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레이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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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레이 실바의 챔피언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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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반디를레이 세자르 다시우바[1]
(Wanderlei César da Silva)

국적
[[브라질|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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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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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생지
파라나 쿠리치바
거주지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생년월일
1976년 7월 3일 (47세)
종합격투기 전적
51전 35승 14패 1무 1무효

27KO, 1SUB, 7판정

7KO, 7판정
체격
180cm / 93kg[2] / 188cm
링네임
Axe Murderer
테마곡
Darude - Sandstorm
주요 타이틀
IVC 초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Pride 초대 미들급 챔피언
Pride 2003 미들급 그랑프리 우승
기타
Pride 2005 미들급 그랑프리 3위
Pride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 3위
Pride 미들급 타이틀 방어 4회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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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적
3. 커리어
3.1. 초창기
3.2.3. 2003 미들급 그랑프리
3.2.4. 2005 미들급 그랑프리
3.2.5.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
3.3.1. 도핑 테스트 거부 사태와 은퇴
3.5. 은퇴
4. 파이팅 스타일
5. 기타
5.1. 떡밥 논란
5.2. 머리가 나쁘다?
5.3. 과한 관중 의식
5.4. 실바의 굴욕
5.5. 인간 관계
6. 둘러보기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브라질의 전 종합격투기 선수. 슈트박스 아카데미 출신으로 Pride, UFC, 벨라토르 등에서 활동했다.


2. 전적[편집]







3. 커리어[편집]



3.1. 초창기[편집]




브라질에서 무에타이, 종합격투기 선수 생활을 시작해 승승장구했으며 1998년 10월 UFC Brazil에서 엄청난 KO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문제는 KO를 당했다는 것.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비토 벨포트에게 1라운드 시작 44초만에 기관총 펀치를 맞고 넉아웃되었다. 이 경기는 UFC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회자된다.

허나 IVC에서는 연승을 이어가 1999년 4월 유진 잭슨을 초살로 보내버리며 IVC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따냈고, 이후 UFC와 Pride를 번갈아가며 4연승을 거뒀다.

2000년 4월 UFC 25에서 티토 오티즈와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두고 대결했지만 티토의 레슬링에 말려 5라운드 내내 하위에 깔린 채로 판정패했다. 한때 스탠딩에서 승기를 잡기도 했지만 완전히 끝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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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런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위안이다.


3.2. Pride[편집]



3.2.1. 사쿠라바 카즈시[편집]


티토와의 시합 이후에는 PRIDE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한다. 2000년 8월 PRIDE 10에서 가이 메츠거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 양 선수 모두 타격전을 피하지 않는 가운데 화끈한 난타전이 벌어졌고, 실바는 얻어맞으면서도 계속 전진을 거듭해 결국 메츠거를 KO로 쓰러뜨렸다. 다만 실바가 클린치에서 박치기를 시전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실은 그 전에 이미 한차례 다운을 빼앗으며 승기를 잡았고 클린치 직전 라이트훅이 들어가며 이미 메츠거의 다리가 풀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반칙은 반칙이지만.

2000년 10월 PRIDE 11에서는 길버트 아이블과 대결했는데, 20초 만에 로블로로 인해 무효 경기가 되고 말았다. 12월 PRIDE 12에서 가진 댄 핸더슨과의 시합에서는 체격 차를 살리며 타격전에서 완전히 압도한 끝에 만장일치 판정승을 따냈다. 다만 체중 차 때문에 4점 니킥이 금지된 시합이었는데, 그만 질러버리고 말았다. 일찌감치 실바가 다운을 따내며 원사이드하게 흘러간 공방이었으나 반칙왕 이미지는 더욱 짙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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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의 PRIDE 13은 실바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 중 하나였다. 당시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그레이시 헌터" 사쿠라바 카즈시와의 대결이 잡힌 것이다. 실바는 여기서도 체격의 우위를 살려 사쿠라바를 몰아붙였고 펀치로 다운을 만들어낸 끝에 그라운드와 클린치에서 니킥 지옥을 선사하며 TKO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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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합으로 MMA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3.2.2. 레이드[편집]


이후 실바는 수많은 일본인 선수들의 레이드에 직면했다. 그만큼 일본 격투계에서 사쿠라바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높았고, DSE 역시 외국인 선수에게 최강자 자리를 오래 맡겨 놓을 생각은 없었다. 흥행을 위해서라도 일본인 스타의 존재는 절실했다.

2001년 5월 오야마 슌고가 도전했으나 30초 만에 나가떨어졌다.

2001년 11월에는 사쿠라바 카즈시가 리벤지에 나섰다. PRIDE 초대 미들급 타이틀 결정전이기도 했던 이 경기는 사쿠라바의 스탠딩 길로틴에 카운터 슬램을 먹인 실바의 승리로 끝났다. 슬램의 충격으로 사쿠라바의 어깨가 탈골되며 닥터 스톱이 선언된 것. 약간은 싱거운 경기 내용과 함께 PRIDE 미들급에서 실바의 집권이 시작됐다.

