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내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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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주요 분쟁
2.2. 카렌 분쟁
2.3. 라카인 분쟁
2.4. 카야 분쟁
2.5. 샨 분쟁
2.6. 버마 공산당 분쟁



1. 개요[편집]


Internal conflict in Myanmar

미얀마에서 발생하고 있는 내부갈등들을 일컫는 말이다. 미얀마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보니 소수민족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매우 크며 무장단체를 결성하여 정부와 무장투쟁을 하고 있다. 소수민족들과의 계속된 내전은 미얀마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미얀마에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기 시작하자 이들도 미얀마 임시정부와 연대하면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참가하고 군부세력과 교전중이다. 그리고 또한 이들은 군부 정권의 몰락 및 민주주의 정권의 재수립이 이뤄질 시 미얀마 연방 발족 및 소수민족 자치권 보장, 미얀마 연방군 창설과 권력분립을 논의중에 들어갔다.


2. 주요 분쟁[편집]



2.1. 카친 분쟁[편집]


Kachin conflict
1962년 2월 5일 ~

카친 독립군과 미얀마군 간의 분쟁이다. 시작은 쿠데타로 집권한 네 윈카친족에 대한 차별과 탄압에 나서면서 벌어졌는데 네 윈의 탄압에 분노한 카친족이 무장투쟁에 나서고 네 윈은 군대로 진압에 나서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미얀마군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카친 독립군은 살아남아서 계속 저항했고 1994년에 네 윈이 실각하고 실권자인 소 마웅이 휴전을 제의하며 카친 독립군이 받아들여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2011년에 미얀마 군부가 휴전을 취소하며 20,000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다시 카친 독립군을 토벌하려들자 카친 독립군도 가만있지 않고 저항하기 시작하여 2차 내전이 벌어진다. 미얀마군은 토벌과정에서 반군 280명을 사살했으나 이 과정에서 카친족 민간인 1,677명이 사망하고 100,000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게다가 반군은 여전히 꺽이지 않고 살아남아 저항했으며, 진압과정에서 미얀마군이 의도적으로 카친족 민간인들을 공격하여 살해하고 붙잡아 학대한 사례들이 폭로되어 국내외로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2014년에 미얀마 정부와 카친족 반군이 서로 회담을 가져 휴전을 선포하여 2차 내전은 끝이 났다. 2021년에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카친족과도 갈등이 심해져 다시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2. 카렌 분쟁[편집]


Karen conflict
1949년 1월 31일 ~

미얀마의 카인 주[1]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으로 카렌 민족해방군과 미얀마 간의 분쟁이다. 1989년 이후에 이 충돌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는 약 4,500명이며 2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 미얀마 시민편을 들며 군부와 소규모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3. 라카인 분쟁[편집]


Rakhine State clashes
2016년 10월 9일 ~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과 미얀마군 간의 분쟁으로 미얀마 내부 분쟁 중 가장 최근에 발생했다. 이 분쟁으로 인해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는 24,000명에 달한다.

2020년대 들어서 아라칸 로향야 구원군[2]은 2017년 벌어진 로힝야에 대한 학살 이후 로힝야족들이 방글라데시나 해상으로 대거 탈출하면서 기반을 잃은데다, 난민이 떠난 자리에 남은 로힝야 가옥들을 철거하고 빈 자리를 군 기지와 불교도 주민들의 정착촌[3]으로 채우면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이후 산발적인 테러로 연명하는 중이다. 2008년 생긴 아라칸족 중심의 아라칸군[4]에게 밀려서 그나마 남은 미얀마 영토 내의 아지트마저 빼앗기고, 지금은 ISIL의 몰락과 사우디의 빈 살만의 개혁 이후로 자금줄마저 말라버렸다. 주로 국경을 너머서 간간히 총격전을 벌이거나 로힝야 난민촌에서 로힝야족들의 돈을 갈취하고, 마약을 밀매하고, 이에 따르지 않는 난민촌 지도자들을 살해하는 등[5], 도적 수준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몇몇 간부들은 방글라데시 군경에 의해 대거 체포/구속되었으며 오히려 아라칸군인 AA가 상술한 대로 2019년부터 인지도와 세력을 불려 현재 미얀마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미얀마 내전이 격화된 이후 두 세력 모두 남아있는 로힝야 마을에 전략적으로 주둔해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으며, 로힝야족을 불법체포하거나, 임시 지휘부나 막사로 쓰려고 살던 집에서 강제퇴거를 시키거나, 납치해서 재산을 갈취하거나, 징용을 시키고 총알받이로 내모는 등, 로힝야족들은 더욱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2.4. 카야 분쟁[편집]


kayah conflict
1949년 ~

KIA(Karenni Army)와 미얀마군 간의 분쟁이다.


2.5. 샨 분쟁[편집]


shan conflict
1958년 5월 21일 ~

여러 샨족 반군들과 미얀마군 사이의 분쟁이다. 특히 지도자 쿤사가 이끄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의 샨족 반군인 몽타이군이 유명했다. 쿤사가 항복한 후 몽타이군의 다수가 항복했지만, 잔여세력이 여전히 남아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2.6. 버마 공산당 분쟁[편집]


Communist insurgency in Burma
1948년 4월 2일~1989년 4월 16일, 2021년 8월~

버마 공산당과 미얀마군간의 분쟁이다. 1989년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6], 미얀마 쿠데타 이후 중국으로 망명을 간 지도부가 재입국해 무장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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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렌 주'라고도 불린다.[2] ARSA(Arakan Rohingya Serve Army)라고 부른다.[3] 모텔촌이라고 부르며 주로 버마족 군인 가족들이나 라카인족 농어민들, 치타공 구릉지대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탄압을 피해 온 줌머족들이 주로 정착했다.[4] AA(Arakan Army)라고 부른다. 위의 ARSA과 AA는 사이가 매우 안좋으며 무기 질과 병력 수에서 AA가 월등히 앞선다. ARSA는 전성기때조차 5~600명 정도가 고작이었고 지금은 100명을 웃도는 정도지만, AA는 만명이 넘는 인원과 좀 더 정교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중화기와 샨주에서 활동하는 와방연합군(UWSA, United Wa State Army)과 더불어 공군력까지 갖추고 있는 둘 뿐인 세력이다.[5] 최근에도 ARSA의 상납 요구에 응하지 않은 난민촌 지도자이자 인권운동가인 모히브 울라가 ARSA에 살해되었다.[6] 말이 평화협정이지 사실상 공산당의 항복이라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