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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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충남 서산시·태안군)
제14대
한영수

제15대
변웅전


제16대
문석호
제17대
문석호

제18대
변웅전


제19대
성완종
[1]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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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장
제17대 후반기
김태홍

제18대 전반기
변웅전


제18대 후반기
이재선







대한민국 제15-16·18대 국회의원
변웅전
邊雄田 | Byeon Ung-jeon


출생
1940년 10월 15일 (83세)
충청남도 서산군 서산면 읍내리
(現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2]
본관
원주 변씨[3]

서산(瑞山)
배우자
최명숙[4]
자녀
장남 변지명[5], 차남 변지석[6]
학력
서산초등학교 (졸업)
서산중학교 (졸업)
서산농림고등학교 (축산과 / 졸업 / 10회)
중앙대학교 (심리학 / 학사)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7] / 석사[8])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일병 만기전역
종교
불교
신체
182cm
소속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5, 16, 18
약력
KBS 아나운서
MBC 아나운서 실장
MBC 방송위원
MBC 프로덕션 대표이사 사장
MBC 아나운서협의회 고문
자유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회 부대변인
자유민주연합 총재 정치담당 특보
자유민주연합 홍보담당위원회 위원장
제15대 국회의원 (충남 서산시·태안군 / 자유민주연합)
자유민주연합 원내부총무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자유민주연합 원내수석부총무
제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간사
자유민주연합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제16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6번 / 자유민주연합)
자유민주연합 총재 비서실장
자유민주연합 당무위원
자유민주연합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권 선거대책위원장
국민중심당 전당대회의장
국민중심당 서해안살리기범국민운동본부 본부장
제17대 대통령 선거 무소속 이회창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자유선진당 창당 발기인
제18대 국회의원 (충남 서산시·태안군 / 자유선진당)
제18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위원장
자유선진당 서해안유류피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한국·파라과이 의원친선협회 회장
자유선진당 6·2 지방선거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
자유선진당 최고위원
자유선진당 대표최고위원
자유선진당 독도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아나운서,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40년 10월 15일 충청남도 서산군 서산면 읍내리(현 서산시 읍내동)에서 아버지 변창진(邊昌鎭, 1915. 1. 16 ~ 1996. 5. 6)과 어머니 성주 배씨 배임동(裵姙東, 1923. 4. 1 ~ 1986. 7. 10)[9]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산초등학교, 서산중학교, 서산농림고등학교[10](10회) 축산과, 중앙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2월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관리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농고출신 아나운서지만 '그래! 나 서산농고 출신이다! 어쩔래?' 라는 당찬 마음으로 사회생활을 했다고 한다.

1963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후 1969년 MBC로 이직했다. MBC 개국 초기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회의 MC를 맡았는데 진행 미숙으로 방송을 대차게 말아먹고 한동안 출연도 못하는 고역을 치르기도 했지만, 당시 최고의 예능 PD인 김경태가 변웅전의 숨겨진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하여 1970~1980년대 MBC 인기 프로그램 유쾌한 청백전[11], 묘기대행진[12][13], 명랑운동회[14][15] 등을 진행하면서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NHK 홍백가합전을 벤치마킹한[16] MBC의 유쾌한 청백전의 진행을 맡게 되었고 여기에서 동네 후배인 이상용을 발탁해서 연예계에 데뷔시켰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중반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당대를 대표하는 MC 중 하나로, 지금의 김성주 정도의 포지션이라고 보면 된다. (포지션이 대략 그런 거고, 당시 인기는 김성주 급이 아니다. 훨씬 더 인기가 있었다.) 이후 MBC에서 제작 전문 자회사 MBC 프로덕션(현 MBC C&I)의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니, 정치에 뛰어들기 전 문화방송의 고위층까지 승진했던 셈이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고향인 충청남도 서산시·태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자유민주연합의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99년 자유민주연합 원내수석부총무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해당 지역구 공천이 한영수에 밀렸고, 대신 비례대표 국회의원(6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비례대표 5번까지만 당선이 되었고 본인은 낙선하였다. 그러다가 2004년 3월 김종호 의원의 탈당으로 제16대 자민련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승계하여 약 70일간의 잔여 임기를 수행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문석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국민중심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에 임명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회창이 창당한 자유선진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문석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이회창이 자유선진당 대표최고위원을 사퇴하자, 뒤를 이어 자유선진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이후 자유선진당이 국민생각을 흡수하여 선진통일당이 되자 선진통일당에 소속되었다가 선진통일당이 다시 새누리당에 흡수 합당되면서 새누리당 소속, 새누리당 고문이 되었다. 현재는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 소속이다. 그가 몸담았던 자유민주연합과 자유선진당이 민주자유당의 실질적 후신인 국민의힘으로 흡수 통합돼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현역 의원 시절에는 국민의힘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과 대적했던 상황이었다.

충남 기반/자민련 출신으로서는 김종필, 김용환, 심대평, 이완구 등과 함께 나름 전국구 수준의 입지를 가졌던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나운서 출신으로 대변인 등의 위치로만 활동했지, 의정 활동에서 별다른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3. 여담[편집]


  • ROTC 중위로 전역 후 사회에 나와 외판사원 등으로 고생하던 고향 후배 이상용을 방송인으로 데뷔시켜줬다. 변웅전은 후배 이상용을 자신이 메인 MC로 진행하던 유쾌한 청백전의 보조 MC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이상용의 데뷔작이다. 이후 이상용은 우정의 무대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포텐을 터뜨리게 된다.

  •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2009년 다시 명랑운동회 MC로 방송에 출연했다.#

  • 국회의원 재임 시절이던 2008년 유재석 - 나경은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봐 준 적이 있다.

