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사키노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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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の上[1][2]
파일:A89A9B51-8AA5-4993-969D-C9A37008713B.jpg <아사키 유메미시>의 무라사키노우에

1. 개요
2. 행적
2.1. 겐지와의 만남
2.2. 중반
2.3. 후반
3. 지위
4. 그 외



1. 개요[편집]


히카루 겐지에게 가장 사랑받은 여인. 이것은 겐지의 아들 유기리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겐지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다.

일본 최고의 고전소설 겐지모노가타리진히로인인 데다 작가의 오너캐인 듯도 한데,[3] 은근 취급이 너무나도 안습한 캐릭터다. 어린 시절에 참새를 기르거나 인형놀이에 열중하는 등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겐지와 결혼을 한 뒤에는 미모 뿐만 아니라 글씨나 시, 불법에 대한 지식 등 모든 면에서 풍부한 교양을 지닌 완벽한 여성으로 성장하였다. 작중 넘사벽급 여성인 '후지츠보 중궁'을 제외하면 단연 탑클래스다.[4]

2. 행적[편집]



2.1. 겐지와의 만남[편집]


'후지츠보 중궁'의 조카딸로 아버지는 친왕이자 후지츠보의 오빠인 병부경궁이다. 모친의 신분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좀 애매하지만 그래도 천황의 친손녀라는 상당히 높은 신분이다. 다만 헤이안 시대의 상류층 여성의 신분은 정실 소생이 아닌 한 부친이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상당 부분 좌우되었는데 병부경궁이 정실 눈치보고 살던 공처가였고, 외할머니 밑에서 큰 와카무라사키는 버린 자식에 지나지 않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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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무라사키노우에.

히카루 겐지가 열여덟살때 병에 걸려 기도를 받기 위해 절에 갔을 때 참새를 잃어버렸다고 우는 무라사키를 우연히 만나며 무라사키가 처음 등장했다. 겐지는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버지의 후궁인 후지츠보와 너무나 닮았기에[6] 결혼을 전제로 후견인이 되겠다고 자처한다. 그러다 그녀를 키우던 조모가 사망하자, 아버지인 병부경궁이 그제서야 딸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녀를 친왕가로 데려오라고 했는데 그 사실을 안 겐지가 납치해와 키우면서 자신의 신부로 삼으려고 한다.[7] 정확히 말하자면 알렸다고 해야겠지만, 사실상 납치다. 아무튼 겐지는 며칠 동안 와카무라사키를 장난감 등으로 꼬셔서 호감도를 올린다. 실제로 현실에서 아동범죄자가 어린아이를 위로할 때 많이 쓰는 방법이다.[8] 이때 머무르게 한 곳은 겐지의 집인 이조원인데, 이곳은 왜 무라사키노우에가 정편의 주인공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조원은 어린 시절 겐지가 친어머니 기리츠보 갱의와 사별하고 소년기에 성장한 곳으로, 이상의 여인과 함께 살아가고자 바라던 곳이었다. 어린 무라사키노우에는 이곳에서 성장했으며, 본인 기준으로 이상적인 여인으로 성장하고 무라사키노우에는 이조원의 여주인이라 불리며 육조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온나산노미야 등장 이전까지는 단연 우두머리 내지는 위세를 누렸다. 정편의 마지막에 무라사키노우에가 병이 들자 이조원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사망한다.[9] 무라사키노우에의 죽음에 충격받은 겐지는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게 된다.