12월 PRIDE 18에서 알렉산더 오츠카를 김장 매치 끝에 파묻어버린 실바는 2002년 2월 타무라 키요시의 도전을 받았다. 사쿠라바의 선배이자 Rings 시절 일본인 에이스였던 타무라는 많은 기대와 함께 실바와의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타무라 역시 관광을 당했고 실바는 펀치에 이은 사커킥으로 KO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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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에는 미르코 크로캅과 특별룰로 이벤트 시합을 했는데, 여기서는 클린치와 테이크다운을 십분 활용하며 MMA에 갓 입성한 크로캅을 타격으로는 안되겠다 느낀 것인지 여러번 테이크다운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판정이 없는 특별룰이었기에 공식적으로는 무승부로 기록되었으나, 내용상으로는 실바가 괜찮은 경기였다.[3] 다만 크로캅도 미들킥으로 실바의 갈비뼈 부위에 멍을 들게 하는 저력을 보이기는 했다.

2002년 8월 이와사키 타츠야를 1분 만에 눕혀버렸고,[4] 11월에도 카네하라 히로미츠를 상대로 사커킥과 스톰핑으로 승리하며 타이틀을 한차례 더 방어했다. 해가 바뀐 2003년 8월에는 다시 사쿠라바 카즈시의 도전을 받았다. 사쿠라바는 힘에서 밀린 1,2차전에 대한 해법으로 증량을 해서 돌아왔는데,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되어 스피드를 잃게 된다. 결국 래그킥을 차다 카운터 원투를 얻어맞고 실신하며 실바전 3전 전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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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2003 미들급 그랑프리[편집]


사쿠라바 카즈시와 타무라 키요시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유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요시다 히데히코였다. 두 선수는 2003년 11월 PRIDE 미들급 그랑프리에서 맞붙었는데 결과는 실바의 완승이었다. 경기 초반 요시다가 TD를 성공시키며 우세를 잡는가 했으나 실바의 가드에 막혀 실질적인 데미지는 거의 주지 못했고 2라운드의 타격전에서 완전히 발렸다. 요시다의 안면은 피로 물들었고 패배한 요시다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경기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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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에서 대결한 선수는 바로 "램페이지" 퀸튼 잭슨이었다. 실바는 퀸튼에게 TD를 허용했고 시종 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시마다 레프리가 스탠딩을 선언한 후[5] 타격전에서 붕붕훅을 적중시키며 승기를 잡았고, 이후 넥클린치에서 니킥 12연발을 쏟아부으며 TKO로 퀸튼을 쓰러뜨렸다. 이로써 실바는 미들급 정규 타이틀과 함께 그랑프리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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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에는 미노와 이쿠히사를 1분 만에 파운딩으로 제압했다. 같은 해 8월 Pancrase의 에이스인 '부동심' 곤도 유키가 도전해 왔으나 펀치로 쓰러뜨린 후 스톰핑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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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0월에 미들급 타이틀을 두고 퀸튼 잭슨의 도전을 받았다. 여기서도 퀸튼의 레슬링에 밀려 계속 하위에 깔렸는데 1라운드에는 위험한 상황에까지 몰렸다 공 때문에 살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체력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퀸튼은 점점 페이스가 떨어졌고, 결국 또 다시 체력에 난조를 보이며 넥클린치에서의 니킥 연타에 링줄에 대롱대롱 메달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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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퀸튼과의 경기 외적으로도 대립구도가 조성된 탓에 여러가지 볼거리가 많았다. 서로를 비방하고 독설을 퍼붓더니 경기 전 인터뷰에서는 난투극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급기야 서로 '난 네놈이 싫다.'는 식의 감정적인 대립까지 오갔다. 잭슨은 시합에서 늑대인간의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고 시합 전에도 엄청나게 인상적인 눈싸움이 오갔다. 1차전에서 KO 당하기 직전 잭슨이 실바를 보며 씨익 웃었는데 그걸 본 실바는 따라 웃으면서 그대로 피니시를 먹였다.

실바와 잭슨의 라이벌 기믹은 크게 성공적이었다. 아마도 PRIDE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구도였겠지만 어쨌든 수많은 명장면과 가쉽을 만들어냈고 실바는 PRIDE 미들급의 흥행을 책임지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훗날 UFC도 이것을 요긴하게 써먹는다.

2004년 12월 남제에서는 마크 헌트와 싸웠는데, 40kg의 체중차를 넘지 못하고 판정패했다. 그러나 불리한 대결[6]도 마다않고 받아들이며 '상대를 가리지 않는' 파이터라는 인식을 얻게 된다.


3.2.4. 2005 미들급 그랑프리[편집]


2005년 4월 요시다 히데히코와의 2차전이 벌어졌다. 요시다는 유도복을 잘 활용하며 선전했으나 또 다시 판정으로 졌다. 6월에는 일본의 마지막 희망인 젊은 에이스 나카무라 카즈히로가 출격했다. 나카무라는 놀랍게도 실바와 난타전을 벌이며 호각으로 싸웠으나 그만 경기중에 도복을 벗어던지는 뻘짓[7] 을 하다가 KO로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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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드 올릴 때까진 기다려 줬다.

8월 결승 토너먼트에서 대결한 상대는 ADCC의 개비기 대마왕 히카르도 아로나였다. 이 경기에서 실바는 아로나에게 완전히 압도당하며 그라운드에서 관광을 당했다. 결과는 만장일치 판정패로 93kg급에서의 패배는 티토 오티즈 전 이후 5년 만에 겪는 일이었다. 그러나 논타이틀전이었기 때문에 벨트를 빼앗기지 않았고, 아로나는 GP 결승에 진출했지만 마우리시오 쇼군에게 KO로 패했다.