  • 키가 182cm로, 2020년대 기준으로도 큰데, 당시 1940년대생 남자 평균 키보다 거의 15cm 이상 큰 장신이다. 170cm만 넘어도 키 크다고 했고, 운동 선수들 중에서도 180cm 이상 드물던 때다. 거기에다가 미남이기까지 해서 목소리, 체격, 얼굴까지 다 되니 인기가 대단했다.

  • 장기범 아나운서가 변웅전이 아나운서가 되는 계기를 주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 경품 응모를 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장기범 아나운서의 라디오를 듣고 있다가 '서산에 살고 계시는 변웅전 씨'라는 당첨 안내멘트에 감명을 받고 본인도 아나운서를 꿈꿨다고 한다. 당연히 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해줄 줄 알았는데, 나이 어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경어를 써서 아나운서를 동경하게 됐다고 한다.

  • 그 당시 민주당과 가장 마찰이 적었던 의원이라고 한다. 다만 마찰이 적기만 했지, 김옥두와는 견원지간. 상당히 공격을 한 편인데, 자유선진당 당대표 시절에 터졌던 부산저축은행 사태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할 자격이 없다는 직격탄을 날린 적도 있다.

  • 2022년 2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 선언을 한 대한민국 헌정회원 중 31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2005
정계 입문

[[무소속|
무소속
]]

2005 - 2006
탈당

[[국민중심당|
파일:국민중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6 - 2008
창당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합당[17]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1 - 2012
합당[18]

[[선진통일당|
파일:선진통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당명 변경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7
합당[19]
정계 은퇴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20]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현재
당명 변경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서산·태안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52,723 (54.17%)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1,859,331 (9.83%)
승계 (6번)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서산·태안
33,184 (38.05%)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43,093 (51.65%)
당선 (1위)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690,754 (3.23%)
낙선 (4번)



6. 둘러보기[편집]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아이콘.svg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제16대 국회 전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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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조희욱
김종호[B]
조부영
안대륜
변웅전
[B] 임기 중 사퇴.









[1] 비리혐의로 인한 의원직 상실.[2] #[3] 부마공파(駙馬公派) 21세 승(昇)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남동생 변의승(邊義昇, 1946. 10. 6 ~ )은 항렬자를 썼다.[4] 崔明淑. 경주 최씨 최기영(崔基榮)의 딸이다. 1948년 10월 29일생이다.[5] 邊志命. 1975년 2월 17일생이다.[6] 邊志碩. 1977년 3월 27일생이다.[7] 행정관리 전공[8] 석사 학위 논문 : 국회 입법활동을 통한 노인복지정책 변화와 발전방향 연구 : 17,18대 국회를 중심으로(2012. 2).[9] 배응회(裵應會)의 딸이다.[10] 변웅전이 재학하던 시절에는 서산농림고등학교였다. 1994년 3월 1일 서산농공업고등학교로 학교명이 변경되었다가 2007년 8월 28일 지금의 이름인 서산중앙고등학교로 개칭되었다.[11] 이제 막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MBC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으로 1977년까지 방영되었으며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각종 게임을 즐기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12] 1976년 4월 13일 방영. 20여년 뒤 나온 기인열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와 비슷한 내용인데, 당시 방송 제작 환경으로는 밖에 나가서 녹화해 오고 편집해 내보내는 것 없이 특기나 신기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하여 재주를 보이는 식이었다. 차력이나 마술 같은 것을 선보이는 예도 많았으며 한 사람이 여러 번 나오기도 했다. 1980년 8월 25일에 가을개편으로 종영됐다.[13] 다만 묘기대행진도 야외녹화를 진행한 적은 있었으며 대표적으로 1977년 6월 20일 방영분에서 일본 후지 테레비와 공동으로 녹화했으며 그 해 말경에는 대만 TTV(台視)와 공동으로 타이베이시 스린구 소재 국립고궁박물원 앞에서 녹화를 진행하기도 했다.[14] 1976.04.17~1984.10.21. 유쾌한 청백전의 후속 격이다. 매주 일요일 연예인들이 출연해서 다양한 스포츠 게임을 하던 오락 프로그램. 지금의 출발 드림팀과 유사한 포맷이다. 정동 MBC 사옥 뒤편 문화체육관(현재 정동 상림원 자리)에서 주로 녹화를 진행했다. 인터넷에서 당시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KBS에도 몇 년 뒤에 행운의 스튜디오라는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 연예인 외에도 학교나 회사 등 단체로 두 팀이 출연하고 연예인들이 같이 편을 짜서 대결하는 형식이었다. 황인용이 이 프로그램의 MC였고 배일호가 보조 MC(게임 진행 등)를 담당했다.[15]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장진범송일섭이 술회하기를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와 준우승팀 MBC 청룡 두 팀 선수들을 초청해 1983년 12월 24일에 대결했다고 한다. 웃고 즐기자고 녹화하는데 양 팀 선수들은 승부욕이 불타올라 기를 쓰며 이기려 했고 해태가 이기자 연출진에서 자꾸 녹화를 중단시켜 행동대장 겸 군기반장이었던 김일권이 해태 선수단을 철수시키려 했다고 밝혔다.[16] 좋게 요즘 말로 해서 벤치마킹이지, 당시 국내 연예(당시 용어는 오락),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일본 것을 그냥 베낀 것이었다. 저작권법 같은 것도 없었으며, 일본 문화 개방 이전 시대였으니 국내 시청자는 일본 방송이 잡히던 부산 등 일부 지역 사람들을 제외하면 표절인지 알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17] 자유선진당에 흡수 합당[18] 국민중심연합과 신설 합당[19] 새누리당에 흡수 합당[20]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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