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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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래
3. 줄거리
4. 변형
5. 여담


1. 개요[편집]


팔랑귀와 관련된 우화 가운데 하나로, 영제는 "The miller, his son and their donkey"(방앗간 주인, 아들, 당나귀).


2. 유래[편집]


이 이야기의 가장 오래된 버전은 중세 아랍의 전승에서 찾을 수 있으며, 주인공인 아버지의 이름이 '주하'이다. 기원전 5세기에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희극인 '개구리'가 이 이야기에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이야기가 유럽으로 넘어와 최종적으로는 프랑스 작가인 라퐁텐의 우화집에 실리면서 전세계에 전파되어 각자의 문화권에 맞게 번안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팔려가는 당나귀"로도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가 배경으로 현지화된 바람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로 많이 오해하고 있다. 또 이솝 우화로 잘못 알려져도 있다.


3. 줄거리[편집]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 한 마리를 내다 팔기 위해 장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주막을 지날 때 어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멍청한 사람들 좀 봐. 당나귀에 타고 가면 좋을 텐데..."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갔다. 얼마쯤 가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정자에 앉아 있다가 한 마디씩 했다.

"하여튼 요즘 젊은 것들이란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아버지는 걷고 있는데 아들이란 놈이 편하게 앉아서 가다니..."

"이놈아! 너 당장 당나귀에서 내리지 못해!? 어서 내리고 늙은 아버지를 태워 드려라!"

아버지는 당나귀에 올라타고 아들을 걷게 했다. 얼마쯤 더 가자 빨래터에 아낙네들이 모여 있었다.

"가여워라. 조그만 아이의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

"저런 매정한 아비 같으니..."

이 말을 들은 부자는 함께 당나귀에 탔다. 얼마쯤 더 가자 우물가에 모인 동네 처녀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조그만 당나귀 한 마리에 두 사람씩이나 타다니. 당나귀가 불쌍해. 저렇게 가다간 얼마 못 가서 쓰러질 걸."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의 다리를 묶어서 기다란 막대기에 끼워 함께 짊어지고 갔다. 마을 입구의 다리 위에 이르렀을 때 마을 사람들이 이 진귀한 구경거리에 모두 모여 웃고 떠들며 부자를 비웃었다. 이에 놀란 당나귀가 마구 발버둥치자 당나귀를 묶고 있던 끈이 끊어졌고, 당나귀는 그대로 강물에 떨어져 빠져 죽고 말았다.



4. 변형[편집]


여느 전래동화나 명작동화들이 원래 그렇듯 이 이야기에도 여러가지 변형이 있다. 부자가 아니라 부부, 형제이거나, 당나귀가 아닌 이나 노새인 경우도 있다. 또한 부자가 당나귀를 팔게 된 계기가 있는 버전도 있는데 가뭄이 들어 곡식이 말라죽자 방아를 찧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진 것 때문인 경우도 존재한다.

이들을 보고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도 방물상, 백수, 노인, 연인들, 떠돌이 상인 등 여러가지로 혹은 순서가 바뀐다.

  • 방앗간 주인과 그의 아들이 당나귀를 내다 팔기 위해 끌고 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그걸 본 백수들이 한 마디 했다.

백수: 세상에, 이런 바보들을 봤나? 당나귀를 뒀다 뭐하나? 힘들게 걸어가지 말고 타고 가는 게 옳은데.....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갔다.[1]

그렇게 밭 근처를 지나가는데 이번엔 농부들이 그걸 보더니 또 한 마디 했다.

농부 1: 저런, 늙은 애비는 걷고 새파랗게 젊은 놈만 당나귀를 타고 가네!

농부 2: 지 편하자고 늙은 애비를 걷게 하다니! 아니 뭐 저런 불효막심한 패륜아가 다 있어!

농부 3: 거, 아들 좀 똑바로 가르치시오!

농부 4: 이 녀석아! 너 당장 당나귀에서 내려오지 못해? 어서 늙은 아버지를 당나귀에 태워 드려![2]


이에 아들이 내리고 아버지가 당나귀에 타고 갔다.

