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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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면천(沔川)이고, 자는 의숙(毅叔), 호는 구암(久菴)이다. 관직은 호조정랑(戶曹正郞),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으며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여묘살이를 하였다. 1453년(단종 1)에 조정에서 복한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첩(孝子帖)을 내렸으며,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져 명제(明帝)의 칭찬이 담긴 국서를 받았다.

1458년(세조 4)에 복한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를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金馬面) 신곡리에 건립하였다. 복한의 효자비는 한국 최초로 세워진 것으로 충남문화재자료 제33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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