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수(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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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인수
2. 경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인수


1. 신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인수[편집]


성명
박인수(朴寅洙)
본관
밀양 박씨
생몰
1859년 ~ ?
출생지
함경남도 신흥군 영고면 연동리[1]
(현 함경남도 신흥군 부연리)
사망지
미상
추서
대통령표창

박인수는 1859년생이며 함경남도 신흥군 영고면 연동리(현 신흥군 부연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12일 신흥군 영고면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연동리, 신덕리, 창평리 등지에서 100여 명의 군중을 모아 영고면 사무소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박인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2. 경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인수[편집]


성명
박인수(朴仁壽)
생몰
1867년 ~ ?
출생지
함경북도 경성군
사망지
미상
추서
대통령표창

박인수는 1867년생이며 함경북도 경성군 출신이다. 그는 1919년 9월 경성군 주북면에서 최병학, 최형욱(崔衡郁), 김동식 등이 결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북면 사감부에 가담해 재무(財務)로 선임되었다. 이후 이들은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자금모집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말경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박인수는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약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박인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인근의 구상리·중리·흥복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장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