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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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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조간 일간 신문.사실에 대한 믿음, 할 말은 하는 용기
아침의 베스트셀러, 조선일보[3]
조선일보 본사는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으며, 조선일보는 1920년 일제강점기 중 문화 통치기에 언론 탄압이 완화되었을 때 첫 발간되었다. 2020년 3월 5일 창간 100주년을 맞이했다. 2017년 6월 24일, 대한민국 최초로 지령 30,000호를 넘었다.
신문의 논조와 정치적 성향은 국내의 제도권 신문들 중 가장 강경한 보수주의 우파 반공주의. 실제 대내외적으로도 보수주의[5] 성향을 공개적으로 표방한다. 또한 한국의 보수 우파 신문 3대장인, 이른바 조중동 중에서 언제나 첫 번째로 꼽히는 언론이기도 하다.[6]
2020년대 이후에도 신문 업계 내에서 만큼은 한국 내 최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모바일 혁명 이후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론사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던 과거의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뒤에는 방송사, 또는 포털사이트 등에도 영향력이 뒤쳐지게 되었고, 대부분의 매체 신뢰도 및 영향력 조사에서 5위권 이내에 들지 못하고 있다.[7] 이후부터는 자회사인 TV조선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방송계에 진출하여, 그룹 차원의 매체 영향력 유지를 꾀하고 있다.
언론사 매출 순위에 2011년 동아일보에 한차례 1위를 내어준 것을 제외하면,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매출 기준 신문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다만 2002년과 2022년의 매출 규모를 비교하면, 20년 만에 약 4,817억 원에서 약 3,219억 원으로 약 32% 가량 매출이 감소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8]
2. 역대 제호[편집]
해당 제호를 쓴 사람은 오세창이라는 증언이 있으나, 정작 조선일보 측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1969년 기사. 다른 신문사의 제호도 나와있다.
3. 인지도[편집]
2021년도 한국 ABC협회 유료부수 통계에서도 2위 동아일보와 상당한 격차를 벌린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별로도 부산일보가 1위인 부산광역시와 매일신문이 1위인 대구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시도 지역에서 일간지 유료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9] 물론 후술된 내용이나 신문 항목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렇게 알려진 유료부수나 발행부수의 대부분이 뻥튀기 부수인 것은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10] 일례로 2018년도에 신문 업계 관계자가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100만이 무너졌고, 동아일보는 실제 유료부수와 ABC협회 공사결과와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라는 증언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22년에는 조선일보를 판매하는 수도권 신문 지국장이 "조선일보 유료부수 55만부 줄 거 아니면, ABC협회는 부수인증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11] 어쨌든 1970년대 말 발행부수 1위를 기록한 이래로 줄곧 발행부수나 유료부수가 제일 많으며[12] , 따라서 적어도 신문사 가운데에서는 가장 큰 매체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스스로 '1등 신문'임을 내세운다. 물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신문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매체로서의 신문 영향력 또한 급격히 쪼그라드는 세상이 된 터라 과거처럼 '신문 중의 영향력 1위'가 더이상 '언론 중의 1위'가 아니게 되었다. 일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는 '언론수용자 조사'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모든 매체를 통들어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모두에서 줄곧 3위 안에 꼽혔으나, 2020년 현재 통계 기준으로 보면 여러 지상파 채널 및 종편과 포털 사이트에 밀려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순위 모두에서 10위로 추락했다.[13]
박정희의 집권 시기인 1960~70년대에는 동아일보와 같은 독보적인 1등 신문은 아니었지만 박정희 정부와 깊게 결탁하는 한편[14] , 이를 통해 마련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동아일보에 버금가는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이후 조선일보가 본격적으로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하나회 일당의 12.12 쿠데타였다. 이후 전두환 신군부에 적극 영합하면서 피해를 보지 않았고[15] , 조선일보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던 방우영은 전두환이 집권을 위해 만든 초법적 통치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입법위원으로 참여하며 노골적으로 결탁했을 정도였으며, 특히 전두환이 집권을 눈앞에 두었던 시기인 8월 23일에는 그 유명한 '인간 전두환 -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이라는 용비어천가급 특집 기사를 쓰며 전두환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전력을 쏟았다. 원래 이 기사는 조선일보의 기사 라이브러리에서 아주 오랫동안 삭제되어 있었는데, 창간 100주년 기념으로 조선일보가 자체 아카이브를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100'으로 개편하면서 비로소 대중에 공개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몇몇 언론 비평 매체 기자, 또는 언론학을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직접 국회도서관에 가서 해당 기사에 대한 마이크로 필름을 열람한 후 썼던 분석 기사, 논문, 언론비평 서적 등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었다.
또한 조선일보가 1980년대에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언론통폐합이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주요 경쟁지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방송사인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을 KBS에게 강제로 헌납했고 한국일보 역시 자매지인 서울경제신문의 사업을 접어야하는 등 모두 언론통폐합으로 엄청난 재산을 뺏긴 반면, 조선일보는 일부 개혁 성향의 기자들만 해직시키는 선에서 처리했고, 전두환 정부에 깊이 참여하여 지속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전성기는 1990년대로 꼽을 수 있는데,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 자유화가 되고 지면 제한이 없어지자 의욕적인 확장에 나서서 발행 부수가 200만 부를 넘겼고[16] , 보수 정치권이나 경제계와 결탁하여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당시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미디어 광고 시장의 수혜도 톡톡히 누렸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는 김대중을 적극적으로 비토해서 '反 DJ 정서'를 고착시키는 한편, 1990년 3당 합당과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김영삼을 적극적으로 편들어 준 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매체 영향력을 입증하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당시 조선일보의 논조는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진 초원복집 사건 관련 보도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심지어 정치 권력을 옹립하는 기능으로써의 거대 언론 권력이 최초로 부각된 사례가 김영삼 정부와 조선일보의 결탁이었다는 분석이 이후 언론학계에서 나올 정도였다.[17] 이 덕분인지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바로 다음날 서울 흑석동에 있는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의 집을 방문하여 만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가 가졌던 막강한 권력을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었다.[18]
거기에다가 이 시기는 언론 통제도 누그러질 때라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덤이었다. 물론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도 같이 200만부를 넘겼기 때문에 혼자 독주를 하지는 못했지만[19] , 어쨌든 영향력으로나 매출액으로나 이때 만큼의 전성기는 없었다. 사실 이 전성기 시절에도 조선일보가 능력있는 기자들을 많이 보유했던 것과는 별개로 오보를 많이 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어쨌든 시간이 훌러 1997년 대선에서도 조선일보는 이회창과 이인제를 놓고 이회창을 선택했고, 한동안 이인제가 승승장구해서 지지율이 이회창을 크게 앞섰을 때에도 중앙일보와 합작해서 이회창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도 했지만[20] , IMF 외환위기가 한창 닥쳐왔던 때라서 표 분산을 완전히 막지 못한 채로 결국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발행부수가 200만부를 여전히 넘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기에 국민의 정부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비토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2001년부터는 동아일보도 보수 진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이른바 조중동 3사가 전부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총재이자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을 밀어주는 스탠스가 되었다.
