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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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한자 : 奉元寺 / 로마자 : Bong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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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2. 역사[편집]


889년(신라 진성여왕 3년)에 도선국사가 금화산 서쪽에 있는 신도의 집을 희사받아 창건한 뒤 반야사(般若寺)라 했다고 한다. 그뒤 고려말 공민왕 때 태고(太古) 보우가 중건·보수하고 금화사라고 개칭했다. 1651년 봄경, 큰 화재로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1655년 다시 중건하였다.

구한말에는 개화파인 이동인[1]이 대각사에 주석하여, 이곳 봉원사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많은 개화파 인사들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근대문명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자주 모여 토론을 벌이며, 갑신정변도 모의하기도 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 때문에, 서재필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곳 봉원사를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2]

6.25전쟁때 많은 피해가 있었는데, 복원을 해서 지금의 봉원사가 되었다.[3]

한편 신도들 사이에선 봉원사를 새절이라 부르기도 하나, 서재필의 자서전에서도 새절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서, 언제부터 새절이라고 불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봉원사에 있는 동종(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4호)은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조성하기 위해 철거했던 가야사의 종이었다.

이 절에서 이름을 따온 봉원천이라는 하천도 있으나[4] 현재는 전구간 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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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학계에서는 이동인이 친일파나 당시 일본의 이중스파이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있다.[2] 참고자료[3] 이 때,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공덕리(현재의 염리동) 소재 아소당의 본채 건물을 옮겨와서 현재 대방으로 사용하고 있다.[4] 서대문구 창천동창천이 바로 이 하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