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트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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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부트 룸 보이즈
4. 부트 룸에 관한 말, 말, 말
5. 여담
6.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파일:bootroom1.jpg

부트 룸(The Boot Room)

리버풀 FC의 홈 구장 안필드 내에 위치해 있던 축구화 보관실.

타구장의 일반적인 축구화 보관실과 다르게 안필드의 부트 룸은 장비 보관실일 뿐 아니라,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리버풀의 감독 및 코칭 스태프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팀과 전략 전술, 경기 준비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 장소였다. 1959년 빌 샹클리 감독이 리버풀에 부임하면서 시작된 부트 룸 문화는 구단의 비공식적인 소통의 장이자 리버풀의 최전성기 붉은 제국의 기반이 되었고, 이후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 로이 에반스에 이르기까지 39년간 4명의 감독을 거치며 이어졌다.

때문에 리버풀에 있어서 '부트 룸'이란 단어는 단순히 경기장 내 축구화 보관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실질적으로는 리버풀의 붉은 제국을 떠받친 전설적인 감독들과 코칭 스태프들, 그리고 그들이 연속해서 계승한 위대한 리더십을 의미한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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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 룸을 이끈 밥 페이즐리와 조 페이건

안필드의 부트 룸은 안필드 메인 스탠드 내의 드레싱 룸 옆에 붙어 있던 오래되고 작은 공간으로, 원래 다른 구단들의 구장 내 축구화 보관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1959년,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감독 빌 샹클리가 리버풀에 부임하면서 부트 룸은 구단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당시 리버풀에 처음 발을 들인 샹클리는 외부에서 코치진을 영입하기 보다는 기존에 리버풀에서 일하고 있었던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루벤 베넷 등의 코치진들과 함께 팀을 이끌어나갈 것을 천명하였고, 샹클리는 코치진들에게 서로와 구단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협력할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코치진들과 격의없이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당시 팀의 코치이자 구장 및 장비 담당관이었던 조 페이건기네스 맥주 몇 상자를 선물 받아[1] 안필드 내의 드레싱 룸 옆 부트 룸에 보관하게 되는데, 이 부트 룸에 보관된 맥주를 마시며 코치들끼리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부트 룸 문화의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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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클리 시절의 부트 룸 보이즈[2]

부트 룸은 원래 벽에 고정된 걸이에 축구화들만이 걸려있던 낡은 방이었으나, 페이건이 받아온 맥주 상자들은 곧장 의자와 테이블이 되기 시작했고, 어느새 경기가 끝난 뒤 감독과 코치들이 부트 룸에 모여 앉아 술과 차를 한잔씩 하는 일은 매치 데이 오후의 정기 행사가 되었다. 부트 룸에서는 자연스럽게 클럽의 스쿼드와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전술과 전략, 상대팀에 대한 준비 등 다양한 이야기가 격의 없이 쏟아져 나왔고, 곧 부트 룸은 클럽 내의 가장 중요한 회의실이 되었다. 당시 감독이었던 샹클리는 이 공간을 코치진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당시의 팀 핵심 코치였던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루벤 베넷을 위해 부트 룸을 실질적인 코치진들의 사무실이자 회의실로 넘겨주게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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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 룸에서 리그 우승 트로피와 함께한 코치진

