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멕시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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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캐나다-멕시코 관계 관련 틀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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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독립 이전 : 문화적 차이의 배경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3. 경제 교류
4. 문화 교류
4.1. 언어
5. 군사 교류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3국은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하며 교류와 협력이 많은 편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라고 해서 사실상 혈맹으로 분류되는 반면 미국과 멕시코의 경우 국력이 약한 멕시코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미국에게 압도된 상황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독립 이전 : 문화적 차이의 배경[편집]


멕시코의 기원이 된 스페인의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에 유입된 유럽인들은 거의 다 남성이었고 대개 현지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여 오늘날 멕시코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메스티소의 조상이 되었다. 캐나다나 미국의 영어권 이민자들 역시 남성 이민자들이 더 많기는 했으나 청교도[1]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 각지의 개신교 계열 종교적 소수자 인구의 이민이 적지 않았고 이러한 연유로 미국 사회는 원주민과의 혼혈보다는 백인 위주로 성장하게 되었다. 프랑스어권 식민지의 경우도 초창기에는 원주민 여성과 프랑스인 백인 남성간의 통혼이 흔했지만, 17세기 프랑스 정부에서 자국 내 범죄자나 빈민 여성들을 캐나다 퀘벡과 루이지애나 등으로 강제이주시키고 대대적인 출산 장려, 강요를 실시하면서 프랑스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미국과 캐나다 문화의 특징은 인종(영국계/독일계/프랑스계), 종교(개신교) 같은 요인 외에도 유럽/아시아와 다르게 전통 기득권층(토지귀족, 관료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던 사회적 요인, 이용 가능한 토지가 사실상 무한대였던 지리적/경제적 요인이 더 컸다. 종교에서 아무리 평등을 강조해도 토지는 부족한데 인구만 많다던지 하면 해당 사회에 평등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반면 스페인의 알짜배기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의 경우 토지가 남아돌았다는 점은 같았지만, 페닌술라르 우대 정책으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순혈주의, 관료화된 원주민 선교단체 등등의 영향에 힘입어 유럽의 전통 기득권층 위주의 사회 구조가 그대로 이식되었다. 미국에서 자유지상주의, 실용주의, 개인주의 문화가 발전하는 동안 멕시코는 백인 > 카스티소 > 메스티소 > 원주민과 흑인 순의 카스트 제도가 자리잡고 인종에 따른 계층 고착이 이루어졌다.[2] 이러한 차이점은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가 독립하고 나서도 좁혀지지 않고 삼국의 문화 및 정체성, 사회 구조로 계승되었다.


2.2. 19세기[편집]


18세기 말 유럽에서는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 혁명이 시작되어 결국 노동자 계급에게 저임금 중노동이 강요되고 프로이센에서는 인구 증가에 따른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 당시 유럽에서는 중산층 가정에서도 일주일에 고기 한 번 먹는 정도였다면 미국에서만 군인들이 맨날 똑같은 고기만 먹는다고 지겨워하는 수준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소득 및 생활 수준이 월등하게 높았고, 의학의 발달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민하는 사람들의 사망률도 감소하면서 이민 리스크 및 비용도 감소하였다. 이를 계기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 각지에서 엄청난 수의 인구가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19세기까지 태평양 서해안 일대까지 영토를 넓히자 영국과는 영토갈등이 생겨났다. 이에 미국은 영국과 국경협정을 체결했고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해안지역은 영국령으로 유지되었다. 러시아령 아메리카였던 알래스카러시아 제국이 미국과 협정을 체결해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한편, 캐나다 지역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자치권을 조금씩 얻으면서 19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19세기 말에 미국은 스페인과 미서전쟁을 치루며 아메리카 대륙에 마지막 남은 스페인 식민지를 장악하였다.

19세기를 거치며 미국은 유럽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며 부강해진 반면 멕시코는 국수주의 정책을 취하면서 마치 오늘날의 미얀마와 마찬가지로 빈곤 문제가 심화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기준 멕시코의 1인당 국민 소득은 미국이나 영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였고 멕시코의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멕시코 사회에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다 오히려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이는 20세기 초반 멕시코 혁명으로 이어진다.


