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팔레스타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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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3. 대사관, 교통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북한팔레스타인의 관계.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편집]


북한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결성된 지 2년 만인 1966년 4월에 국가승인(diplomatic recognition)을 실시했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당시 자주외교노선을 표방하던 북한에게 있어 신생 팔레스타인은 반미, 반제국주의 자주외교의 최전선기지나 마찬가지였고, 이러한 인식은 북한이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전투적 우의와 연대성'이라고 집약적으로 표한한 것으로부터도 잘 알 수 있다.# 이하 두 문단은 민족해방 계열 진보 언론인 통일뉴스 특집기사 참고하였음. 北.팔레스타인, 반미로 뭉친 반세기 연대

수교 이후 북한은 팔레스타인에 게릴라 훈련, 일반 군사 훈련, 조종사 훈련, 장교단 교관 훈련 등을 지도하고 비밀자금을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PLO의 국가수립을 군사적으로 지원해 온 것이다.

1969년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은 PLO에 대한 군사훈련 실시 및 무기제공 등 군사적 지원을 공식 표명했으며, 압둘 지하드 PLO 부총사령관은 1975년, 1980년 평양을 방문해 군사적 원조를 약속받았었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PLO 소탕을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을 당시, 북한은 정부 성명을 통해 PLO에 대한 지원병 파견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사회주의와 비동맹권의 공동행동, 반제, 자주 공동전선의 형제로서의 국제주의적 의무인 지원병 파견 의사'를 그 이유로 들었다.

북한과 팔레스타인 관계는 김일성 주석과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과의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0년 5월 아라파트 의장의 북한 방문 일화가 대표적이다. 아라파트 의장은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이 건조한 선박을 선물받기 원했지만, 실무자들의 사전논의가 있지는 않았다. 이는 외교적으로 분쟁을 초래할 수도 있는 심각한 결례이지만, 아라파트 의장은 "가장 친근한 형님이기 때문에 외교적 관례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배를 선물해 달라고 했고, 김 주석은 흔쾌히 '진달래'라는 배를 건조해 보냈다고 한다.[1]


2.2. 21세기[편집]


북한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2004년 11월 아라파트 사망에서도 알 수 있다. 김정일 통치기의 북한은 3일 동안 일부 기관에 조기를 게양하는 애도기간을 선포했는데, 이는 중국의 마오쩌둥저우언라이, 소련의 유리 안드로포프콘스탄틴 체르넨코,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 사망과 같은 예우를 보인 것이다.[2]

아라파트 사망 이후에도 북한과 팔레스타인의 끈끈한 관계는 지속되었다. 외교적으로는 주로 유엔을 무대로 팔레스타인을 두둔하고 이스라엘을 비방하는 발언을 거듭함으로써 옵저버 국가 지위에 불과한 팔레스타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2014년엔 조선중앙통신은 이스라엘이 인도에 반하는 죄(crime against humanity)를 저지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방하기도 하였다.#.

군사적으로도 2014년엔 하마스가 북한의 기술지원 하에 가자 지구에 땅굴을 설치하고 북한제 무기를 매입하고 있다는 보도가#, 2017년 초에는 소형 무기 및 대전차미사일을 구입하였다는 보도# 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7년 광복절을 맞아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북한 국민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김정은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축전을 보냄으로써 양국 간의 "역사적인 우호관계"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음을 과시하였다.#축전으로 본 북한의 외교

단,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2016년 황교안 당시 총리와의 만남에서 "국제사회 결정을 위반하는 북한의 도발은 용납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했다.황 총리 "팔레스타인 지원 계속"...압바스 "北 도발 용납 안돼"[3]

3. 대사관, 교통 교류[편집]


북한은 팔레스타인에 대사관을 두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은 평양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두 나라들을 잇는 항공 노선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4. 관련 문서[편집]



[1] 김일성이 저정도 반응을 보이는건 북한-팔레스타인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2] 정식 국가이자 북한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중국, 소련, 유고슬라비아, 시리아의 수장들의 죽음과 국제적으로는 정식 국가가 아닌 팔레스타인의 수장의 죽음에 같은 격을 적용했음을 감안하면, 북한-팔레스타인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끈끈함을 알 수 있다.[3] 립서비스에 가깝겠지만 굳이 남한과의 관계도 파탄낼 생각은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애초에 북한 도발은 국제사회 전체의 비난을 받고 있어서 중러조차도 겉으로는 비판하는 사안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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