겐지의 첫 부인인 아오이노우에가 임신한 당시에는 아오이노우에와 겐지의 관계가 많이 가까워지지만[10]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의 생령에 의해 아오이노우에는 고통스러워하다 아들 유기리를 낳고 죽어버린다. 이에 겐지는 상중에는 무척 상심해서 아오이노우에의 오빠로 처남인 두중장이 위로해줬을 정도였다. 상이 끝난 뒤 와카무라사키가 성인(14살)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11] 겐지는 며칠 동안 와카무라사키의 처소를 드나들어[12] 겐지의 여인이 된다. 이 인간의 막장성은 다음날 보자마자 한 "나 원래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까"(...) 야 이 새캬

무라사키노우에는 아버지처럼 여긴 남자가 이래서 꽤 충격이었는지 한동안 피해다녔다고 한다. 사실 무라사키노우에도 겐지가 그리 싫지는 않았던 듯 하지만, 애초에 이 인간이 희대의 바람둥이인 만큼 상당히 천대받는다. 그래도, 겐지가 다른 여자에게 거의 눈을 주지 않고, 한결같이 무라사키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많이 연다.[13]

실제로 겐지는 그녀와 같이 살면서도 무라사키의 시녀 등 다른 여자에게 손대는 버릇을 못 버려 그녀 속만 문드러진다(...) 그러다 체념하여 겐지의 바람기는 몸만 있지 마음은 자기 거라고 혼자 정신승리 지경까지 가며 참아내 인내 게이지만 올라가지만 중요한 건 이 작자는 마음마저 딴 데 놓고 그녀를 그 여자의 대용품으로 삼은 것이다. 일생 모르긴 하지만 이것마저 깨달아버렸으면 정말 눈도 못 감았을 사연.

2.2. 중반[편집]


그러던 겐지는 후지츠보 중궁의 출가 결정 후 쇼크가 컸는지 고키덴 태후의 동생이자 자기 형인 천황의 중궁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던 오보로즈키요와 눈이 맞아 밀회를 몇 번 가지다 걸려 귀양을 가게 된다.[14]그래도 귀양가기까지 시간이 있으므로, 일단 겐지는 귀양가기 전에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거의 청산하고, 무라사키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고 귀양가 버린다. 이 때 겐지는 무라사키노우에를 믿고 집안 재산관리를 부탁하는데, 당시 무라사키노우에는 이조원의 여주인이라는 뜻의 니조노우에나 다이노우에라 불리며 훌륭하게 역할을 완수해서 무라사키노우에가 당시 겐지의 여인들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겐지는 무라사키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무라사키에 대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결국 귀양 오자마자 자기 딸을 히카루 겐지에게 시집보내 신분상승 겸 딸의 장래 보장을 위해 끊임없이 소개시킨 아카시노키미의 아버지 뉴도의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겐지의 아이가 생겨버린다. 그리고 천황에 의해 귀양이 풀린 겐지는 스마에서 낳은 딸이 있음을 밝히고 무라사키노우에에게 양육을 맡긴다. 겐지가 귀양갔을 때 만난 여자 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다는 소식에 조혼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기준에서도 젊다기보다는 어린 쪽에 가까웠던 그녀는 타격을 받았는데, 그 딸을 아카시 중궁으로 훌륭히 키웠다.

이후 겐지가 자기 영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처음에는 니조히가시노인(二條東院)을 건설하고 하나치루사토를 여주인으로 삼았으나,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가 죽고 육조원(六條院)을 물려받으면서 육조원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구역으로 나누어진 대 저택으로 구축해서 자기 영화의 정점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육조원에 자기 여자들을 불러들이는데, 무라사키노우에 또한 이조원에서 육조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무라사키노우에는 봄을 좋아하는 여자였는데, 무라사키노우에의 거처는 봄 주택이었고 겐지도 육조원에 있을 때는 이곳에서 지냈다. 겐지와 함께 지냈다는 시점에서 무라사키노우에가 사실상 육조원의 여주인으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는 다른 저택에서 거처했다.

이후 무라사키노우에는 유년기에 육조원에서 지냈으며 육조원 가을 저택을 사가로 삼은 아키코노무 중궁과 봄과 가을 중 어느 쪽이 낫냐고 토론하는데 무라사키노우에는 봄이, 중궁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가을이 좋다고 주장했다. 이후 중궁은 아키코노무 중궁이라고 불리게 된다.