2005년 12월 드디어 아로나가 정규 타이틀에 도전해 왔다. 실바는 GP에서 호되게 당했는지 TD 디펜스를 상당히 보강해서 나왔고, 1차전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근소한 차이로 실바가 판정승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로나가 시종 게임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판정 논란 속에서 PRIDE 사장인 사카키바라는 "아로나의 심정을 이해한다" 면서도 "K.O나 서브미션으로 이길 각오가 아니면 링 위로 올라오지 말아라" 라고 인터뷰를 했다. 아로나가 분명 우세한 경기였으나 적극적이지 않았고 테이크 다운도 전부 실바가 먼저 들어가면 시도하는 식이었던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흥행성을 위해서 아로나 같은 플레이 스타일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는듯.[8]


3.2.5.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편집]


2006년 7월에는 무차별급 토너먼트에 출전한다. 평소 체중에서 10kg 가까이 증량해서 출전한 실바는 1회전에서 일본의 레슬러 후지타 카즈유키를 만났다. 1라운드 초반 다운을 따내고도 후지타의 맷집에 밀려 하위에 깔렸으나, 스탠딩이 선언 된 후에는 내내 후지타의 얼굴로 링 안을 드리블해 다니면서 2회전에 진출했다.

2회전에서는 미르코 크로캅과 재회했다. 그러나 한 수 위의 체급과 타격 능력을 지닌 크로캅에게 그는 스탠딩 타격에서 그야말로 관광을 당하면서 바닥에 널부러졌고, 얼마 안 가 얼굴에 피멍이 들고 퉁퉁 부어올랐다. 결국 1라운드 5분 26초 만에 크로캅의 하이킥 한 방에 KO로 패배했다. 이미 크로캅은 1차전 때와는 달리 그라운드 방어능력도 갖춘 상태라 1차전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경기 이후 척 리델과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크로캅에게 관광을 당함으로써 경기가 연기되기도 했다. 애초에 미들급[9] 선수를 헤비급과 붙였으니[10] 당연한 결과다.

2007년 2월 24일, 미국에서 열린 PRIDE 33에서 웰터급 챔피언인 댄 핸더슨과 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맞붙었다. 3라운드에서 실바는 레프트 훅 한방을 맞고 무너졌고, 6년 동안 지켜왔던 미들급 챔피언 자리를 핸더슨에게 내주고 말았다. 미국에서 열린 경기라 사커킥과 4점 니킥이 금지된 경기였다고는 하나 이 때부터 기량에 한계가 온 것으로 보인다.


3.3. UFC[편집]


이후 프라이드는 와해되고, 그는 다시 UFC로 진출한다. 2007년 12월 숱한 화제를 뿌렸던 척 리델과의 경기에 출전, PRIDE에서 했던 그대로 붕붕훅을 휘두르며 전진스탭을 밟았으나 아이스맨의 날카로운 카운터에 번번히 막히며 만장일치로 판정패 당했다. 다만 내내 난타전이 벌어진 경기는 UFC 역대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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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UFC 84에서 척 리델을 쓰러뜨렸던 키스 자르딘을 붕붕훅으로 초살 KO시키며 다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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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1일 UFC 92에서 숙적이었던 퀸튼 잭슨과 재격돌했다. 당시 2전 전승의 전적을 가진 상대였기에 실바가 잭슨을 잡는 것은 쉬울 듯 보였다. 상대의 태클을 신경쓰는 듯 조금 신중한 경기 운영을 하나 싶더니, 또 들이대다가 카운터에 맞아 실신해 버렸다.

2009년 6월 UFC 99에서는 '에이스' 리치 프랭클린의 영리한 아웃 파이팅 전략에 말려 판정패.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적극적인 파이팅과 투혼을 보여주며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반면 승자인 프랭클린은 판정 시비와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야유를 받았다. 뭐 그래도 진건 진거지만.

2010년 2월 UFC 110에서 마이클 비스핑과 대결했다.. 1라운드에선 미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라운드에서부터 본격적인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신중하고 절제된 플레이를 보여주며, 경기 막판에 테이크 다운을 시도한 비스핑의 목을 잡아 길로틴을 거는데 성공했지만 2라운드가 끝나면서 아쉽게 3라운드로 넘어갔다. 3라운드에서도 우세를 거두면서 판정승으로 갈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끝나기 10초전에 갑자기 돌격, 비스핑을 녹다운 시켜버렸다.(…) 정말 아쉽게도 심판이 TKO판정을 내리기 전 공이 울려 판정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5초만 더 있었어도 녹아웃으로 이길 수 있었다.[11] 29-28로 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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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면 사커킥을 차려다 움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UFC 116에서 비스핑에게 승리함으로서 추성훈과의 경기가 확정되었었으나 훈련 중 얻은 늑골 부상과 무릎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다. 이 수술 이후 1년이 넘게 결장하게 된다.

2011년 7월 UFC 132를 통해 1년 반의 공백을 깨고 복귀했지만 크리스 리벤에게 1라운드 27초만에 TKO패를 당했다. 초반 펀치 공방에서 붕붕훅을 적중시킨 기세를 살려 러쉬를 감행했다가 리벤이 휘두른 레프트에 귀 뒷쪽을 정통으로 맞았다. 이후 넥 클린치를 시도했지만 되레 리벤이 클린치 상태로 날린 숏어퍼를 수 차례 턱에 허용하며 다운됐고, 몸을 가누지 못함에 따라 TKO 판정으로 패배했다. 장기인 인파이팅에서 밀렸으니 완패라고 해야 할 듯.

