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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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에 대한 내용은 FC 지롱댕 드 보르도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름의 기원은 물(Eaux) 옆(bord)에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보르도는 프랑스에서도 규모가 큰 항구도시들 중 하나이다.
지금도 여러 건축물들이 프랑스 남부 최대 혹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볼거리가 많다. 그래서 보르도의 별명이 '작은 파리'다. 보르도 광역권은 인구 백만이 넘는다. 지금은 마르세유같은 다른 남부 프랑스 도시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아 저평가 받는 편이다.
부르스 광장은 유럽 최대의 물의 광장으로 유명하다. 루이 15세의 수석 건축가가 만든 보르도의 랜드마크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켄콩스 광장도 부르스 광장 만큼 유명하다.
그리고 보르도를 포함한 프랑스 남서부 5개 주를 묶어서 아키텐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키텐 지방을 상징하는 문도 보르도에 있다.
중세시대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인근의 생테밀리옹(Saint-Emilion)과 보르도의 항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여담으로 달의 항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는건 아니고 도시의 모양이 초승달을 닮아서 그렇게 붙은 것이다.
보르도 마스티프의 원산지이다.
로고 지침
보르도의 공식 로고는 문장에 있는 초승달 3개를 조합한 것이다. 혹여 생물재해 표시로 오해하지 말자.
이 곳에 도시다운 도시를 세운 건 로마인들로 이 곳에 거주하던 갈리아 부족의 이름을 따 부르디갈라로 불렀다. 후에 아퀴타니아 속주가 세워지면서 주도로서 번영하였다.
로마가 멸망하고 게르만 인들이 남하하면서 아퀴타니아는 프랑크 족의 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프랑크족의 전통적인 상속제도에 따라 프랑크 혹은 프랑스 왕국에 명목상 종주권이 있지만 사실상 독립적인 세력인 아키텐왕국 혹은 아키텐공국으로 불리는 세력의 수도 역할을 하며 번성했다.
그 뒤 아키텐 공국의 여공 엘레노르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와 결혼하며 그녀의 아키텐 공국이 잉글랜드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후 아키텐은 잉글랜드의 돈줄 역할을 하였고 그의 중심도시인 보르도 또한 잉글랜드의 수도인 런던 못지 않은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백년전쟁 이후에는 프랑스에 귀속되었다.
프랑스 소속으로도 이후 프랑스 식민제국의 관문 역할을 하며 전성기를 누린다. 이 시기에 보르도는 전세계에 있는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각종 물산이 들어와 프랑스전역으로 흘러들어갔고 프랑스 남부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와인들이 이곳을 통해 전세계로 나갔다. 파리 못지 않은 번영을 누리며 빅토르 위고로부터 "베르사유와 엔트워프를 가져라. 우리에겐 보르도가 있다."라는 찬사를 들었다.
세계대전 시기엔 불과 15일이었지만 잠시만이라도 프랑스 제3공화국의 임시수도가 되는 등 현대에도 프랑스의 주요도시로서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여러모로 대구나 대전의 포지션이라 할 수 있다. 셋 모두 규모가 자국에서 5,6위 정도 되는 도시들인 데다가 모두 임시수도로 지정된 적이 있다.
부르봉 왕조가 들어선 1600년 시기 보르도의 인구는 약 4만 명 가량었다. 1685년에 보르도의 인구는 5만 명 가량으로 소폭 늘었다. 당시에 이미 프랑스 왕국은 물론 서유럽 전체로도 인구가 많은 편이었다. 1815년에 보르도의 인구는 90,000명으로 증가했다.
현대 이후에 보르도는 수백만명의 인구를 보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도시만의 인구는 254,463명이며 광역 인구는 1,127,776명이다.
자세한 내용은 포도주/보르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지역 와인의 색을 말하기도 하는데, 매우 진한 자주색이다. 부르고뉴의 와인을 버건디라고 부르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
시 외곽에 프랑스에서도 큰 규모인 보르도 메리냐크 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으며, TGV와의 극심한 경쟁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6백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철도교통의 중심은 보르도 생 장역이 담당하고 있다. 생 장역은 연간 약 1,600만명이 이용하는 중요한 역으로서 파리 몽파르나스역, 툴루즈, 투르, 푸아티에 등을 연결하고 있다.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채굴되는 석회암으로 많은 수도원과 성당이 지어졌고, 이게 포도밭과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 덕에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대항해시대2에서 작중 최고속력을 가져 세계지도 제작용으로 유용한 갤리선 라 레아르를 만들 수 있는 항구로 유명했다.
