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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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不動明王
산스크리트어
अचलनाथ(아짤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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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부 도지(東寺)에 모셔진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부동명왕상(893년 조성)

1. 개요
2. 일본 진언종
3. 기타 국가
4. 기타 사항



1. 개요[편집]


불교의 한 신앙대상. '부동명왕'은 산스크리트어 아짤라나타(Acalanātha '움직임 없으신 보호자')를 한자로 번역한 명칭인데, 무동명왕(無動明王), 부동존(不動尊), 부동금강명왕, 부동존, 무동존, 부동사자, 무동사자 등 다른 한자 표현도 있다. 산스크리트어 발음을 한자로 음자하여 아차라낭타(阿遮羅囊他)[1]라고도 하였다. 원래는 힌두교 시바 신의 이명[2]이지만 밀교에서는 대일여래의 사자 혹은 분신(화신)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부동(움직이지 않음)이란 말은 깨달음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굳건히 유지된다는 뜻이자, 보리심이 견고하고도 지혜가 도요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리고 명왕의 명(明)은 진언(만트라)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대일여래지혜 그 자체를 뜻하는데, 대일여래지혜는 일체의 번뇌를 멸하고, 어둠이 없는 빛으로 가득한 밝은 세계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 지혜가 뛰어남을 찬양하여 명왕(明王)이라 부른다.

부동명왕의 녹흑색 신체는 '번뇌진흙 속에서 중생을 구하려는 자비'를,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리심'을, 화염은 '위대한 지혜', 오른쪽으로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변발로, '오로지 중생구제에 몰두함'을, 머리 위의 연꽃은 '분노상의 안에 감춰진 지혜', 이마의 주름은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을 배려함'을, 감고 있는 한쪽의 눈은 '수행하고 있음'을, 두 눈을 모두 뜨는 경우는 '수행을 완성했음'을, 견색은 '모든 중생을 이끌어 바른 길로 이끄지만, 때로는 잘 따르지 않는 이들을 강제로 묶어둠'을, 항마검(쿠리가라)는[3] '삼독과 욕심, 분노, 어리석음번뇌 등 모든 장애를 끊어냄'을 상징한다고 한다.

부동팔대동자라고 해서 좌우 협사인 제타가동자(制吒迦童子)와 긍갈라동자(矜羯羅童子)에 다른 여섯 동자[4]를 합한 팔대금강동자(八大金剛童子)라는 권속들이 있다. 이 동자들은 모두 사지(四智)[5]와 사바라밀(四波羅密)[6]의 덕분(德分)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동명왕의 권속은 8동자, 36동자, 48사자가 있는데, 이들 중에는 방금 전 서술한 제타가동자와 긍갈라동자도 포함된다.

그러면서 오대명왕의 중심점에 해당되는 명왕으로 번뇌악마를 응징하고 밀교의 행자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오른손에 검을 쥐고 왼손에는 삭(索)을 쥐었고 부릅뜬 눈과 뾰족한 어금니에 윗입술을 깨문 무서운 형상을 하였다. 가루라염이라고 하는, 가루라가 뿜어내는 맹염이 있는 것은 악마를 박멸하는 위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2. 일본 진언종[편집]


일본에서는 대중적으로 숭배하며, 부동(不動, 후도)이란 말이 붙은 지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도쿄도의 '메구로후도(目黑不動)'. 오대존명왕 중 중심이고 제일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불교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뭔가 생긴 게 무진장 멋나고 세 보이잖아? 기도하면 뭔가 액이 사라질 거야.' 생각하여 시새우듯이 너도나도 부동존을 모셨다. 그 결과 원래 가장 높게 모시던 명왕이 오대존명왕 중 가장 대중적인 신앙대상이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진언과 수인이 일반인들에게도 아주 널리 알려졌다. 그 때문에 현대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등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수인과 진언이 부동명왕의 것이다.

진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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नमः समन्त वज्राणां चण्ड महारोषण स्फोटय हूं त्रट हां मां

namaḥ samanta vajrānāṃ caṇḍa mahāroṣaṇa sphoṭaya hūṃ traṭ hāṃ māṃ

나마하 싸만따 와즈라남 짠다 마하로싸나 스폿따야 훔 뜨랏 함 맘


일본에서는 이 진언을 '나우마쿠 산만다 바사라단 센다 마카로샤타 소와타야 운 다라타 함 맘'으로 음역했다.