2011년 11월 UFC 139에서는 쿵 리와 싸웠다. 거리 조절과 킥의 달인인 쿵 리를 상대로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었고, 역시나 초반 백스핀 블로우에 다운되며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2라운드부터 조금씩 살아나며 압박하기 시작하더니 펀치 러쉬에 이은 니킥연타로 쿵 리를 떡실신시켰다. 이때 나온 클린치 니킥은 실바가 UFC에 입성 이후 옥타곤이라는 특성상 나오지 못했었기 때문에 더욱더 관중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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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리치 프랭클린과의 리매치를 치렀다. 2라운드에 붕붕훅을 적중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라운드 내에 피니쉬를 하지 못한 이후에는 프랭클린 특유의 아웃파이팅과 테이크다운을 동반한 그라운드 전략에 말려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리치 프랭클린과의 경기 이후 미들급 대신 라이트 헤비급에서 뛰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의사가 받아들여졌는지 2013년 3월 3일 UFC on FUEL TV 8의 메인 이벤트에서 WEC 챔피언을 지낸 라이트헤비급 강자 브라이언 스탠을 상대했다. 브라이언 스탠도 오른손 펀치가 매우 위협적인 선수였던지라 타격전이 예상되었고, 그 예상대로 1라운드부터 치고 받는 펀치 공방전이 벌어졌다. 1라운드에는 스탠의 펀치에 다리가 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잘 버텨냈고, 2라운드에는 잽을 섞어가며 타격전에서 우위를 슬슬 가져가다가 2라운드 1분여를 남긴 상황에서 헤드윅 훼이크 동작에 이은 라이트 카운터 펀치로 멋지게 KO승을 따냈다. 기량이 전보다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뛰어난 맷집과 펀치력을 자랑하는 스탠에게 따낸 KO승이라 관중들은 더욱 더 열광했고, 그 전 경기에서 프라이드 출신 파이터인 마크 헌트 또한 KO승을 따냈기 때문에 그 열광은 배가 되었다.

이후 차엘 소넨이 실바를 계속 도발하며 소넨과의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실바가 갑작스레 PPV 수당을 요구하는 바람에[12] 좌초될 위기에 빠졌고, 결국 얼마 후 실바의 부상으로 캔슬되었다. 데이나 화이트에 의하면 내년 1월까지 결장할 것이라는 듯.


3.3.1. 도핑 테스트 거부 사태와 은퇴[편집]


결국 브라질판 TUF 시즌 3가 확정되었고, 두 선수가 코치직을 받으면서 말많고 탈많았던 차엘 소넨의 대결이 실현될했다.

그런데 경기를 앞두고 불시에 가진 약물테스트에서 반달레이 실바가 도핑 테스트를 거부하고 도주했다. 며칠 후 반달레이 실바가 오해로 생겨난 해프닝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정황상 반실의 약물복용이 확실해진터라 그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TUF 시즌 도중 반실이 차엘 소넨에게 갑자기 선빵을 날렸고정작 TD당했다는게 함정 선수 육성에도 소넨이 훨씬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터라 브라질에선 차엘 소넨에 대한 선호도가 반달레이 실바에 대한 선호도를 압도하는 상황이었다.[13] 약물러를 신랄하게 깠던 반달레이 실바의 과거까지 조명되면서 실바에 대한 인기는 국내외적으로 극추락하고 있다.

게다가 이후 있던 청문회에서도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자 NCSA로부터 영구 출장정지를 당하면서[14] 사실상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데이나 화이트도 '더 이상 실바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아버렸다. 실바는 결국 2014년 9월 유튜브를 통해 은퇴 선언을 했다.

제 아무리 흥행력이 뛰어나고 팬덤이 든든한 파이터라도 한 순간에 나락을 탈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차엘 소넨이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말한바에 따르면 실바의 도핑 테스트 거부는 타당한 행동이였다고 한다. 사건 당일 USADA에서 나온 도핑 테스터가 실바를 검사하기 전에 차엘 소넨을 먼저 검사했는데 이 사람이 아무런 신분증이 없었을뿐만 아니라 MGM 그랜드 안에 후미지고 비위생적인 청소도구실(...)에서 하의 탈의를 지시하고 피를 뽑았다는것. 사실 이게 큰 문제인게 이러면 신분증 없이 누구나 "나 마약 테스터요." 하고 선수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 뿐더러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바늘은 꼽은 것은 덤. 그렇게 소넨의 검사가 끝나고 테스터는 실바에게 검사하겠다고 접근했는데 실바는 이 인간이 신분증도 없고 다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변호사에게 연락한 후 이 인간이 누구고 동의서에는 뭐라고 써있는지 알아보려는 등 합리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대화에 진전이 없자 실바는 기자회견에 가야한다며 그 자리를 떠났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이렇게 불시에 도핑 테스트를 하는 제도가 거의 처음 세워졌기 때문에 실바의 행동이 더 타당했다고 볼 수 있다.


3.4. Bellator MMA[편집]


그런데 갑자기 필 바로니의 트위터를 통해 2014년 연말 일본에서 실바와 바로니가 대결을 가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허나 UFC와의 계약 문제[15]때문에 복귀를 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진 미지수. 일단 바로니와의 매치업은 루머로 끝났다.

그리고 2016년 1월 16일 결국 UFC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FA가 됐다. 퇴출이 아닌 형태로 이렇게 FA가 되는 건 사상 최초. 아래는 인스타그램 사과문 전문이다.