국가의 수도 이런 것도 아니라서 함선 제작겸 행운의 선수상 노가다겸 해서 투자가 빈번해서 개발도 1000/1000을 자주 볼 수 있는 항구.[6]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프랑스의 영지로, 농산물과 포도주의 집산지가 반영되어 이곳의 교역품은 건포도, 와인, 브랜디, 베이컨, 쇠고기[7] , 양고기, 오리고기이다. 그 외에는 투자를 통해 직물 조젯, 향신료 베르가못을 산출한다. 베르가못이 산출되므로 보르도는 향신료 내성항이며, 타국 유저도 와인을 살 수 있으나 프랑스 유저는 영지 혜택을 받아 구입수량 보정을 받는다.
워해머에서는 브레토니아의 주요 도시인 보르들로가 보르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장 외스타슈의 나의 작은 연인들은 보르도 광역권에 속하는 페삭 시[8] 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감독 본인도 페삭 출신. 페삭에서는 외스타슈를 기념해 역세권 영화관에 외스타슈 이름을 헌정하고 있다.
1. 개요[편집]
프랑스의 항구도시. 프랑스 남서부 누벨아키텐 레지옹의 지롱드 데파르트망에 속해 있으며, Bordeaux[3] 라고 쓴다. 보르도 시 자체는 바다(대서양)와 직접 접하지 않지만 가론 강(Garonne)을 통해 진출입이 가능하다.
이름의 기원은 물(Eaux) 옆(bord)에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보르도는 프랑스에서도 규모가 큰 항구도시들 중 하나이다.
지금도 여러 건축물들이 프랑스 남부 최대 혹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볼거리가 많다. 그래서 보르도의 별명이 '작은 파리'다. 보르도 광역권은 인구 백만이 넘는다. 지금은 마르세유같은 다른 남부 프랑스 도시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아 저평가 받는 편이다.
부르스 광장은 유럽 최대의 물의 광장으로 유명하다. 루이 15세의 수석 건축가가 만든 보르도의 랜드마크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켄콩스 광장도 부르스 광장 만큼 유명하다.
그리고 보르도를 포함한 프랑스 남서부 5개 주를 묶어서 아키텐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키텐 지방을 상징하는 문도 보르도에 있다.
중세시대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인근의 생테밀리옹(Saint-Emilion)과 보르도의 항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여담으로 달의 항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는건 아니고 도시의 모양이 초승달을 닮아서 그렇게 붙은 것이다.
보르도 마스티프의 원산지이다.
2. 로고[편집]
로고 지침
보르도의 공식 로고는 문장에 있는 초승달 3개를 조합한 것이다. 혹여 생물재해 표시로 오해하지 말자.
3. 역사[편집]
이 곳에 도시다운 도시를 세운 건 로마인들로 이 곳에 거주하던 갈리아 부족의 이름을 따 부르디갈라로 불렀다. 후에 아퀴타니아 속주가 세워지면서 주도로서 번영하였다.
로마가 멸망하고 게르만 인들이 남하하면서 아퀴타니아는 프랑크 족의 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프랑크족의 전통적인 상속제도에 따라 프랑크 혹은 프랑스 왕국에 명목상 종주권이 있지만 사실상 독립적인 세력인 아키텐왕국 혹은 아키텐공국으로 불리는 세력의 수도 역할을 하며 번성했다.
그 뒤 아키텐 공국의 여공 엘레노르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와 결혼하며 그녀의 아키텐 공국이 잉글랜드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후 아키텐은 잉글랜드의 돈줄 역할을 하였고 그의 중심도시인 보르도 또한 잉글랜드의 수도인 런던 못지 않은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백년전쟁 이후에는 프랑스에 귀속되었다.
프랑스 소속으로도 이후 프랑스 식민제국의 관문 역할을 하며 전성기를 누린다. 이 시기에 보르도는 전세계에 있는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각종 물산이 들어와 프랑스전역으로 흘러들어갔고 프랑스 남부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와인들이 이곳을 통해 전세계로 나갔다. 파리 못지 않은 번영을 누리며 빅토르 위고로부터 "베르사유와 엔트워프를 가져라. 우리에겐 보르도가 있다."라는 찬사를 들었다.
