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 컨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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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BobbyConvey_776266.jpg

이름
보비 컨베이
Bobby Convey

본명
로버츠 프랜시스 컨베이
Robert Francis Convey
출생
1983년 5월 27일 (40세) /
미국 펜실베이니아필라델피아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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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5cm
직업
축구선수 (윙어 / 은퇴)
소속
선수
DC 유나이티드 (2000~2004)
레딩 FC (2004~2009)
산호세 어스퀘이크스 (2009~2011)
스포팅 캔자스시티 (2012~2013)
토론토 FC (2013)
뉴욕 레드불스 (2014)
국가대표
파일: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46경기 1골 (미국 / 2000~2008)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1. 개요[편집]


미국의 前 축구 선수.


2. 클럽 경력[편집]



2.1. 레딩 FC[편집]


어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었고, 미국 DC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데뷔했다. 입단 이후에도 두각을 나타낸 보비 콘베이는 날카로운 왼발로 그 명성이 미국내에서 꽤 알려져 있던 선수였다. 그리고 2003년엔 잉글랜드 토트넘 구단에서 그를 300만 달러의 이적료로 영입하려고 했지만 국가대표 출전 경기 수 부족으로 인해 워크 퍼밋이 안나와 불발 되었다.

그 후, DC 유나이티드와 미국 국가대표팀에서 경력을 게속 쌓으면서 나중을 기약했다.

그러다 1년 후인 2004년에 잉글랜드 챔피언십 리그에 있던 레딩이 그의 영입을 희망하였고, 레딩은 클럽 레코드를 기록하면서 그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레딩 이적 첫 시즌에 그는 22경기에 출전하면서 잉글랜드 무대에 적응했고, 2005-2006 시즌엔 주전으로 나서면서 레딩의 챔피언십 우승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레딩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2006-2007 시즌엔 시즌 초 그의 화려한 왼발을 바탕으로 어시스트를 쌓아가며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하나 싶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대다수의 경기를 날렸고 리그 9경기에 그치며 안타까운 시즌을 보냈다.

2007-2008 시즌에 돌아와 팀에서 활약했지만, 큰 부상을 당한 이후 그의 폼은 예전과 같지 않았고 덩달아 팀은 강등까지 당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후 2008-2009 시즌 강등 당한 레딩에서 뛰다가 2009년에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산호세, 캔자스 시티, 토론토, 뉴욕 레드불스 등에서 뛰다가 2014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2021년 레딩의 150주년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이는 컨베이가 2008-2009 시즌에 레딩을 떠난 이후 처음이였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어린 나이부터 미국 축구의 특급 유망주로 꼽히던 선수였다. 2000년, 17세의 나이로 멕시코와의 A매치 평가전에 데뷔하며 미국 축구 역사상 세번째로 어린 국가대표 데뷔 선수로 이름을 남겼고, 이후에도 엘리트코스를 차근차근 밟으며 2003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청소년 월드컵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레딩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으며 미국 국가대표에도 정기적으로 선발되었고,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승선해 월드컵 본선도 경험한다. 팀 동료 마커스 하너먼과 함께 레딩 역사상 월드컵 본선에 나선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이후 2008년까지 미국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A매치 46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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