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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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몰락
3.1. 해외
4. 관련 문서
5. 출처


1. 개요[편집]


1980년대부터 2009년까지 있던, 주로 VHS 비디오를 대여해주던 장소이다.


2. 특징[편집]


주로 개인이 창업하는 자영업 형태이며, 가격은 1990년대에 구작은 최저 200원 정도로, 신작은 2, 3000원선 정도로 가격이 형성되었는데, 이 비디오를 대여해 집이나 학교 등의 VCR기에 삽입해 감상했다. 신작은 1박 2일이 기간이라 그 이상이 지났으면 연체료를 물려서 수일간의 연체료가 쌓여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등짝 스파이크를 맞기도 하였다. 성인용 비디오는 주로 칸막이가 쳐진 곳이나 좀 구석진 곳에 놓여 있었으며, 일반적인 가격보다 더 비쌌다. 한국에서 금지된 일본 AV, 서양 포르노도 불법으로 들여온 곳도 있었으며[1], 드물게는 국산도 있었다.[2] 성인물은 당시에도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 시대에도 소위 말하는 '뚫리는 곳'이 있었다.

굉장히 융성했던 사업 가운데 하나였으며, 1980년대만 해도 대우전자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과 특약점 계약을 맺거나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여 비디오 만화 영화를 제작하던 대표적인 회사인 대영팬더에서는 1990년대에 후뢰시맨 작품 하나 가지고 40억을 벌었을 정도로 많이 팔았는데, 이런 부흥기에 힘입어 '영화마을', '책과영화사랑', '스펀지', '영화랑 책이랑' 같은 대형 프렌차이즈 대여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2년에 전국 3만 2천여 곳이었던 비디오 대여점들이 약 40%나 줄어들어 2만 3천여 곳으로 줄기도 했는데, 이는 규모가 큰 대형 프렌차이즈 대여점들이 생기면서 소규모의 비디오 대여점들이 밀려났기 때문.


3. 몰락[편집]


1990년대 초반에 PC통신의 등장으로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 동영상을 받을 수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회선이 느리고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에 영화 및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지상파 채널[3] 말고는 VHS 비디오가 다였던 시절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기준으로 CGV 강변, 메가박스 코엑스를 시작으로 멀티플렉스 영화관[4]의 등장으로 최신 영화를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케이블TV 보급화[5]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의 등장과 함께 영화전문채널 수도 많아지고 셋톱박스를 통해 영화V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이러한 비디오 대여문화가 서서히 주춤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초고속 인터넷의 발전으로 집집마다 ADSL이나 광케이블 공급으로 토렌트, 프루나, 당나귀, 위니등의 P2P 공유를 이용해 영화, 애니메이션도 불법 다운로드를 빠르게 할 수 있게 되면서 비디오 대여점은 급격히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또한 초창기에 콘텐츠가 적다며 외면된 DVD가 상용화되면서 날이 갈수록 콘텐츠가 증가하였고, VHS 비디오에 비해 훨씬 가볍고 보관이 용이하기에 굉장히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일부 유저들은 이렇게 초고속 인터넷으로 불법 다운로드한 컨텐츠를 모아 집에 전시해 놓고선 비디오 대여점이 부럽지 않다고 자랑하던 시절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비디오 대여점들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서대여점과 결합하며 VHS 비디오·도서·DVD 멀티대여점으로 재탄생하며 그 수명을 연장하려고 했고, 이러한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여 2000년대에는 도서대여점과 비디오 대여점이 사실상 한 몸이 되기도 했었다. 당장 위의 비디오 대여점 프랜차이즈에도 '영화랑 책이랑'이나 '책과영화사랑'처럼 이름에 '책'[6] 이 언급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블루레이같은 매체도 등장하고, 도서대여점 같은 경우에는 소설/만화의 텍본과 스캔본이 등장하였으며 이후에는 웹툰을 비롯한 더 다양한 즐길거리가 등장하면서 이런 대여점들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나 대여하지 않아도 손쉽게 돈 주고 TV를 통해 볼 수 있는 VOD의 본격적인 대두는 치명적이었다.

어느 정도인지는 부산을 예로 들면, 1995년까지만 해도 3천 곳에 이른 부산지역의 비디오 대여점들이 2003~09년에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2009년에 250여 곳으로 줄어들었을 정도이다. 2009년 상반기까지는 실생활에서 비디오테이프를 DVD와 병행하면서 대중적으로 꾸준히 사용했으나 2009년 하반기부터는 실생활에서 VHS를 사용하지 않기 시작해 사실상 비디오 대여점만 있었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는 그마저도 완전히 몰락하여 추억의 물품으로 남기 시작했다. 2010년대 이후에 만화 카페로 어찌저찌 대체된 도서대여점과는 다르게 비디오 대여점의 위치를 대체한 문화 시설은 없다. 그나마 DVD방이 가장 유사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DVD방은 18세 미만 입장 불가인 경우가 많고, 컨텐츠를 대여해 주는 형태가 아닌 컨텐츠를 업장 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경우가 다소 다르다.

