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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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선을 운행했던 객차형 비둘기호[1]
경원선을 운행했던 동차형 비둘기호[2]
1. 개요
2. 역사
3. 차량
4. 특징
5. 운행 노선
6. 몰락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사라진 완행열차, "비둘기호" 의 낭만속으로

비둘기號 / Pidulgi Express[3]

비둘기호는 1967년 부터 시작해 1984년 비둘기호로 열차명이 통일되어 2000년 11월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 철도계의 최하위 등급 열차다.


2. 역사[편집]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1964년에 생겼던 서울-부산진 간 특급이었던 비둘기호가 맨 먼저이다. 다만 그 당시 비둘기호는 이름만 같았고 객차는 3등 열차[4] 라고 하여 구한말, 일제강점기 이래로 써오던 비둘기호보다 더 오래된 객차 편성이었다.[5] 그러다가 1967년 8월 경부선에 여객열차의 명칭으로 쓰이면서, 서울-부산 구간부터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의외로 당시에는 등급상 완행열차가 아닌 특급열차였다고 하며 1967년까지 한국 철도 객차들은 통일된 이름이 없이 노선에 따라 통일호[6], 풍년호[7], 증산호[8], 협동호[9], 부흥호[10], 약진호[11], 갈매기호[12], 비둘기호 등 의미를 담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13]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중구난방 불리어오다가 1984년에 새마을, 우등, 특급, 보급[14], 보통(=완행)의 열차등급을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로 정리하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되며 등급이 최하위로 고정되었다. 이때 도색도 새로 제정되어서 갈색과 우유색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 전동차와 동일한 파란색과 우유색의 철도청 도색으로 재도색되었다.

최하위 등급답게 일단 지나가는 길에 역 비슷하게 생긴 게 있으면 모두 다 정차했다.[15] 운행하던 시절에는 한국에 저런 열차가 있었나라고 할 정도의 열악한 시설을 가진 구형 열차들을 사용했다.[16] 교외선이나 군산선, 경춘선 같은 일부 노선에 디젤동차가 돌아다닌 적도 있지만, 주로 기관차+객차 견인 형태였다. 참고로 이 디젤동차는 한때 내구연한이 끝나기 직전에 고상홈 대응 개조를 거쳐 경원선의 전철화된 구간(용산-왕십리-성북)을 운행했던 적도 있었다.[17]

1993년에는 삼천리호로 개명될 뻔한 적이 있었다. 기사

과거 1992년 8월부터 9월까지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열차 이름 공모가 있었다. 아마 이 명칭이 제작된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바꾸기 위해서였을 듯. 1993년 상반기에 교체될 예정이었으나, 바뀐 이름조차도 너무 촌티나는 바람에 모두 무산됐다. 발표된 열차 이름은 다음과 같다.

기존
변경
새마을
새나라
무궁화
평화
통일
통일[18]
비둘기
삼천리


3. 차량[편집]


파일:비둘기호 객차.jpg
  • 비둘기호 객차형
중형 디젤기관차 4200호대, 대형 디젤기관차 5000호대에 의해 객차를 견인했으며, 때로는 6200호대, 7000호대, 7100호대~7500호대와 같은 특대형 디젤기관차가 견인하기도 했다.[19] 역삼각 로고 시절에는 녹색과 노란색, 흰색 도색으로 변경되었다. 말년에는 통일호와 구분하겠다고 회색으로 바꿔버리기도 했다. 또한 우편화차 / 수화물차와 혼용하여 운영되며 때로는 다량의 우편화차 / 수화물차를 견인하기도 하였다.[20] 객차형은 주로 경부선, 호남선 같은 장거리 수송을 위해 운행되었다. 비둘기호, 통일호 차량들은 현대화 작업으로 소리소문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나 당시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위와 같은 3등열차형도 있었지만 통일호 격하형도 다녔다. 통일호 차량 중에서도 69년식이 많았는데 1984년 냉방화에서 탈락한 차량이 비둘기호로 운용되었고 전환식 크로스시트가 달렸다.