3. 기타 국가[편집]


한반도 역사상 불교가 가장 성했던 고려시대에 밀교 의례가 퍼짐에 따라 부동명왕을 포함하여 명왕 신앙이 어느 정도 있던 듯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거의 잊혔다.

국보 제210호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紺紙銀泥不空羂索紳變眞言經 )은 1275년에 고려 충렬왕이 발원하여 짙은 남색 종이에 은가루로 사경한 최고급 불경 유물인데, 13권의 권두에 부동명왕 그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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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10호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권두에 그려진 부동명왕 그림

2012년에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8호 도봉서원[7]에서 고려시대 금강령[8]이 발굴되었는데, 제작 수준이 높거니와 보기 드물게 오대존명왕도 금강령에 새겨져 있어 주목받았다.[9]# 이런 유물을 보면 고려시대에는 부동명왕 등 오대존명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조형으로도 표현했음이 분명하다.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는 유달산(鍮達山) 정상 부근 바위에는 일제강점기, 정확히는 1931년에 일본인들이 만든 부동명왕, 고보(弘法) 대사[10] 마애상이 있다. 여기 있는 부동명왕과 고보대사 마애상은 일본 시코쿠[11]에 있는 유명한 88 사찰 순례를 대신하고자 만든 것이다. 시코쿠 88 사찰 순례는 일본어로 오헨로(お遍路)라고 불리는데, 일본에서는 대중적인 불교 신심행위로 유명하다.[12] 그러나 사람이 직접 시코쿠까지 가서 걸어다니며 88개 사찰을 순례하기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오헨로를 단순화하여 대리 순례를 만들었다. 특정공간 안에 오헨로 88 사찰에서 떠온 흙과 각 사찰에서 본존으로 모시는 불보살의 상 88좌를 순서에 맞게 배열하고, 마지막으로 고보대사의 상을 안치하여 고야산 참배까지 대체하도록 하는데, 이를 일본어로 오스나후미(お砂踏み)라고 부른다.

유달산에 있는 부동명왕과 고보대사 마애상도 오스나후미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목포에 사는 일본인들이 직접 일본 시코쿠까지 가지 않아도 침배할 수 있도록, 유달산 등산로를 따라 오헨로의 각 사찰에서 떠온 흙과 불상 88좌를 안치하여, 유달산을 오르면서 88좌 불상을 참배하고 정상에서 고보대사상을 참배하도록 하였다. 고보대사상 옆에 부동명왕상을 새긴 이유는, 고보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던 길에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는데 부동명왕이 도와주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광복에 따라 일본인들이 귀국한 후 일본인들이 유달산에 만든 불상을 파괴하거나 다른 곳으로 치웠기 때문에, 바위에 새긴 고보대사와 부동명왕의 마애상만 남았다.[13] 유달산 마애상처럼 국내에 있는 부동명왕 조형물은 일제강점기 유물인 경우가 꽤 있다.

당연히 한국에서 부동명왕의 인지도는 낮다. 한국에서 부동명왕 신앙은 창가학회[14], 일련정종 등 일본계 불교 종파를 믿는 극소수 사람들 사이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밀교가 가장 온전히 남은 티베트 불교에서는, 그냥 경전에서만 언급될 뿐 실제 신앙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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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명왕의 인기가 이처럼 일본에서 유독 높았기에 일본에는 조각이나 그림으로 많이 묘사하였다. 그 중에는 참으로 형상이 무시무시한 것들도 있다. 보통 업화와 같은 불길이 온 몸을 두른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가루라염'이라는, 가루다가 뿜는 불꽃이라고 한단다. 왼쪽 입술이 윗 입술을 물고 오른쪽은 무섭게 찡그리며, 오른 눈은 위를, 왼 눈은 아래를 노려본다. 진짜 불은 아니고 모든 부정을 태워 없앤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검의 이름은 구리가라검(俱利伽羅劍)이다. 그냥 닥치고 파괴신 기믹이다.

4. 기타 사항[편집]


일본 불교에서는 부동명왕을 닭띠생 사람들의 수호자로 받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일본의 만화가인 나가이 고가 닭띠인데, 만화 데빌맨을 집필하면서 주인공이 악마인 작품을 그리려니 아무래도 꺼림직해서 액을 예방하려는 의미로 주인공의 이름을 부동 명(不動 明) 즉 "후도 아키라"라고 지었다고 한다.

