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카자흐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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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전근대
2.2. 소련 해체 이전
2.3. 소련 해체 이후
2.3.1. 2010년대
3. 문화 교류
4. 교통 교류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벨라루스카자흐스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 연합의 회원국들로 교류, 협력이 활발하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전근대[편집]


오늘날 카자흐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은 몽골 제국 시대 중세 킵차크 칸국이 위치해있었고, 한동안 루테니아 내 여러 공국들이 킵차크 칸국에게 조공을 바쳐왔다. 중세 말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팽창하면서 벨라루스에 위치한 여러 공국들이 킵차크 칸국 대신에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투항하면서 킵차크 칸국은 벨라루스 지역 일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2.2. 소련 해체 이전[편집]


소련 해체 이전에는 양 지역이 러시아 제국, 소련의 일부였다. 19세기 말부터 러시아 제국이 카자흐스탄 북부 일대를 개발하면서 러시아인들이 이주하면서 벨라루스인들이 카자흐스탄 일대에 정착했다. 소련 시절에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벨라루스인들이 카자흐스탄 북부로 이주 및 정착했다. 당시 벨라루스에서 카자흐스탄 일대로 이주된 인구 중에는 폴란드인 인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흐루쇼프가 스탈린 대숙청 희생자들을 복권하는 과정에서 벨라루스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한 폴란드인들은 다시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는데, 이들이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영토로 다시 귀환할 경우 해당 지역 내에서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소련 시절에 양지역은 소련의 공화국이었다. 90년대 초에 소련을 유지하는 조약에 양지역에서 소련을 유지하는 투표에서 유지 찬성표가 많았다.

소련 해체 이후, 양국은 독립국이 되면서 수교했다.

소련 해체 이전 시행된 1989년 기준 인구조사에서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벨라루스인 인구는 182,601명에 달했고 소련 해체 이후 상당수의 벨라루스인들이 러시아나 벨라루스로 돌아가면서 1999년 기준 카자흐스탄에 잔류한 벨라루스인 인구는 11,926명으로 대폭 감소하였다.


2.3. 소련 해체 이후[편집]


양국은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 연합의 회원국들이다. 양국간의 교류, 협력이 활발하며 양국은 친러정책을 실시하는 등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다. 양국은 2014년에 러시아와 함께 유라시아 연합의 창설을 찬성했다. 카자흐스탄 북부에는 벨라루스인들이 거주하며 카자흐스탄내의 벨라루스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2020~21년 통계 기준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에 잔류한 벨라루스인 및 그 후손 인구는 52,222명에 달한다.#


2.3.1. 2010년대[편집]


2012년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미국과 EU의 벨라루스 제재를 반대했다.#

2014년에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연합을 결성했다.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서 레이스달린 속옷 판매 금지 조치가 실시돼 여성들이 항의시위를 진행했다.#

3. 문화 교류[편집]


양국은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공용어에 포함되어 있다. 양국간의 문화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4. 교통 교류[편집]


양국을 이어주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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