2.3. 20세기[편집]


세계 제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며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캐나다의 경우 미국과 관민 할것없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멕시코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우호 관계였을지는 몰라도 멕시코 민간 및 지식인들 사이에서 반미 감정이 팽배하였다. 이미 19세기 초반에 먼로 독트린을 발표하며 아메리카의 패권을 다진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냉전에서 원교근공 외교정책을 바탕으로 유럽(소련 및 공산권 블록 제외) 및 동아시아의 우방국에 마셜 플랜을 통해 대대적인 지원을 펼친 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친미 독재정권을 후원하는 방향으로 해당국들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멕시코의 반감은 미멕전쟁 당시 상실한 영토(전쟁 이전 멕시코 영토의 55%에 해당)에 대한 집착과도 연결되어 있다.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정복한 선벨트 지역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농업과 광업 위주의 1차 산업 위주로 발전이 이루어졌으나 에어컨의 보급으로 2,3차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20세기 이후 내연기관의 발달로 석유의 수요가 폭증하기 시작했는데 멕시코가 미국에게 토해낸 그 텍사스에서 우수한 품질의 석유가 쏟아져나왔다.

미국에서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캘리포니아를 개발하며 철도를 부설할 당시 캘리포니아는 동부와 다르게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캘리포니아에 중국계 이민자들을 비롯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캐나다 역시 브리티시 컬럼비아를 개발하면서 상당수의 중국계, 인도계 이민자들을 받았다. 멕시코 역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유입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멕시코 혁명 당시 화교 학살이 발생하였고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멕시코 이민 대신 차별이 그나마 덜하고 경제 활동이 더 편한 미국 이민을 선호한 것을 계기로 20세기 이민해서 자리잡은 멕시코 내 아시아계 이민자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1980년대 멕시코 경제가 오일 쇼크로 인한 미국의 대출 금리 인상으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 이민하는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2.4. 21세기[편집]


3국 모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3국간에도 경제적인 교류가 활발하다보니 자유무역협정USMCA도 체결되었다. 3국은 미주기구의 회원국에 속해 있다. 미국내에는 멕시코계 미국인을 포함한 히스패닉들이 많은 편이며 히스패닉들의 영향으로 스페인어가 사실상 미국의 제2언어가 되었다. 캐나다는 프랑스계 캐나다인퀘벡의 영향으로 영어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캐나다에서도 미국내 히스패닉들이 이주하면서 스페인어 화자가 늘고 있다.

멕시코가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이 많다보니 미국,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관광하러 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2010년대 후반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자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에 장벽을 세운다고 밝히자 멕시코측이 반발했다. 멕시코인들의 비자가 막히는 경우가 생가자 캐나다로도 이주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2018년에 세 나라가 2026 FIFA 월드컵 공동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2021년에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뒤, 미국과 멕시코는 관계가 개선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는 트럼프 행정부때 중단되었던 경제회담을 5년만에 재개했다.#

2023년 1월 10일,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의 정상회담에 개최됐다.#

1월 12일, 3국 정상회담에서 아시아 수입 반도체의 25%를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3. 경제 교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USMCA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문화 교류[편집]


문화적으로 3국은 교류가 많이 존재한다.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와 드라마가 멕시코, 캐나다에서 인기가 많이 있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하는 멕시코인 유학생, 캐나다인 유학생들이 많이 있다. 미국인, 캐나다인들이 멕시코로 관광하러 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3개국 모두 공휴일이 있는 달은 1월, 5월, 9월, 11월, 12월이다. 2월은 미국과 멕시코에만, 3월4월은 캐나다에만, 6월은 미국에만, 7월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10월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공휴일이 있고 8월은 그 어느 나라에도 공휴일이 없다.

4.1. 언어[편집]


멕시코는 지리적인 이유로 영어가 주요 외국어이다. 그리고 미국은 히스패닉들과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이주 및 인구 증가로 스페인어가 주요 외국어이고 널리 가르치고 있다. 캐나다는 퀘벡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영어와 함께 공용어이다. 미국에서도 프랑스어 교육이 스페인어 교육다음으로 실시되고 있다. 루이지애나주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고 있고, 메인주 북부 등 일부 지역에 프랑스어 화자가 존재한다.

5. 군사 교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캐나다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멕시코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미군의 규모가 가장 크고 군사력이 강하다. 미국측에선 멕시코의 방위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의 군사교류를 자주 하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8 20:55:21에 나무위키 미국-캐나다-멕시코 관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청교도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이 "미국의 청교도"라는 종교집단은 하나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초창기 미국으로 이주해온 종교적 소수자 집단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교파가 청교도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한 청교도들이 과연 청교도가 맞는가 하는 논쟁도 있다.[2] 미국이나 캐나다라고 해서 계층 이동이 마냥 쉬운것은 아니다만 적어도 이 지역은 중국계나 동유럽에서 이민 온 유대인 인구들이 교육열을 바탕으로 빈곤 문제를 상당부분 극복한 사례에서 보듯 라틴 아메리카처럼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었다.[3] 미국과 캐나다만 가입되어 있다[4] 멕시코는 가입하지 않았다.[5] 멕시코는 가입하지 않았다.[6] 라틴아메리카에 해당되는 멕시코는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