조중동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널리 정착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절정에 이르렀던 2001년에는 발행부수가 248만 부에 달했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이후 각종 이슈를 만들어내면서[21] 참여정부의 지지율을 하락시켰으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이후로는 박근혜를 밀어주면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종편 출범 이후부터는 TV조선도 50대 이상 보수층에게 꽤나 강력하게 어필하면서, 여전히 종이신문 자체 발행부수에 비해 보수층에서 만큼은 높은 매체 영향력을 행사했다.
3.1. 향후 전망[편집]
조선일보 전성기의 마지막 시점은 대략 2000년대 초반 즈음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례로 2001년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 변용식 기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전국 국민의 4분의 1이 같은 시간에 조선일보 기사를 본다", "영향력 면에서 정치권력을 능가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여 구설에 오를 정도였으며[22] ,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각종 언론 비평에서 '천만 독자 조선일보'라는 표현이 간혹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초고속 인터넷과 컴퓨터의 보급이 점차 이뤄짐에 따라 언론매체의 환경 또한 온라인으로 점점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는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과 함께 통신 환경 또한 모바일 위주로 급변하기 시작하면서 신문 구독률이나 열독률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조선일보의 매체로써의 영향력도 함께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기사를 쓰면 여론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지만, 세월이 흘러 현재는 조선일보가 1면에 뭘 쓰든, 사설에 뭘 쓰든 여론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부터는 매체 영향력의 확연한 축소세와 더불어 취재력의 한계 또한 뚜렷하게 관측되는데, 이는 종이신문 산업 전체의 영향력 축소와도 직접적으로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발행부수나 유료부수 집계는 신문 업계에서는 이미 가짜 유료부수 만들기로 허수와 다름 없이 인식된 지도 오래이고, 조선일보의 유료부수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약 100만 부 정도와는 다르게 이미 오래 전부터 100만부 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ABC 공사에서 발표하는 유료부수는 신문대금의 45%만 지불해도 유료부수 1부로 집계해 주고, 짧은 집계 실사 기간동안 신문 사측에서 보급소로 강제 밀어넣기 영업을 통해 유료부수를 부풀리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발표 자체의 공신력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종이신문의 가구 구독률이 약 60% 가량 되던 2000년 경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약 200만 부였는데, 종이신문 구독률이 6.3%로 떨어져 종이신문 구독률 자체가 과거에 비해 약 10분의 1 수준이 된 2021년에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약 100만 부로 발표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급격히 줄어든 가구 구독 대신 영업장 구독[23] 쪽에 집중하여 유료부수 숫자를 어느 정도 방어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영업장 구독 확대를 통한 부수 방어에도 한계가 있고, 또한 영업장 구독은 그 특성상 신문 독자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매체의 집중도와 독자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미약해지므로, 줄어든 유료부수나 구독률보다도 훨씬 더 매체 영향력이 더욱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중평.
실제 조선일보의 매체 영향력 상실은 객관적인 통계 자료로도 입증되는데, 단적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수행하는 언론 수용자 조사의 결과를 보면, 2010년의 신문 열독률 조사[24] 에서 조선일보의 열독률이 17.7%로 조사 되었던 것이, 10년 후인 2020년의 조사에서는 3.2%가 나왔다. 10년 만에 열독률이 5분의 1 이하로 급락한 것이다. 물론 이는 종이신문 산업 전체가 쪼그라들어서 그런 것인지라 모든 신문사가 전반적으로 비슷한 비율로 열독률이 줄어든 것인데, 특히 종이신문 업계 선두주자이던 조선일보는 열독률에 관한 절대 수치에서 매우 큰 타격을 입었다.# 2016년 제20대 총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로는 2010년대 전반기에 비해서도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평이 많으며,[25] 전통적인 보수층에서도 상당수가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비토한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다양한 극우파 인터넷 대안 언론이나 극우 유튜브 등으로 갈아타는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한편 종편 채널인 TV조선이 탄생하면서 완전히 레거시 미디어로 전락한 종이 신문에서 벗어나 방송으로 진출한 후, 60대 이상의 노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전략이 성공하여 2020년 들어서는 JTBC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다. 물론 광고주들에게 가장 중요한 숫자인 '2049 타켓 시청률'면에서 보면, JTBC가 지상파 3사나 tvN과 비슷한 레벨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에 반해 TV조선은 해당 청년 세대에게는 존재감이나 소구력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참고로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는 소비 성향이 크고, 문화 생활의 동향 및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방송국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인데, 당연히 이 세대를 타겟으로 한 광고나 프로그램은 광고 효과가 크므로 단가 또한 상당히 비싸다. 종편 경쟁사인 JTBC의 채널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진 판이어서, 중장기적으로는 방씨 가문 우위의 조중동 체제가 홍씨 가문 우위의 중조동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 조선일보 계열에 대한 가장 불안한 지점은 방송통신위원회 차원에서의 TV조선의 방송 재허가 취소와, 사주 가문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이다. 실제 TV조선은 늘 방송 재허가 여부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또한 방상훈 회장의 아들인 방준오와 방정오에 대한 지분 상속 작업이 제대로 아직 이뤄지지 않은 터라, 계열사 분할-합병 작업이나 지분 상속 사항 등에 따라 앞으로 상속 및 승계의 불법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4.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사주 일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오너 일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업무환경[편집]
대체로 임금도 많고, 노동 강도가 세다고 알려지지만, 2017년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크레딧잡 조사 결과 조선일보 임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6,875만 원으로, 내일신문, 연합뉴스, 중앙일보에 이어 4위이다. 그러나 이 연봉평균값은 기자들이 받는 평균 연봉이 아니라, 조선일보 회사에 고용된 다양한 분야의 일반 직원들을 포함하여 전체 평균낸 것이므로, 직책, 직급, 파견, 연차별 기본급이나 성과급 추산 등의 측면에서 왜곡이 많다.