파일:DC 디젤동차 2.jpg
니가타 디젤동차, 가와사키 디젤동차로도 불리웠으며 경의선, 교외선, 경춘선 같은 주로 로컬선에서 운행하였다. 디젤기관차와 달리 엔진과 객차의 일체형이며 디젤 연료로 움직이고 굴뚝이 있는 디젤동차다.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되었으며 디젤기관차 견인형과 달리 2량에서 많으면 3량 정도의 단량으로 편성되어 있다. 엔진은 일본 니가타 공업소에서 수입했으나 차후 미국 커민스의 엔진으로 교체하게 된다. 외관은 당시 초저항 관통형 전동차, 수인선 협궤동차와 비슷했으나 깍두기처럼 각진 초저항과 달리 둥글둥글한 곡선모서리로 디자인되어 있다. 당시 일본의 디젤동차의 디자인 영향을 많이 받아 실제로 키하 52-125형, 키하 17형과 외형이 많이 비슷하다. 추후 수도권 전동차 제조기술의 발달과 노후화[21]로 비둘기호 디젤동차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 디젤동차의 생산이 완전히 중단된 건 아니고 NDC, CDC가 그 전통을 이어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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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인선 협궤열차
수원-인천 간을 운행했던 수인선[22] 협궤열차도 1984년부터 비둘기호 등급을 배정받아서 운행했다. 디젤협궤동차 이전에는 협궤 증기기관차 / 협궤 가솔린동차(게하형 가솔린동차)가 다닌 시절도 있었다. 니가타 디젤동차와 마찬가지로 인천공작창에서 조립,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니가타 디젤동차와 외형은 비슷하나 니가타를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스펙상으로는 105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는 하나, 속도를 내기 힘든 협궤 특성 상 40km/h 전후의 저속으로만 운행했다. 초창기에는 협궤 증기 기관차가 협궤 객차를 견인하는 식이었으나 니가타 디젤동차와 동일한 방식으로 디젤동차가 객차 앞뒤로 총괄제어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이후 수자타산이 안맞아 수인선 협궤노선이 운영중지, 철거가 되고 표준궤와 전동차가 들어오면서 수인선 비둘기호 등급이 사라진다. 협궤철도 수인선 폐선 이후에도 열차 몇 량이 2000년대 초반까지 수원역 차량사무소에 한동안 주박되어 방치되어 있었으나 수원역 현대화 공사로 사라졌다. 그러나 수인선 종운식과 함께 환송꽃다발을 받는 등 객차형 차량들에 비해 그나마 대접받고 사라진 차량들이다. 2021년 현재 동차는 철도박물관에 있는 9163호 딱 한 량만 소재가 확인되어 있다. 객차는 철도박물관에 2량이, 화랑대역에 1량이, 인천시립박물관에 1량이, 구 송도역에 2량이 있다. 인천시립박물관과 구 송도역의 객차는 목인박물관을 운영하는 김의광 관장이 1996년에 철도청으로부터 구입해서 소장하던 것을 인천시와 연수구에 기증한 물품이다.


4. 특징[편집]


객실 형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지하철과 똑같이 롱시트형[23] 객실이었고 고정식,[24] 박스시트형[25] 객실이 있었다. 참고로 가와사키 동차는 두 가지 시트를 혼합하였다. 그러나 박스시트형 객차는 시트가 직각으로만 되어 있는 데다 이걸 뒤로 젖힐 수도 없었다. 객차 하나당 좌석은 18열로 정원 108명이었으며, 한 열에 6명이 탑승. 물론 좌석 번호도 붙어 있었다. 좌석은 시트 하나당 3명이 앉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비록 무궁화호나 통일호에 비해 시트의 폭이 넓다 해도 80년대 기준으로 성인 셋이 앉기에 비좁아 2명씩만 앉았다. 이는 좀 오래된 일본 열차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일본의 일부 노선에선 아직도 이런 시트를 달고 다니는 열차가 현역으로 뛰고 있다.

자리표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 좌석이 자유석이다. 이 때문에 개표 때까지 길게 줄을 서 있다가 개표와 동시에 우르르 뛰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 예매자에게는 지정좌석표가 있기도 했다. 1980년대에 운행되었던 용산-부산진 간 비둘기호의 경우, 장거리 여행자가 지정좌석표를 예매한 경우가 있어서, 객실 내에서 비둘기호가 무슨 좌석예약이 있냐며 먼저 앉은 승객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심지어는 주먹다짐도 있었다고 그에 차장이 사정을 설명해서 그 다툼이 겨우 멎은 경우도 간혹 있었다. 앞서 말했듯 좌석은 시트 하나당 3명이 앉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비록 무궁화호나 통일호에 비해 시트의 폭이 넓다 해도 1980년대 기준으로도 성인 셋이 앉기에 비좁았다.

