰스 3세도 왕세자라는 직위에 걸맞게 양육하기 위해 부모님이 엄하게 키웠으며, 따뜻한 애정보다는 왕세자로서의 '의무'가 먼저였다. 덴마크프레데리크 왕세자도 부모님의 공무로 인해 잉리드 왕비에게 맡겨서 외할머니와는 사이가 매우 좋았지만 정작 친부모에게는 정을 잘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4] 왕의 숙부 베르틸 왕자에게는 예외를 두어 그의 계승권은 사라지지 않았다.[5] 2023년에도 부당한 일이었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어 급히 해명을 내놓았다.#[6] 첫째 빅토리아 왕세녀는 미래의 여왕이 되고 막내 마들렌 공주는 남편 크리스토퍼 오닐이 엄청 부자라서 명예와 부가 보장되지만 둘째 칼 필립 왕자는 아내인 소피아 왕자비가 평범한 중산층 집안 출신인데다가 왕세자에서 왕자로 격하된 애매한 지위와 돈 때문인지 국왕 부부가 뒤에서 어화둥둥하며 이것저것 마구 퍼주고 있다. 사회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왕족은 사기업 오너/이사가 될 수 없는데 칼 필립 왕자는 교묘하게 법을 피한 건지 디자인 회사를 차렸지만 디자인 전공자임에도 표절 시비가 날 정도로 재능이 없다. 따라서 빅토리아가 즉위하게 되면 골치아픈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7] 왕과 의회에 충성하며 헌법을 따를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다. 당일 수여된 세라핌 훈장과 부모님의 선물인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8] 칼 16세 구스타프도 실비아 왕비가 평민임에도 귀천상혼을 무시하고 결혼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실비아랑 결혼하지 못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한 마디로 부전여전. 정작 국왕 부부는 그렇게 어렵게 결혼해 놓고 얼마 안 가서 쇼윈도 부부가 됐다.[9] 스웨덴인영어 구사력은 비영어권 국가들 중에서 네덜란드인 다음으로 높다고 평가받지만, 사실 대도시 한정이고 시골로 갈수록 영어를 못하는 스웨덴인들도 꽤 많아서 시골 출신인 다니엘이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다.[10] 결혼 후에는 미들네임인 다니엘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올로프'이 아닌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 다니엘'이다.[11] 왕실에서 비용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에 얼마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단 겉보기에는 나름 성대했는데, 원래 기본적으로 계승 순위 1위인 왕세자/왕세녀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르는 편이긴 하다.[12] 사족으로 1981년에 있었던 영국의 찰스 3세다이애나 스펜서의 세기의 결혼식 이후 무려 29년 만에 유럽 왕실에서 치러진 초호화 결혼식이었다고 한다.[13] 현 노르웨이의 국왕 하랄 5세의 딸이자 호콘 왕세자의 누나.[14]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군주인 콘스탄티노스 2세 전 국왕과 아네마리 전 왕비의 3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남. 왕자의 어머니 아네마리리 전 왕비와 왕세녀의 아버지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이 사촌이므로 두 사람은 6촌 관계이다. 참고로 니콜라오스 왕자는 2010년에 베네수엘라 태생의 11세 연하 패션이벤트 플래너 타티아나 블라트닉과 결혼했다.[15] 영국 왕실이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것도 있다. 실제로 영국 외에 다른 유럽권 나라에도 왕가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16] 칼 16세 구스타프는 1990년대 후반에는 모델 카밀라 헤넨마르크와 불륜 관계였으며, 2010년 출간된 <칼 구스타프 16세 - 군주가 되길 원치 않은 군주>라는 책에서 스트립 클럽과 불법 클럽에 자주 들락날락거렸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미지가 작살난 상태. 왕가를 향한 스웨덴 국민들의 인식이 그동안에 워낙 좋았던 것도 있고, 마침 가장 평판이 좋은 빅토리아 왕세녀가 에스텔 공주를 출산함으로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실제로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서도 "에스텔 공주왕실국왕을 살렸다"고 생각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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