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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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상세
3.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Beijing Newbie

야구계에서 베이징 올림픽때 처음 야구를 접한 팬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 '베이징 늅늅'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특히 국내야구 갤러리등 조롱성이 짙은 커뮤니티에서 야구 관련 질문을 하면 "네 다음 베이징 뉴비", "네 다음 늅늅"이라는 소리를 자주 볼수 있다.

2. 상세[편집]


한국프로야구2002년 한일 월드컵의 흥행으로 축구가 주목을 끈 것과 맞물려 2000년대 초중반 엄청난 흥행 암흑기를 겪게 되고 덩달아 일본의 사회인야구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게 참패를 당해 동메달에 그치는 도하 참사를 겪고 난 후 야구계에는 신규 팬덤 유입이 한동안 뚝 끊어졌다.[1] [2]야구판의 근간이 흔들릴 뻔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선전과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야구붐을 일으켰는데 이때부터 KBO 리그의 상승세가 본격적으로 이루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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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2012년 까지의 총관중수 그래프.
이때 신규 팬덤의 유입이 대거 이루어 졌는데 이때 야구좀 봤다는 올드부심을 부리는 야구팬들이 신규 팬들을 일컬어 "베이징 뉴비"라고 부르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특히 야갤 및 각 팀갤에서는 신규팬들의 질문에 "뉴비는 닥눈삼"이라는 글로 씹기 일쑤로 무시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베이징 때 처음 야구를 접한 이들도 짬밥이 차면서 베이징 뉴비라는 단어가 사장되기 시작했는데, 이들도 2023년 기준으로 16년차 야구팬이 되었다[3]. 그런데 이때 한 야갤러가 "베이징 뉴비는 프로야구가 망할때까지 뉴비 소리 듣는게 당연"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이게 이 되어버렸고, 이후 야구관련 질문, 특히 규칙과 관련된 질문이 올라오면 "네 다음 베이징 뉴비"라는 댓글을 다는 것이 전통 아닌 전통이 되었다. 베이징 뉴비는 영원한 뉴비.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을 정도

손자: 할머니, 할머니는 언제부터 야구 봤어요?

할머니: 할머니가 처음 야구 봤을 땐 50년 전 베이징 올림픽 때였단다. 그때 태극기를 단 선수들이...

손자: 뭐야, 베이징 뉴비잖아.

물론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 눈치껏 쓰자.

베이징 키즈라고 불리는, 2008년부터 야구를 시작한[4] 고졸 야구인들이 2018년에 지명되어 프로 야구선수가 되었으며 점점 그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되어서 잘했던 한화의 이미지는 저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 브레이크 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2위와 승차가 없었고, 막강한 타격과 탄탄한 내야수비를 자랑하는 강팀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류현진-4연패를 3번 반복하는 믿기지 않는 추락을 하면서 5위로 시즌을 마감한 이후 5886899678이 시작되었다. 이후 2018년 가을야구에 진출했으나 이후 9AAA의 성적을 기록했다. 한 예시로는 2023년 7월 1일 한화가 8연승을 기록했는데, 이 8연승 전 마지막 8연승을 기록했을 때가 무려 2005년 6월이었으니 2023년 기준 이들이 어느덧 야구 팬이 된 지 16년차가 됐음에도 한화가 8연승을 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 된 것이다.

반대로 롯데 자이언츠8888577이 끝나고 2008년 로이스터 매직 중흥기를 맞아 이들에게 꼴데의 이미지는 비교적 약하다. 사직 야구장의 대흥행은 덤.

2008년 베이징에서 황금기를 누린 야구 국가대표팀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을 하며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게다가 2009년, 해태 시절 이후 한물갔다고 평가받으며 엘롯기로 조롱당하던 기아 타이거즈가 장타를 앞세워 호성적을 올리며 2009년 페넌트레이스와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나지완의 KBO 사상 최초로 7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마침내 모든 한국 프로 스포츠 구단을 통틀어 최초 두자릿수 우승기록이라는, V10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올드 해태 타이거즈 팬들도 다시 대거 야구판에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롯데 자이언츠 또한 200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8년 11개월 14일만에 가을야구 첫 승을 올리는 등 전통적인 인기팀들의 호성적으로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프로야구/2009년 참고.

이후 2010년까지는 잘 하다가 2013년 타이중 쇼크부터 다소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2015 프리미어 12에서의 우승처럼 좋은 성적을 기록한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그 이전까지의 대표팀의 선전보다는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다. 그리고 도쿄 올림픽 야구에서 김경문호/2021년이 납득되지 않는 선수운용과 노 메달의 결과를 보여주며 2021년 KBO 리그 코로나19 확산 사태KBO 중계료 배상요구 사건총재두 사태 등 여러 사태가 한꺼번에 겹쳐 프로야구가 암흑기에 빠질 것이라는 염려가 높아지고 있다. 베이징 뉴비들이 이탈하지 않고 새로운 뉴비들이 올 수 있도록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야구에 입문했던 선수들의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선전이 절실한 상황이었으나, 오히려 뉴비 유입은 머나먼 이야기가 되었다.

여담으로 이 베이징 올림픽으로 야구에 입문한 팬들은 SK와이번스두산 베어스의 팬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는데, 아무래도 최종전에서 끝내기 병살을 유도해 대한민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장면의 투수가 SK 소속이던 정대현이었기 때문이었으며 두산이 가장 많이 올림픽에 선수들을 승선시켰기 때문이다. 이 당시 SK가 막강한 전력으로 왕조를 구축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고. 때문에 SSG로 팀명이 변경된 지금까지도 해당 팬덤의 평균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는 인식이 있다. 여기서 파생된 별명이 바로 초딩솩. 두산은 계속해서 SK에 물먹으며 콩 이미지를 못 벗어나다가 2011년 큰 사고가 터진 뒤로 범죄두라는 멸칭이 생기고 만다.

여담으로 이 당시 야구에 입문한 팬들은 쌍방울 레이더스현대 유니콘스의 경기를 직접 보지 못했다. 특히 현대의 경우 2008년 1월에 해체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됐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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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도 이 당시 tv 시청률은 그럭저럭 나왔다고.[2] 또한 이 설명도 어폐가 있는게 도하참사는 WBC 선전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3] 잘 와닿지 않는다면, 1992년 롯데 우승을 본 팬들이 2008년 시점에 17년차 야구팬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들의 연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4] 초2 학생부터 리틀야구단 입단이 가능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