참고로 국내 신문 업계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 소속 기자들의 연봉 및 처우는 다른 대기업 직장인들에 비해서도 꽤 두둑한 편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대기업 직장인들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게 된 상태이고, 심지어 같은 언론계인 지상파 방송국에 비해서도 뒤쳐진 지 이미 오래이며, 지금은 다른 신문사나 중견기업들과 비교해야 하는 정도이다. 사실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대형 신문사들의 영향력, 위세, 권력이 대단했고, 처우까지 좋았기 때문에 언론사 지망생들이 조중동과 지상파 방송국에 동시에 합격하면, 대형 신문사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젠 전세계적으로 이미 종이신문이 사양산업이 되었고, 국내 대형 신문사들의 미래도 암울하긴 마찬가지인 터라, 지금은 조중동과 방송국에 동시에 합격하면 웬만하면 방송국으로 가려고 하지 신문에 남으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례로 조선일보 노조의 노보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입사한 기자 106명 가운데 무려 40명이 퇴사했다고 한다. 과거 조선일보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경력 10년 미만의 평기자 급에서조차 인력 유출이 심각한 지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인 것.#
참고로 과거 신문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기자, 특히 조중동과 같은 대형 언론사 소속 기자의 '끗발'과 '위세'라는 것이 대단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받는 봉급 외에 여기 저기서 받아 먹는 촌지는 물론이고, 출입처나 취재 대상들로부터 이리 저리 챙기는 각종 물질적, 비물질적 혜택들이 엄청났다. 기자들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출입처에서 촌지로 받아 챙기는 돈이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을 정도. 일례로 1991년 '보건사회부 기자단 촌지 사건' 때 폭로된 내용을 보면, 추석 명절 기간을 전후로 보건사회부 출입 기자단 19명이 출입처와 관련된 여러 대기업과 협회로부터 받은 촌지 규모가 무려 8,850만원에 달했다는 보도가 있었을 정도였다. 기자 1인당 약 465만원씩 나눠 가진 셈이었는데, 참고로 당시는 대졸 신입 대기업 직장인 기본급이 7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일선 평기자들이 평범한 직장인들 월급보다도 몇 배나 많은 뇌물을 불과 명절 기간 며칠동안에 '떡값'이랍시고 출입처에서 낼름 받아 챙기는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는 말이다.# #
한편 2010년대 후반부터 사측과 조선일보 노조 사이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서 독보적으로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데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연봉을 그닥 인상해 주지도 않고,[26] 온라인 뉴스 집중 정책 때문에 거의 2배 가량 늘어난 업무량에 비해 처우 개선도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특히 인력 확충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나 근무 시간이 과중되는 등, 사측에서 제대로 된 업무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27]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부가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한다며 '노동자 임금 인상 자제' 방침을 내세우자,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강경한 보수 우파 신문 답게 정부의 해당 방침에 대해 꾸준히 적극 찬성하는 논조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조선일보 노조에서 자사 기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조선일보가 '물가 인상을 억누르려면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게재한 것에 대해 응답자의 86.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특히 81.7%가 자신의 임금에 대해 불만족한다고 답했고, 88.8%는 자신의 대학 동기 등의 준거집단에 비해 본인의 임금이 낮다고 답했다. 사설이나 칼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보도 방향에서조차 임금 동결 정책에 대한 찬성 논조가 일관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조선일보 기자들이 '노동자들 임금 인상 하지 말라'고 열심히 기사와 칼럼을 써놓고, 정작 자신들 월급만은 낼름 올려서 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노조 측에서도 2022년 6월30일 발행한 노보를 통해, "인플레이션 악화를 막기 위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그간의 본지 사설 내용과도 일치한다"며,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설에 따르면 조선일보 직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제 대기업은 고사하고 중견기업 수준이 된 우리 월급 명세서를 바라보다가, 본지 사설을 읽으니 마음이 착잡하다”는 조합원의 반응까지 나왔다고.#
또한 조선일보 편집국 내의 과도한 업무량, 근무 강도, 퇴사자 증가로 인해 인력난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다른 신문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대형 신문사라고 하는 조선일보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노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편집국의 의무휴가 사용률이 66.4%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업무의 압박 때문에 직원들이 의무휴가 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특히 사용 안한 의무휴가에 대한 연차보상도 없어서, 처우가 점점 열악해 지고 있다고 한다. 해당 노보에 따르면, 편집국에서 지면 제작에 참여하는 기자 수는 지난 2017년 222명에서 2020년 216명, 2023년에는 202명까지 줄었다고 한다. 지면 기사 작성이나 온라인 기사 송고 뿐만 아니라, 유튜브, 뉴스레터 등 갈수록 업무량은 폭증하는데, 인력은 되려 대폭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부, 사회부 등의 대형 주류 부서에서 조차 의무휴가 사용율이 60%를 밑돌 정도로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7. 성향[편집]
조선일보의 성향과 논조는 국내 제도권 언론사 중 가장 강경한 보수주의, 우파, 반공주의이다. 일명 조중동이라고 일컫는 '보수 언론들'의 선두주자이기도 한데, 조선일보 쪽에서는 조중동으로 함께 엮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다시 말해, 사회 분위기나 회사 사정에 따라 2000년대 초반 한때 잠시나마 보수 성향에서 벗어난 논조를 보여주기도 했던 중앙일보나, 과거 90년대 후반까지는 중도 개혁적 성향이였던 동아일보와는 달리, 조선일보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일관적인 이념적 보수 우파 반공주의 성향의 초강경 노선이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의 경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섹션별로 논조가 조금씩 다를 때도 있지만, 조선일보만큼은 그야말로 모든 이슈와 섹션에서 초강성 보수주의, 우파, 반공주의 논조의 기사와 칼럼을 쏟아낸다. 심지어 스포츠 섹션의 칼럼에서조차 뜬금없이 '좌우파 이념' 드립을 치는 문장이 튀어 나올 정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 그래서 전통적인 이념 보수 성향의 노년층을 제외한 다른 연령대의 보수 성향 사람들 중에는 조선일보의 논조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의 불화를 겪으며 자신들이 그렇게 옹호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가열차게 깐 적도 있다. 당시 조선일보는 친박계를 비판하고 청와대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며 박근혜 정부와 극한의 대립을 펼쳤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인 16년 8월에는 청와대가 "조선일보는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못박아 둘 사이의 관계가 최악까지 갔다. 다만 박근혜가 역대 최악의 정치 스캔들에 연루되어 탄핵당할 지경까지 갔을 때는 정권교체의 위기감을 느꼈는지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을 비판하고, 박사모의 광고를 실으면서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 응집을 시도했다.
과거 보수정권 시기에는 전반적으로 온건한 논조를 보이던 조선일보이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같은 조중동 계열인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훨씬 뛰어넘는 자극적인 칼럼과 기사가 유독 많아졌다. 국내 정치 현안과 정부 공직자들의 크고 작은 혐의나 비리 관련 보도와 관련하여 여타 보수 언론들보다도 훨씬 더 원색적인 칼럼과 강경한 논조로 확대 보도하고 있으며, 특히 별의별 극우 단체나 종교 단체들의 홍보 광고가 조선일보에 유독 집중적으로 실리고 있다. 일례로 2020년 8월 중순 이후 벌어진 전국적인 코로나-19 대량 감염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극우 단체들의 광복절 집회 홍보 광고가 7~8월 동안 가장 집중적으로 게재된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였다. 심지어 조선일보를 위시한 조중동은 당시 집단 감염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전광훈 측의 일방적인 입장문을 전면광고 형태로 또 실어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이후의 조선일보 논조는 과거 진보정권 시기의 보도 논조보다도 훨씬 더 우경화된 상태라는 평이 많다.
