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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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성우극회 소속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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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 및 년도
성우
제1기(1961)

김현직, 정승현, 최응찬, 이묵원, 맹관영, 박규채

김석옥, 정소희, 김영옥, 나문희, 백수련, 최선자
제2기(1965)

최병학, 황일청, 전운, 이영달, 변희봉, 김성겸, 홍성민

유명옥, 이수나, 김희숙, 김유선
제3기(1968)

한규희, 김용건, 신충식, 나성균

김은영, 박소현, 안정현, 우문희, 정희선
제4기(1970)

김기현, 박일, 한상혁, 윤지하, 이규연, 강성욱

서영애, 송도영, 최방란, 한영숙
제5기(1972)

김용식, 김태훈, 박태호, 전국근, 한인수

강미, 이명숙, 전임복, 홍승옥
제6기(1974)

김명수, 이도련, 이성, 탁재인

김성란, 김진숙, 양윤선
제7기(1976)

권혁수, 이인성, 이종오, 최상기

기경옥, 김순선, 김윤정, 박인숙, 최성우
제8기(1982)

곽대홍, 박기량, 신성호

박영희, 오혜숙, 윤소라, 이미자, 이선주, 홍혜정
제9기(1983)

김관철, 박영화, 이우신, 이윤연, 이종혁, 황윤걸

김정신, 김혜경, 이선호, 조향이
제10기(1985)

김강산, 김동현, 김영훈, 손원일, 이승환

정미연, 황미영, 성유진
제11기(1993)

안장혁, 안지환, 양희문, 최원형

배주영, 우정신, 이승현, 정소영, 조예신, 주현영
제12기(1994)

박조호, 변종필, 안종덕, 윤복성, 이진홍, 전수빈

강수진, 유은숙, 이영란, 임유진
제13기(1996)

김영선, 김호성, 엄태국, 이철용, 장성호, 최석필

박소라, 엄현정, 윤성혜, 정남
제14기(1997)

김기철, 김민성, 김용준, 송준석, 이상범

김아영, 박선영, 오주연, 최수진, 한수림
제15기(1999.11)

고성일, 노계현, 이상훈, 최한, 표영재

김서영, 김지영, 배정민, 이자옥, 채의진
제16기(2002)

방성준, 이원찬, 정재헌

문남숙, 박신희, 조현정
제17기(2004)

김두희, 류승곤, 양준건

유상우, 이민하, 한경화
CM 1기(1973)

정명옥

김순자, 정부용, 최정양, 한순자
CM 2기(1976)

박기량, 한대수

정숙경, 차영주, 문병례
CM 3기(1979)

권영운, 신현식

김수희, 김춘방
CM 4기(1983)

박홍식, 민응식, 김주형

박혜경
CM 5기(1984)

-

송은주
타 성우극회 : 대교방송투니버스CBSEBS대원방송KBSPBC
※ 활동 정지 및 소속을 옮기거나 사망한 성우는 취소선으로 최고령 성우는 굵게 최연소 성우는 밑줄로 표시함.




변희봉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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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은관.jpg
연도
2020년
이름
변희봉
분야
배우
은관문화훈장(2등급)


변희봉
邊希峰 | Byun Hee Bong


파일:img__18.jpg

본명
변인철 (邊仁徹)
출생
1942년 6월 8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 신창마을[1]
사망
2023년 9월 18일 (향년 81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황주 변씨
학력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법학 / 중퇴)
가족
부모님
아내, 딸 3명
종교
무종교
소속사
라이언스브릿지
데뷔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

1. 개요
2. 생애
2.1. 배우 경력
2.2. 2000년대 이후
2.3. 사망
3. 출연 작품
3.1. 드라마
3.2. 예능
3.3. 영화
4. 수상 내역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성우 출신 배우.


2. 생애[편집]


1942년 6월 8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 신창마을에서 태어났다.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다.

조선대학교 중퇴 후 서울에 올라와 처음에는 제약회사를 다녔다. 극단 산하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 여러번 배우 모집에 응시했으나 탈락해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에 데뷔한 성우 출신 중 배우로 전업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경우로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전운, 나문희, 정혜선, 김용림, 남일우, 한인수 등이 있다.

처음 활동할 당시에는 본명 변인철(邊仁徹)을 사용하다 현재의 예명으로 바꿨다.


