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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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2.3.1. 2010년대
2.3.2. 2020년대
3. 경제 교류
4. 문화 교류
5. 대사관
6. 관련 기사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 중국, 일본삼각관계에 관련된 문서. 3국은 영향력이 강하며 이중 미국과 중국은 상임이사국, G2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 19세기 ~ 중일전쟁 이전 - 미국, 일본 VS 중국
  • 중일전쟁 ~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 미국, 중국 VS 일본
  • 냉전 - 미국, 일본[A] VS 중국[B]
  • 1990년대 ~ 2000년대 - 미국, 일본[A] VS 중국[B]
  • 2010년대 이후 ~ 현재 - 미국, 일본 VS 중국

2.1. 20세기 이전[편집]


미국의 세계체제의 본격적인 행위자로 등장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하고 있지만, 대략 1890년대 후반을 그 기점으로 잡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 시기에 미국의 연방정부가 전국적인 행정력을 완비하게 되면서 비로소 적극적인 세계적 역할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분석하고, 미국 대외정책의 패러다임적 전환이 이루어진 곳으로 아시아를 지목하고 있다(Zakaria 1998). 이러한 변화의 실제적 사례가 바로 1898년의 미서전쟁과 1899년의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의 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미국의 세기는 필리핀 병합을 통해 ‘심정적인 제국주의(sentimental imperialism)가 구체화되고, 헤이(Hay)가 “향후 5세기 동안 세계정치의 핵심적 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중국을 대상으로 하면서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21세기 미중일 관계의 전망


18세기 미국이 독립하고 19세기 서양의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가 되거나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을 받게 되는데 당연히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청나라중화사상으로 주변국들을 오랑캐라고 여겼고, 에도 막부네덜란드를 제외한 다른 서양과의 교역은 17세기에 다 금지했다.

19세기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는 대영제국에 패했다. 이때 미국은 매튜 페리 제독을 보내서 일본을 개항시킨다. 그렇게 미국이 일본에게 영향력을 행사려는 찰나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터졌고, 전쟁 직후 이를 수습하느라 일본에는 제대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 보신전쟁이 한창일때 남북전쟁 때 썼던 무기들을 팔아치워서 어느정도 이득을 보았다.

일본의 메이지파(신정부군)가 보신전쟁에서 승리하고 메이지 유신을 해서 일본 제국이 되었다.

한편 청나라도 일본처럼 서구화 개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청나라의 실권자가 서태후였고, 서태후의 방해로 인해 계속 실패한다.

1899년 의화단 운동에는 미국과 일본이 협력해 청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2.2. 20세기[편집]


청나라는 1912년 신해혁명으로 몰락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됐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미중일 모두 협상국으로써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1]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최대 수혜자가 되었고, 일본 역시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반면 중국은 독일로부터 빼앗긴 조차지의 이권과 중국 영토를 다시 되찾고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서 세계열강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협상국으로 가담했다. 그러나 독일의 조차지는 이미 일본이 선수쳐서 먹은 상태였고 중국은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대공황 이후 1930년대에 들어서 군국주의화가 된 일본 제국은 만주 사변을 일으켜서 만주를 점령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운다. 중일간에 갈등이 생겨났디. 반면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만주 사변 이후에도 겉으로는 껄끄러운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 않았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위에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존재했고, 소련이 만주를 먹는것보다 일본이 만주를 먹고 소련을 견제해주는것이 좋았기 때문이다.[2]

하지만 여기서 일본이 미국, 영국과 적이 된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나왔는데, 소련일본 제국이 몽골 할하 강에서 벌인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군이 대패를 해버린것이다.

이때 일본이 소련이 과거 러시아 제국하고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훨씬 강한 나라라는 것을 깨닫고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그리고 소련을 견제[3]하지 않고 중국을 침공해서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일본 제국은 추축국이 되었고, 미국과 중화민국은 연합국이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제2차 세게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패전하고 미국과 중화민국은 승자가 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돼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됐다.

그리고 이어진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은 적국으로 싸우게 된다. 이때 일본은 미국의 점령하고 있었고,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 등 유엔군에게 수많은 물자를 팔아치우면서 다시 한번 국가를 재건할수 있는 기틀을 만들게 된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은 일본국으로서 주권국가가 되었다.

1956년 일본의 총리가 된 이시바시 단잔은 중국을 방문해서 마오쩌둥저우언라이를 만나 '일중수출입우호조약'을 맺는다. 이후 이시바시 단잔은 사퇴했다.