또한, 객차 출입문은 수동 이었고[26], 객실 창도 수동문이었다. 롱시트형은 문이 가끔 닫히지 않아 그냥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추우면 대략 낭패, 긴 터널에 들어가면 정말 큰일이었다. 냉방장치는 전무했으며 에어컨 따위는 아예 없었고 창문을 열고 달렸다. 그나마 회전식 선풍기는 1량당 2개씩 복도 중앙 천장에 달려 있는 경우가 있었다. 참고로 비둘기호의 전신격인 3등 객차에는 선풍기조차 없었다.[27]

난방 장치는 난방차에서 스팀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일부 객차에만 자체 난방장치가 있었다. 화장실은 비산식 화장실이라 화장실 바로 아래가 선로였다.[28] 또한 조명마저도 발전차가 아닌 축발전기에 연결된 별도의 전지를 통해서 작동하는 방식으로 어두침침한 알전구에 적빛 반구 전등갓을 씌운 형태[29]였다. 당시 열차에는 객차마다 행선판을 부착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행선판 귀퉁이에 펭귄종합식품의 음료광고[30]를 삽입하였다.[31] 하지만 가장 흔한 건 미에로 화이바 광고였다.

물론, 비둘기호도 신형 차량은 들어왔다. 바로 오늘날의 통근열차CDC가 연령이 오래된 열차들을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비둘기호 등급이 아닌 통일호 등급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지금 대도시권을 운행하는 광역전철이 바로 비둘기호의 후신이다. 좌석배치도 그렇고 비지정석, 롱시트 등등이 비둘기호와 동일하다. 또한 경인선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들어가기 전에는 비둘기호가 들어갔던 점, 1호선 급행이나 용산~성북 구간에 고상홈에 대응가능한 비둘기호 열차가 때때로 대신 투입되기도 한 점을 볼때, 코레일도 비둘기호와 광역전철을 동급으로 여기는 듯 하다.


5. 운행 노선[편집]


비둘기호 폐지 당일인 2000년 11월 14일 기준.
열차번호
운행노선
기점역
종점역
운행횟수(왕복)
비고 및 폐지일
1701~1702
1705~1706
정선선
증산
정선
2왕복
2000년 11월 15일
통일호로 승격[32][33]
1703~1704
1707~1708
구절리
1왕복
2000년 11월 15일
통일호로 승격

이 외의 운행구간.
열차번호
시발역 - (경유역) - 종착역
경유노선
일 운행횟수
비고

서울 - 문산
경의선



서울 - 일영 - 의정부
경의선, 교외선, 경원선



용산 - 신탄리
경원선



서울 - 온양온천
경부선, 장항선



용산 - 장항
경부선, 장항선



용산 - 대전
경부선



용산 - 부산진
경부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에서 언급하는 서울 가는 12열차
용산 방면으로 운행하던 이 열차 중 야간 시간대에 운행하던 열차이다.

용산 - 목포
경부선, 호남선



수원 - 송도
수인선

협궤열차

수원 - 여주
수려선

천안 - 장항
장항선



천안 - 안성
안성선



동대구 - 포항
대구선, 중앙선, 동해선



부산진 - 진주
경부선, 경전선



부산진 - 삼천포
경부선, 경전선, 진삼선



부산진 - 광주
경부선, 경전선



동대구 - 부산진
경부선

저녁에는 부산진역에서 출발하고 아침에는 동대구역에서 한번밖에 없음으로
대신 부산역에 가서 부산이나 대구갈때는 낮에는
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 부산발 서울행 열차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다.
부산진역에서 동대구역까지 소요시간 2시간 정도다 [34]

부산진 - 대구
경부선

1994년 3월 31일 열차전면개편으로 인해 마산발 동대구행 노선변경되고
대신 부산발 서울행 통일호 열차 대체편성되고 역 구간 변경시켰다.

포항 - 부전
동해선



부산진 - 순천
경부선, 경전선



동대구 - 마산
경부선, 경전선



마산 - 통해
경전선, 진해선



순천 - 마산
경전선



대전 - 광주
호남선, 경전선[35]



대전 - 목포
호남선



여수 - 목포
전라선, 경전선, 호남선

원래 급행열차로 운행하던 열차였지만
1982년 급행열차 등급 폐지 때 완행으로 격하되었다.

부산 - 포항
경부선, 동해선



익산 - 여수
전라선



대전 - 군산
호남선, 군산선



조치원 - 제천
충북선



청량리 - 춘천
경춘선

1988년 2월 15일 운행종료.

청량리 - 원주
중앙선



청량리 - 제천
중앙선


#1221, #1222
청량리 - 부전
중앙선, 동해선
왕복 1회
하행 11시간 44분, 상행 12시간 28분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소요시간이 긴 열차였다.