2.1. 배우 경력[편집]


드라마는 1970년 MBC 반공 드라마 《홍콩 101번지》로 데뷔한 이후, 《수사반장》 등에서 주로 범인 등 악역을 맡았다. 그러다 1980년대에 방영한 조선왕조 500년의 설중매(세조~성종) 편에서 유자광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손금으로 점을 보면서 "~는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2]를 했는데, 이는 당시 큰 유행어가 되었다. 그 덕분에 변희봉은 인생 최초로 광고까지 찍는다.[3]

또한 찬란한 여명에서 흥선대원군 역을 맡았는데, 여기에 출연할 무렵에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대원위대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는 뒷얘기도 있다.[4] 풍운이순재와 함께 대원군 역에 가장 잘 어울린 배우로 사극 팬들에게 손꼽히는 편이다. 이후 계속 MBC 드라마에 개성있는 연기파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주로 맡은 배역은 코믹스러우면서도 가볍지만은 않고 또 악역이지만 밉지만은 않은 개성있는 악역이 많아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줬다. 하지만, 1990년대가 들어 트렌디 드라마가 대세가 되자 그와 같은 고참 연기파 배우들의 설자리가 없어졌고, 그는 출연을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낙향하려 했다. 그 와중에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한 공전의 히트 드라마 허준에서 잠시 낙향해있던 시절에 부인이 치료를 받은 뒤 훗날 조정에서 허준의 큰 후원자가 되는 창녕 성대감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2. 2000년대 이후[편집]


그러던 2000년에 봉준호가 삼고초려하여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했다. 처음엔 봉준호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으나, 봉준호가 그동안의 변희봉의 출연작을 줄줄 꿰면서 출연을 해달라고 설득을 하여 결국 승락했다고 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면에서 실패했으나, 변희봉이 맡은 (보일라 김씨를 설명하는) 경비원 역은 매우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변희봉은 봉준호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아 인터뷰마다 봉준호에 대해 자주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후에도 봉준호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였다.

그리고, 2001년 장혁, 신민아가 주연으로 출연한 화산고에서는 사비망록을 탈취해 학교를 손에 넣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학생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장학사 교감 선생으로[5] 다시 한 번 코믹하고 신들린 악역 연기를 같이 보여주면서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화산고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하지만 메인 악역으로 출연 분량과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서 실질적으로는 주연급으로 출연한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엉뚱한 용의자 백광호를 잡고 좋아하다 끝내 잘리고 마는 구 반장 역을 맡았는데, 송강호와 함께 논두렁 롱테이크 씬에서 연기 앙상블을 빛내며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서 논두렁 씬이 애드리브라고 잘못 알려졌는데, 애드리브가 아니라 100% 대본으로 구성한 장면이다.

특히 괴물에서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희봉' 역으로 출연하여 일생일대의 열연을 펼쳤다.[6] 마지막에 괴물을 향하여 샷건을 겨누다 계산을 잘못하여 탄환이 다 떨어졌음을 알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자식들을 먼저 걱정하며 "어여 가..." 라고 빨리 달아나라는 손짓을 하다 괴물의 꼬리에 맞아 날아가는 명장면을 남겼다. 훗날 칸 영화제에서 만난 더스틴 호프만도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지 변희봉을 알아보고 자식들 보고 가라며 손짓하던 장면을 따라하면서 무척 반가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봉준호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이후 여기저기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괴물에서 한 열연으로 2006년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도 봉준호의 옥자에 출연하여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고목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라고 소감을 표현했다. #


2.3. 사망[편집]




변희봉 췌장암 투병 끝 별세
2023년 9월 18일[7],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1 #2 #3 #4 최측근에 의하면 췌장암 완치 이후에는 항암치료를 중단했다가, 재발 후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

빈소에는 봉준호, 송강호 등 여러 영화인들이 찾아와 조문했고, 발인은 같은 달 20일에 엄수되었다.


3. 출연 작품[편집]



3.1. 드라마[편집]




3.2. 예능[편집]


  • 2019년 tvN 나이거참


3.3. 영화[편집]




4. 수상 내역[편집]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5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
2006년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괴물
제51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남우조연상
제9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올해의 남자배우상
2007년
제4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남자조연 배우상
2014년
MBC 연기대상
단막극연기상
내 인생의 혹
2020년
제1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5. 여담[편집]


  • 봉준호가 영화 마더를 연출한다고 하자 자신이 출연할 역할이 있겠냐고 물으며 슬쩍 한 번 던져봤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늙은 엄마의 이야기라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는 맡을 만한 배역이 없을 것 같다고 하자, 늙은 아줌마와 썸씽이나 늦바람 난 역할[8]이라도 달라고 해서 봉준호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다 영화 옥자에 캐스팅되면서 다시 한번 봉준호와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4편(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에 출연하여 송강호와 함께 최다 출연하였다. 췌장암만 아니었다면 5편에 출연할뻔했다. 변희봉은 처음에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나, 봉준호의 설득 끝에 출연하였고,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 췌장암에 걸렸으나 초기에 발견해 완치했다고 전해졌다.[9] 이 때문에 영화 기생충에는 출연하지 못했는데, 그가 불참한 이유가 알려진 후 "췌장암 조기발견이면 오스카상과 바꿀 만하다"[10]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암이 다시 재발하면서 투병 중 사망했다.