이에 본격적으로 부트 룸은 페이즐리, 페이건, 베넷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장소가 되었다. 여러가지 논의와 안건들이 부트 룸에서 터져나왔고 맥주 한 잔씩을 곁들이며 하던 이야기들은 그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부트 룸은 단순히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만은 아니게 되었으며, 팀을 위한 각종 자료들과 통계들이 수집되는 실질적인 구단의 브레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부트 룸의 초기 멤버는 당시 팀의 수석 코치였던 밥 페이즐리, 리저브 팀 감독이었던 조 페이건, 피지컬 코치였던 루벤 베넷, 수석 스카우터였던 제프 트웬티맨과 톰 손더스, 팀의 선수에서 플레잉 코치, 이후 정식 코치로 승격된 로니 모란이었는데, 각자가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4] 특히 페이건은 진행된 경기와 훈련의 모든 중요한 점들을 직접 정리하여 기록하였는데, 날씨가 어떻게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선수들의 상태나, 약간의 부상은 어땠는지를 모두 기록했을 만큼 상당히 상세하게 클럽의 모든 대소사를 문서화했다. 이렇게 페이건이 수집한 부트 룸의 '리버풀 데이터'는 이후 '안필드 바이블'로 불렸고, 부트 룸을 거쳐간 모든 코치진들은 이 데이터를 참고하며 선수가 훈련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팀의 특정한 증상들이 이전에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대처되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부트 룸의 작업들은 이후 붉은 제국의 연속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후 부트 룸은 초기 멤버들을 포함하여 약 20여명의 코칭 스태프들이 하루나 일주일 중에 다양한 시간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팀에 관한 제안, 전술에 대한 논의, 상대 선수들 또는 시스템의 장단점들을 논하는 종합적인 팀 운영 산실이 되었다. 이러한 부트 룸 문화에 힘입어 샹클리의 리버풀은 본격적으로 우승 트로피들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1971년 페이건이 1군 코치로 승격되면서 2군 코치로 로이 에반스가 영입되었고 부트 룸과 샹클리의 리버풀은 황금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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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 룸의 황금기를 이끈 밥 페이즐리 감독

이후 1974년, 구단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끌어온 샹클리가 FA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예기치 않은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이에 부트 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샹클리가 페이즐리를 그의 후임 감독으로 임명했던 것. 페이즐리는 특유의 겸손함으로 처음에는 감독직을 맡는 것을 꺼려 샹클리를 찾아가 은퇴를 만류하기도 해보았으나 샹클리는 결심을 굳힌 뒤였고, 이후 그가 적임자라는 구단 내외부의 평가와 함께 결국 페이즐리가 리버풀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후 페이건이 수석 코치, 모란이 1군 코치로 승격하는 등 변화가 있었으나, 부트 룸의 문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페이즐리는 감독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코칭 스태프들과 부트 룸에 자주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며 부트 룸의 데이터는 점차 쌓여갔고 리버풀은 절정의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했다. 페이즐리는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부트 룸의 모든 것을 잘 조율해냈고, 선수 영입과 팀 관리, 전술 등 다방면에서 리버풀은 급진적인 성장을 보이며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 부트 룸은 샹클리 시대의 베테랑들을 대체할 새로운 선수들의 영입에 굉장한 성과를 보였는데, 케니 달글리시, 앨런 한센, 그레이엄 수네스, 이안 러시, 브루스 그로벨라 등의 전설적인 영입이 페이즐리 체제의 부트 룸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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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 룸에 모인 조 페이건 사단

페이즐리가 샹클리의 바통을 넘겨받은 이후, 리버풀의 감독직은 부트 룸 내에서 연속성을 갖게 되었다. 리버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면서 전임 감독들의 발자취가 쌓아온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었던 부트 룸의 코치들은 구단 내부에서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었고, 이는 샹클리의 뒤를 이어 핵심 코치들이 감독으로 계속 승격하여 대를 잇는 '리버풀 웨이'의 탄생을 만들었다. 이에 페이즐리 사임 이후 1983년, 수석 코치였던 조 페이건이 감독으로 승격했고, 새로운 수석 코치는 로니 모란이 맡게 되었다. 로이 에반스도 이 때 1군 코치로 승격했다. 이후 헤이젤 참사를 겪으며 페이건이 일찍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나 부트 룸은 꾸준히 유지되어 케니 달글리시 체제로 까지 흘러갔다. 달글리시는 코치로서 부트 룸에 오래 포함된 인물은 아니었으나, 구단의 핵심 선수로서 절대적인 신뢰와 더불어 부트 룸의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인물이었기에 플레잉 코치직을 맡아 부트 룸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이로써 부트 룸의 초창기 멤버였던 샹클리, 페이즐리, 페이건이 모두 떠나고 부트 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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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 룸에서 티 타임을 가지는 케니 달글리시와 밥 페이즐리

