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찰 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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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인물
1.1. 생애
2. 연희공략의 등장인물
2.1. 작중행적
2.2. 기타



1. 실제 인물[편집]


富察傅恒 (푸차 푸헝)
1723-1770

청나라의 정치인, 군인


1.1. 생애 [편집]


건륭제의 첫 황후인 효현순황후의 남동생이자 건륭제의 처남. 부찰 부항은 부찰 이영보의 자식 중 막내인 9남으로 태어났다. 부항은 건륭 5년부터 시위[1]로 일했고, 건륭 7년에 어전시위에서 내무부 총관, 원명원 사무 관리로 승진했으며, 다음해에 내무부 총관에서 호부 우시랑으로 옮겼고, 건륭 11년에는 군기대신, 호부 우시랑(곧 좌시랑으로 바뀜), 내대신에, 그 다음해에는 호부상서, 난의위(銮仪卫)[2] 장위대신(掌卫大臣), 의정대신, 전시독권가(殿试读卷官), 회전관(会典馆) (법/경전 관련 모임기구) 부총재(副总裁)와 정총재(正总裁)가 되었으며, 또 다음해에 누이였던 효현순황후가 사망하면서 태자태보에 올랐고, 이후 대소금천과의 전쟁에 파견되면서 일등충용공(一等忠勇公)의 작위를 받았다.

부찰 부항은 만주 귀족인 엽혁나랍씨와 결혼했다. 게다가 부인 나라씨는 당시 청 제일의 미녀로 유명했고 집안 또한 강희제 때 권신인 엽혁나랍 명주의 증손녀로 상당한 명문가였다.[3][4] 부항과 그녀는 매우 금슬이 좋았고, 시첩도 두지 않고 4남 2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부항은 건륭 34년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악성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죽었다. 건륭제는 부항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친히 그의 저택으로 갔다. 이후 가경 원년에는 3남 복강안이 사망하면서 군왕으로 증작[5]하고, 태묘에 배향되었다.

여담으로 이후 실제 역사에서 부항의 차녀는 숙가황귀비가 낳은 건륭제의 11황자 화석성칠친왕 영성[6]의 적복진이 되는데, 부항의 딸인 적복진 부찰씨는 만군기 상3기이자 효현순황후의 조카로, 영성은 건륭제 슬하의 황자들 가운데에서 정실부인의 출신성분이 가장 좋은 황자였다.[7] 차녀를 비롯해 부항의 자식들은 대부분 황실과 혼인했다. 그 중 아들 복강안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공주와 혼인하지 않았지만 건륭제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았고 죽어서 군왕이 된다. 다른 자녀들도 모두 총애를 받았는데, 장남은 복령안(福靈安)[8]은 부마(駙馬) (건륭의 사촌 유군왕 홍경 愉郡王 弘慶의 사위), 둘째 복륭안(福隆安)[9]은 부마(駙馬)(건륭의 4황녀 화석화가공주의 남편)-일등용공(一等忠勇公)-태자태보-병부상서-군기대신, 막내 복장안(福長安)[10][11]은 일등성정후(一等誠靖侯)-호부상서-군기대신, 자매 중 다른 1명은 철모자왕(鐵帽子王)인 예친왕(睿親王) 도르곤의 후손, 화석예공친왕 순영(和碩睿恭親王 淳穎)의 적복진이 되었다.


2. 연희공략의 등장인물[편집]


연희공략 등장인물
부찰 부항


파일:연희공략.부찰 부항.jpg

이름
부찰 부항(富察 傅恒)
배우
쉬카이
민족
만주족
가족관계
아버지: 부찰 이영보
어머니: 각라씨
누나: 부찰 용음
동생: 부찰 부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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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희탑랍 이청
아들: 부찰 복강안[1]

거주지
부찰부

연희공략의 등장인물이다. 건륭제, 위영락, 희탑랍 이청과 4각관계를 이루는 인물.


2.1. 작중행적[편집]


처음 등장했을 때는 자금성의 시위(侍衛). 명문가 출신에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외모 또한 준수해 궁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언니인 위영녕의 복수를 위해 입궁한 위영락이 복수를 위해 눈에 불을 키던 중, 언니의 유품에서 부항의 물건을 발견하면서 자연스레 의심을 받는다. 이후 영락 때문에 칼에 찔리는 부상까지 입지만 용서하고, 그녀와 함께 위영녕을 죽게한 진범을 찾아내면서 서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대명문가 부찰 가문의 적자인 부항과 포의인 영락의 신분 차는 너무나 컸기에, 누나이자 황후인 용음조차도 처음에는 '영락을 정실로 들이면 부모의 반대가 극심할 것이며, 첩으로 들인다 해도 영락 같이 기가 센 여인이 고작 첩의 자리를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대했으나 부항이 뜻을 꺾지 않자, 용음은 부항의 뜻을 존중하게 된다.