  • 봉준호와 변희봉이 말하는 영화 에피소드. 외부 링크

  • 2000년대 이후로는 주로 스크린에서 활동했고, 특히 영화 괴물 이후로는 조연계의 거성 내지 준 주연급[11]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도 TV 활동을 쉬지 않고 병행하는데, 2007년 MBC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는 강직한 성격의 임상병리과 교수 오경환 역할로 호연했고, 2010년에는 KBS 2TV 드라마 공부의 신에 수학 선생 차기봉 역으로 출연하였다.

  • 2013년, 진짜 사나이 13회에서 첫 남자 나레이션을 맡았다. 아버지가 아들들을 지켜보는 따뜻하고 인자한 목소리. 그 덕택에 김영옥에 이어 간만에 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 주인공 오로라의 아버지 역으로 특별출연, 온달왕자들 이후 13년만에 임성한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몇 회만에 유체이탈을 보여주고 사망해 하차하였다.

  • 불쌍한 사람 배역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권위감이 떨어지는 탓에 개그 CF도 하나 찍었는데 쌀과자 쌀로별 광고에서 어린왕자를 패러디한 희봉 왕자로 출연했다. 제품과는 상관없이 광고는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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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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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당시 한명회 역을 맡은 정진이 먼저 해 히트쳤던 대사다. 이후 KBS의 1994년 드라마 한명회에서 이덕화 역시 같은 대사를 하는데 사극 모두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서 예전에 히트한 대사를 한명회에서 다시 써먹은 것이다. 당시 정진이 먼저 이 대사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유자광 역의 변희봉만 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뒤에 나오는 진광탕 광고 때문이다. 똑같은 대사를 그것도 유행어가 될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던 대사를 유자광이 바로 이어서 똑같이 하는 이유는 신봉승이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알려주는 장치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3] 광동제약 진광탕 광고에서 과거시험 출제 문관으로 나오는데 "오늘의 주제는 감기몸살~!"이라고 특유의 발성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다른 선비들이 우왕좌왕할 동안 득의만만한 주인공이 "진광탕이오~!" 하니 "옳거니!" 하고 받아치고 장원급제를 시키는 스토리다. 그리고 그 유명한 "감기몸살쯤은 바로 이 손 안에 있소이다." 란 대사가 등장한다. 이 광고는 나중에 서영웅굿모닝 티처에서 '형민우태왕북벌기를 패러디한 장면에도 등장한다.[4] 방영 당시에는 심지어 흥선대원군의 초상화와 견주어 가장 비슷하게 외모조차 닮았다는 얘기가 나왔다.[5] 여기서 장학사는 직위를 말하는게 아니라, 성이 장씨이고 학사가 이름이다.[6] 변희봉은 봉준호의 영화로 대박을 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은 봉준호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에서 중요한 작품들이다. 특히 괴물은 네 번째 천만 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천삼백만 명이나 관람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영화 판도를 바꾸었다. 변희봉은 봉준호의 핵심 작품마다 출연하며 영광을 함께 한 것이다.[7] 공교롭게도 제국의 아침에서 혜종 역을 연기한 배우 노영국같은 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8] 사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인 노숙자가 나오긴 한다. 주인공인 김혜자에게 추근대기도 하고.[9] 미스터 션샤인 캐스팅 제의를 받고 건강검진하러 가서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캐스팅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거라고도 말했다.[10] 췌장암 문서에도 나오지만 췌장 자체가 보통 자주받는 검사인 내시경 등으로 조기 발견이 힘들고 위치도 주요 장기 뒷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수술 난이도도 상당히 높다. 그래서 대부분 위궤양이나 급성 췌장염 등으로 오진해 수술대에 올랐다 말기 췌장암 판정을 받고 극한의 고통속에 시한부 인생을 사는게 대부분이다.(1기 환자의 생존률도 30%가 안넘는데다 진단률이 1%도 안된다. 2기부터는 생존률이 10%도 안나온다.)[11] 영화 '더 게임'에서는 신하균과 함께 공동 주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