또 그렇게 얼마쯤 가니 이번엔 광장에 모여 연애 중인 연인들이 또다시 화를 냈다.

연인들 1: 비정한 인간, 어떻게 아버지가 되어서 어린 아들을 걷게 놔둘 수가 있어요?

연인들 2: 저것 좀 봐! 자기만 당나귀에 타고 어린 애는 걷게 하다니, 정말 못된 아버지야! 저러고서도 아들에게 효도하라고 하는군!

연인들 3: 아이고, 저 아이가 얼마나 다리가 아플까?

이에 이번에는 부자(父子)가 같이 당나귀에 올라탔다.[3]

이번에는 그것을 본 한 떠돌이 상인이 또 한 마디를 했다.

떠돌이 상인: 이 못된 사람들(동물학대자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두 사람이서 당나귀를 타다니, 여태껏 일한 짐승이 불쌍하지도 않소? 차라리 당나귀를 매고 가시지....


이에 부자는 정말이지, 진짜로 당나귀의 다리 둘을 막대기에 묶어 어깨에 메고 갔다.

그 상태로 시장 근처의 강에 있는 다리를 지나가던 중, 강에서 놀던 동네 아이들과 오리들과 거위들과 고니들과 펠리컨들이 이 모습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4]

아이 1: 저것 좀 봐!

아이 2: 야, 저기 사람들이 당나귀를 매고 간다! 하하하하!!!

아이 3: 푸하하하, 정말 바보 같아!

오리 1: 꽥꽥, 저 인간들 좀 봐!

오리 2: 야, 저거 참 바보같군!

고니 1: 이런 별난 구경거리는 처음이야.

거위 1: 꽉꽉꽉꽉! 저런 바보 같은 인간들이 있다니!

거위 2: 맞아, 태어나서 저런 구경거리는 처음이야!

고니 2: 내가 봐도 바보 같아.

펠리컨: 하하하하, 저거 완전 웃긴다야. 저들 참 바보가 틀림없어!


그러자 아이들과 새들의 웃음소리에 놀란 당나귀가 입에서 거품을 뿜으며 날뛰었다.

아버지: (당나귀를 붙잡으며) 이 당나귀놈아, 얌전히 좀 있지 못해!


그럼에도 당나귀가 오히려 더 심하게 날뛰는 통에 막대기가 부러졌고 부자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당나귀가 강물에 떠내려갔다.

아버지: 아이고, 이 일을 어쩌냐? 남의 말만 들어먹다 이 지경이 됐구나!


그걸 보고 마음이 상한 부자는 풀이 죽은 채로 터덜터덜 집에 갔다.

  • 여담으로 판본마다 마지막에 당나귀 등에 들고 가는 장면이 변형을 많이 받는다. 당나귀가 떨어져서 죽지는 않지만 다치는 바람에 제대로 팔지도 못했다는 버전이나 그냥 그대로 도망쳐버렸다는 버전, 당나귀를 맨 채 비웃음만 받으며 끝나는 버전이나 아예 당나귀랑 부자가 같이 물에 빠지는 버전도 있다.


  • '뚱딴지 명심보감'에서는 뚱순이가 찰흙으로 사람을 만들 때 아빠는 옳게 고쳐 주었지만, 뚱딴지가 제 멋대로 고쳐주어서 그대로 만들었다가 작품이 괴물 같이 나와버려서 울상이 되었을 때 엄마가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기선 여러 소리를 들은 뒤에[5] 부자가 당나귀 등에 같이 타고 가다가 우연히 통나무 다리에 이르었을 때, 거기서 당나귀가 무게 중심을 버티지 못하면서 셋이서 세트로 추락했다는 줄거리다.


처음에는 당나귀를 메고 걸어갔는데 이것을 보고 웃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마을 사람1: 에헤헤헤! 당나귀가 제일 편하게 가는구먼! 당신들은 좀 정신이 나간 것 같아~.


아들은 서둘러서 당나귀를 타서 당근으로 유혹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가는데 어떤 사람이 이 장면을 보고 아버지와 아들을 부르고 이렇게 말했다.