오덕계, 특히 슈로대 팬들은 공격을 하는데 몸은 안 움직이는 연출을 보이는 기체를 보고 부동명왕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갓마즈나 제3차 슈로대 Z의 건담 헤비암즈 개(EW)

이나즈마 일레븐에 등장하는 벤치요정 후도 아키오는 이름을 그대로 부동명왕(不動 明王) 따왔으며, 더빙판의 로컬명도 '왕'자만 뺀 부동명.

용과 같이 시리즈의 등장인물이자 야쿠자 조직 동성회의 6대 회장인 도지마 다이고의 등 문신에 부동명왕이 있고 제로에서는 부동명왕의 벨트라는 아이템이 나온다.

배가본드에선, 어린 사사키 코지로에게 팔을 베인 후도 유게츠사이가 스스로를 '부동명왕의 사자'라 칭하고 다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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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遮의 원음은 '차'지만 한국 불교계에서는 관용적으로 '자'라고 읽기도 하기 때문에 '아자라낭타'라고도 한다.[2] 이와 관련된 설화로는, 대일여래의 명으로 금강살타의 화신인 강삼세명왕이 파괴신 시바를 굴복시켜 불교에 편입시켰고, 시바화신 중 하나를 부동명왕으로 편입시켰다고 한다. 그러면서, 방금 전 서술한 항삼세명왕은 시바를 발로 밟은 형상으로 표현되기에 그럴 듯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3] 부동48사자 중에는 쿠리카라용왕이 있는데, 쿠리가라용왕은 흑룡이 부동명왕의 쿠리가라검을 온몸으로 감고 삼키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흑룡은 부동명왕이 변신한 모습이라고 하므로 쿠리가라 용왕은 부동명왕의 화신으로 알려졌다.[4] 혜광(慧光), 혜희(慧喜), 아누다(阿耨多), 지덕(指徳), 오구바아(烏倶婆誐), 청정비구(清浄比丘)[5] 4가지 원만한 깨달음의 지혜: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6]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 등 4가지 바라밀[7] 1573년, 조광조를 기리고자 세웠으나 1871년, 흥선대원군서원 철폐령을 내리면서 헐린 서원. 지금 있는 서원 건물은 1972년에 재건한 것이다.[8] 손잡이를 금강저 모양으로 만든 작은 종. 금강저 항목 참조.[9] 이런 불교 유물이 하필 서원 자리에서 발굴된 까닭은, 도봉서원 터가 원래 영국사(寧國寺)라는 이 있던 자리기 때문이다. 극렬 성리학자 조광조를 모신 서원 자리가 절 터였다는 점이 얄궂은 일이다.[10] 774~835. 헤이안 시대 고승이며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구카이(空海)대사를 가리킨다. 일본 밀교의 시조이며, 일본인들에겐 사후에 조정이 내린 시호인 '고보(弘法) 대사'로 더 유명하다. 서예에 능하여 일본에는 "고보대사는 을 가리지 않는다.", "고보대사도 붓을 잘못 놀릴 때가 있다." 하는 속담마저 있다. 고보 대사가 일본 천태종의 개조 사이초대사에게 보낸 편지는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가 모두 높아 일본 국보로 지정받았다.[11] 고보대사가 시코쿠 가가와현 출신이기 때문이다.[12] 시코쿠 전역에 있는, 고보대사가 창건했거나 중창했다고 전하는 사찰 여든여덟 곳을 순서에 따라 참배한 뒤, 마지막으로 고보대사가 창종한 진언종의 본산 고야산을 참배하여 마무리 짓는다. 진언종에서는 '고보대사는 고야산에서 선정에 들었을 뿐 아직도 살아있다.'고 말하므로, 오헨로는 고보대사의 흔적을 좇아 88사찰을 돌아다닌 뒤 마지막으로 고보대사 본인을 찾아가 인사하는 것으로 끝내는 셈이 된다.[13] 사실 이 마애상도 광복 이후 파괴하려고 했는데, 일꾼이 부수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이걸 부수면 화를 입을 것 같다." 하면서 내려왔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도 더 손대지 않고 내두었다.[14] 창가학회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창가학회의 신앙의 대상은 오직 묘법연화경에 귀의(남묘호렌게쿄) 뿐이다. 나머지 불, 보살, 신 등은 어디까지나 묘법연화경에 귀의한 법화경 행자를 지키는 존재인 제천선신의 역할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