1972년 일본의 총리가 된 다나카 가쿠에이는 중국을 방문해서 마오쩌둥저우언라이를 만났고 일본과 중국은 수교를 맺는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도 리처드 닉슨헨리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했고 미국과 중국도 수교를 맺는다.

1980년대 들어서 일본이 너무 커지자 미국이 일본을 더욱 견제했고, 이에 일본이 소련과 손을 잡으려 했다. 이에 미국은 이에 반발해서 중국을 지원했다.

1991년 소련은 해체됐고, 일본은 거품경제가 터지면서 장기간의 경제 침체를 겪었다.

2.3. 21세기[편집]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반면 일본은 계속 끈질지게 버텼고, 이에 미국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일본을 게속 견제했다. 덕분에 이 시기에 중국은 크게 경제성장을 했으며, 2010년에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2009년 6월 28일에 미국과 중국, 일본 등 3개국이 정책협의를 위한 정기 대화의 틀을 발족시킬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7월 9일에 중국 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의 3국 협의체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3.1. 2010년대[편집]


2010년대 이후, 미중간 갈등이 일어나 미중패권경쟁이 시작됐다. 일본은 미국과 협력을 강화했다.

미중일간 갈등은 중국의 위상 탓이란 분석이 나왔다.#

미국측이 중국, 일본에 외교장관 회담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

2014년에 리커창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이 방일하고 미국의 일본 지지에 대해 반발했다.#

2016년에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중일간 군사경쟁이 확대되고 있다.# 남중국해에 미국 군함이 진입하자 중국 군함은 대마도 인근 해역에 진입했다.# 아세안에 대해서도 3국은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7년 이후, 3국간 군비경쟁이 확대됐다.# 3국은 2026년까지 총 9척의 항공모함을 건조해 실전 배치한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2.3.2. 2020년대[편집]


2020년 11월 24일에 왕이 외교부장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중국과 일본이 외무장관 회담으로 바이든체제에서 경제대국의 미중일 3국체제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G7국가들이 대러제재를 유지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기로 했다.#

5월 11일에 일본 의회는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법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도 군사협력을 확대했다.#

2023년 2월 5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난 중국 정찰풍선 사건과 관련해 대만,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일 양국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과 협정을 체결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3. 경제 교류[편집]


3국간 경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 많이 진출했다. 중국 기업들은 일본, 미국에 많이 진출했다. 2008년에 3국의 주요 경제지표가 악화되기도 했다.#

2009년 9월 15일에 일본은행이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자 미국, 중국도 환율경쟁에 나섰다.#

드론사업과 관련해 3국은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슈퍼컴에 대해서 3국은 경쟁하고 있다.#


4. 문화 교류[편집]


3국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다. 미국에선 일본어, 중국어가 주요 외국어이고 일본은 중국어가 주요 외국어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어가 주요 외국어다. 영어는 중일 양국에서 제1외국어에 속해 있다. HSK, JLPT는 3국 모두 실시하고 있다.


5. 대사관[편집]


미국은 베이징시와 도쿄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중국은 워싱턴 D.C, 도쿄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일본은 베이징시와 워싱턴 D.C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3국 모두 일부 도시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6. 관련 기사[편집]




7. 관련 문서[편집]


  • 미국/외교
  • 중국/외교
  • 일본/외교
  • 미영프관계 / 한중일 / 영프독
  • 상임이사국[4]
  • G7[5]
  • G2
  • G20
  • IPEF[6]
  • 미국/역사
  • 중국/역사
  • 일본/역사
  • 미국/경제
  • 중국/경제
  • 일본/경제
  • TPP[7]
  • RCEP[8]
  • 미국/문화
  • 일본/문화
  • 중국/문화
  • 미국인 / 일본인 / 중국인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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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B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명목상으로는 좋았으나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견제를 받았다.[B] A B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명목상으로는 안 좋았으나 실질적으로 미국이 밀어줬고, 덕분에 수혜를 많이 받았다.[1] 참여순서는 일본, 미국, 중국 순.[2] 만주사변을 인해 일본이 미국, 영국과 사이가 안좋아졌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진짜로 사이가 안좋아지기 시작한 때는 중일전쟁때부터다.[3] 애초에 메이지 유신도 영국이 러시아 견제해달라고 도와준거고, 만주 사변으로 만주 먹는것도 미영이 소련을 견제하라는 차원에서 먹는것을 허용한 것이다.[4] 일본은 상임이사국이 아니지만, G4를 결성해 상임이사국에 진출할려고 하고 있다.[5] 중국은 가입하지 않았다.[6] 중국은 가입하지 않았다.[7] 중국은 가입하지 않았다.[8] 미국은 가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