" 내가 잘못했다. 사과한다. 지난 여름 여러 번에 걸쳐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UFC 가 시합을 조작하고 내가 그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었다.[16] 내가 '승부조작 ( Fight Fixing )' 이라는 말이, 불법한 행동이나 승부의 결과를 시합전에 미리 결정짓는 부정직한 행위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관계로 했던 발언이기 때문에 내 발언 전체를 취소한다. UFC 가 승부를 조작한다고 나의 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믿는다면, UFC 의 명성에 흠이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승부조작 주장을 증명할 근거가 없다. 내 언급으로 인해 발생했을지도 모를 오해에 대해 사과한다. "

실바의 변호사인 굿맨 曰 "주파는 실바에 관한 모든 권리나 의무사항을 해지시켜줌으로써, 이제 실바가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3월 세계 2위 MMA 단체인 Bellator MMA와 계약함으로써 복귀가 확정되었다.

2017년 6월에 드디어 차엘 소넨과의 대결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판정패했다.

Bellator 206에서 퀸튼 잭슨에게 KO패를 당했다.


3.5. 은퇴[편집]


2022년 9월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4. 파이팅 스타일[편집]




경기 스타일 자체가 매우 화끈하며 무에타이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17] 스탠딩 상태에서 빰[18]으로 끌고가 니킥을 무한으로 집어넣는 방식과 링 구석으로 몰고 가 상대에게 무식하게 내려찍는 스톰핑에 상대방의 얼굴이 피멍투성이로 변해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이 식겁할 정도인데 퀸튼 잭슨 역시 빰 싸움에서 밀려 아무것도 못하고 얼굴에 니킥을 셀 수도 없이 얻어맞고 피떡이 된 적이 있었고, 파워도 상당해서 헤비급 선수들과도 자주 경기를 가졌다. 또, 엄청난 핸드 스피드와 파괴력을 자랑하는 훅을 난타전에서 기막힌 카운터로 집어넣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었다.

단점으로, 일명 붕붕훅으로 불리는 훅을 마구 날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는 것. 이는 펀치의 정확도가 부족하다기보다, 실바의 스텝이 일류급 타격가치고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발을 붙이고 난타전을 거는 능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리치가 더 길거나 스텝이 좋은 선수에게는 근본없는 붕붕훅을 난사하다가 골로 가게 되는 것. 스텝의 부재는 척 리델과의 경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리델의 긴 팔에 밀려 접근전 한번 못해보고 포인트만 뺏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전법은 보기에는 즐겁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제법 손해보는 스타일이어서, 웬만큼 기량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은 쓰기 힘들다. 프라이드에서도 일류급 입식타격가였던 크로캅, 마크 헌트에게 타격에서 짓밟혔고, 댄 핸더슨에게 대포동 카운터를 맞고 침몰하기도 했으며, UFC에선 과거 2번이나 잡아낸 퀸튼 잭슨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고 실신했던 것은 모두 스텝의 부족함에서 나온 장면들이다.

또, 주짓수 블랙벨트이긴 하지만 히카르도 아로나는 그것을 가짜 블랙벨트라 비난하였으며 실제 그라운드 테크닉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히카르도 아로나처럼 힘에서 밀리지 않고 그래플링 기량이 뛰어난 선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아로나는 그렇다고 쳐도 퀸튼에게도 테이크 다운을 허용하며 몇번씩이나 위험한 모습을 보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치명적인 약점이다.[19] 덕분에 아로나로부터 2005년부터 실바는 반쪽짜리 파이터라며 꾸준히 까이고 있다. 더불어 관중을 너무 의식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이에 실바는 아로나에게 관중 의식 좀 하라며 대응했다.

또한 발전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티토 오티즈, 비토 벨포트와의 경기에서 보였던 단점이 약 10년 후인 히카르도 아로나, 척 리델과의 경기에서도 그대로 보였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스피드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톰핑, 사커킥, 4점 니킥 등 위험한 기술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용하는 면모도 있다. PRIDE 시절에는 파운딩보다도 스톰핑, 사커킥, 특히 4점 니킥을 매우 선호했는데, 이 때문에 PRIDE 에서는 태클 방어 후 4점 니킥으로 그래플러들을 잘 상대했었으나, UFC 진출 이후에는 모두 봉인당하면서 상대를 다운시키고도 마무리를 제대로 못해서 역전 당하는 시합이 많았다.

오픈 링을 정말 잘 활용하는 선수이지만 케이지 무대에서는 영 성적이 시원찮았다.


5. 기타[편집]


  • 집이 가난해서 7살 때부터 어머니의 가게에서 15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프로 파이터가 된 후에도 한동안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단백질 보충제를 살 돈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700달러를 후원받았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 PRIDE에 진출한 후에도 당분간 바 일을 도우며 투잡을 뛸 정도였지만 화끈한 경기로 주목을 모으며 파이트머니도 올라갔다. 2004년경엔 효도르가 자신이 프라이드에서 받는 파이트머니가 반달레이 실바의 반밖에 안된다며 불만을 터뜨릴 정도로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한다. 2010년에 이르러서는 생활이 많이 안정되었다고 하는데 UFC 대전료로만 경기당 15만 달러 이상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도 말하기도 했고, 2010년 아이티에 지진으로 인한 난민이 발생하자 다른 UFC 파이터들과 함께 모금활동에 나섰던 적이 있다.