마을 사람2: 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나이 든 사람이 타고 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말을 들은 아들은 당나귀에서 내리고 아버지는 당나귀를 타면서 시장을 가는데 또 다른 사람이 이 장면을 보고 웃은 다음 이렇게 말했다.

마을 사람3: 당나귀가 있는데 왜 걸어가죠? 같이 타고 가라구요~.


할 수 없이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타고 시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또 다른 참견꾼이 또 한마디를 하고 말았고, 결국 둘 다 당나귀 등에 내려서 걸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또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을 사람들: 하하~. 저 바보같은 사람들이 당나귀 꽁무니를 쫓아가네! 하하하~!


결국 아버지는 모든 참견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그만들 좀 하고 당신들 일이나 신경쓰라구요~!


결국에는 아버지와 아들은 탑승용 수레에 연결된 2인용 자전거를 끌고 온 다음 당나귀에게 수레를 태우고 둘이서 무사히 시장으로 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뭐라든 상관마시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팔랑귀를 비판하는 원래 내용을 반대로 바꿔서, 어떤 상황에도 트집을 잡는 '프로불편러'로 변형한 만화도 있는데 밈이 되었다.
파일:DAo570dad058718f.jpg
뭘 해도 욕먹는 세상[6]

5. 여담[편집]


한컴타자연습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고 결국은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다가 당나귀가 물에 빠져 죽고 남은 부자가 풀이 죽은 채로 귀가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생각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는 설정.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로 사자가 농부의 딸에게 반해서 장가를 들려고 하자 이 귓속말로 일러준 것을 농부가 '딸이 이빨과 발톱을 뽑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그러고는 감히 남의 딸을 넘봤다면서 농부에게 매만 오지게 맞고 개관광당하고 쫓겨나는 이야기나, 금수저로 태어난 한 청년이 부모가 물려준 막대한 재산들을 흥청망청 팡팡 써제꼈다가 남은 재산이라곤 겨우 외투 한 벌밖에 안 남게 된 그가 한겨울의 어느 따뜻한 날, 제비 한 마리[7]를 보고 외투를 팔았으나[8] 매서운 동장군이 몰아친 며칠 후에 며칠 뒤 얼어죽은 그 제비를 보고 슬퍼했으며, 잠시 후 이 청년도 동사한 이솝 우화도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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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우에 따라 백수들이 아닌 여자들이 강에서 빨래를 하다가 그 광경을 보고 말하자 아버지가 "당나귀를 끌고 가는 게 어째서 우습단 말이오?" 라고 말하자, 여자들은 "자상한 아버지라면 당나귀에 자기 아들을 태우고 가야죠." 라고 대답한다.[2] 경우에 따라 이렇게 일갈하며 부자 중 한 사람의 머리를 지팡이로 때리는 것도 삽입된다.[3] 경우에 따라서는 한 나그네가 두 사람이 함꼐 타고 될 텐데 왜 고생하냐고만 하는 경우도 있다.[4] 이 부분에선 버전에 따라 지금까지 나왔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들어서 웃어대기도 한다.[5] 아주머니를 만날 때는 여러 명의 아주머니가 아닌 아이를 포대기에 메고 있는 한 명의 아주머니가 힘이 좋아 보이는 당나귀를 왜 둘이 같이 안 타느냐고 의아해하는 것으로 상황과 대사가 약간 바뀌었으며, 한 무리의 사나이들과 만나는 부분은 생략되었다.[6] 원본은 'the man. the wife, the donkey, and the critics'으로 불리는 어떤 제3세계쪽에서 그려진 우화를 삽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는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기출변형성 밈도 약간이나마 보이는 편. '프로불편러' 문서에도 있다.[7] 이 제비도 어리석은 제비로, 동료들은 가을이 되자 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갔지만, 이 녀석만은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동료들이 떠나는 것도 못 보고 혼자 남아버렸다.[8] 버전에 따라 외투를 판 뒤 그 외투를 판 돈으로 한 음식점에서 배를 채웠다는 것이 삽입되기도 한다.[9] 논리야 놀자에 수록되었으며, 청년이 얼어죽은 제비를 보며 어리석기는 우리 둘 다 마찬가지라며 슬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