결국 2020년 현재는 넷플릭스 등의 OTT유튜브 VOD 등 모바일 기반의 VOD 서비스가 비디오 컨텐츠 감상의 대세가 되었고, 비디오 대여점은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3.1. 해외[편집]


미국에선 비디오 전성기만 해도 '블록버스터'와 '비디오 팩토리' 같은 대여점 체인들이 즐비했고, 월마트 등 할인점에서도 비디오를 취급하기도 한다. 이원복 교수의 시사만화 <현대문명진단> 1996년 8월 26일자 '팔고 싶으면 내 말을 따르라!' 편에 따르면 미국의 비디오물 매체는 대여점용 외에 할인점용도 따로 있는데, 할인점 판매용의 경우 블록버스터나 월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고객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비디오물 내용에 자체 검열을 해서 영화 제작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 예로 영화 <올리버 스톤의 킬러>는 올리버 스톤 감독 측이 검열을 거부했다가 월마트와 블록버스터로부터 버림받은 바 있다.

저렴한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이 매우 흔한 한국과는 달리, 인프라에 차이가 있고 DVD와 블루레이 보급이 좀 더 되어 있었던 일부 서구권에는 온라인 서비스 열풍에도 불구하고 아직 DVD대여점이 남아 있다.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충분한 인프라를 자랑하는 보드게임, 카드게임류나 캐릭터 상품 등을 같이 취급하는 식으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대형마트 근처에도 DVD대여용 키오스크를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온라인 서비스 열풍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얼마나 오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

외국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한때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는데, 2010년대 초까지 비디오 대여점이나 한인마트 등에서 한국 예능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DVD에 구워놓고 대여/판매하거나 한국산 정발품을 따로 취급하기도 했기 때문. 덕분에 해외에서도 안재모, 장서희, 안내상씨와 같은 국내 배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 현지 교민들 및 한류 팬들을 대상으로 부실한 단속의 틈을 타 온라인 VOD형태로 한류 컨텐츠를 제공하는 불법 사이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다, 유명 한국영화도 제법 외국 현지 개봉을 하기 시작하고, 특히 넷플릭스 등에서 일부 한국 예능이나 영화 컨텐츠를 아예 정식으로 접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동네에서 한류 DVD를 구해다 보는 일은 대폭 줄어들었다. 게다가 시장이 큰 미국의 경우 아예 한국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출자해 kocowa라는 이름의 공식 VOD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에 맞서 현지 통신사업자 소유의 DIRECTV 등도 한국 방송 라이브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며 동네 DVD를 통한 한류 컨텐츠 배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시피한 상태. 단, 이런 식으로 보급되는 컨텐츠는 라이센스 문제가 걸려 있어 넷플릭스같은 전세계 대상 서비스가 아닌 한에는 보통 엄격한 지역 제한이 걸려 있으며 [7], 심지어 넷플릭스도 같은 이유로 국가마다 보급하는 컨텐츠 종류가 달라 VPN을 동원하는 사람이 있는 등 모든 수요를 다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수요는 결국 국내에서 몰래 해외로 스트림을 재전송하는 편법[8]에 가까운 실시간 IPTV서비스를 이용하거나[9], 상술한 불법 사이트쪽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편.

4. 관련 문서[편집]




5. 출처[편집]


  • 이원복 교수의 현대문명진단 4권 - 이원복 글/그림. 조선일보사 출판국. 1998. p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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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로 세운상가, 용산전자상가, 주한미군/부대에서 들여왔다. 이런 비디오는 보통 주인과 얘기해서 주인이 지하에 숨겨진 곳에서 꺼내주었다.[2] 그 사이에는 언론에서 소개됐을 정도로 유명한 빨간 마후라도 있었다. 단, 이건 아동 포르노이다.[3] 물론 그 중간인 1995년에 케이블TV 방송을 시작하면서 DCN(현 OCN) 등의 영화전문채널도 있었지만 당시 케이블TV 시청료가 17,000원. 그 때 물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라 1990년대 케이블 방송 가입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4] 그 이전의 영화관은 대부분 단관이었으며 끽해야 스크린 수가 2개 정도뿐이었다. 당연히 최신 블럭버스터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일 정도로 힘들었다.[5] 이 때부터 별도의 컨버터 설치 필요 없이 35~50여개 채널을 TV리모컨으로 돌려 볼 수 있는 6,600원~8,800원/월 정도의 경제형&보급형 상품이 출시되었다. 거기에 2003년 부터 100여개 이상의 채널이 있는 디지털 케이블TV가 출시되었다.[6] 만화책과 소설책.[7] 즉, DIRECTV나 코코와 등은 미국 외의 지역에선 원칙적으로 시청할 수 없다[8] 예전에 어떤 업체가 당구장으로 위장해서 방송 불법 송출을 하다가 걸린 적이 있는데 근황은 알 길이 없지만 폐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9] 한인타운에 가면 관련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