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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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존 버튼.png
해당 정책을 주도한 존 버튼 의원 (1933~2008)

1. 개요
2. 상세
3. 라인업

Button car plan / Motor Industry Development Plan

1. 개요[편집]


호주 정부에서 1980년대~1990년대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배지 엔지니어링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1]


2. 상세[편집]


호주에서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했던 조치로, 원래 명칭은 자동차 산업 개발 계획이었으나, 당시 연방 상공부 장관이던 존 버튼의 이름을 따 해당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당 정책에 대한 논의는 1983년 중반부터 이어져 왔다.[2]

1985년부터 존 버튼 의원이 일본에 방문하면서 이 법안의 내용을 알린 후부터 시행되었으며, 수입차 관세를 줄이고 현지 생산차종을 13종에서 6종으로 줄이면서 내수 업체들을 자극해 경쟁력을 늘리고자 했다. 당시 호주의 자동차 산업은 수입 관세와 할당량 또는 수입량을 제한하면서 보호받을 수 있었는데, 버튼 플랜을 통해 도출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원 통합으로 자국 자동차 산업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당시 57.5%에 달했던 수입 관세가 점진적으로 인하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호주에서 생산되던 차들은 거의 수출되지 않고 내수시장 내에서만 판매되었기 때문에 규모경제를 확대하여 자동차 제조업의 사업성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론적으로 이것은 국내 산업을 수입품과의 경쟁에 노출시키고, 호주 국산 승용차의 개선을 촉진하고, 경쟁력 있는 수출 산업의 기반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효과를 가지고 있었다.[3]

존 버튼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에게 버튼 플랜에 동참할 것을 설득했으며, 일본 메이커들도 호주 점유율을 높일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버튼 플랜에 참여하였다.#

때문에 1984년부터 홀덴닛산,[4] 또는 포드와 닛산이 팀을 이뤄 각자의 차를 배지 엔지니어링해서 판매했고, 이는 홀덴 코모도어-토요타 렉센이 단종되는 1997년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마쓰다 역시 포드와의 협력을 통해 포드 커리어마쓰다 B-시리즈에 2.6L 아스트론 I4 엔진을 탑재하려고 했으며, 토요타 코롤라배지 엔지니어링미쓰비시 콜트의 후속 모델 개발을 유도했지만, 이 두 사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미쓰비시는 이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결국 2008년에 차량 생산을 중단했으며, 닛산 역시 1994년을 끝으로 차량을 호주에서 생산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 호주 시장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잡던 포드 역시 2016년, 홀덴토요타2017년에 생산을 중단했다. 여기에 홀덴2021년을 끝으로 브랜드와 법인마저 완전히 폐기되었다.

판매량에서도 소비자들은 배지 엔지니어링 버전보다 원판 모델을 선호하였고, 생산규모도 연간 40만대 선에서 30만대 선으로 가라앉는가하면 자동차 시장에서도 1990년대로 넘어갈수록 배지 엔지니어링 차종들이 단종된 자리를 유럽, 일본, 한국 등지의 수입차로 매꾸며 수입차종의 판매비중만 확대되었다.[5] 따라서 버튼 플랜은 호주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완전히 시장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3. 라인업[편집]


버튼 플랜 적용 차량
원판 차량

배지 변경 차량
차량명
차량 사진
생산 기간

차량명
차량 사진
세대
홀덴

토요타
코모도어
파일:1988 홀덴 코모도어.jpg
2세대

렉센
파일:토요타 렉센.jpg
1989년~1997년
토요타

홀덴
캠리
파일:1989 토요타 캠리.jpg
2~3세대

아폴로
파일:홀덴 아폴로 왜건.jpg
1989년~1997년
코롤라
파일:1989 호주 토요타 코롤라.jpg
6~7세대

노바
파일:홀덴 노바 1991.png
1989년~1996년
닛산

홀덴
펄사
파일:닛산 펄사 ET 터보.jpg
2~3세대

아스트라
파일:1세대 홀덴 아스트라 후면부.jpg
1984년~1989년
비고
후에 파워트레인홀덴 엔진이 두 차종에 적용되었다.
닛산

포드
핀타라
파일:닛산 핀타라.png
2세대

코세어
파일:포드 코세어.jpg
1989년~1992년
패트롤
파일:닛산 패트롤 Y60.jpg
4세대

매버릭
파일:포드 매버릭 호주형.jpg
1988년~1994년
비고
패트롤에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후면부에 적용되었지만, 매버릭은 모두 드럼 브레이크만 적용되었다.
여기에 색상 및 사양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포드

닛산
팰컨 유틸리티
파일:1989 포드 팰컨 유틸리티.jpg
5세대

유트
파일:닛산 유트.jpg
1988년~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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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는 IMF 외환위기 이전에 국내 자동차 산업을 그래도 재편하는 데 도음을 줬다는 긍정적 인식이라도 있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2] 한때 호주에서는 크라이슬러, 브리티시 레일랜드, 폭스바겐 등까지 현지생산을 진행하며 1970년 기준 47만 5천대를 생산하여 자동차 생산대수 10위를 달성하기도 했으나 높아지는 임금 수준, 늘어나는 제조사 수 대비 늘어나지 못하는 생산대수로 인해 현지생산업체 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3] 여기에는 마쓰다와 포드의 합작 차종이자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인 포드 레이저와 미티어의 상업적 성공이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이 있다. 원본 모델이자 일본 직수입으로 들어온 마쓰다 패밀리아와 호주에서 병행판매되었으나 당시 호주의 수입대수 제한을 넘기 위해 국산화율 50%를 달성하는 등으로 현지생산을 고려한 현지화를 단행했고, 판매량은 연 2만대를 예상했음에도 최대 연간 5만대에 호주 자동차시장 판매량 4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는 실적을 거두며 호주 포드가 점유율에서 홀덴을 넘어서는 데 기여했다.###[4] 1989년부터는 호주 토요타UAAI라는 합자 회사를 만드는 형태로 손을 잡았다.[5] 특히 수입차종으로 대체된 자리는 대부분 호주에서 전통적으로 잘 팔리던 중~대형차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던 중형차급 이하의 세그먼트였다. 호주 포드와 홀덴은 버튼 플랜이 폐지된 이후로 홀덴 크루즈를 제외한 중형차급 이하를 모두 수입차로 전환했으며 토요타도 캠리, 아발론, 오리온으로 대표되는 중형~준대형급에 집중했다. 여기에 태국과의 FTA가 2005년에 체결되며 인건비가 낮은 태국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준중형차 이하 세그먼트와 픽업트럭, SUV의 호주 현지생산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고, 2008년의 글로벌 경제위기가 겹치며 1990년대 말 저유가 시대부터 부흥기를 맞았던 호주산 대형차 라인업들의 판매량을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