2.3. 후반[편집]


후반부 무렵에 겐지의 이복형상황 스자쿠 천황이 자신이 출가하면 혼자 남을 셋째 딸 온나산노미야가 걱정된다며 아내로 삼으라고 하고, 겐지가 이를 받아들여 그녀는 졸지에 늙은 첩이 되고 만다. 이는 천황의 딸인 온나산노미야의 신분이 귀족인 무라사키노우에보다 높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전에도 엄밀히 말해서 정실은 아니었는데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라면 정실을 기타노카타(北の方)라고 부르고 전용의 거처를 마련하는데 무라사키노우에는 작중에서 키타노카타라고 불린 적이 없으며 겐지는 무라사키노우에에게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거처로 배정했다. 아오이노우에하고 사별한 후 온나산노미야하고 재혼하기 이전까지 겐지가 정식 부인이 없었고, 그 기간 동안 그의 거처를 관리하며 가장 그의 총애를 받은 여인이 무라사키노우에였기 때문에 정실 대접을 받은 것.

아오이노우에 사망 이후 오랫동안 정실이 없었던 겐지의 사정상, 겐지가 유배간 동안 집안 대소사를 보살펴왔고 겐지의 딸을 훌륭히 키워서 시집까지 보낸 무라사키노우에가 사실상의 정실이었는데 온나산노미야가 오면서 완전히 '그냥 오래된 첩' 신세로 전락했다. 무라사키노우에의 사연을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어린 나이에 보쌈당해온 후 20년 가까이 호적만 안 넣은 사실혼 관계로 살아왔고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도 다 결혼 관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남자가 상사의 새파랗게 어린 딸을 멋대로 호적을 넣어버린 것과 같다.

지금 같았으면 칼부림이 나도 벌써 났다.[15] 겐지는 이 일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한술 더 떠서 그 여자를 자신의 딸을 훌륭하게 키워준 것처럼 잘 이끌어달라고 부탁한다.

무라사키노우에는 어린 나이에 겐지에게 납치되어 사실상 고아 신세였기에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겐지의 총애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그 때문에 겐지가 바라는 대로의 여자를 연기해왔지만 결국 겐지에게 자신은 후지츠보 중궁의 대신이자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겐지와 온나산노미야가 첫날밤을 보낼 때 자신은 시녀들의 시선조차 두려워하며 방에서 떨고 있었는데, 무라사키노우에가 어떤 처지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 상황에서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의 사령이 자신에게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은 병이 들어 괴로워하다 자신이 자라온 이조원(二條院)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요청하고 겐지는 받아들인다. 무라사키노우에는 이조원으로 돌아가서 간병을 받고 겐지 또한 이조원에서 무라사키노우에의 간병에 집중하는데, 이 틈을 노린 카시와기가 육조원에서 지내던 온나산노미야를 겁탈하는 일이 벌어진다.

온나산노미야는 겐지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자 급히 겐지를 부르고 와카를 부르며 유혹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숨기려고 했고, 겐지도 처음에는 자기 아들인 줄 착각했지만 가시와기가 온나산노미야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모든 게 들통나게 된다.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의 사령이 이런 일을 벌이게 된 것을 알게 된 겐지는 여자의 애집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되고 기도를 한다. 들킨 걸 알게 된 가시와기는 두려움에 마음의 병이 생겨 죽고, 이제는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의 사령이 온나산노미야의 앞까지 나타나서 괴롭힌다. 겐지는 고민 끝에 온나산노미야가 낳은 아들 카오루를 자기 아들로 선포하지만 온나산노미야는 자기 아버지 스자쿠인에게 졸라서 일찍 출가해버린다.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의 사령이 아직도 성불하지 못한 것을 안 아키코노무 중궁은 출가해 어머니의 원혼을 달래려고 하지만 겐지가 그건 안 된다고 말리자 어머니를 위해 추선 공양을 올리며 열심히 빈 끝에 겨우 사라지게 된다. 유기리는 가시와기의 미망인이었던 온나니노미야를 납치 겁탈하면서까지 자기 여자로 삼았는데, 이 때 겐지와 유기리의 대화를 뒤에서 들으며 '여자만큼 처신하기 어렵고 안쓰러운 존재는 없다.'며 오랫동안 억눌러온 마음을 혼자서 토로한다.