  • PRIDE 시절 수많은 일본인 파이터들을 쓰려트렸음에도 이상하게 일본에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사실 흥행적으로 도움이 되는 떡밥인데다가 플레이 스타일이 워낙에 좋아 호평할 수밖에 없는 선수이기도 하며, 실바도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일본을 매우 좋아한다.

  • 고국인 브라질에서도 인기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흥행력 면에서는 어느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격렬한 경기스타일과 도끼 살인마라는 뛰어난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마이크웤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히 사쿠라바 카즈시퀸튼 잭슨과 연출한 대립구도는 PRIDE 미들급의 흥행 머신이라고 할 정도로 비중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본인이 떡밥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미스매치에 화끈하게 들이대다 패배하니 단체 입장에서는 효자도 이런 효자가 없다. 일본에 있을 때 격투잡지 편집장으로부터 빗자루와 싸워도 흥행할 선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자기가 불리한 경기에도 그대로 출전하고, 심지어 2체급 위에 상대와 경기를 가지라고 해도 군말 안하고 싸운다. 업체측에서는 최고의 선수로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게 미국 관중들의 입맛에 딱 맞는 스타일이라 북미에의 인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연패를 거듭하는 가운데도 UFC가 계속 푸쉬를 주는게 다 이유가 있다.

  • 2001년에 강도를 당한 적이 있는데, 강도가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저항도 못하고 순순히 돈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 2009년에 성형수술을 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웃기다. 사람들은 이전의 도끼 살인마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서 아쉽다고 한다. 다만 미용을 위한 것은 아니고 호흡에 문제가 있어서 코 수술을 하고, 하는 김에 눈가의 뼈에 생긴 요철도 제거했다고 한다. 수술 후 체력이 향상된 모습을 보였으니 잘된 일이다. 또한 인상이 꽤나 선하게 변해서 친근감이 생겼다는 평가와 함께 수술 후의 모습을 지지하는 팬들도 있다.

  • 2013년 4월 7일 벌어지는 UFC FUCL 9를 앞두고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이 심한 눈쪽 컷으로 게가드 무사시와 경기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대신 무사시와 싸우겠다고 화이트에게 2013년 4월 1일날 트윗을 날려서 팬들의 큰 호흥을 끌어내었고 위기에 처한 대회를 구하고자 몸소 나선다고 해서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곧 얼마 안있어 트윗으로 영상을 올려 "만우절이었어" 하면서 귀여운 포즈로 어흥! 하면서 드립을 날려 보는이들을 폭소케 했다. 사실 스탠과의 경기 이후 텀이 너무 짧기도 하고 반실의 몸상태도 전성기 때보다 저하된걸 생각하면 이때 경기를 가지는게 힘들긴 했다. 해외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말 귀엽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구스타프손과의 대전이 날라가 심기가 불편했던 게가드 무사시는 이걸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만우절드립을 듣고서는 2013년 올해의 등신상! 참 잘했어요! 멍청아! 라는 트윗으로 반실에게 화답해줬다. 뭐 결국 경기는 구스타프손이 아웃되고 일리르 라티피로 대체되었으며 반실은 사과의 트윗을 날렸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의 차이라고도 할수 있는게 우리나라 파이터 같았더라면 선배가 아무리 심한 장난을 해도 후배가 화를 내는건 상상하기 어렵다.[20] 하지만 서양에서의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수평 관계라 나이도 9살이나 차이가 나고 경력도 넘사벽 차이임에도 게가드가 반실의 장난에 돌직구로 받아쳐도 저런 훈훈한 결과가 나온다는 거다.

  • 일본에서 기공도사로 유명한 무술인겸 방송인인 야나기 류켄은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반달레이 실바와의 대결이 성사된다면 승산이 있느냐는 질문에 100% 자신의 승리를 장담한다. 라고 드립을 쳤다. 뭐 그냥 드립으로 받아들여도 될말이고 이 야나기 류켄은 대동류 합기도 관장으로써 자신의 유파는 천하무적이고 자신은 세계를 돌며 200승 무패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지만 오랬동안 무술을 연마했는지도 불문명한 사람이며 원래 개인절의 주지승 출신이고 접골원도 하는 그냥 상업 종교인이자 방송인일 뿐이다. 실제로 2006년도에 종합격투기 선수인 이와쿠라 츠요시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시합에서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응급실까지 실려간 전력도 있다.


5.1. 떡밥 논란[편집]


