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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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姜[1]
? ~ 기원전 673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춘추시대 제나라 희공제 양공여동생, 제 환공누이. 당대에는 언니선강(宣姜), 여동생 애강(哀姜)과 함께 자매가 대단한 미녀로 유명했지만 훗날에는 세계사에 길이 남을 패륜 자매명성을 떨쳤다. 이 중에서도 문강이 제일 유명한데, 남은 기록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성인물 따위는 쌈싸먹는 행적을 보여줬던 희대의 섹스중독녀였다.


2. 생애[편집]


처음에는 정나라의 군주 장공의 태자 홀(뒷날의 정 소공)에게 시집갈 예정이었으나, 홀의 거절로 무산되면서 이후에 기원전 709년,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을 갔다. 사실 시집가기 전에 제나라 세자이자 오빠인 세자 제아(뒷날의 제 양공)와 불타는 밤을 보냈다. 3년 후인 기원전 706년, 장자 동[2]이를 낳았다.

기원전 694년, 노환공과 함께 친정인 제나라에 방문했다가 제 양공과 오랜만에 불타는 밤을 보냈다. 기원전 693년, 제나라에 다시 방문했고, 기원전 692년 겨울에는 (衛), 노, 제 등 3국의 경계 지역인 작 땅에서 제 양공을 만나 또다시 불타는 밤을 보냈다.

기원전 688년에는 위에 사람을 보내 보물을 돌려주도록 요청했다고 하며, 기원전 687년에는 방(防)에서 제 양공을 만나 다시 불타는 밤을 보내다가 또다시 겨울에 곡에서 제 양공과 만나 불타는 밤을 보냈다.

그런데 이후에 제나라에 왔다가 양공과의 관계를 알게 된 환공은 격분했고, 문강을 일단 노나라에 데려가 처리하려고 하자, 다급한 문강은 양공에게 이를 알렸다. 이에 양공은 공자 팽생을 시켜 돌아가기 전 환공을 불러 접대했고, 술에 취한 환공을 수레에 태우면서 주먹으로 환공을 때려 죽였다.

그러나 이후 누군가가 팽생의 특기인 늑골 부수기를 언급하며 환공의 시신을 검시해보라 하니 환공의 시신을 검시한 결과 피멍이 신체에 보여 노나라 사람들이 환공이 맞아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것은 외교 문제로 비화됐고, 양공은 토사구팽생을 죽이는 것으로 무마했다. 문강의 일로 환공이 죽었기 때문에 환공의 아들인 세자 동이 뒤를 이어 군주(노 장공)가 되었다. 과부가 된 문강은 시가(媤家)인 노나라에도, 친정인 제나라에도 가지 못하고 영토 중간에 머물렀으며, 이 후 아들인 장공과 동생인 애강과의 결혼을 주선하였다.[3]

양공과 만나면서도 자신이 머무른 곳에서 여러 남자들과 부대끼면서 살다가 말년에 노나라로 돌아와 태의(궁중 의원)와도 부대끼다가 죽었다고 한다 주위를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본인은 편하게 죽었을 수도 있었지만, 오빠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해소를 못해 앓을 수도 있다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말년에 겨우겨우 노나라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비참한 인생을 되새기며 푸념하다가 노환으로 죽는다.

[1] 참고로 문강은 본명이 아니다. 당시 여성들은 이름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수식어+성씨 형식으로 호칭하였다. 삼자매 이름이 O강인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선강은 위공에게 시집갔기 때문에 생긴 호칭이고, 문강과 애강의 호칭이 생기게 된 경위는 불분명하다.[2] 한자명이 同인데, 문강의 생일날 아이가 태어났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열국지에서 설명한다.[3] 당연히 장공 입장에서는 이모, 그것도 아버지를 죽인 여자의 동생과 결혼한 셈이다. 이 일로 인해 노나라는 또다시 변란에 휩싸인다 끝까지 민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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