이렇게 집안이 막장이 된 상태에서 여전히 이조원에 머물며 아카시 중궁이 시집간 뒤 출가하고 싶다고 부탁하지만 겐지에게 거부당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겐지보다 몇 년 일찍 43세로 사망한다. 작중에서 무라사키노우에는 우츠세미, 아카시노키미와 마찬가지로 '자존심이 강한 성정'이라고 표현되는 인물이기도 한데, 이들 모두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를 생각하면[16] 생령 한 번 되지 않고 버틴 끝에 죽은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렇게 무라사키노우에가 죽고, 겐지는 무라사키노우에가 자신에게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그는 이조원에 머물며 기리츠보 첩 마지막에 '후지츠보 여어(중궁)와 같은 이상적인 여자를 어머니의 집이었던 이조원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가 겐지의 여자로서 시작과 끝을 맺은 무라사키노우에였으며 무라사키노우에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를 느낀다. 겐지는 인생의 모든 영화를 다 누려보았지만 결국 인생무상, 화무십일홍의 이치를 깨닫고 1년 동안 깊은 죄책감과 허무함만을 안고 살다가 애집과 권력욕 때문에 망설여서 하지 못한 오래 전부터의 염원대로 출가하게 된다.


3. 지위[편집]


와카무라사키(若紫) → 무라사키노키미(紫の君)[17] → 니조노우에(二條の上)/다이노우에(對の上)[18]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19]


4. 그 외[편집]


작중에서 후지츠보 중궁 이후 최고의 미녀라 나오는 인물이다. 또 능력적으로도 매우 뛰어나서, 아키코노무 중궁과 봄과 가을의 대담을 벌일 당시 대등한 위치로 묘사되는 등 주인공다운 위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중에 다 추락하기는 하지만...

2001년 영화판에서는 무라사키 시키부가 그녀에 대해 말하길, '모든 남성들의 궁극적인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러 교육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키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다른 여자를 쫒더라도 이를 크게 따지지 않고 수용해주는 부인'이라는 의미에서의 이상형이다.[20] 다만 무라사키노우에가 그런 여자라 생각한 것은 겐지의 착각으로, 그녀는 겐지에 대한 애정으로 이 모든 일을 참다 결국 말년에 한계를 넘었기에 출가를 요구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참아온 것만 해도 충분히 대인배급이다.(...) 그런데도 겐지가 출가를 막아서 결국 무라사키노우에는 자기 의사대로 출가도 하지 못했다. 안습

어떻게 보면 겐지 때문에 잘 살 수도 있었던 삶을 뺏긴 비극적 히로인이다. 아버지 병부경궁은 무라사키를 데려가 정실부인의 자식들과 같이 키우자 하고 본처도 좋은 마음으로 허락해 거두어 키워주려 했다. 이 때 본처의 딸이 됐으면 무라사키는 못해도 그럭저럭한 남자에게 시집가 이복 언니들(긴조의 외숙부 하게쿠로 대장의 정부인, 레제인의 오노뇨고)처럼 정실로 잘 대우받을 수 있었을지도...[21]

거기다 무라사키의 아버지는 세력 있는 친왕이기에 그녀의 신분은 지금으로 치면 무려 여왕, 정실부인의 딸이 되었다면 본인 재량에 따라 황족으로서 입궁도 가능한 몸이다. 무라사키노우에가 촌녀 취급받는 아카시노키미와 그 딸을 거두어준 덕에 딸이 신분을 높이고 동궁의 정실까지 되었듯 병부경궁이 얼른 데려갔으면 그녀도 그렇게 업그레이드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겐지가 낼름 보쌈하는 통에 이 계획은 실패. 앞길 막힌 데다 덤으로 겐지 때문에 이 본부인의 미움까지 단단히 받는다. 친정 빽이 좋을수록 정실이 되고 대우도 잘 받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겐지 때문에 신분 하락에 친정 가족들과 거의 의절하여 남남이 되고 어중간한 처지가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겐지가 세뇌해 기른 결과 겐지에게 감히 화도 못 내,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앓다 마음병까지 얻어 죽게 되니 이게 무슨 일?!