2010년대 후반들어서 정치 관련 유튜브가 급성장하면서 강성 보수층들이 극우 유튜브로 건너가고 있는 터라, 조선일보가 점점 극우 유튜브와 정치적 프레임 경쟁을 벌이거나, 심지어는 조선일보에서 극우 유튜브의 정치적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먹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2020년 제21대 총선 이후, 조선일보의 최고위급 기자인 김대중 고문과 최보식 선임논설위원 등이 극우 유튜브에서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을 그대로 받아서 본인들의 기명 칼럼을 통해 주장하기도 했다.
각 언론사별 비하 명칭에서도 조선일보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안티조선 운동이 본격화 되던 90년대 후반 이전부터도 그러했다. 특히 매년마다 발표되는 언론 매체 신뢰도 관련 여론조사에서 언제나 '불신하는 매체' 1위에 고정적으로 오르는 영광(?)을 차지한다. 단, 이는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들 대상 여론조사기 때문에 실제 언론의 신뢰도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일반 사람들의 선호도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또한 매체 신뢰도나 선호도 조사에서도 종종 조선일보가 상위권을 차지할 때가 있는데, 이는 보수 지지자들이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를 선호한다고 대답하기 보다는, 조선일보에 대해 긍정 응답을 몰빵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기자협회에서 현직 기자 6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여론조사에서 조선일보가 10.1%로 신뢰도 1위를 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데, 실질적으로 들여다 보면 모름/무응답이 24.8%로 압도적인 1위였으며, 각 언론사별 수치가 매년 요동치는 터라 숫자 자체의 일관성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기에는 힘들다.
미국의 미디어 편향 체크 웹사이트 MBFC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논조는 전반적으로 일방적인 보수 내셔널리즘 보도를 기반으로 중도 우익 편향으로 평가했다.[28] 또한 잘못된 출처 인용, 자본 투명성 부족 및 팩트 체크 실패로 인해 보도 사실성은 Mixed로 평가했다.[29] MBFC의 분석에 따르면 헤드라인에 감정적인 워딩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의 탄소 중립 계획은 몽상이다., 여당은 국회의원 부패로 더럽혀졌다, 야권, 재보궐선거 싹쓸이 여당에 불똥 튀다와 같이 보도했다. 또한 같은 국내 뉴스를 보도할 때는 젊은 지도자의 당선 이후 국민의힘에 새로운 당원들이 몰리다와 같은 뉴스로 보수 야당 국민의힘에 긍정적인 어조로 편향되었다고 판단했다. 사설에서는 강경한 보수 우파 성향며 거의 모든 사안에서 현 대통령인 문재인 및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수년간 헤드라인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문 대통령 지지율 급락, 왜 납세자들은 문 대통령의 어리석음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탈원전땐 40% 전기료 폭등” 보고서, 文정부 처음부터 뭉갰다와 같이 보도했다.
8. 비판[편집]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비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안티조선 운동[편집]
1998년 최장집 교수 사건을 계기로 잉태되어 2000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 국내 진보 시민사회 단체로부터 안티조선 운동의 요주의 대상으로 오르기도 했다. 이는 조선일보가 1969년 3선 개헌 시기부터 쭉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반민주주의적인 논조와 친독재정권, 기득권 세력 옹호 논조, 사실관계 왜곡보도와 허위보도, 짜깁기, 특정인 모욕주기 등을 보다 못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안티조선 운동을 펼쳤으며, 이들은 조선일보 구독 거부 및 사절, 조선일보 신문 및 잡지 불매운동 등을 벌였다. 2001년 조선일보가 언론사 세무조사 대상에 올랐을 때 조선일보 사측이 세무조사를 거부하고 다른 보수 언론들이 조선일보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이러한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를 넘어서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이른바 족벌언론 3인방인 조중동 전체에게 불똥이 튀기도 하였다.
2008년 광화문 촛불시위 때는 광화문에 집결했던 과격 폭력 시위자들에 의해서 본사 입구가 공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그 때문에 조선일보 간판이 부서지고 출입문 유리가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또한 옆동네 동아일보도 과격 폭력시위자들에 의해 동아일보 깃발이 강제로 끌어내려져 밟힐 뻔도 했고, 동아일보 간판과 출입문이 박살 나고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후에 한 청년이 조선일보 본사 건물과 함께 쓰고 있는 코리아나호텔의 손님으로 가장하더니 조선일보 사옥 유리창을 깨부수고 조선일보는 폐간하라라는 현수막을 보이며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이 기성 종이신문 점유율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일보의 권위와 권력에[30]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히는데는 성공했으며 종이신문의 쇠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종이신문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에는 조선일보를 보며 불쾌해하면서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인식하며 수용을 했고, 또한 1990년대 당시 대항 매체였다고 할 수 있던 PC통신은 이용자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비싼 전화요금과 느린 속도때문에 파급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데 반해, ADSL이 보급됨에 따라 인터넷을 값싸게 즐길 수있게 되면서 다음, 야후, 네이버, 엠파스, 네이트 등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종이신문의 발행부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가 안티 조선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던데다가, 시의적절하게 상대적으로 親 민주당계 리버럴 포지션이던 동아일보가 세무조사에 반발하며 보수진영으로 전환해버리기까지 하면서 종이신문의 신뢰도가 당대의 30대 이하 계층에게서 폭락해버렸고, 또한 폭락한 종이신문의 신뢰도가 그대로 고착화 되면서 그 기간 동안 조선일보를 포함한 종이신문들의 신규독자층의 유입이 확 줄어드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는 네이버와 다음 등의 대형 포털 사이트와 다양한 언론 비평 매체 등을 통해 조선일보의 기사에 대해 실시간 교차 검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31] 또한 점차 조선일보의 과거의 보도 기사들과 논조들이 알려지고 공유되면서 과거 조선일보에서 올렸던 오보들과 편향적인 기사들이 계속해서 재발굴되기도 했는데, 이 덕분에 현대는 물론 과거 대한민국에서 거대한 위상을 차지했던 조선일보의 과거 행보에 대해 비판적/회의적인 시각들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이때 언론 비평계에서 재발굴했던 기사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 전두환 -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이라는 용비어천가급 찬양 기사였다.
다시 말해, 미디어의 변화와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시민사회의 격변을 거치면서 '조선일보'라는 무소불위의 언론 권력에 대한 권위가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만 해도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조선일보를 두고 "그래도 1위 신문사인데..." 하면서 어느 정도는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좆선이 그럼 그렇지 뭘 바라냐"는 반응이 확 많아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조선일보 차원에서도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과거에 간혹 시도했던 구독층 확장을 위한 '중립적인 논조' 기획마저 사실상 철회하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보수층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논조로 매몰되기 시작했다. 구독층 확장을 위한 논조 다변화 대신,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자들의 입맛에 맞는 논조를 공고히 하게 되면서 조선일보의 신뢰성에도 상처를 계속해서 내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덕분에 전통적 구독자들을 결집, 유지하는데는 큰 효과를 보여주었지만, 반대로 또 과거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조선일보의 정치적 편향성들이 더 크게, 계속해서 부각되는 부작용을 안겨주게 되었다.