경주 - 영주
중앙선



영주 - 강릉
영동선



제천 - 철암
태백선, 영동선



도계 - 강릉
영동선



동해 - 삼화
북평선



증산 - 구절리
정선선

비둘기호 최후의 운행 구간

문경 - 영주
문경선, 경북선



가은 - 영주
가은선, 문경선, 경북선



삼척 - 동해
삼척선



동대구 - 대전
경부선



동대구 - 김천
경부선



김천 - 경산
경부선

1994년 3월 31일 김천~경산 원래대로 재운행

김천 - 대전
경부선



대전 - 천안
경부선



부산진 - 대전
경부선

#501대전역 오전10시10분 부산진역 16:42,
#502 부산진역 06:40 대전역 12:25 열차였으나
1993년 3월 1일 폐지됐었으나 대전이남지역 불편이 발생되고
1편성 하행열차 김천~대전 오전시간때만 단축운행
1993년 3월 1일 김천~부산진 운행노선인 부산진역 16:15
#507,#508 대전역까지 연장운행하다가
1994년 3월 31일 열차전면개편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부전 - 동대구
동해선, 중앙선, 대구선



광주 - 목포
경전선[36], 호남선



안동 - 제천
중앙선



안동 - 영주
중앙선



안동 - 강릉
중앙선,영동선



경부선에서 일단 낮시간대에 타게 되면 각 역에 정차하고, 역에 정차할 때마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등이 보기 좋게 앞질러 가기 때문에 대피 선로로 비켜야 했으며, 재수 없으면 한 역에서 두 번 이상 후속 열차를 비켜줘야 했다. 이 열차를 처음 탄다면 열차가 왜 안 가냐며 답답한 모습을 보였을 정도로 비켜 주는 횟수가 많았다. 정차 시간이 길다 보니 내려서 국수나 우동 등 간단한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여유를 부리다가 열차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없어질 당시 용산-부산진 가격이 오천 원[37]이 채 안 됐을 만큼 싼 가격으로 부담없이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이용하였다.


6. 몰락[편집]


하지만 너무나도 싼 운임 때문에 사람을 가축수송 수준으로 가득 실어도 적자가 날 판에 그나마 수요까지 줄어드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차량의 노후화와 수익성 강화를 위한 새마을/무궁화/통일호 운행확대가 같이 맞물리면서 1994년을 기점으로 장거리 비둘기호는 대폭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38]


비둘기호 마지막 운행 당시 영상

결국 1998년 11월 30일 운행을 마지막으로 정선선 꼬마열차[39]만을 남기고 모두 폐지되었고 그 자리는 12월 1일부터 운행되는 구간 통일호와 통근형 통일호로 대체되었다. 일단 살아남은 꼬마열차는 수요가 많은 정선 5일장날[40]에는 객차 1량을 추가하여 총 객차 2량 편성한다. 동절기에는 발전차가 추가편성된다. 따라서 동절기이면서 정선 5일장에는 기관차 1량 + 객차 2량 편성의 총 3량이 편성되었으나 객차 자체 난방장치를 달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발전차가 필요없다는 특징으로 인해 화물열차의 차장차 역할로도 애용되었다.

한편 니가타 디젤동차의 경우 말년까지 경의선, 교외선 등 일부노선에서 운행했으나 대차 하부구조가 무너지는 등 노후화가 심해지자 CDC 등에 바통을 넘겨주고 조용히 사라진다.

대신 완행의 역할은 통일호를 거쳐 통근열차가 물려받게 되었으나, 통근열차마저 광주선에서만 운행하는 상태라[41] 지금은 완행의 역할을 광역전철과 일부 무궁화호[42]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비둘기호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은 편. 기존 수도권 전철에 한정되어 운행되던 광역전철이 동해선 광역전철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기존 비둘기호의 역할을 계승할 예정이다. 물론 마찬가지로 폐지된 통일호의 역할은 광역전철 급행이 계승하게 된다.


7. 기타[편집]


중장년층 세대에게는 통일호와 함께 유명한 존재다. 단, 통일호의 전성시대였던 1990년대 무렵부터 열차를 즐겨 탄 사람이라면 통일호 쪽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통일호 운행 말기였던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은 레일플러스 철도 동호회를 필두로 한 한국 내 철도 동호인 문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동호인 중에는 통일호를 직접 타본 경우도 꽤 된다. 심지어는 1990년대의 비둘기호 마지막 운행 때 마지막 비둘기호를 타고 종착역에 빨리 내려서 행선판을 떼어 가서 기념사진도 찍은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게임 상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파일:xYBeJjMr.jpg
또한 인피니트paradise 뮤직비디오에서 일부장면이 비둘기호 내부에서 촬영되었다. 촬영지는 철도박물관이다.