PRIDE 해체 이후 UFC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 때문에 실바는 일본에서 일본인 선수와의 떡밥 매치만으로 뜬 거품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전적을 살펴보면 일본인 파이터를 상대로 거둔 승리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가이 메츠거, 댄 헨더슨, 퀸튼 잭슨 등 쟁쟁한 실력을 가진 외국인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21] 그리고 그와 대결한 일본인 선수들도 대전 당시에는 떡밥이 아닌 일본의 희망을 등에 업은 에이스들이었다. 한때 최강이었던 사쿠라바 카즈시나 Rings의 에이스인 타무라 키요시, 유도 영웅 요시다 히데히코, Pancrase의 곤도, 후지타 카즈유키, 그리고 차세대 선두주자인 나카무라 카즈히로까지 중량급에서 한다 하는 일본인이라면 예외없이 실바에게 도전했을 정도다. 최소한 DSE가 실바 좋으라고 얘네들을 붙여준 것은 아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게다가 후지타를 비롯하여 길버트 아이블이나 미르코 크로캅, 마크 헌트같은 헤비급, 무제한급에 해당하는 선수들과의 경기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상대를 가렸다는 말을 듣기에는 좀 억울할 수도 있다. 다만 이것도 헤비급을 상대로 싸우는 것인 만큼 이기면 대박이고 져도 변명거리가 있는 매치인만큼 대회 흥행을 책임진 격투가로써 책임감은 인정받을 지언정 챔피언이 정작 같은 체급의 랭커들과의 매치가 적다는것에 대한 쉴드거리는 되지 못한다. 당시 마우리시오 쇼군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최강자로 평가받은 것도 알리스타 오브레임, 퀸튼 잭슨,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 히카르도 아로나 등 당시 체급내 최강자들을 모두 확실하게 잡아내었기 때문이다. 존 존스조제 알도가 윗체급 선수와 특설매치를 했기때문에 최강의 챔피언으로 인정을 받는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 PRIDE의 막장스러운 단체 운영 때문에 실바 말고도 헤비급 선수와 매치를 가진 동 체급의 선수들은 여럿 있었다.

다만 2005 미들급 그랑프리 이후 아로나를 피한 것은 사실이고 타이틀 수문장인 쇼군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2011년 들어 UFC에서 브라이언 스탠이나 비토 벨포트와의 시합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과거의 모티베이션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젠 나이도 있고 종합격투기에서 40전 이상 싸운[22] 베테랑인 만큼 만성적인 부상도 주렁주렁 달고 있다. 2010년 실바의 무릎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가 이 몸으로 선수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23]


5.2. 머리가 나쁘다?[편집]


단체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룰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칙을 범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그가 원래 활동하던 IVC는 박치기를 허용하는 룰이었는데 당시의 실바는 박치기로 피니시를 쓸 정도로 버팅에 일가견이 있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IVC를 접고 PRIDE에 본격적으로 적응한 그였지만 2000년 8월 PRIDE 10의 가이 메츠거와의 경기에서 그만 반사적으로 박치기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이겼다.

실바가 거의 승기를 잡은 상황이었고 주최측에서도 밀어주고 있던 선수였기에 별 탈없이 넘어갔지만 자칫하면 몰수패로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누가봐도 고의적인 버팅이었으니. 보면 알겠지만 말 그대로 대놓고 받아버렸다. 룰에 적응하지 못했다면 변명이라도 되지만 당시 실바는 PRIDE 4전째였다.

UFC 110에서는 쓰러진 마이클 비스핑에게 사커킥을 날리기도 했다. 비스핑이 완전히 쓰러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다행이 두부에는 닿지 않고 바디를 찬 것이 되었다. 요행으로 반칙은 피했지만 아슬아슬했던 순간. 당사자도 차고난 직후 '움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도 5전째이기 때문에 룰의 적응 여부가 문제가 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승리를 위해 반칙임을 알고도 고의적으로 범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승을 얻기 위해 저지르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 게다가 은근슬쩍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 당당하게 대놓고 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놈, 혹시 머리 나쁜거 아냐?'라는 얘기가 있었다.


5.3. 과한 관중 의식[편집]


러쉬를 즐기며 너무나도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 이 스타일은 그의 상품성을 높여주고 단체에게 이익을 안겨주지만 반대로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때가 많다. 너무나도 극단적인 그의 성향에 대해 일각에서는 멘탈이 불안정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저돌적인 경기를 펼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5.4. 실바의 굴욕[편집]


아울러, 2004년 가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변변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인천의 모 나이트클럽에서 초라하게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사진에 남아 한국의 실바 팬들을 울리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이른바 '실바의 굴욕'으로 명명되어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실바는 몇 년 뒤 '한국을 다시 찾고 싶다.'는 대인배적인 발언을 하여 사람은 생김새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다만 싸비MMA 이재선 감독이 김대환의 파이트캐스트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기애애하고 좋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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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원 짜리 싸구려 고기를 먹고 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1년 5월, 트위터를 통해 한국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실은 각국의 언어로 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 번역기의 상태가 메롱한 탓인지 의미불명의 글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한국의 팬들을 잊지는 않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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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문은 "I am very happy when you guys come visit me here, the forces that you bully me and really very important to me my friends."였는데 대강 번역하자면 트위터에 찾아와 주는 팬들에게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force세력으로, bully괴롭히다로 번역되며 생긴 해프닝이였다.[24]


5.5. 인간 관계[편집]


앤더슨 실바와는 끈질긴 악연으로 유명한데 슈트박세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던 사이라고 한다. PRIDE 시절에는 반달레이가 앤더슨의 세컨을 볼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으나 앤더슨이 금전문제로 슈트박세를 탈퇴하면서 원수가 되었다. 반달레이의 UFC 진출 이후에는 다시 화해하는 듯도 했으나 미들급으로 전향하면서 같은 체급이 되자 다시 으르렁. 결국 앤더슨이 실바의 대전상대인 리치 프랭클린의 훈련을 도와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에는 2011년에 다시 화해하고 UFC 139를 대비하여 스파링 파트너도 해줬다는 모양이지만 언제 또 원수로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앤더슨 실바와 대립하고 히카르도 아로나에게 까이는 등 브라질리안 파이터 사이에선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으나, 브라질리안의 대부인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는 친한 듯하며 마우리시오 쇼군이나 무릴로 닌자와는 같은 슈트박세 소속의 동료이기 때문에 매우 돈독한 사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인기를 얻으면서 브라질리안 파이터들의 실력을 전 세계에 알린 선수로 평판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며 급기야 UFC 110 마이클 비스핑과의 시합 전에 브라질리안 파이터들로부터 격려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받기도 했다.