그 외에도 과거와 달리 조선일보를 경영하는 방씨 일가의 지배 구조에 대한 의혹 제기들도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과거엔 그냥 쉬쉬하면 되는 문제였고, 과거엔 조선일보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방씨 일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언론 보도는 감히 상상치도 못할 일이였다. 하지만 점차 조선일보를 소유/지배하는 방씨일가 내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속속히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방씨 일가 뿐 아니라 방씨 일가가 소유하는 조선일보도 같이 이미지가 실추되게 된다. 결국 장자연 자살 사건 의혹,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 조선일보 사주 손녀의 운전기사 폭언 사건 등을 거치면서 사회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도 상당하다. 무소 불위의 힘을 자랑하며 견제 받지 않던 권력인 조선일보와 방씨 일가라면 그런 막장 행각들도 충분히 발생할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참고로 김어준이 90년대 말에 조선일보의 안티테제로 만든 것이 바로 딴지일보이다. 그래서 딴지일보는 초창기부터 쭉 조선일보를 집중적으로 까는 기사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그 유명한 '월스트리트 저널 왜곡 번역 보도 사건'을 최초로 밝혀내어 세상에 폭로한 것도 딴지일보였다.[32] 다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즈음까지는 조갑제와 김대중 등이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 TOP 10에 꼭 들었을 정도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여전했었고, 아무리 김어준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주목받는 언론인이 되었다 한들, 어디까지나 인터넷 대안 매체 분야에 한정된 인물이었고, 심지어 중소기업 수준 회사의 재정 충당을 위해 관광 가이드업이나, 쇼핑몰, 성인용품 판매 같은 잡사업까지 도맡아 할 정도였으니, 당시에는 둘의 규모나 영향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아예 신문 산업 자체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의 여러 온라인 미디어들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2016년 제20대 총선, 2017년 제19대 대선, 2020년 제21대 총선 등의 주요 정치적 이벤트를 겪으며 조선일보의 미디어 영향력이 줄어들고, 비슷한 시기에 나는 꼼수다와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이 일부의 지지를 받으며 그 영향력의 점유율이 많이 바뀐 상태이다.
참고로 안티조선 운동 자체는 현재는 거의 수그러든 상태이고,[33] 각 사이트들은 원래 있던 사람들이 계속 있는 경우가 다수이며, 운동가들 중 일부는 극우 반공주의 운동가로 전향한 상태다.[34]
11. 경제면 및 주간 섹션, 기타 연재물[편집]
지금은 어느덧 옛말이 되었지만,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의 진정한 강점은 경제면과 문화면에 있다고 했을 만큼, 엄청난 고품질을 자랑했다. 조선일보가 정치면과 논설면의 편집에서는 강경한 보수 우파 성향이라서 진보 좌파 성향의 독자들은 거부감을 보여도,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덜한 문화면 쪽의 지면 편집만큼은 꽤 호평받았던 것. 일례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활동하면서 맹활약을 하던 때가 바로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였다. 이동진은 1993년에서 2006년까지 조선일보에서 문화부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활동했는데, 이동진의 영화 평론은 그 당시 조선일보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신문 앞머리를 차지하는 정치면과 마지막을 차지하는 논설의 서술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경제면과 문화면 등의 다른 섹션이 마음에 들어서 구독한다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조선일보 기자 경력만 20년이 넘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도 평이 좋다.[35] 한편 경향신문, 한겨레 등 진보 언론은 이런 쪽에서는 확실히 약한 편이며, 차라리 사회면이나 경제면의 탐사보도 측면에서 승부하는 언론으로,[36] 서로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된다. 즉 누가 좋다 나쁘다를 판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경제면은 조선일보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강력하게 승부하던 컨텐츠였다.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거물급 경제신문과 경쟁하기 위한 방안으로 냈다고 하는데, 조선일보의 신문으로써의 힘이 남아있던 시절만 해도, 기업들 입장에선 조선일보의 지면을 놓칠 수 없으니, 컨텐츠 자체는 확실히 빵빵한 편이긴 했다. 특히 경제섹션의 마지막에 나오는 최신 과학기술 동향 소개, 취업전략 소개 등은 꽤 알찬 편이었으며. 특히 토요일의 Why 섹션은 저 많은 섹션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았다.
어쨌거나 이런 비결 덕분에 김재철·김종국·안광한·김장겸 사장 때의 MBC와 비교해서도 성공적으로 전 회사적 위기를 잘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았다.[37]
그러나 모바일 혁명이 자리잡고, 인터넷 채널이 본격적으로 다변화 된 2010년대 이후로는 문화 컨텐츠나 경제 컨텐츠의 헤게모니가 전부 인터넷과 유튜브, SNS 등으로 넘어간 터라, 과거처럼 조선일보 문화면과 경제면이 조선일보 특유의 컨텐츠 생산력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문화 컨텐츠는 말 할 필요도 없고, 경제면만 해도 국내 경제신문들도 힘이 없어지는 판에, 조선일보 경제 섹션이 주목되기가 만무인 것. 사실상 경제 컨텐츠들의 이슈 메이킹 능력도 유튜브와 기타 인터넷 채널 쪽으로 거의 다 넘어갔으며, 특히 고급 컨텐츠 수요는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이코노미스트 등 유력 경제 전문 외신으로 확연히 집중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모바일 기기의 급격한 보급을 통해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이코노미스트를 유료 구독하는 독자들의 규모가 상당해진 터라, 경제 분야를 취재하는 일선의 기자들보다도 되려 권위있는 외신을 유료 구독하고 있는 국내의 일반 독자들이 최신 고급 정보를 취득하기가 훨씬 쉬워진 환경이 되었다. 또한 한때 조선일보의 강점이었던 최신 과학 기술이나 취업 전략의 경우에도, 이미 고급 정보나 최신 정보는 다양한 인터넷 미디어 채널들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해외 미디어 등이 중심이 된지 오래다.
한때 조선일보가 전성기를 구가하며 풍부한 인력을 굴리던 과거에는 아예 섹션만을 위한 취재팀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기자들은 일반 정치, 사회면을 거의 건드리지 않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지만 최근에는 이것도 옛말이고 편집국 인원이 경영 효율화 명분으로 퇴직/유고 등 자연소멸분 만큼 100% 다 충원이 안 되기 시작하면서 거의 대부분 기자가 본지 기사를 쓰고, 섹션면 기사도 쓰며, 클릭 앵벌이용 인터넷 기사까지 열심히 쓴다. 본 부서는 경제부면서 경제면 조간 마감을 막고, 섹션 기사 쓸 일이 있으면 소속팀에서 또 기사를 쓰는 것. 여기서 노동 강도가 더 늘어나면 요즘은 예전보단 덜하지만 가끔 TV조선 패널로도 가는 경우가 있으니 결코 노동 부담이 작다곤 할 수 없다.