파일:비둘기호가수원역에.jpg
누리로 운행 개시 당시 전광판 데이터가 업데이트 되지 않아 누리로를 비둘기호로 표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얼마 후 바로 수정되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이 역은 수원역이다.

열차 자체는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건설 비둘기호가 XROIS 전산상에 존재한다. 과거에 존재했던 등급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전원일기 221회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영애가 대전까지 기차 탄 것으로 인해 비둘기호가 동차형과 객차형 모두 나왔다.


8. 관련 문서[편집]



[1] 말년에는 흔히 알고 있는 베이지색 + 청색이 아닌 노랑 + 초록 + 흰색의 철도청 CI도색으로 운행했다. 다만 녹색은 새마을호나 통일호와 달리 색이 연한 쑥색에 가까웠다.[2] 사진 속 중간차는 객차형 비둘기호다. 고상홈 대응 개조가 된 열차로, 개조 이후에는 비둘기호가 아닌 경원선의 일부인 용산-성북간을 운행했다. 1991년 7월까지 운행하다가 이 구간에 4량짜리 1000호대 중저항이 도입되면서 퇴출되었다고 한다. 90년대에도 뉴스에서 비둘기호 동차 노후화 문제를 지적하며 서민들만이 타는 열차라고 무시하는 것이냐고 비판을 받아 결국 퇴출하였다. 위 사진은 1980년대 후반 ~ 1991년 7월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3] 'Pidulgi'는 당해 계통 운행 시의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의한 것. 2004년 KTX가 개통되기 전 까지 당시 모든 열차가 뒤에 Express 호칭이 붙었다. 이후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는 Express에서 Ho로 바뀌었다.[4] 가수 송창식의 대표곡인 고래사냥에 나오는 삼등 삼등 완행열차라는 구절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5] 자세한 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60년대 철도 관련 기사를 참고하라.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면 위키백과에서 비둘기호 또는 비둘기호(운행 계통) 검색어로 검색한 다음 문서 하단의 각주 링크를 살펴보면 나와 있다.[6] 경부선 전 구간[7] 호남선 전 구간[8] 전라선 전 구간[9] 서울~진주 또는 진삼선 전 구간[10] 장항선 전 구간[11] 통일호와 동일한 구간을 운행했으나 훗날 중앙선 전 구간(동해남부선 직결)을 운행[12] 경부선 전 구간과 부산진(또는 동대구)~전주 구간을 운행하다가 두 차례 폐지되었다가 이후의 상황은 알려진 바가 없음[13] 일본의 특급열차가 노선, 운행구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14] '보급(普及)'이 아닌 '보통급행(普急)'의 준말이며 이 등급은 1982년 5월 1일에 폐지되었다.[15] 극소수 선택 정차역(예: 호남선의 채운역가수원역)도 있었다. 채운역과 가수원역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여객을 취급하지 않았으므로 정차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역무원 출퇴근 편의 명목으로 역무원이 출퇴근할 때 이 역에서 타거나 내렸던 것이고 이때만 정차했다. 그리고 채운역과 가수원역에서 열차가 정차할 때는 다른 역과 똑같이 정차역 안내 방송도 했다. 또 서대전역의 열차시각표에서도(1990년대 중엽 당시 익산-대전 구간에는 비둘기호가 상하행 각 3편성 운행) 비둘기호는 채운, 가수원역의 정차 여부를 표시해 줬다. 두 역 모두 정차하는 열차는 비고란에 '전역정차' 가수원역만 정차하면 '채통과', 둘 다 정차하지 않으면 '채, 가통과'로 적혔다.[16] 식당차, 침대차는 커녕 한때 통일호도 있었던 특실이 비둘기호에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서비스 객차 따지기 이전에 발전 방식 조차도 발전차가 아니라 차축에 자체적으로 붙어있는 발전 장치로 겨우 전력 생산을 했었으니...[17] 예전엔 국철이라고 해서 1호선과는 별개의 노선으로 분류되던 계통이었다. 