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묘국자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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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_4.png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파일:BeijingConfuciusTemple2.jpg




명칭
한국어
공묘와 국자감 박물관
간체
孔庙和国子监博物馆
번체
孔廟和國子監博物館
영어
Museum of Beijing Temple of Confucius and Beijing Guozijian
분류
고건축 및 역사기념건축물[1]
(古建筑及历史纪念建筑物)
고건축[2]
(古建筑)
시대
~
일련번호
1-0113-3-066: 국자감(国子监)
3-0082-3-030: 공묘(孔庙)
주소
중국 베이징시 둥청구 안딩먼네이 궈즈잔제15호
北京市东城区安定门内国子监街15号
등재
1961년, 1988년
차수
제1, 3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AAAA급
홈페이지
홈페이지
[1] 공묘[2] 국자감

1. 개요
2. 역사
3. 건축물
3.1. 공묘
3.2. 국자감
3.3. 관광 정보
4. 전근대시대 동아시아의 사당 목록



1. 개요[편집]


중국 베이징시에 위치한 박물관. 이름 그대로 베이징의 문묘로, 원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중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작용하였으며 동시에 우리나라의 성균관에 대응하는 건물이다.[3] 9단8묘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본래 공묘와 국자감은 사실상 하나의 건물군이고 당시에도 하나의 건축물로 인식하였으며 현재도 하나의 박물관이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는 따로따로 지정되었다.


2. 역사[편집]


1306년원 성종시기 공묘(孔庙)와 국자감(国子监)이 건축되었다. 이듬해에는 공자를 배향하고 동시에 공자에게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이라는 시호를 올렸으며, 원 문종이 황실규약으로 이를 공식화하고 공묘에 누각 4개를 건축하고는 원나라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운영했다. 그러다가 명나라가 건국되어 수도가 난징으로 바뀌면서 버려졌으나, 영락제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 반쯤 폐허가 된 원나라의 공묘 및 국자감을 수리하여 다시 명나라의 교육기관으로 사용하였다. 현재 남은 공묘 및 국자감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영락제가 중건한 건물들이다. 이후 가정제가 공묘제례를 개혁하고 공묘 맨 뒤에 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 아버지를 모신 숭성사(崇圣祠)를 건축했다.

대성전 가운데 공자를 그 좌우에 4성을 모시고, 공문십철, 송조육현, 동국십팔현을 모시는 한국과는 위패 배치가 다르다. 증자가 사성으로 높혀지면서 전손사(자장)을 십철에 추가했음은 똑같지만, 청나라 때 공문십이철로 유약과 송나라의 주희(주자)를 추가하였다. 또 한국에서는 해방 후 동서무의 중국역대제현 94명의 위패를 매안했으나, 중국 공묘에서는 아직 156명의 위패를 동서무에 모신다. 여기에는 순황(순자), 왕수인, 육구연처럼 성리학에서는 이단시되거나 위진남북조 시설 위진에서 종사한 왕숙, 두예, 마융, 하휴, 왕필 등이도 그대로 있다.

1737년, 건륭제가 기와를 유리기와로 교체하였고, 1906년 광서제가 공묘의 규모를 더 크게 키우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이 공사는 중화민국 시기인 1915년까지 지속되었고 1928년,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일반 시민들도 유학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당연히 유학공부는 중단되었고, 이 건물은 수도박물관으로 쓰이다가 수도박물관이 새 건물로 이사가면서 현재는 베이징시 소속의 유학박물관으로 사용된다.

3. 건축물[편집]



3.1. 공묘[편집]


사진
설명

파일:北京孔庙.jpg

선사문(先师门)
공묘의 대문으로, 3칸이다. 문 앞에는 하마비가 있는데, 해당 비석은 만주어, 중국어, 몽골어, 오이라트어, 위구르어, 티베트어로 적혀있다.

파일:BeijingConfuciusTemple1.jpg

대성문(大成门)
선사문을 지나면 나오는 문으로, 3칸이다. 대성전의 정문이다. 문 앞에는 공자상, 문 옆으로 석고(石鼓)가 있다.

파일:BeijingConfuciusTemple2.jpg

대성전(大成殿)
공묘의 중심 건물로, 본래 7칸이었다가 건륭제가 9칸으로 증축했다. 내부에는 공자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위패 옆에는 사배십이철(四配十二哲)이라는 쓴 현판을, 위패 앞에는 공자의 제단이 차려 놓았다. 또한 대성전 내외로 건륭제부터 선통제까지 청 황제 9명과 중화민국 총통 리위안훙의 명패가 걸려 있다.

파일:ff8ea100-3ecc-11eb-8d13-e7099030db04.jpg

숭성사(崇圣祠)
대성전 뒤에 있는 건물로 가정제가 지었는데, 공자의 아버지 계성왕(啓聖王)을 배향한 사당이다.


3.2. 국자감[편집]


사진
설명

파일:国子监_北京.jpg

집현문(集贤门)
국자감의 대문으로 3칸이다. 동서로 우물이 나 있으며, 동쪽에는 공묘와 통하는 문인 지경문(持敬门)이 있다.

파일:国子监琉璃牌坊_-_Glazed_Arch_of_Imperial_Colledge_-_2015.09_-_panoramio.jpg

유리패방(琉璃牌坊)
집현문을 지나면 나오는 유리로 된 3칸의 패방으로, 1783년 건륭제가 세웠다. 패방 앞에는 원교교택(圜桥教泽), 패방 뒤에는 학해절관(学海节观)이라는 글씨가 다.

파일:Guozijian_2.jpg

벽옹(辟雍)
국자감의 중심 건물로, 건물을 감싸는 수로가 있고 이 수로에 다리가 나 있다. 건륭제가 지었으며, 건륭제 이후의 청 황제들은 즉위 후 이 곳에 들러서 유생들에게 강의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벽옹은 중국 천자가 지은 최고 교육기관을 뜻하는 보통명사이나 현재 남아있는 벽옹은 이 건물 하나뿐이므로 중국에서 벽옹을 말 하면 보통 이 건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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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당(彝伦堂)
벽옹 뒤에 있는 건물로 원나라 때는 숭문각(崇文阁)이라는 이름이었다가 명나라 때 개칭되었으며, 당시에는 황제의 강의처였다가 후에 서고로 역할이 변경되었다.

파일:b4562930-3ecf-11eb-8d13-e7099030db04.jpg

경일정(敬一亭)
이륜당 뒤에 있는 건축물로 가정제가 지었다. 국자감 제례용 제례주를 제작하였던 건물이다.



3.3. 관광 정보[편집]


베이징 지하철 2호선, 5호선 융허궁역에서 진입하면 된다. 입장료는 30위안으로, 당연히 두 건축 다 포함한 가격이다.

4. 전근대시대 동아시아의 사당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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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초에 둘 다 유학기관인 문묘이기 때문에 당연한거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