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라이베리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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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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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
라이베리아
Liberia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2.2. 20세기
2.3. 21세기
2.3.1. 2000년대
2.3.2. 2010년대
2.3.3. 2020년대
3. 문화 교류
4. 교통 교류
5. 대사관
6. 여담
7. 관련 기사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라이베리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라이베리아는 19세기부터 미국 흑인들이 라이베리아 일대로 이주 및 정착하면서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양국은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9세기[편집]


19세기에 미국내의 흑인 노예들이 라이베리아 지역으로 이주했다. 1816년, 토마스 제퍼슨의 제안으로 뉴저지 출신의 장로교회 목사 로버트 핀리가 중심이 된 미국식민협회가 흑인 노예들을 라이베리아로 이주하는 것을 맡았다.#

라이베리아는 미국령 라이베리아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식민지였다가 1847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독립국이 됐다.# 라이베리아는 독립 직후, 미국 헌법을 본따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성조기를 본딴 새로운 국기를 만들었다.#

1862년, 미국은 라이베리아의 독립을 승인한다. 라이베리아는 독립 이후 친미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라이베리아 지역에 새롭게 정착한 흑인 노예들과 토착민간의 갈등이 시작되면서 라이베리아는 토착민과 흑인 노예간의 내전이 발생됐다.[1]

라이베리아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은 미국의 문물을 전파하는 등 라이베리아는 미국과 협력이 활발했다.[2]


2.2. 20세기[편집]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냉전당시에 라이베리아는 주변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교류가 많았다. 미국도 라이베리아와 매우 가까웠고 라이베리아의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등 미국은 라이베리아를 지원했다.

1990년 3월 24일, 라이베리아의 님바 지역에서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교전이 일어나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사망하면서 미국 정부는 님바 지역에서 떠나는 것을 권고했다.#


2.3. 21세기[편집]


라이베리아내에는 19세기에 미국에서 이주한 흑인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미국식 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공통점이 존재한다. 라이베리아인들중 부유층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은 편이며 라이베리아내의 경제적 상황에 의해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도 많은 편이다. 라이베리아는 국민의 4분의 1이 미국 이민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1. 2000년대[편집]


2003년 6월 14일, 미국 해병대가 라이베리아로 파견됐다.# 7월 7일, 미국 군사전문가단이 라이베리아를 방문했다.# 하지만 라이베리아군의 방해로 난민 캠프를 방문하지 못했다.# 7월 9일, 부시 대통령은 라이베리아로 군대 파병을 검토했다.# 7월 21일, 찰스 테일러 대통령은 미국과 직접대화를 요구했다.# 몬로비아에서 라이베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격전을 벌이면서 미국 대사관이 큰 피해를 입었다.# 8월 6일, 미국 정부는 라이베리아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2006년 3월 21일,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라이베리아를 지원해 해외의 성공 스토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2008년 12월 22일, 라이베리아의 불안정에 미국이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을 미국 하원의원이 밝혔다.#


2.3.2. 2010년대[편집]


2014년 8월 11일, 미국이 시험중인 에볼라 퇴치제 지맵(ZMapp)을 라이베리아에 제공했다.# 9월 2일,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에 감염된 현지 주민들을 치료중이던 미국인이 에볼라에 감염됐다.# 9월 17일, 에볼라에 감염된 미국인 의사가 완치된 뒤, 라이베리아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10월 3일, 미국에서 라이베리아인이 에볼라 첫 확진 판정을 받자 기소 위기에 처했다.# 라이베리아 당국은 미국에서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은 라이베리아인이 입국시 처벌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라이베리아에서 미국 NBC 기자가 에볼라에 감염됐다.# 10월 9일, 미국 당국은 미국으로 불법입국하려던 라이베리아인 여성을 추방했다고 밝혔다.# 미국 해병대가 라이베리아에 도착해 에볼라 퇴치 업무를 맡았다.# 10월 19일, 라이베리아의 앨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의 아들이 에볼라를 피해 미국에 있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어났다.# 미국에 거주하는 라이베리아 출신의 한 여성이 에볼라 낙인 반대 캠페인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11월 12일, 미국 해군은 라이베리아에 파견중인 미군 규모를 4,000명에서 3,000명으로 줄인다고 밝혔다.#

2015년 1월 4일, 라이베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상원의원이 라이베리아내 에볼라 상황이 크게 완화됐다고 밝혔다.# 2월 27일, 미군은 몬로비아시에서 에볼라 퇴치 임무 종료식을 진행했다.# 3월 13일, 라이베리아를 방문했던 미국인이 온두라스에서 에볼라 의심 증세를 보이자 격리됐다.# 5월 1일, 미국 당국은 라이베리아의 에볼라 치료소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9월 20일, 미국 보건당국이 라이베리아를 에볼라 의무 검사국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11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라이베리아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라이베리아 차기 대통령 후보인 베노니 우레이가 감사의 뜻을 밝혔다.#

2017년 8월 21일, 싱가포르 해상에서 미군의 이지스함이 라이베리아 상선과 충돌했다.#

2018년 2월 12일, 미국에서 식당주인을 행사하던 라이베리아 학살주범이 체포됐다.# 3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라이베리아 이민자의 미국 합법적 거주 지위 종료를 시사했다.# 다만, 라이베리아에서 미국 리더십에 대한 지지가 올랐다.#


2.3.3. 2020년대[편집]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 온 라이베리아인들의 체류기간을 2022년 6월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2022년 2월 14일, 라이베리아 정부는 라이베리아 건국 200주년 기념행사에 미국 흑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거주하는 라이베리아인들을 초대한다고 밝혔다.# 7월 8일, 라이베리아기국(LISCR)이 미국 해안경비대와 유럽연합으로부터 선박안전기국으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3. 문화 교류[편집]


라이베리아는 미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공용어인데 라이베리아식 영어미국 영어를 바탕으로 생겨났다. 또한, 미국 문화는 라이베리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이다. 특히 추수감사절은 라이베리아에서도 기념일로 지정돼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라이베리아는 미터법을 쓰지 않고 있다.#


4. 교통 교류[편집]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대개 주변국을 통해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이베리아인들은 미국으로 입국할 때 비자가 요구된다.


5. 대사관[편집]


몬로비아시에 주 라이베리아 미국 대사관이 존재한다.

2014년 8월 7일, 미국 국무부는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가 확산돼 대사관의 모든 직원들과 가족들을 철수시킨다고 밝혔다.#


6. 여담[편집]


주한 미국 대사 대리였던 크리스토퍼 델 코소가 한국외에도 브라질, 아프간, 라이베리아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라이베리아의 엘렌 존슨 설리프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유학한 적이 있었다.#


7. 관련 기사[편집]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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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이베리아내의 내전은 20세기까지 이어지기도 했다.[2] 이 흑인 노예 이주민 후손들은 라이베리아의 상류사회를 구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