케니 달글리시 부임 이후에도 부트 룸의 힘은 이어졌다. 당시 젊은 나이에 플레잉 코치로 감독직을 시작한 달글리시를 위해 페이즐리가 구단의 고문 역할을 자처했고, 부트 룸의 베테랑 코치진[5] 또한 달글리시의 새로운 팀을 위해 힘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부트 룸의 초창기 멤버였던 제프 트웬티맨이 코치직에서 경질되고, 약간의 인사 이동이 있는 등 내부적인 혼란도 있었으나 결국 달글리시는 팀을 수습하여 다시 우승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부트 룸이 이어온 리더십과 코칭 데이터는 참사로 위기를 맞은 구단이 흔들리지 않고 트로피를 다시 모을 수 있도록 만든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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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 룸에서의 로니 모란과 코치진들

그러나 부트 룸은 예상치 못한 또 한 번의 대형 사건으로 끝을 향하기 시작했다. 1989년, 힐스버러 참사가 일어났던 것. 참사의 충격으로 달글리시는 감독직을 사임했고, 구단이 통제력을 다수 잃으며 기존의 부트 룸에도 충격이 가해졌다. 결국 위기 상황에 부트 룸의 베테랑 로니 모란이 임시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모란은 내부의 결속을 다지며 팀을 수습하여 시즌을 이어갔지만 정식 감독직에는 뜻이 없었고 구단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시 코치직을 맡기로 결정했다. 이후 구단은 팀의 주장으로서 명성이 높았던 그레이엄 수네스를 감독으로 임명하여 내부의 연속성을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수네스는 이미 1984년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났었기 때문에, 기존의 부트 룸이 보여준 실질적인 리더십의 계승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수네스 시대가 시작되면서 샹클리로부터 이어진 부트 룸의 문화는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1990년대 초반, UEFA 유로 1996 경기 개최를 위해 구장 내에 프레스 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부트 룸이 사라지게 되며 실질적인 부트 룸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수네스가 경질되고 부트 룸 출신인 로이 에반스가 감독직을 맡기는 했으나, 결국 제라르 울리에 감독 체제로 전환되며 공식적으로 부트 룸의 코치진[6]들이 모두 구단을 떠났고, 길었던 부트 룸 시대에 종지부가 찍혔다.


파일:bootroom-768x432.jpg

사진 자료 등을 통해 복원한 부트 룸 이미지

하지만 부트 룸은 찬란해던 리버풀의 전성기 붉은 제국을 만든 구단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후대에 기억되게 되었으며, 실제 부트 룸은 사라졌지만 샹클리, 페이즐리, 페이건, 달글리시, 모란과 에반스에 이르기까지 리버풀의 훌륭했던 감독 및 코치진들이 어이온 30여년이 넘는 장대한 리더십의 계승을 의미하게 되었다. 부트 룸의 감독과 코치진들은 후에 'The Boot Room Boys'로 불리게 되었고, BT Sport에서는 리버풀의 이러한 스토리를 담아 2022년 'The Boot Room Boys'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동 제목의 책을 각색하여 제작하였다.

3. 부트 룸 보이즈[편집]



파일:external/assets.lfcimages.com/6277__5656__04_lfc_shanks.jpg

리버풀의 위대한 '부트 룸' 코치진들
,좌측부터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로니 머랜, 루벤 베넷, 톰 손더스,




  • 케니 달글리시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85-86, 1987-88, 1989-90
    • FA컵: 1985-86, 1988-89
    • 풋볼 리그컵: 2011-12[7]
    • 풋볼 리그 슈퍼컵: 1985-86
    • FA 채리티 실드: 1986, 1988, 1989, 1990




4. 부트 룸에 관한 말, 말, 말[편집]


제가 젊은 청년으로 그곳에 있었을 때,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로이 에반스


부트룸은 꽤 활기찬 곳이었습니다.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문으로 들어가면 작은 공간이 하나 있고 그 왼쪽에는 부츠를 올려놓고 스터드를 바꿀 수 있는 나무 선반이 있었어요. 작은 방에 불과했지만 신비한 공간이었어요. 그들의 방식은 모두 달랐습니다. 특별했던 것 같아요, 다 같이 모여서요. 정말 대단했어요.

필 톰슨


부트 룸의 원칙은 항상 친절하라는 것이었어요. 로니 모란은 제가 나이가 들자 저를 거기서 항상 지도해 주셨었죠. 부트 룸은 경기가 끝나고 바로, 때로는 악수도 다 하기 전에 들어와 술을 마셔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또 다른 부트 룸의 가장 큰 원칙은 승리, 패배, 무승부였습니다. 방금 일어난 게임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죠.