참고로 여러 섹션들에서는 지금도 광고 영업을 위해 광고형 기사, 업계 용어로 'advertorial section'을 열심히 만든다. 기사의 형식을 빌려서 사실상 광고를 실어주는 경우임을 저 단어로 명시하고 있는 것인데, 회사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경우라 만들긴 만드는 것이다. 대체로 갓 졸업한 기자가 연습용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고, 한직으로 밀려난 주간조선이나 월간조선 소속 기자들이 광고 영업의 일환으로 협찬을 따와서 일간 지면 섹션을 채우는 경우도 많으며, 사실상의 대충 이름만 걸어 놓은 외주 광고를 나타내는 '객원기자'란 명칭도 많이 보인다.
조선경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12면이 발행되고, 금요일은 8면을 발행한다. 경제 뉴스 외에 Stock & Money면을 고정 운용하며, TV프로그램 면도 여기에 편성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자 학습 연재물과 치매 예방 콘텐츠도 이 섹션에 실린다. 요일별로 특화된 콘텐츠 또한 정기적으로 수록되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N: 세계를 보는 창 Now
이슈 & 트렌드
부동산
건강 섹션 Health+: 물론 특정 병원 광고성 기사도 있지만 정보성 기사도 많은 편이며 주 독자가 아무래도 노년층이 많아서 맞춤형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보관해서 어르신들께 선물해 드리면 좋아할수도 있다. 에듀 섹션: 특목고, 상위권 대학으로 가거나 갔던 학생들의 공부방법 등을 알려주는 정보다. 다만 사교육 업체의 광고가 좀 많은 편이라 걸러 들어야 하며 기존에 삽지되던 교육 섹션 맛있는 공부는 단종되었다.
자동차섹션 Auto: 말 그대로 자동차에 대한 섹션이다. 최신 기술동향, 최신 발매 차량의 정보, 최신 기술 등을 소개하는 코너. 1개월에 1번 온다. 모터쇼라든가 큰 기사거리가 없을 때는 신차 홍보 기사를 쓰고, 박스 기사로 취재 기자의 탑승기를 울며 겨자먹기로 주로 붙이는데 기사 양을 늘리기 위해 아는 형용사를 총동원해 운전감과 탑승감을 서술하는 기자의 분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2018.04 기준) 월요일 경제면(B9~B10)에 격주로 실린다.
2018년 9월 21일자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하였다. 10월 27일자를 마지막으로 발행된 Why? 섹션과 합쳐 11월부터 새로운 형태로 발행한다고 한다.
Books: friday와 붙어 있으며 주로 서평, 책 추천, 인기 작가 인터뷰가 수록된다. - 토요일 A면으로 원상복귀 하였다.
아무튼, 주말: 금요섹션 friday와 토일섹션 Why?의 특장점을 하나로 모아, 매주 토요일 독자를 찾아가는 12면 짜리 주말 섹션이다. 아무튼, 주말 섹션의 도입에 따라, 11년 반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던 Why? 섹션은 종간됐다. 이로써 2007년 3월 중앙선데이 창간으로 개시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일요일판 신문 전쟁은 11년 반만에 막을 내리고, 토일섹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8년 3월 중앙일보가 토요일자 신문을 폐지하고 중앙선데이를 토요일에 대체 발행한 것을 기점으로 조선일보의 토일섹션은 사실상 그 수명을 다했던 것이다.
Weekly Biz: 별매품으로 발행되는 경제경영전문 격주간지. 별도 신청자에 국한하여, 무료 삽지하여 배달된다. 최근 10년 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미국의 대기업 CEO 인터뷰 등 거물급 인사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다. 무려 2007년도에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단독 인터뷰도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2017년 3월부터 별도 신문으로 독립해서 2주에 1번 오는데 월 3천 원이라는 구독료를 따로 받는다. 이 섹션은 인터넷으로 제공되지 않으며 기존 구독자는 무료로 신청 가능하다.[38] 물론 한국 언론이 이런 인물들과 단독으로 인터뷰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2007년 도널드 트럼프 이런 스케일의 인물들은 이건희 회장보다도 더욱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돈도 많이 벌 정도로 자국 언론 인터뷰도 응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며, 그런 인물들은 대한민국을 아직까지도 변방 취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선일보 정도나 되어야 단독 인터뷰를 따올 수 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학자의 인터뷰도 싣고 기업의 사회적 윤리를 매우 강조하는 등, 경제경영학 원론적 이야기 수준을 넘는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기사처럼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을 볼 수 있는 양질의 기사가 많다.
* 2010년 5월 4일부터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섹션을 오픈, 지속 연재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 및 CSR, NGO, 사회적경제 분야의 공익 소식을 다룬다.
- 2010년 10월 25일부터는 '신문은 선생님' 섹션에서 둘리 과학여행, 둘리 호기심 나라, 포켓몬 코리아 산하 포켓몬 교육연구팀이 제공하는 '포켓몬 한자왕'을 연재하고 있다.보러가기 2011년 5월 16일자부터는 5세대 포켓몬들이 등장하며, 글자 단위에서 단어 단위로 바뀌었다. 2012년 10월 26일자부터는 매주 금요일마다 포켓몬 사자성어도 연재한다. 포켓몬 극장판 개봉 기간에는 극장판에서 나오는 포켓몬들이 주로 나온다. 2014년 3월 10일자 801회차 때부터는 6세대 포켓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Why?: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또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이 실리는 편이다. 또한 사회면의 사건 중 특별히 추리소설적으로 풀어낼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심층 분석해 준다. 간장 두 종지라는 흑역사급 사건도 있었지만, 이희진이 한창 뜰 때 인터뷰를 했다가 사기꾼 같다는 점을 기자의 동물적 본능으로 알아채고[39] 내보내지 않은 선견지명 있다. 앞장이 아닌 뒷장 섹션이라고 해서 얕잡아볼 섹션이 절대 아니다. 조선일보에는 기자가 작정하고 말아먹은 사례(송희영 주필 등)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3류 사기꾼이 사기를 치려는 것까지 용인할 수준의 신문사는 절대 아니다. 현재는 발행되지 않는다. 양경숙 전 라디오21 대표가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이미지를 통해 <조선일보 Why>지면에 플랑드르 스칼렛이 등장#했다.
아래 2개는 하나의 섹션으로 온다. 각각 1~5면, 6~8면이다. 4면은 전면광고, 5면은 보통 IPTV 컨텐츠 소개면이다.
Tech & Biz : 4차 산업혁명 시대 최신 IT 기술동향을 소개하는 코너. 전자신문의 마이너 버전이라 보면 된다. 현재는 폐지됨.
과학섹션 iF (into the Future) : 이영완 기자가 기획한 과학섹션으로 최신 과학에 대한 소개를 주로 한다. 과학동아의 마이너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중력파같이 상당히 어려운 개념을 여기 나올 정도로만 써도 매우 쉽게 쓴 편이라는 게 중론이었지만 현재는 폐지된 섹션이며, 조선경제 섹션에 병합되었다.