세계대전 시기엔 불과 15일이었지만 잠시만이라도 프랑스 제3공화국의 임시수도가 되는 등 현대에도 프랑스의 주요도시로서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여러모로 대구나 대전의 포지션이라 할 수 있다. 셋 모두 규모가 자국에서 5,6위 정도 되는 도시들인 데다가 모두 임시수도로 지정된 적이 있다.
4. 인구[편집]
부르봉 왕조가 들어선 1600년 시기 보르도의 인구는 약 4만 명 가량었다. 1685년에 보르도의 인구는 5만 명 가량으로 소폭 늘었다. 당시에 이미 프랑스 왕국은 물론 서유럽 전체로도 인구가 많은 편이었다. 1815년에 보르도의 인구는 90,000명으로 증가했다.
현대 이후에 보르도는 수백만명의 인구를 보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도시만의 인구는 254,463명이며 광역 인구는 1,127,776명이다.
5. 보르도 와인[편집]
자세한 내용은 포도주/보르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지역 와인의 색을 말하기도 하는데, 매우 진한 자주색이다. 부르고뉴의 와인을 버건디라고 부르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
6. 교통[편집]
시 외곽에 프랑스에서도 큰 규모인 보르도 메리냐크 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으며, TGV와의 극심한 경쟁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6백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철도교통의 중심은 보르도 생 장역이 담당하고 있다. 생 장역은 연간 약 1,600만명이 이용하는 중요한 역으로서 파리 몽파르나스역, 툴루즈, 투르, 푸아티에 등을 연결하고 있다.
7. 생테밀리옹[편집]
보르도 근교에 있는 생테밀리옹 특별지구는 포도나무가 많은 곳으로 고대 로마 시대에 이미 포도 재배와 양조가 활발한 지역이었다. 12세기에 프랑스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을 때에도 이 지역은 특별 자치권(Jurisdiction)을 인정받았다.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채굴되는 석회암으로 많은 수도원과 성당이 지어졌고, 이게 포도밭과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 덕에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8. 이 지역이 등장한 작품[편집]
대항해시대2에서 작중 최고속력을 가져 세계지도 제작용으로 유용한 갤리선 라 레아르를 만들 수 있는 항구로 유명했다.
국가의 수도 이런 것도 아니라서 함선 제작겸 행운의 선수상 노가다겸 해서 투자가 빈번해서 개발도 1000/1000을 자주 볼 수 있는 항구.[6]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프랑스의 영지로, 농산물과 포도주의 집산지가 반영되어 이곳의 교역품은 건포도, 와인, 브랜디, 베이컨, 쇠고기[7] , 양고기, 오리고기이다. 그 외에는 투자를 통해 직물 조젯, 향신료 베르가못을 산출한다. 베르가못이 산출되므로 보르도는 향신료 내성항이며, 타국 유저도 와인을 살 수 있으나 프랑스 유저는 영지 혜택을 받아 구입수량 보정을 받는다.
워해머에서는 브레토니아의 주요 도시인 보르들로가 보르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장 외스타슈의 나의 작은 연인들은 보르도 광역권에 속하는 페삭 시[8] 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감독 본인도 페삭 출신. 페삭에서는 외스타슈를 기념해 역세권 영화관에 외스타슈 이름을 헌정하고 있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원래 영미권에도 프랑스어 발음을 존중하여 '보르도'로 발음하는게 일반적이지만 간혹 영어식 발음대로 '볼덕스'라고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조금 북쪽에 있는 낭트에서도 라레아르를 만들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아프리카, 신대륙에 가까운 위치+제값 쳐주는 스폰서 모르데스 교수 있음(리스본의 페레로가도 제값 쳐주는 스폰서이지만 조안 페레로는 계약이 불가능하다.)+경리로 쓰기 좋은 항해사 야곱 울웨이크 있음+성스런 향유 구입 가능 등등 보르도의 이점이 너무 커서 낭트는 존재감이 희박한 항구가 되었다.[7] 18만 두캇 투자시 구매 가능[8] 이 곳은 보르도 트램으로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보르도와 가까운 교외 지역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30 22:58:59에 나무위키 보르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