필 톰슨


부트 룸은 아주 작은 방에 불과했습니다. 6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었죠. 물론, 각자 맥주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브라운 에일. 그게 그들이 마시던 것이었죠. 브라운 에일 한 병.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상대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부트 룸은 두뇌의 중심이었습니다. 클럽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먼저 그곳에서 논의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트 룸에서 논의되었죠. 전부다요. 선수들, 임금, 어떤 선수들과 계약하기를 원하고, 누구와 계약하지 않을 것인지도요.

윌리 스티븐슨


스태프들이 있는, 훈련 후 찾아가는, 섞이고 이야기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환상적인 장소였습니다. 상징적인 장소였죠. 사치스러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부트 룸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곳입니다. 축구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그곳에 들어가서 문제점을 씹습니다. 그들을 나쁘게 말할 수 없어요 그들은 매우 겸손했습니다. 그것이 리버풀 풋볼 클럽의 역사를 관통하는 것이죠. 사람들의 겸손함. 뭐 항상 약간의 마실 것도 포함되어 있었지만요.

케니 달글리시


축구에 대한 환상적인 지식, 삶에 대한 위대한 지식, 그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대단한 지식. 그들은 매우 똑똑하고, 정말로 의식적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모든 것들을 보고, 훈련장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을 기억했습니다. 훈련장에서 그들은 매일 그날 있었던 모든 세부 사항을 기록하며 A4 크기의 큰 책을 들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훈련을 시작했을 때, 누가 훈련을 했는지, 부상자가 누구인지, 그들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고, 모든 것이 그 백과사전 안에 있었고, 그것은 그곳에서 책으로 옮겨졌습니다.

케니 달글리시


리버풀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안필드에 갔을 때였습니다. 스태프들이 솔직히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예전 드레싱 룸을 보여주면서 저에게 말했죠. '좋아요. 여기가 당신의 작은 부트 룸입니다'라고. 제가 '그게 뭐예요?'라고 하니까 설명을 해주더군요. 감독과 코치들을 위한 경기장의 펍이라니.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위르겐 클롭


5. 여담[편집]


  • 밥 페이즐리는 부트 룸에서 진을 즐겨마셨다고 한다.
  • 부트 룸에서는 항상 술과 차를 마실 수 있었지만 과하게 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 조 페이건은 부트 룸의 풍경을 두고 "구리고 낡은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두 개, 바닥에 있는 접이식 카펫, 그리고 신문등에서 찢어온 상의를 헐벗은 모델 사진들로 장식된 벽과 달력."이라는 묘사를 남겼으며, 부트 룸은 심지어 축구화를 제외하면 축구 클럽의 일부라고 상상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6. 관련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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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에 리버풀시장까지 역임하게 되는 폴 오어라는 인물이 소유하고 있던 아마추어 축구 팀이 있었는데, 그 팀의 부상 치료를 안필드에서 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 감사의 표시로 오어가 페이건에게 기네스 맥주 상자들을 주었던 것.[2] 왼쪽 부터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로니 모란, 루벤 베넷, 톰 손더스[3] 이후 샹클리는 실질적으로 부트 룸에 상주하지는 않았고 본인의 감독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다.[4] 페이즐리는 유능한 전술가였고, 베넷은 샹클리의 절친으로서 감독과의 연결고리를 담당했으며, 트웬티맨과 손더스는 '첩보원'이라고 불렸던 리버풀의 눈이었다. 페이건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맡았다. 모란은 60년대 후반에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부트 룸에 합류하여 1군과 2군을 오가며 다방면에서 코칭을 도왔다.[5] 루벤 베넷과 톰 손더스 같은 초창기 부트 룸 인물들이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을 시기였으나 달글리시의 팀을 위해 자진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6] 로니 모란이 에반스 체제까지 1군 코치로서 자리를 지켰으나 울리에가 부임하며 팀을 떠났다.[7] 리버풀에서의 두 번째 감독 재임시절 만든 우승으로, 엄밀히 말하면 부트 룸의 유산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