신문은 선생님: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신문 활용 교육(NIE, Newspaper in Education)을 실시하는 지면. 초중고 전/현직 교사가 주 집필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지면은 절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래의 독자인 아이들에게 종이 신문을 읽는 좋은(?) 습관을 들여 주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매요일마다 각각 한국사(월), 자연과학(화), 세계사(수), 경제학(목), 예술(금) 분야의 소재 한 가지를 정해서 소개하며 한자, 영단어 어원 소개도 있다. 하단에는 최근 이슈가 된 내용의 소재 또는 희귀종 생물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알찬 내용이 많으며 토론란의 경우 중립적으로 양측의 입장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두근두근 뇌운동: 치매 예방을 위해 머리를 쓰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코너인데,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신문 사진 잘라 붙이기, 숫자 계산하기, 문장 활용하기 등이 꾸준히 나오고, 이것을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치매 예방센터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코너의 한가지 특징은 조선일보 특유의 강성 친박 논조의 기사 제목을 치매 예방 놀이의 예시 문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 문제가 해당 프로그램 개발 주체인 중앙치매센터를 상대로 한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다뤄졌고, 결국 조선일보 특유의 '기사놀이'는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최보식 기자의 인물 인터뷰 지면. 종래에 토일섹션 'Why?'에 연재되던 고정물이었으나, 2010년대 중반부터는 매주 월요일 오피니언 앞면에 게재되고 있다. 최보식의 인터뷰 스타일은 인터뷰이에 반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인터뷰이의 심연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본다거나, 심층적인 정보와 논리를 독자 제위에 선사하려 노력한다고는 하는데, 여러가지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일단 인터뷰이 선정부터 다소 안일한데, 주로 사회 원로, 그것도 일반적인 원로라기 보다는 조선일보 독자들 기준의 원로를 주로 인터뷰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원로 전문가 계층보다도 더 연배가 높은 7~80대 나이의 노년층 전문가를 주로 섭외하기 때문에 인터뷰 내용이 상당히 고루하고 고색창연한 느낌을 줄 때가 많아서, 최보식도 이렇게 노쇠해져 가는 것인가 하는 의아함을 자아낼 때가 많다. 정년퇴임을 몇년 남겨두지 않은 최보식의 안일한 특성이 드러난다는 평가가 많고, 조선일보 지면 전반에서 두드러지는 노쇠화와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1년 1월, 최보식 기자의 정년퇴임 및 퇴사와 함께 이 섹션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2. SNS 활동[편집]
유튜브 채널도 여러개 운영중이다.
조선일보사에서 운영하는 공식 유튜브 채널이 존재한다. 정치 콘텐츠를 주력으로 다루고 있으며 11시 김광일 쇼, [41] , 이슈포청천 [42] , 정치펀치, [43] 등의 컨텐츠들이 업로드되고 있다. 대부분의 콘텐츠들은 조선일보 미술관에 있는 스튜디오 광화문[44] 에서 제작된다고 한다.
또한 아래와 같은 유튜브 채널들도 있다.
- TV조선
- TV조선 뉴스[45]
- 아고라[46]
- 땅집고[47]
- TV조선JOY
- TV조선PLUS
- 스튜디오 잼스터[48]
- 조선비즈
- 헬스조선[49]
- 헬스조선명의
- 월간조선
- 여성조선
- 씨브라더[50]
- 테크잼 연구소[51]
- 디지틀조선TV[52]
- 조선미디어센터
과거 조선일보 페이스북은 여타 다른 언론사 페이스북과 같이 뉴스 기사 링크만 제공하는 페이지였으나 카드뉴스 등 젊은 층을 타겟팅한 뉴스 컨텐츠를 앞세워 신문사 페이스북 중 이용자 수 1위를 달성하며 2015년 하반기 좋아요 수가 30만을 돌파했었다. 2017년 2월 현재 좋아요 수는 약 55만이 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조페지기(조선일보 페이스북 지기)의 드립 때문이다.
원래 조선일보 페이스북 좋아요는 기존 보수 성향의 페북 이용자들에 불과했으나 조선일보 페이스북 지기가 기사 내용과 관련된 드립을 댓글로 올리기 시작하자 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드립으론 '김정은[53] , '안철수', '문재인', '김무성', '최경환' 등의 정치적인 관련된 대상을 이용하는 드립이며 보수주의적인 성향의 이용자 뿐만 아니라 일반 유저들도 팔로우하고 조선일보에 반감을 갖고 있던 유저들도 좋아요를 눌렀으나 최순실 게이트와 정권교체 이후 노선이 강경해지자 주목도는 떨어진 편이다. 참조
2015년,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메갈리아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JTBC에서 JTBC 뉴스룸 성우 교체 보도 논란이 일어나자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가 격렬한 비판을 가했는데 조페지기는 이를 두고 "JTBC덕분에 인터넷이 통일되었다"며 글을 썼다. 2016년에 조선일보 페이스북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등을 비판하지 말라고 다량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의견 감사합니다🙂'라고 반복하고 무시하며 무지개 반사를 시전하는 것이 밈으로 자리잡았다. 기존 종이 신문에서의 보도 논조와는 다르게 보수정권에 대한 비판은 2016년에 들어 더욱 심해졌는데 박근혜 정부와 사이가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서 기자가 다양한 드립을 쳤다. # 2017년에도 재미있는 드립이 나왔다. 마약의 현장 2017년 이후로는 주로 조선2보 페이지에서 드립친다. 바로가기 이후 한동안 뜸하다 2019년 지드래곤의 휴가 관련 논란에서 'GD, 이번에도 Goon Dae 논란'이라며 유머성 게시글 업로드를 다시 시작했다. 또한 2019년 5월부터 관리자가 웃긴 댓글을 뽑아 시상하기도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2019년 이후로는 조선일보의 논조가 강경해지며 드립이 잘 언급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페북에서 밝힌바로는 페북을 관리하는 고정된 기자가 있는 것은 아니고, 기자들이 돌아가며 당번식으로 맡는다고 한다. 페북 관리자가 직접 "한 명이 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을 했다.[54] 이외에 조선일보 인스타그램에도 진출해 있으며, 같은 관리자가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트위터도 존재하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드립을 치지는 않는다. 페북 관리하는 기자중 한 명은 야갤러 내지는 국내야구 갤러리계 디시인사이드 갤러로 보인다.
13. 관련 인물[편집]
가나다순
- 강천석 - 전직 조선일보 주필이자 조선일보 고위직 기자로 호남 출신이다.[55]
- 강효상
- 김기림 - 조선일보 1기 공채기자. 시인이자 비평가. 모더니즘 이론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 김대식 -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를 집필한 외부 필진이다.
- 김대중
- 김재봉 -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1920년대 중반 조선일보 기자 활동. 조선공산당 창립 주역 중 한명.