하지만 자형인 황제는 겉으로는 '팔기의 다른 여자는 아내로 취해도 되지만 위영락 그 사특한 계집만은 안 된다'고 반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본인도 영락을 노리고 있었기에 부항과 영락의 사이는 위기를 맞게 된다. 영락이 유태비 살해 사건으로 신자고로 강등되었을 때에도 부항은 꿋꿋이 영락을 기다리며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나, 하필 이청의 계략으로 영락과의 만남을 황제에게 들켜버렸다. 궁녀와 시위의 사통은 중죄였기에, 황제는 영락에게 부항과의 연을 끊던가 죽던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명령한다. 위영락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건륭제에게 희탑랍 이청과 혼인을 하겠다고 함으로써 위영락을 살리고 이청과 혼인을 한다. 막나가는 부인 이청 때문에 아끼던 시녀 청련도 잃고, 위영락과도 끝내 이어지지 못 하는 상당히 고통받는 캐릭터. 그런 부항에게도 죽음을 무릅쓰고 영락과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부항은 기어코 영락을 죽이려는 건륭제로부터 영락을 살리기 위해 이청과 결혼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위영락의 마음이 부항에게서 완전히 돌아선다. 결혼 초에는 이청에게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이 있어 잘해주려고 했지만, 장춘궁 궁녀 시절과는 달리 막나가는 이청 때문에 툭하면 싸우고 끝내 아끼던 시녀 청련까지 잃게되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다.

심지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이기고 왔더니, 영락은 건륭제의 후궁이 되어있어 충격을 받는다.[13]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항은 여전히 영락만을 위해 살아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락을 돕는다. 영락이 후궁이 된 이후에도 자신과 사통했다고 의심받자 목숨을 걸고 건륭제에게 직언하여 의심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녀가 건륭제의 냉대를 받아 연희궁이 어려워졌을 때 이것저것 도움이 되는 물건을 보내주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그야말로 일평생을 영락에게만 헌신한 셈.[14]

워낙 능력이 좋은 인물이기에 나가는 전쟁터마다 승리를 거둬 빠른 속도로 승진을 한다. 또한, 건륭제가 남행을 나설 적에 탔던 배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 건륭제의 목숨을 살렸고, 미얀마 독충에 중독된 위영락을 위해 해독제까지 만들어 살린다. 그러나 해독제의 재료를 찾는 와중에 독에 중독되고, 치료를 받지 않은 채 전쟁터에 나가 싸운다. 이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그 독 때문에 결국 사망한다. 친구인 색륜 해란찰이 위영락에게 전한 부항의 유언은 "영락... 난 한 평생 너를 지켰어, 다음 생엔 네가 나를 지켜줄래?" 였다.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는 이미 죽었는지라 아들 복강안과 이복남동생 부찰 부겸에 의해서만 언급된다. 여기서 아들 복강안은 부항의 친아들이 아니라 희탑랍 이청이 시동생인 부겸과 불륜을 저질러 태어난 부겸의 아들로 나온다. 자신이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영웅인 부항의 자식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던 복강안은 이 사실에 충격을 받고, 결구 아무 죄없는 소화공주를 향한 복수를 그만두고 친부인 부찰 부겸에게 절연을 고한다.


2.2. 기타[편집]


자(字)는 춘화(春和)인데 의외로 여성적이다. 그런데 실존 인물의 자도 마찬가지로 춘화다. 부항의 자인 춘화는 작중에서 순비가 그에 대한 애증을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나왔다. 순비는 부항 생각이 날 때마다 찻물을 손가락에 찍거나 화로의 재를 손에 묻혀 부항의 자를 쓰는 버릇이 있었다. 냉궁에 유폐되었을 때에도 손에 찻물을 발라 부항의 자를 썼다.

부항은 실제 역사에서처럼 어린 나이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건륭제의 개인적인 총애와 가문의 후광 외에도 본인 스스로의 능력도 좋았기에 그렇다.

드라마에서 누나인 용음과 나이 차에 대해서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10살이다.

타인이 품은 악한 마음의 크기를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남매가 닮았다. 용음은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다른 비빈들의 악의를 헤아리지 못하다 영종을 잃고 본인도 자살했다. 부항은 이청의 진면모를 모르고 결혼했다가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보냈고, 단순한 선의로 자살하려는 침벽을 구했다가 애꿎게 침벽의 복수에 휘말렸다.

드라마 설정에서 부항의 아버지인 부찰 이영보는 살아있는 설정이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부찰 이영보는 부항이 갓난아기였을 때 이미 사망했다.

