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쿠사이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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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필리핀의 함선을 다룬 기록화[1]

방쿠사이 해전
Battle of Bangkusay

날짜
1571년 6월 3일
장소
필리핀 루손 섬 방쿠사이 수로
원인
타리크 술레이만과 레가스피의 주권 다툼
교전국
톤도 왕국
스페인 왕국
지휘관
타리크 술레이만†
라자 술레이만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병력
?척
?척
피해
전사자 ?명
부상자 ?명
전사자 ?명
부상자 ?명
포로 ?명
결과
톤도 왕국의 패퇴.
스페인 왕국의 승리와 식민지 수도 건설.
1. 개요
2. 전개
3. 이후 향방



1. 개요[편집]


방쿠사이 해전은 1571년 6월 3일 벌어진 톤도 왕국스페인 왕국해전이다. 스페인의 침략과 파시그 강 삼각주의 식민화에 저항하는 필리핀 원주민[2]들의 마지막 전투로 알려져있다.

이름없는 군주로 알려진 마카카베의 타리크 술레이만이 연합해서 톤도를 치자는 스페인의 요청을 거절하고 되려 적으로 맞서싸웠으나 패배하고 자신도 죽음을 맞았다. 여기서 승리한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는 톤도의 지도자 라칸둘라와 연합해 도시에 정착하고 주변 지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2. 전개[편집]


스페인 식민 수도를 물색하던 레가스피는 세부일로일로에서 포르투갈 해적에 치여 루손 섬으로 향한다. 비축된 식량도 떨어져가던 찰나, 1570년 마르틴 데 고이티와 후안 데 살세도 선장이 루손 섬이라는 천혜의 땅을 발견한 것이었다. 데 고이티가 카비테에 정박할 때 지역의 군주였던 라자 술레이만을 만나 화친을 꾀했으나 지역의 통치권을 둘러싼 갈등 속에 전쟁이 선포된다. 술레이만을 고지대까지 바짝 몰아붙인 뒤 돌아간 콩키스타도르들은 1년 뒤 더 큰 규모의 군대로 돌아온다. 레가스피 홀로 이끄는 280명의 스페인 병사와 600명의 원주민 연합군이었다. 이를 본 원주민들은 마이닐라에 불을 지르고 톤도로 도망갔다. 레가스피는 폐허가 된 마닐라를 수습해 정착촌으로 개발하고 도시(Ciudad) 칭호를 붙인다. 이때가 1572년 6월 19일이었다.

이때 마카카베족 지도자 타리크 술레이만은 홀로 스페인의 지배를 거부하고 나섰다. 톤도와 마이닐라를 포함한 불라칸 족장들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한 술레이만은 카팜팡인으로 구성된 군대를 소집하기에 이른다.

1571년 6월 3일, 라자 술레이만이 합세한 타리크 술레이만의 군대는 팜팡가 강 하구 방쿠사이 수로에서 스페인을 공격한다. 마르틴 데 고이티는 함대를 2열로 포진시키는데, 술레이만은 이게 미끼 작전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다가와 포위하며 거리를 좁혔다.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레가스피가 포문을 열고 술레이만 함대는 허무한 최후를 맞게 된다.

3. 이후 향방[편집]


타리크 술레이만은 전투 중 전사하지만 라자 술레이만은 살아서 팜팡가로 탈출했다는 스페인 측 기록이 전해내려온다.

1571년 6월 24일, 레가스피는 염원하던 자치 정부를 구성한다. 이때 세운 마닐라는 스페인령 동인도 전체를 통감하는 식민지 수도로 발전하고 나중에 필리핀 공화국의 수도 마닐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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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페인 함선(왼쪽), 필리핀 함선(가운데), 콩키스타도르와의 전투(오른쪽)[2] 그중에서도 톤도 왕국과 마이닐라 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