- 김종환 - 前 기자. 퇴사후 '참깨방송'이라는 우파 유튜브를 운영중.
- 류근일 - 2000년대 초반 논설위원. 소위 운동권에서 전향한 386세대 언론인 중 인지도가 제법 높다. 조선일보 퇴사 후에는 뉴데일리 고문으로 활동 중.
- 리영희 - 1960년대 조선일보 외신부에서 기자로 활동.
- 문일평 - 독립운동가. 1933년~1939년 조선일보 편집고문. 그의 외손녀는 방우영의 부인이기도 하다.
- 경영진 방씨 일가
- 백석 - 시인. 조선일보 출판부 기자로 근무했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데뷔.
- 선우휘 - 1971~1980년까지 주필, 1980~1986년까지 논설고문 역임.
- 선우정 - 선우휘의 아들. 現 편집국장[56] . 일본 특파원, 논설위원역임
- 송병준 - 친일파. 1921년~1924년 조선일보 사주.
- 송희영 - 조선일보 전 주필. 대우조선 로비 의혹으로 모든 직에서 사퇴했다.
- 신석우 - 독립운동가. 1924년~1931년 조선일보 사주. 1927년~1931년 조선일보 사장.
- 심훈 - 독립운동가. 1928년~1931년 조선일보 기자. 상록수를 쓴 작가.
- 안재홍 - 독립운동가. 1931년~1932년 조선일보 사장.
- 양상훈 - 조선일보 편집국장, 논설실장, 논설주간 등을 역임했다. 송희영 前 주필의 사임 이후 실질적으로 주필을 담당. 2017년 3월 주필겸 이사로 승진.
- 양희원 - "양해원의 말글 탐험" 작가. 여자 같지만 나이 지긋한 남성이다.
- 우종창 - 前 월간조선 기자. 과거 노무현이 호화요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과를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받은 적이 있는 기레기로, 이한우와 더불어 최장집을 비난하는는데 앞장섰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밀고 있으며, <우종창의 거짓과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조국 사태에선 조국이 박근혜 탄핵을 담당한 재판장과 식사를 했다고 부적절한 행위라 주장했다 명예훼손으로 실형을 구형받았다.
- 유광렬 - 조선일보 사회부장 출신.
- 이광수 - 친일파. 소설 연재 및 부사장 역임(1933년~1934년). 당시 민족개조론을 비판하던 사람 중 하나인 신일용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기 조선일보 논설주필로 활동한 조선일보맨이었다.
- 이규태
- 이도형 - 6.25 전쟁 때 통역장교로 참전했으며, 1965년 입사 이래 주일특파원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함. 1989년 퇴사 후 한국논단 창립. 2020년 4월 5일 작고.
- 이상재 - 독립운동가. 1924년~1927년 조선일보 사장.
- 이승복 - 독립운동가. 1927년~1933년 조선일보 이사 및 영업국장. 신간회 소속이기도 했다.
- 이육사 - 독립운동가, 시인. 조선일보 기자
- 이한우(기자) - 베른하르트 크반트와는 무관. 월간조선의 우종창과 더불어 최장집을 비방하는 기사의 주도자이기도 하였다. 2016년 퇴사로 기자 일선에서는 은퇴. 이후에는 조선사와 동양유교철학(논어 등)에 전념하고 있다. [57]
- 유봉영 -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재무부에서 일하면서 재정지원을 하다가 경찰서와 형무서에 여러차례 수감되었다. 1936년~1940년 조선일보 폐간시까지 기자로 활동. 조선일보가 1945년 복간된 뒤 재입사하여 1971년까지 재직하며 주필과 부사장을 역임했다.
- 윤희영 - 매주 목요일 날씨면 위의 코너인 "윤희영의 news english"를 집필한다. 여자인 것 같지만. 나이 지긋한 중장년 남자다.
- 정영일 - 영화 평론가로, 1960~1987년까지 영화전문 기자로 재직하며 문화부장, 체육부장, 특집부장, 소년조선일보 주간, 편집위원 등을 역임함.
- 조갑제 - 20세기 말의 조선일보맨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높으며 기자정신도 인정받는 편이지만 그만큼 어그로도 많이 끌던 인물. 월간조선으로 옮겨 활동하다 경질 후 조갑제닷컴으로 독립.
- 조만식 - 독립운동가. 1932년~1933년 조선일보 사장.
- 주돈식
- 최병우 - 1952년~1954년 조선일부 외신부장. 종군기자
- 최병렬
- 최석채 - 1959년~1971년 조선일보에 재직하며 편집국장, 주필 등을 지냈다. 2000년에는 1964년 언론윤리법 파동 때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선 공로로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선정하는 20세기 언론자유영웅(Press Freedom Hero) 50인에 뽑혔다.
- 최우석 -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독립운동가 최능진의 손자.
- 최은희 - 독립운동가. 조선일보 기자.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여성 기자 중 한명이었다.
- 최보식 - 매주 월요일 a27면에 "최보식이 만난 사람들" 집필. 주로 최근 이슈에 연관된 사람, 의견을 내는 사람을 만남. 그 역시 태블릿PC 조작설에 대하여 호의적인 논설을 낸 바가 있다.
- 하쿠 신쿤 - 조선일보 일본 지사장. 현 입헌민주당 참의원 의원
- 한기악 - 독립운동가. 조선일보 편집국장
- 한용운 - 독립운동가, 작가. 장편소설 '흑풍'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며 데뷔했다. 이후 장편소설 '박명'도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소설외에도 각종 논설, 수필 등도 기고 했으며 194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일보가 폐간될때까지 '삼국지'를 번역 연재했다.
- 허문도
- 홍명희 - 독립운동가, 소설가. 대표작 임꺽정을 조선일보에 1928년~1939년에 걸쳐 연재하다가 조선일보가 폐간되는 바람에 '조광'에 잠시 연재했으나 미완으로 끝났다.
- 홍사중 - 1990년대 '홍사중 칼럼'으로 애독자들에게 이름을 날림. 논설고문 역임.
14. 사옥[편집]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코리아나 호텔 주변에 일부 사무실이 있다.[58] 현재의 모습은 2001년에 보수한 것으로, 1970년대 이전에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조선일보 사옥이 있었다.
광화문 정면에서 '조선일보' 네 글자를 볼 수 있다.
코리아나 호텔 뒷편에 있는 공식 사옥.[59] 1988년에 준공되었다.
별관이 사실상 본사 건물이다. 조선일보 사장 집무실과 기자들이 상주하는 편집국이 있는 건물.
15. 사가[편집]
작사는 본사 사가제정위원회, 작곡은 김정길이 담당했으며, 1980년 2월에 제정되었다.
16. 여담[편집]
- 내일은 늦으리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환경보전 슈퍼 콘서트의 부제이다. 말 그대로 환경보호를 위해 톱스타군단이 총출동한 대형 콘서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