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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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영준(朴英俊)
생몰
1885년 4월 25일 ~ 1943년 8월 19일
출생지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현재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사망지
경상남도 동래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박영준은 1885년 4월 25일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5일 기장 장날이 되자 시장에 나가서 집에서 만든 망건을 팔려 했다. 그러던 중 시장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지는 걸 본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천 마을의 청년들과 주민들을 모아놓고 독립운동의 의의를 상세히 설명한 뒤 그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이후 4월 11일 50여 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광면 이천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킨 그는 곧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1919년 6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동래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3년 8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박영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