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개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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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안창호의 주장 이념
3. 이광수의 주장 이념
3.1. 개요
3.2. 내용
4. 안창호와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의 비교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주장으로 안창호의 것과 이광수의 것이 있다.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은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의 영향을 받았지만 둘은 큰 차이가 있다.

2. 안창호의 주장 이념[편집]


독립을 위해선 민족 개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아래의 이광수가 주장한 내용과는 논점이 전혀 다른 주장이다. 안창호의 경우는 민족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계까지도 변화해야한다는 사상이었고, 당연히 독립이 목적이었다. 관련 자료

안창호는 자치론을 적극적으로 배격하고 무장 독립을 지지한 독립 운동가였는데 이광수는 안창호 전기를 쓸 때 이 부분은 은폐하였고 이 때문에 안창호의 이미지는 굉장히 왜곡되어서 부당한 인식을 받고 있다. [1]


3. 이광수의 주장 이념[편집]



3.1. 개요[편집]


1922년 5월호 월간 잡지 <개벽>에 이광수가 기고한 글이다. 분량은 잡지 기고글이니만큼 컴퓨터로 인쇄해서 읽어도 A4 35장 내외로 짧다. 잡지 기고글치고는 길긴 하지만. 문체도 쉬운 편이라 읽을 만 하다.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 제2기 '문화 통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자치론자들에게는 좋은 변명거리가 된 글이었으나, 아마도 일제 강점기 당시 이만큼 가루가 되도록 까인 글 또한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국사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무런 생각 없이 한번 쭉 읽었다간 그럴싸한데? 하고 낚이게 되는 글. 이광수의 글발이 워낙 좋고 어물쩍 넘어가는 재주도 뛰어나며, 제일 큰 이유는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독립을 부정하고 '일제 치하의 자치'를 주장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헬조선 같은 자국 혐오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제대로 낚이게 된다. 대한민국에 퍼진 21세기 자국 혐오자들의 주장의 근거와 많이 유사하기 때문...

3.2. 내용[편집]


나는 조선 내에서 이 사상을 처음 전하게 된 것을 무상한 영광으로 알며, 이 귀한 사상을 선각한 위대한 두뇌와 공명한 여러 선배 동지에게[2]

이 기회에 또 한번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중략)

조선 민족의 역사에 참고해 보건대, 인은 조선 민족의 근본 성격인 듯합니다. 국제적으로도 일찍 남을 침략해 본 일이 없고, 또 외국인을 심히 애경하는 성질이 있으며, 민족끼리도 잔인 강폭한 행위는 극히 적습니다. 살인 강도 같은 잔인성의 죄악은 현금에도 심히 적다 합니다.

(중략)

조선처럼 관대한 자는 타민족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중략)

다음에 조선인은 애인(愛人)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처음 대할 때에는 좀 뚝뚝하고 찬 듯하지마는 속마음에는 극히 인정이 많습니다.

(중략)

이제 그 반면인 결점을 보건대, 관대 박애하므로 현대 국민이 가지는 배타적 애국심을 가지기 어려우니, 그러면서 사천 년래 능히 국가를 유지한 것은 그의 자존심과 무용성이 있음이외다. 그의 성(性)이 염결한지라 이민족의 영토를 침략할 야심이 없을뿐더러, 치부지술(致富之術)이 졸(拙)하여 저 삼국 시대를 보더라도 미술의 발달은 당시 세계에 관(冠)이 될 만하면서도 상공업의 발달은 보잘것이 없었습니다. 또 예의를 숭상하는 반면은 진정의 유로(流露)를 저애하여 허위에 흐르기 쉬우며, 자존심이 많음은 지도자의 지도에 순종함을 절대 요건으로 하는 공고한 단체의 조직을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그의 낙천적이요 현실적인 본성은 그로 하여금 피안의 낙원을 구하는 종교나 심오한 철학적 사색이나 과학적 탐구에 대한 노력을 경시하게 하였습니다. 조선 민족을 금일의 쇠퇴에 끌은 원인인 허위와 나타와 비사회성과 및 경제적 쇠약과 과학의 부진은 실로 이 근본적 민족성의 반면(半面)이 가져온 화(禍)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민족성,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니니, 이것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천품이라 어디까지든지 발휘하여야 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조할 것은 조선 민족의 근본적 성격이 아니요, 르봉 박사의 이른바 부속적 성격이외다. 그러할진댄 우리의 개조운동은 더욱 가능성이 풍부하다 할 것이외다.

(중략)

조선인이 각 개인으로, 또 일 민족으로 문명한 생활을 경영할 만한 실력을 가지게 된 후에야 비로소 그네의 운명을 그네의 의사대로 결정할 자격과 능력이 생길 것이니, 그때에야 동화를 하거나 자치를 하거나 독립을 하거나, 또 세계적 의의를 가진 대혁명을 하거나, 그네의 의지대로 자처할 것이외다.

(중략)

그러면 이 개조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

각 사람으로 하여금,

1.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이 없게

2. 공상과 공론은 버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 의무라고 생각하는 바를 부지런히 실행하게,

3. 표리부동과 반복(反覆)함이 없이 의리와 허락을 철석같이 지키는 충성된 신의 있는 자가 있게,

4. 고식(姑息), 준순(浚巡) 등의 겁나를 버리고 옳은 일, 작정한 일이어든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나가는 자가 되게,

5. 개인보다 단체를, 즉 사보다 공을 중히 여겨 사회에 대한 봉사를 생명으로 알게,(이상 덕육 방면)

6. 보통 상식을 가지고 일종 이상의 전문학술이나 기예를 배워 반드시 일종 이상의 직업을 가지게, (이상 지육 방면)

7. 근검 저축을 상(尙)하여 생활의 경제적 독립을 가지게, (이상 경제 방면)

8. 가옥, 의식, 도로 등의 청결 등, 위생의 법칙에 합치하는 생활과 일정한 운동으로 건강한 체격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함이니, 이것을 다시 줄여 말하면 덕, 체, 지의 삼육(三育)과 부의 축적. 사회 봉사심의 함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 민족 중에 이러한 사람이 많게 하자, 그리하여 마침내는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참되고, 부지런하고, 신의 있고, 용기 있고, 사회적 단결력 있고, 평균하게 부유한 민족이 되게 하자 함이외다.