6. 둘러보기[편집]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대립
믹 폴리 vs 트리플 H
(2000)


사쿠라바 카즈시 vs 반달레이 실바
(2001)


티토 오티즈 vs 켄 샴락
(2002)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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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망스어와 게르만어권의 인명이나 지명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경기 당일 체중은 최대 102kg[3] 사실 괜찮다라고 보기는 힘든 경기였다. 스탠딩에선 양쪽다 확실한 우위를 못보이고 진행되었고. 그라운드로 데려가서 상위를 잡는건 성공했지만 당시 초보였던 크로캅의 클로즈드 가드에 잡혀서 딱히 뭔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단 크로캅이 스탠딩에서 우세를 보여준것도 아니고 상위를 실바에게 내어준만큼 특별룰이 아니였다면 판정에서 실바의 우세했을것이다.[4] 이와사키는 MMA 경험이 전무한 가라데 선수였는데 하이킥으로 KO패를 당했다. 이런 선수가 실바와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원래 대전 상대였던 레이 세포가 펑크를 내버렸기 때문. 참고로 이 경기는 셔독이 선정한 '괴상한 매치 10(10 Great Freak Matches)' 2위에 랭크되었다.[5] 이때 실바에게 옐로카드가 주어졌는데 그대로 판정으로 갔으면 99% 지는 상황이었다. [6] 원래 상대는 사쿠라바였는데 사쿠라바가 경기를 약 5일정도 앞두고 부상을 당해서 아웃되었고, 그 와중에 프라이드측에서 헌트를 급 투입했는데 경기를 불과 5일 남겨둔 상황이라 라이트헤비급 체중 그대로 나오게 되었다. 미친DSE 놈들아 리져버는 동체급이라는 상식도없다.[7] 타격전을 하는데 도복이 너무 걸려서(반팔 모양의 개량형 도복이었다.) 벗어던졌다고 한다.[8] 실제 아로나는 매우 강한 파이터지만 경기는 더럽게 재미없게 한다. 그래서 PRIDE 합병 당시 영입은 커녕 데이나 화이트에게 디스를 당했다. [9] UFC 라이트헤비급이었지만 실바의 체격은 현 UFC 미들급에서도 큰 편은 아니다.[10] 증량으로 체중은 무거워졌으나 적정 체중을 한참 벗어나 싸웠다.[11] 경기가 끝나고 실바가 환호하는 동안에도 비스핑은 여전히 뻗어있었다.[12] 실바의 PPV 흥행력이나 UFC측에서 지불해야 할 PPV 수당 등(소넨이 실바 혼자 PPV 수당 받는다고 가만히 있을 양반이 아니므로실바를 주면 소넨까지 줘야 한다.)을 고려하면 UFC 입장에선 그다지 달가운 요청은 아니다.[13] 실바는 캠프를 옮기며 몇 년 전 미국으로 이민갔다. 미국에서 살면서 브라질을 사랑한다는 언행이 브라질 팬들에게 위선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14] 미국 주 체육위원회의 징계는 해당 주에서만 적용되는게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적용된다. 즉 NCSA에서 징계를 해제하지 않는 이상 미국에선 영구적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15] 은퇴한 선수라도 선수로 복귀하는 순간 UFC와의 계약이 다시 유효화된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16] 이 시기에 실바는 승부조작 외에 여러가지로 UFC를 극딜했다.[17] 종합격투기 판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전에는 시릴 가네처럼 아예 무에타이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무에타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지 종합격투기 시합에서도 이따금 와이크루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가볍게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18] 무에타이에서 목을 잡고 하는 클린치 싸움이다.[19] 정확히는 그라운드 하위포지션에서의 서브미션 방어능력은 나쁘지 않지만 이스케이프나 리버스 능력이 떨어지고 파운딩 방어도 허술한 편인데다가, 무엇보다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생각 외로 허술해서 제대로 된 그래플러들에게는 항상 고전했다.[20] 만약 김동현이 만우절 장난이라고 임현규한테 드립쳤는데 임현규가 저렇게 반응했다면 저거와는 양상이 틀렸을 것이다. [21] 단 헨더슨은 그 당시 시점에선 기량이나 경쟁력 면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웰터급에 기웃댈만큼 입지가 안좋은 상황이였고 네임벨류에 비해서 나름 저력이 있는 파이터 이상의 평가는 받지 못한 상황이였다. 메츠거도 동양인 파이터가 아니였을 뿐 타이틀권에 걸맞는 강자는 아니였다. [22] 발리 투도 계열의 단체에서 맨손으로 싸우기도 했다. 대전 도중 박치기가 날아가는 것은 이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23] 실바 뿐 아니라 전적이 30전, 40전을 넘어가는 베테랑이라면 예외 없이 몸이 망가져 있다. 은퇴 후 만성적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할 위험을 안고도 경기에 나서는 것이니 노장들이 모티베이션이 떨어진 것 같다고 너무 까지 말자. [24] 참고로 일본어로 코멘트를 다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일문은 "私は非常に皆さんが力、ここで私を参照してください来たとき嬉しいことにいじめ私は、本当に私にとって非常に私の友人が重要"로 여전히 의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