평생 겐지의 사랑을 받은 것이 행운인 것처럼 나오지만 결국 겐지의 이기심 때문에 부친을 비롯한 부모형제와 척까지 지고 친왕과 정실의 딸로 당당하게 살 기회도, 친정 배경도 빼앗겨 신분 때문에 어린 황녀에게 밀려나는 수모를 당하고, 그녀 자신의 업글 기회는 겐지 때문에 날려먹고 남의 좋은 일만 해주고, 정작 자신은 겐지의 개짓을 다 받아주다 뒤통수까지 맞고 마음고생만 실컷 하다 죽었으니 그녀도 어쩌면 겐지의 희생양. 겐지가 일편단심으로 사랑해주었으면 신분 따위야 어찌됐건 행복했으련만 겐지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워댔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여자들을 한 지붕에서 주렁주렁 매달고 살았으니 [22] 온나산노미야가 정처 자리로 오자 그 딸린 여자들에게서 '안 됐네염...위로 ㅋㅋㅋ' 요따위 위로가 줄줄이 오는 등 심란하고 자존감이고 체면이고 바닥까지 내리치는 처지로..[23]

자기 정당화 1인자에 이기주의 끝판왕에 잘못 1도 모르는 겐지는 여전히 사랑 타령으로 정 떨어질 소리만 골라서 하고, 죽어가며 출가를 염원해도, 자기가 아쉬우니 막아 구원의 최후 길마저 방해하는 등 그녀에게 했던 행각들은 정말 일생 괴롭힘 수준. 끝내 겐지는 생전부터 관계한 무라사키 시녀한테 무라사키 얘기를 하면서 눈물 짓는 등 자기가 무라사키노우한테 딴 여자 자랑하던 짓을 그대로 한다. 달리 보면 무라사키노우에를 사후까지 물 먹인 셈 (...) 노답 인간쓰레기놈 이쯤 되면 그는 그냥 바람둥이나 이기적인 걸 넘어서 새디스트 기질이나 정신적 문제가 있을 지 않나 싶다.

애니메이션 '겐지 이야기 천년기'에선 엔도 아야가 연기했다. 초반엔 나레이션인가 했다가 겐지와 절에서 만나는 장면부터 직접 등장한다. 애니가 겐지의 스마행 시점에서 끝나서 비중은 후지츠보에게 상대적으로 밀리는 편이다.

여담으로 에로게 메이커, 퍼플 소프트웨어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무라사키(紫) = 보라색 = purple.