용산역을 출발해 서빙고, 왕십리, 청량리(지상)를 거쳐서 성북역에서 종착하는 형태로 운영되었고, 아침 시간대에 창동역을 출발해서 회기에서 서울 지하철 1호선(종로선) 대신 경원선을 타고 왕십리를 거쳐 용산역에서 종착하는 열차도 1편이 존재했다. 당시 철도청 소속 지하철 1호선 차량 내 노선도에도 '용산-청량리(지상) 간 동차'로 별도 표시되어 있었다. 동차가 폐차된 이후로는 한동안 중저항 전동차가 4량 혹은 6량 1편성으로 다니다가 1996~1997년에 차량운용문제에 힘입어 이 구간을 10량화한 뒤에는 성북분소, 이문기지 소속의 3VF 전동차들도 투입되었고, 2005년 12월에 중앙선 청량리-덕소 구간이 복선전철화되자 운행계통을 수도권 전철 중앙선에 편입, 폐지되었다.[18] 당선작 없음[19] 아주 가끔 8000호대가 견인하기도 하지만 극소수였다.[20] 차장차 1량 부족으로 인해 대신 소화물전용열차와 컨테이너 화물열차 운행했었다.[21] 차량 하부구조가 너무 무거웠던데다가 정원초과로 인해 차량이 주저 앉은 사건이 발생했다.[22] 1972년 수려선 폐선 전까지는 수려선에서도 운행했다.[23] 열차 벽과 창문을 등지고 일렬로 시트가 쭉 놓여 있는 형태. 입석 승객을 위한 손잡이도 달려있었다.[24]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거나 객석 방향을 회전시킬 수 없는 형태.[25] 좌석 두 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있는 형태.[26] 여닫이문 형태로 우리가 흔히 건물을 출입할 때 밀거나 당기는 그 문이다.[27] 여름에 사람 많은 만원 열차는 한마디로 헬게이트였다는 거다.[28] 따라서 정차시에 사용금지라고 쓰여있었다.[29]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형광등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지어졌던 아파트 화장실이나 베란다 등에서 볼 수 있는 노란 백열전구에 촉광만 1/4로 줄여놓으면 대충 비슷하다. 다만 모든 객차가 백열전구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일부는 형광등을 사용했다.[30] 비둘기호뿐만 아닌 새마을이나 무궁화, 통일호에도 붙어있었다. 알알이, 아세로라 등등.[31] 펭귄종합식품 외에도 동아생명의 광고를 삽입하기도 했다.[32] #1701 열차는 무려 새벽 2시 15분이라는 비범한 시간에 출발했는데 이렇게 된 건 청량리발 강릉행 무궁화호 #529 열차(청량리 23시 출발, 강릉 익일 5시 도착)와 환승연계 목적으로 이렇게 설정한 것이다. 증산역에는 새벽 2시를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정선 방면은 비둘기호로 환승하라는 철도청의 환승연계였다.[33] 그리고 이 환승연계가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는 장거리 통일호 감축이었다. 본래 청량리 - 철암/구절리 구간은 하행은 심야, 상행은 새벽에 운행하던 통일호 복합열차가 1998년 2월까지 운행되었으나, 이 열차가 중간에 무궁화호로 승격되면서 청량리 - 철암 구간을 운행하게 되었고, 정선선 구간은 무궁화호 환승연계가 되도록 시간표를 조정해 증산발 정선행 비둘기호가 신설되어 운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이한 심야열차는 2008년 1월 1일까지 잘 다니다가 제천 - 아우라지 무궁화호로 변경되면서 폐지되고 만다.[34] 부산역에서 동대구역까지 통일호 1시간 30분 무궁화호 1시간 20분 새마을호 탈 경우 1시간 10분 서대동부 새마을호 같은경우는 부산에서 동대구까지 1시간 6분만에 주파한다.구포역,밀양역 2개 무정차 통과한다.[35]광주선 [36]광주선 [37]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3780원.[38] 경부선 가장편수가 폐지된다는것은 동대구역 - 부산진역 노선구간중 대전역 - 부산진역 대구역 - 부산진역 구간이 편수가 폐지된다는 것이다. 일부구간을 비둘기호로 개편한다는 것.[39] 기관차 + 객차 1량편성. 이후 통일호, 무궁화호를 거쳐 현재는 정선선 민둥산 - 아우라지 간 모든 역에 정차하는 정선아리랑열차로 이어진다.[40] 매월 2, 7, 12, 17, 22, 27일.[41] 2019년 3월 31일까지 경원선 동두천역 - 백마고지역 구간에서만 운행하다가 현재는 경원선 전철화 공사 관계로 운행 중지 상태이다.[42] 광역전철이 다니지 않는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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