불행히 현재의 조선인은 이와 반대외다. 허위되고, 공상과 공론만 즐겨 나타하고, 서로 신의와 충성이 없고 임사(臨事)에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어서 사회 봉사심과 단결력이 없고 극히 빈궁하고, 이런 의미로 보아 이 개조는 조선 민족의 성격을 현재의 상태에서 정반대 방면으로 변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개조주의자의 유일한 주장은 조선인이 제국주의자가 되든지, 민주주의자가 되든지, 또는 자본주의자가 도든지, 노농주의자가 되든지를 물문(勿問)하고, 오직 그 무슨 ‘.......자’ 될 사람의 인성을 개조해야 한다 함이외다. 다시 말하면 현재 조선인의 성격을 개조한 뒤에야 건전한 제국주의자도 될 수 있고, 민주주의자도 될 수 있고, 노농주의자나 자본주의자도 될 수 있는 것이지, 이 개조가 없이는 아무 주의자도 될 수 없이 오직 열패자(劣敗者)가 될 뿐이라 함이외다. 신용할 만한 덕행, 직무를 감당할 만한 학식이나 기능, 자기의 의식주를 얻을 만한 직업의 능력, 이런 것이 없이야 무엇이 되겠습니까.

(중략)

최후에 한 가지 미리 변명할 것은 이 개조 운동은 정치적이나 종교적의 어느 주의와도 상관이 없다 함이니, 곧 자본주의, 사회주의, 제국주의, 민주주의, 또는 독립주의, 자치주의, 동화주의, 어느 것에나 속한 것이 아니외다. 개조의 성질이 오직 민족성과 민족생활에만 한하였고, 또 목적하는 사업이 상술한 바와 같이 덕체지(德體知) 삼육의 교육적 사업의 범위에 한한 것인즉 아무 정치적 색채가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있어서는 안될 것이외다.


요약을 하자면 이렇다.

1. 조선인의 민족성은 근본적으로 보자면 악하지도 않고 좋은 점들이 많다.
2. 그러나 부속적 성격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3. 이를 개조해야 한다.
4. 개조가 되어야, 제국주의자가 되든 민족주의자가 되든 사회주의자가 되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개인 단위에서의 인격적 각성이,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요하다.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독립을 부정하고 '일제 치하의 자치'를 주장한다던가 하는 부분은 없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이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해석되는 것을 거부했고, 다만 개인 단위에서의 인격적 각성을 주장했을 뿐이다.[3] 그러나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이[4] 독립을 전제하고 있는 반면 이광수는 정치적 색채를 완전히 지워버렸으니 다분히 정치적인 사안인 '독립' 역시 고려되지 않게 된다.

당연히 당시 이 주장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안재홍, 이상재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홍명희, 허헌 등 사회주의 계열 민족주의자들이 격노했으며, 이후 설립되는 신간회에서 기회주의자를 일체 배격한다는 강령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글 자체로만 보자면 인격적인 각성을 민중에게 추구하는, 일종의 공익 광고(...)에 가까운 거라서 대부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후 이광수의 행보는 <민족개조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깎아먹게 했다. 그는 이후에 친일파로 변절하는데, 훗날 그의 행보를 참고해서 <민족개조론>을 읽으면 배신을 위한 변명에 가깝다. 특히 조선 귀국 후 총독부 아래에서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던 당시의 이광수를 생각한다면,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도덕적 각성'을 바라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각 개인으로, 또 일 민족으로 문명한 생활을 경영할 만한 실력을 가지게 된 후에야 비로소 그네의 운명을 그네의 의사대로 결정할 자격과 능력이 생길 것이니"라는 부분은 어떻게 봐도 자치론을 위한 떡밥 뿌리기에 가깝다. 특히 얼마 안가 이광수가 진짜 자치론의 논리를 담은 문제작 <민족적 경륜>을 기고한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4. 안창호와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의 비교[편집]


안창호가 주창한 '민족 개조론'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말하는 내용은 완전히 상반된다.

안창호는 '총체적 구국 개혁 사상의 방략으로 여러가지 개조론'으로 주장해왔는데, 특히 '민족 독립 국가 수립'이라는 명백한 목표 하에, 근대적인 한국인 양성을 목표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이광수가 주창한 '민족 개조론'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는 인격적 수양을 말한 것이었다. 글 자체는 자치론을 주장하는 부분이 없지만, 변절자들의(그리고 이광수 자신의) 변명으로 쓰기에는 이만한 글도 드물다.

또한 안창호는 각성과 분발을 통해 자기 향상을 촉구함으로써 민족의 독립과 번영이라는 목표와 신념이 있었으나, 이광수는 불변적 요소와 가변적 요소로 나누어 민족을 해석함으로써 자기 비하와 패배주의적인 주장을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건여기#여기# 참조.

전문은 이곳링크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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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석홍, 안창호, 역사 공간, 2016년 참고[2] 참조 '위대한 두뇌'는 안창호 선생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광수는 자신이 안창호의 사상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에 자신의 색채를 살짝 첨가한 것에 가깝다. 문제는 그 살짝이...[3] <민족개조론>에서 '개조'라는 말은 '개인들의 인격적 각성'을 의미한다.[4] 민족 개조라는 말은 안창호가 먼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