[1] 이는 겐지의 아내가 된 뒤의 이름이며, 결혼 전 처녀시절에는 와카무라사키(若紫)라고 불렸다. ~노우에(~の上)라는 호칭 자체가 원래 신분 있는 기혼여성에 대한 경칭으로 많이 쓰인다. 겐지의 첫 정실 이름도 아오이'노우에'(葵の上)다.[2] 한국의 어떤 번역가는 등장인물 이름을 죄다 한역해 '자의상'이라 번역한 적이 있다. 다만 이건 일본 고유명사를 한국식 한자음독으로 번역해 사용하던 관례가 최근까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문제가 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시대에 좀 뒤떨어진 번역이라 할 순 있어도 말이다.[3]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이름을 이 캐릭터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하는 경우도 있다.[4] 후지츠보와 비교하면 신분이나 혈통이 많이 떨어지다보니...헤이안 시대라 신분과 혈통은 그 자체로 미덕으로 간주된다.[5] 그러나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고 어느정도 유복하게는 지냈다. 애초에 정말로 한미한 집안이였으면 그녀의 어머니가 친왕인 병부경궁을 만났을 수가 없다. [6] 무라사키노우에는 후지츠보의 조카라서 겐지가 비슷하다고 본 듯 하다.[7] 그것도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에게 그녀의 소재조차 알리지 않았다![8] 그리고 나중에는 겐지가 여자와 문제가 생기거나 힘들어할 때 주변에 가서 치유를 받는다.[9] 이조원에 돌아간 무라사키노우에는 출가를 원했지만 겐지는 거부한다.[10] 겐지는 아오이노우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오이노우에는 본래 후지와라氏의 좌대신 딸로 천황에게 가리라 여겼지만 기리츠보인의 뜻에 따라 겐지와 혼인했고, 결혼 당시 아오이노우에는 16세, 겐지는 12세로 어린애여서 아오이가 매우 딱딱한 태도를 취해 겐지가 불편해했다고 나온다.[11] 현대 기준으로 보면 로리콘이 따로 없지만, 겐조모노가타리에서 후지츠보 중궁이 여어로 입궐한 당시 나이가 14살이고 온나산노미야가 겐지와 혼인했을 당시의 나이도 14살이라서 좀 어리기는 하지만 결혼은 가능한 나이였다.[12] 이전에는 와카무라사키와 평범한 부녀처럼 같이 자는 경우가 많아서 시종들이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13] 문제는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는 게 아니고, 그냥 줄였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본처는 무라사키지만, 빼애애액 다른 여자도 사랑할거야!!![14] 그것까지 무라사키는 용서한다... 엄청난 대인배... ![15] 사실 겐지는 당대의 시각에서도 천황 아들 아니었으면 목이 달아났을 짓을 여럿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버프(사실 그의 신분도 어찌보면 주인공 버프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로 엔간해선 겐지는 피해 안 보고 낼름낼름 여자들을 취하고 살아남았다.[16] 우츠세미는 원래 중앙 귀족의 딸로 기리츠보 천황에게 입궐할 예정이었으나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방관 후처로 전락했고, 아카시노키미는 '자신의 신분'을 거론하며 한탄하거나 조심하는 언급이 정말로 많이 나온다.[17] 스에쓰무하나 편부터 스마 복귀 직전까지.[18] 겐지가 스마로 복귀한 뒤의 명칭. 니조노우에는 니조노인의 안주인이라는 뜻이다.[19] 타마카즈라 10첩 호타루 편부터의 호칭.[20] 한 마디로 남편의 외도불륜도 별 신경 안 쓰고 집안일 열심히 하며 자기한테 잘 해주는 부인(...) = 모든 남성들의 궁극적인 이상형(...)이라는 말. 당연히 이런 사상은 지극히 남성중심적, 가부장적의 악질적인 사고관에서 기인한 것이다. 어찌보면 여자를 남자와 동격으로 본 게 아니라 남자에게 딸린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물건쯤으로 치부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관이며 저 궁극적인 이상형이라는 말은 당대 남자들의 이기적인 사고관, 겐지의 이기적인 행태를 돌려까기라고도 볼 수 있다.[21] 당시는 딸을 후궁이나 가능성 있는 사람에게 정략결혼시켜 빽으로 활용하던 시대여서 딸이 많을 수록 좋다고 여겼고 그래서 딸을 낳겠단 핑계로 바람질에 다른 여자 사이에서 낳은 딸을 안고 와 본처 딸로 키우게 하기도... 겐지가 무라사키에게 아카시히메를 기르게 한 것도 이런 맥락.[22] 물론 개중에는 스에무츠하나하나치루사토처럼 후원자도 없어 자기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처지의 '겐지와 연줄 있는 여성들' 에 해당되어 겐지가 말 그대로 거두어 동거만 하는 선에서 끝난 이들도 있긴 했다.[23] 이 때 저택에는 하나치루사토나 우쓰세미 급 네임드 처첩 뿐 아니라 겐지랑 '연 맺은' 각종 여자들과 시녀들이 다 모여 살아서 여자 수는 나온 것보다 더 많다. 무라사키가 공개적으로 하락했는데 이들이 작정하고 시비 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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