[1] 처음 남영시위(蓝翎侍卫)에서 이등시위(头等侍卫)로 승진[2] 금의위 같은 특별사법기구[3] 건륭제의 후궁인 서비 예허나라씨의 동복 자매로, 서비의 둘째 언니가 부항의 부인이다.[4] 부항의 가문인 부찰씨도 명문가로 고조부 합시칠(高祖 哈什屯)은 의정대신, 증조부 미사한(曾祖 米思翰)는 청 초기 중신으로 내무총관과 예부시랑을, 강희제 친정 직후에 호부상서와 의정대신을 역임하였으며, 백부 마제(伯父 馬齊)는 강희8년 공부원외랑을 초임으로 산서순무, 좌도어사, 병부상서, 호부상서, 무영전대학사, 보화전대학사, 태자태부 등을 역임한 삼조원로(三朝元老)였다.[5] 아들을 군왕으로 추증했는데, 아비를 그보다 낮게 하는 법도 없고, 유교에서 원래가 아들의 공으로 아비를 올리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6] 조선인 출신 김신다리의 후손인 숙가황귀비 금가씨의 소생.[7] 효현순황후의 아들들은 모두 요절했고 계황후의 친정 휘발나랍씨는 그리 좋은 가문이 아니었다.[8] 건륭 12년 다라액부(多羅額駙)가 되었으나 준가르 토벌에 참전하면서 건륭 26년까지 혼례가 연기, 건륭 21년 삼등시위(三等侍衛), 건륭 24년 이등시위(二等侍衛)에서 일등시위(頭等侍衛)로 승진, 건륭 26년 3월 다라유군공왕 홍경(多羅愉恭郡王 弘慶) (강희제의 황15자 다라유각군왕 윤우(多羅愉恪郡王 允禑)의 아들의 적장녀와 혼례, 건륭 27년에 雲騎尉의 작위를 얻었으나, 건륭 31년에 사망[9] 건륭 23년에 화석액부(和硕额驸)화석공주의 부마, 건륭 25년 3월에 순혜황귀비 소씨의 소생 화석화가공주(和硕和嘉公主)와 혼례(2년전 '액부'는 부마로 삼을 예정이라는 공지), 건륭 33년 병부상서(곧 공부상서로 바뀜) 겸 군기대신, 건륭 35년 아버지 부항 사망시에 큰형 복령안이 이미 사망한 상태라 일등충용공(一等忠勇公)의 작위을 계승, 건륭 38년 태자태보에 올랐으며, 건륭 41년 공부상서에서 병부상서로 옮겼고, 건륭 49년에 사망[10] 복강안과 동일한 외형이기에 건륭제가 어릴때부터 궁중에서 키웠으며, 후에 藍翎侍衛이 되었다. 건륭 44년 공부우시랑이면서 정황기 한군기 부도통(正黃旗漢軍副都統)가 되었고, 건륭 45년 군기처로 파견 학습를 시작하면서 상으로 자금성에서 기마를 허가 받았으며, 건륭 48년 호부좌시랑, 건륭 49년 5월 난의위 장위사 대신(鑾儀衛 掌衛事大臣)이 되고, 6월 내대신에 올랐으며, 7월 군기장경으로 감숙 회족의 반란 진압에 나갔다. 건륭 51년 윤7월 호부상서에, 12월 정백기 한군기 부도통(正白旗漢軍副都統)에, 건륭 53년 3월 몽군기 양홍기 도통(鑲紅旗蒙古都統)에서 만군기 정홍기 도통(正紅旗滿洲都統)로 옮겼으며, 건륭 55년 태자소보(太子少保), 건륭 59년 만군기 양백기 도통(鑲白旗滿洲都統)으로 승승장구하였으나, 가경제 즉위 이후에 뉴호록 화신의 당으로 분류되면서 끈떨어진 신세가 된다. 가경 3년 일등후작(一等侯爵)에 봉하여지고(이때는 건륭제가 상황제로 존재), 가경 11년 위장총관(圍場總管), 가경 12년 열하 부도통(熱河副都統)로 고치고, 가경 13년 고북구 제독(古北口提督)를 대리하며, 가경 14년 위장총관(圍場總管) 겸 마란진 통병(馬蘭鎮總兵) 및 내무부 총관 대신(總管內務府大臣)으로 고치고, 가경 18년 마란진 총병(馬蘭鎮總兵) 겸 고북구 제독(古北口提督), 가경 20년 한군기 정황기 부도통(正黃旗漢軍副都統) (1년전 만군기 정람기 부도통(正藍旗滿州副都統)) 및 건예영 총통대신(健銳營總統大臣), 가경 22년 사망[11] 복장안은 위에 3명의 형들이 정실 나랍씨에 소생인 것과는 달리 첩실 이씨의 소생[12] 첩 소생의 이복동생이다.[13] 황제가 일곱번이나 퇴각을 권했음에도 부항이 이토록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유는 황제에게 보상으로 '이청과 이혼하고 대신 영락과 재혼하게 해 줄 것'을 요구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14] 이복동생인 부찰 부겸 역시 부항의 사후 시점인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 부항은 살아생전 내내 영락만을 바라봤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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